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안테나는 어디를 향하고 있나

아무거나 먹지 말고 먹고 싶은 걸 먹자

by 조이

나는 나 자신에 둔했다. 친구들끼리 음식을 시켜 먹을 때면 먼저 메뉴를 말하는 친구 뒤에 '나도 그거'나 '아무거나 같이'를 말하는 사람이었다. 웬만한 음식을 대체로 잘 먹기도 했고 다들 이거저거 먹고 싶다는 데 나까지 메뉴선정에 혼란을 더하고 싶지 않아서 였기도 했다. 너무 맛이 없어 못먹을 정도가 아니면 뭘 먹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직장에서 며칠째 강도높은 업무를 하다가 좀처럼 일에 속도가 나질 않고 몸이 축축 처질 때도 오늘 어딘가 이상하다 하면서도 일을 멈추질 않는, 그러다 목구멍이 쓰라려 물 한 모금 못삼킬 정도가 되어서야 목감기에 걸렸음을 자각하는,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어느 날은 퇴근 후 집에까지 일을 가져와서 한참 하는데 자꾸 땀이 나고 짜증이 났다. 빨리 마무리 해야 하는데 왜 이렇게 더운거냐며 짜증이 난 채 일하는 나를 보고 남편이 말했다. "졸리면 자. 너 졸리면 땀나고 짜증나잖아." 나는 남편의 말을 듣고서야 내가 지금 잠을 참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정말 나 자신에게 둔한 사람이었다.




사람에게는 자신과 주변을 인식하는 능력이 있다. [관계를 읽는 시간]에서 정신과의사인 저자는 '의식의 안테나'라는 개념을 설명한다. 세상과 자기 자신을 인식하는 센서가 우리 모두에게 있는데 저자는 그것을 안테나에 비유한다. 모든 사람이 각자 10개의 안테나를 가지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 안테나들이 절반 정도는 자기 내면을, 절반은 바깥을 향하고 있을 때 인식체계가 밸런스있다고 볼 수 있다. 그중 9개가 바깥으로 향해있는 사람이 있다면 이 사람은 아마 눈치를 많이 보고 주변의 영향을 많이 받는 사람일 것이다. 반대로 9개가 자기 안으로 향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어린아이이거나 나르시시스트 또는 영적 수행자가 아닐까.


아이들은 대체로 자기 자신에게로 안테나를 세우고 산다. 자신이 뭘 해야 즐겁고 기쁜지 잘 알고 종일 그런 것들을 추구하며 논다. 그래서 자신의 의사에 반하는 요구들, 가령 숙제를 하라든가 방을 치우라든가 하는 잔소리는 듣기 싫어한다.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아이들은 대체로 자신에게 충실한 삶을 산다.


태어나는 모든 아기들은 10개의 안테나 모두 자기 자신을 향해 세팅한 채 태어난다. 피곤할 엄마를 배려해서 배가 고파도 울지 않고 참고, 기저귀에 똥을 싸고도 웃으며 버티는 아기는 없다. 아기들은 자기 욕구에 충실하다. 그러다 아기들은 점차 커가며 하나 둘씩 안테나를 바깥으로 세팅해 나간다. 똥이 마려워도 아무데나 싸면 안되고 화장실이라는 정해진 장소를 이용해야 하며, 친구의 장난감이 갖고 싶어도 함부로 빼앗으면 안된다는 것을 배운다. 사회 속에서 타인과 어울려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문제는 하나 둘씩 바깥으로 향하는 안테나들이 절반을 넘어설 때다. 대개 아이들은 자기 쪽으로 안테나를 돌리고 살아가는데, 너무 빨리 어른이 되어야 했던 아이들은 아이답지 않게 바깥쪽으로 안테나를 너무 많이 돌리고 살아간다. 그런 아이들은 부모의 요구에, 어른들의 요구에 자신을 맞추는 방법을 너무 일찍 배운다. 나 역시 그런 아이였다. 혼자서도 뭐든 꿋꿋이 해내는 손 안가는 아이, 착한 아이, 동생을 잘 돌보는 아이, 혼자서도 알아서 공부 열심히 하는 아이, 엄마의 고민을 들어주지만 자기 고민은 말하지 않는 아이, 뭘 사달라는 이야기를 입밖으로 꺼내지 않는 아이로 자라는 동안 나의 안테나는 대부분 바깥으로 세팅되었다.


