네가 살아있다는 증거를 대라

절대신비* 라는 장르

by 절대신비


엄밀히 말하면 나의 일은 문학이 아니다.

시詩가 죽음의 강에 한 발 딛고 서 있다는 간증이고

소설이 한 세계 창조하는 일이라면


장르 없는 내 글은

우주 질서 밝히고

그에 입각하여 세계가 나아갈 방향 제시하며

인류 혹은 시민 개인이 할 바 이야기하는 일이다.


혹은 우주 법칙 시작으로

그와 연결되어 있는 인간존재

그 무의식까지를 파헤치는 일이다.

최소한 본능에 잠식당하는

짐승은 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이다.


우주는 격발되었고

나는 이미 태어나버렸다.

그렇다면 한 번 살아보겠다는 것이다.


“우주는 어떻게 격발되었는가?”

“세상에 나서 우리 할 일은 무엇인가?”


고대에 ‘우주 원리 아는 자’란

기하학을 이해하는 자였다.

어이없게도 피타고라스* 시절 히파수스*는

√2*라는 무리수 발견한 죄로

피타고라스 학파에 의해 죽임당했다.

그들이 생각한 만물의 근원은 바로 자연수


무리수라는 존재가 우주 비밀이라면

그 사실 최초로 발견하고 또 떠들어댄 게 죄라면

당시 그는 사형감이었다.


요즘 그 비밀은 양자역학 위시한

최첨단 과학*이다.

철학은 과학과 한 점에서 만난다.

최종적으로 물리학에 수렴될 것이다.

요즘 과학자들이 그런 시도 하고 있다지만

전망은 그리 밝지 못한 듯하다.

공돌이 갈아 넣어 철학 완성하기란

난망인 까닭이다.


그런 이유로 나는 우주 제1 관문인

엔트로피 증가 법칙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메타버스, 양자컴퓨터, 수소경제, 핵융합 시대에

양자역학 외면할 수 없다.


시나 소설, 수필, 칼럼

시나리오 등에서는 쉽게 쓸 수 있는

사랑, 행복, 평화, 정의 같은

그 뜻 불분명하고 모호한 관념어 –거의-

쓸 수 없는 것이다.


이로써 나는 ‘인간적’ 혹은 ‘겸손’ 같은

따뜻하고도 위선적인 단어와는

결별하게 된다.


대신 정확한 뜻 있는 ‘과학어’ 쓴다.

가령 세계가 작동하는 방식이나 양자역학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상호작용’이다.


우주는 ‘균형’과 ‘대칭’ 이루고 있으나

비대칭으로 치고 나아가는 방식으로 전진한다.

무게중심, 밸런스는 물론이고

대칭이나 비대칭 같은 건조한 언어

쓸 수밖에 없다.


‘차원도약’, ‘절대접점’ 같은

절대어를 만들 수밖에 없었고

‘너는 나의 다른 버전, 나는 너의 또 다른 가능성’

‘깨달음은 경도와 위도에 높이를 추가하는 것’

‘리더가 아니어도 리더관점 가지는 것이 깨달음’

이라고 선언해야 했다.


엔트로피 증가 법칙은 잘못된 명명이다.

엔트로피라는 단어처럼 멋들어지진 않지만

효율성이라는 표현이 있다.

엔트로피 증가법칙은 효율성 감소 법칙이다.

닫힌계에서 효율성은 언제나 0을 향해

힘차게 행진한다.


아마추어였던 10대 시절, 혹은

그 이전부터 나의 세계는

이런 생각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의구심과 탐구심에 의한 것이었을 터

네다섯 살쯤 서울 사당동 맨 꼭대기집에서 나는

세계와 나의 접점*에 대해 생각했다.

온 동네가 한눈에 내려다보였으므로

신의 관점*으로 세상을 보기에 좋았다.


11살 즈음 하굣길에서는

건물과 길 다 지우고

내가 선 곳을 우주공간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 어떤 기준도 없이

맞은편에서 오는 사람과 그쪽으로 걸어가는 나를

우주미아로 만들어 놓았다.

그 결과 가고 오는 것이 따로 없었다.

상대성 원리의 기본이 되는 전제다.


우주에는 상하좌우가 없다.

우주에서 보면 지구에서의 기준 모두 사라진다.

시간과 공간조차 없던 것이 된다.

빅뱅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 생의 의미 아주 간명해진다.


빛과 에너지, 주검과 잔해로 가득 찬 이 우주에서

잠시나마 생명으로 세계에 났다는 것이 기적.

의미는 따로 있지 않다.