이렇게 안테나가 바깥으로 향한 사람들은 눈치가 빠르고, 다른 사람의 필요와 요구를 말하기도 전에 알아차리기도 한다. 직장에서나 함께 협업을 할 때 이런 면이 유용하게 작동해서 동료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을 위한 안테나가 현저히 부족하다. 어른이 되어 연인이 생기고 가정을 꾸려 아이를 낳고 직장생활과 양가 부모님 보살피기까지 하며 많은 시간을 타인을 위해 쓰지만 점차 자신을 돌볼 시간은 줄어든다. 하나 둘 더해지는 사회적인 역할을 감당하느라 그나마 남은 안테나들도 바깥으로 향해지게 된다. 이들은 점차 바쁘게 열심히 살지만 점차 자신과는 멀어지는 슬픈 삶으로 들어서게 된다.




눈치를 많이 보는 사람, 내 감정보다 타인의 감정을 먼저 챙기는 사람, 타인에게는 좋은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지만 막상 자신에게는 좋은 사람이 아닌 사람. 이런 사람일수록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싫어하는지, 무엇을 할 때 즐거운지, 무엇을 할 때 회복이 되는지를 이제부터라도 실험해 봐야 한다. 아기 때는 분명 모두 알고 있었던 감각이다. 잊혀졌던 그 감각들을 되살리고 자신만의 기쁨을 찾아가면 안테나들이 아주 조금씩 자기 내면을 향하게 된다.


무엇을 할 때 기쁜가?

어디에 있을 때 기쁜가?

뭘 볼 때 기쁜가?

무엇을 먹을 때 기쁜가?

누구를 만나면 기쁜가?

어떤 색을 좋아하는가?

어떤 물건을 좋아하는가?

어떤 촉감을 좋아하는가?


매일의 일상에서 이런 실험을 지속해보라. 오늘도 찾아온 이 하루 안에서 나 자신에게 좀더 집중해보면, 나 자신에 대해 알지 못했던 점들을 발견하게 된다. 이런 매일의 실험들 속에서 내가 발견한 점들을 적어보면 이렇다. 나는 장거리 운전을 해야할 때 오트밀 넣은 차이티를 마시면 뽀빠이가 시금치를 먹듯 힘이 난다. 차를 홀짝이며 운전하면 카페에서 차 마시는 느낌이 나서 장거리 운전에도 덜 힘이 든다. 나는 외향적인 사람이지만 많은 사람과 있기 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소수의 사람들과 만나서 이야기 할 때 이완되고 힘을 얻는다. 위로를 얻고 싶을 때는 위로를 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야 된다는 걸 알게 됐다. 또, 나는 한식을 좋아하며 방금 만든 따뜻한 음식이 적어도 하나는 있는 식탁을 좋아한다. 비싼 물건에 대한 물욕은 없지만 다이소에서 소소한 물건 사는 것을 좋아한다. 100만원짜리 한개보다 만원짜리 백개를 좋아하는 타입이랄까? 이렇게 나는 오늘도 나를 관찰하며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는다. 그리고 그렇게 발견하는 내 모습이 조금씩 사랑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안테나가 내면으로 많이 향해 있고 자신을 잘 돌보면 점차 남들의 평가나 인정에 연연하지 않게 된다. 안테나를 내면으로 조정하려면 외부의 소리는 줄이고 내면의 소리에 귀 귀울여야 한다. 완벽해지기도 불가능하지만 행여 완벽하다고 해도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예수님도 미움받아 십자가에 달렸고 부처님을 적대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만약 모든 사람에게 좋은 평가를 듣는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들을 만족시키는 동안 정작 자기 자신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봐야 한다.


ⓒUzaima, 출처 adobe 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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