의미로 반짝이고 싶다는 강렬한 희구가

바로 의미로 반짝이는 삶 그 자체

시시포스가 굴러떨어진 바위 밀어 올리려고

다시 내려오는 그 순간의 포즈와 정확히 같다.


우리가 의미 찾을 때마다

의미는 섬광처럼 번쩍인다.

너와 내가 의미 부정할 때마다

의미의 비늘 하나씩 떨어져 내린다.

우리 사랑스러운 눈에서 빛이 사라져 간다.


오늘 우리 할 일이란 세계와 팽팽하게 연결되는 것

매 순간 인간이라는 미션 수행하는 것

가만히 앉아 과거로 퇴행하는 것은

인간 아닌 짐승의 길


의미란 다름 아닌 부단한 존재증명이다.

전체와의 연결 끊이지 않는 것이다.


“당신이 살아있다는 증거를 대라!”


이런 글을 처음 접하는 독자라면

느닷없는 도약 혹은 도발이

낯설고 당황스러울 수 있겠지만

우주 배경으로 한 사고실험에서는

극한 법칙이 상식이다.


그물처럼 펼쳐진 탐구심

주섬주섬 당겨 응축하는 데에

아주 오랜 시간 걸린 셈이다.


사유思惟가 내 전공이다.

우주 법칙만을 궁구해왔다.


제도권 교육에서 배운 것이 아니라

오로지 내 안에서 출렁거리는

에너지에 의해서였다.

어쩐 일인지 그 외 다른 것에는

도통 흥미 가질 수 없었다.


말하건대 나의 일은 문학이 아니라

우주 비밀 까발리기다.

우주는 전진하므로

지칠 줄 모르므로

나의 에너지도 그만큼 오래 꿀렁거릴 것이다.







*피타고라스: 자신을 ‘철학자’라고 부른 최초의 사람. 철학이라는 말을 맨 처음 사용했고 만물의 원리는 수數라고 주장하였다. ‘피타고라스 정리’로 유명.

*히파수스: 기원전 5세기 이탈리아(마그나 그라이키아) 메타폰티온 출신 피타고라스 학파 철학자이자 수학자. √2를 최초로 발견했다고 알려져 있다. 히파소스는 스승 이름이 붙은 정리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두 변의 길이가 1인 직각삼각형에 적용하여 √2라는 숫자를 발견하였다. 이로써 무리수가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했지만 그 사건으로 인해 죽음 맞이했다.

*절대신비: 필자의 SNS 필명.

*최첨단 과학: 우리가 날마다 쓰는 디지털 전자기기에는 트랜지스터가 들어있으며 스마트폰 터치스크린 역시 양자역학 연구에서 응용되었다. 과학 경시하는 사람들도 날마다 스마트폰 쓰며 SNS하고 있지 않은가?

*√2 : 1,4142135623 7309504880 1688724209 6980785696 7187537694. 제곱하면 2가 되는 무리수를 일컫는다. 제곱근2 또는 루트2라고 읽는다.

*차원도약: 10여 년 전 필자가 만든 깨달음 용어. 2차원 납작한 평면적 사고에서 3차원 입체적 사고로 상승하는 것을 말한다. 그를 점프라고도 표현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깨달음이란 경도와 위도에 높이 추가하는 것.

*절대접점: ‘무대와 배우가 만나는 순간, 즉 접점 이루는 순간 비로소 존재 성립한다’는 빛의 철학 제3 법칙에서 나온 말이다. (빛의 철학은 다음 페이지 절대어 명명 사전에서 다시 이야기하기로 하자.) 무대와 배우가 유리되는 것이 부조리라면 무대와 배우 만나는 접점이 배우 탄생 순간. 배우라는 직업 가졌다고 배우가 아니라 무대와 만난 접점이 배우다. 시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시와 만나는 그 접점이 시인이다. 고로 지금 무대에 선 이가 배우다. 매일 시 쓰는 이가 시인이다. 필자는 일찍이 존재를 탄생시키는 이 접점을 절대접점이라고 명명한 바 있다.

*접점: 4~5살 무렵 엉겁결에 엄마와 떨어져 외갓집에 와서는 –내 우주였던 엄마와 떨어졌으므로 -세상과 떨어져 홀로 붕 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높은 곳에 서서 하늘 보니 구름 또한 그 어디에도 닿지 않고 둥둥 떠 있는 것 아닌가? “구름아! 너도 나와 같구나.” 그러다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오, 접점이 없는 게 아니었구나. 대기와 닿아 있었구나. 세상 안에 있으니 나도 세상과 맞닿아 있는 것이로구나.”라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는 에피소드. 훗날 절대접점 법칙이 만들어진 근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