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혹한 초자아와 자기 재양육

우리의 내면아이는 성장을 멈추고 여전히 울고 있다

by 조이

앞도 못 보던 갓난쟁이 아기들은 눈을 뜨고 부모의 얼굴과 목소리에 익숙해지면서 서서히 부모와 애착을 형성해 나간다. 화장실에라도 잠깐 갈라치면 엄마가 안 보인다며 엉엉 울어대던 아기들은 만 3세 무렵이 되면 부모와 떨어져 어린이집에도 갈 수 있게 된다. 대상항상성이 생겨 대상이 눈에 보이지 않아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이는 이처럼 자라면서 부모라는 상을 마음속에 그린다. 어린 시절 부모의 상은 아이에게 깊이 내면화되어 아이의 초자아(superego)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 초자아는 프로이트가 주창한 인간의 3대 성격구조 중 하나로 어떤 일을 해야 하고 하지 말아야 하는지, 어떤 일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한다. 자기 욕구를 충족하려는 무의식적인 원초아(id)와 도덕적인 초자아(superego) 사이에서 자아(ego)가 현실적인 방법으로 욕구를 절충하여 충족하는 식으로 우리는 작동한다. 아이가 경험한 부모가 그다지 온정적이지 않았거나 비합리적인 부모였다면, 혹은 성장과정에서 정서적이거나 신체적인 학대 또는 방임이 있었다면 아이의 초자아는 지나치게 비대해진다. 초자아가 비대해진 사람은 자기 자신을 지나칠 정도로 엄격하게 대하며, 늘 해야 할 의무나 책임에 시달리면서도 항상 부족감에 시달려 좀처럼 만족감을 느끼지 못한다.




초자아가 엄격한 사람은 자기 자신이 불편하다. 자기 자신이 늘 못나고 부족하게 느껴진다. 부족하기 때문에 더 많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편안히 쉬지를 못한다. 초자아의 비판은 객관 여부와는 상관이 없다. 객관적으로 눈부신 성취를 이루었거나 뛰어난 영역이 있더라도 초자아는 비판을 멈추지 않는다. 노력의 성과로 사람들로부터 잘했다는 칭찬을 들을 때면 초자아는 이렇게 말한다. '너 더 잘할 수 있었잖아.'


365일 24시간 비판을 퍼부어대는 존재와 살면서 행복하기는 쉽지 않다.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채찍질하는 초자아의 소리를 라디오처럼 탁 하고 꺼버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나의 초자아도 지독하리만치 혹독했다. 나는 남에게는 넉넉한 잣대를 대면서 나 자신에게는 야박한 잣대를 들이대며 살아왔다. 암을 발견하고 수술 후 회복 중에도 비판을 멈추지 않는 초자아의 소리가 참기 힘들 정도로 지겨웠던 날이 있었다. '아파서 쉬는데 뭐 어쩌란 말이야?' 나는 어쩌면 처음으로 나 자신을 위해 항변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꺼버릴 수 없다면 정면에서 맞서리라 다짐하고 살펴본 이 초자아의 소리에서는 익숙한 사람의 그림자가 느껴졌다. 바로 아버지였다. 학대 가정에서 자란 나는 오랫동안 신체적인 폭력은 물론 정서적으로 폭력에 노출되었다. 바깥에서는 모범생이라며 칭찬을 받았지만 집에서는 온갖 이유로 입에 담지 못할 폭언을 오랜 기간 들어야 했다. 고등학교 진학 때에 집에서 2시간 거리의 기숙학교에 지원한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독립 후였다. 아버지와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는데도 아버지의 폭언은 내재화되어 내 안에서 계속되었다. '너 같은 게 무슨. '꼴 좋다.' '니 까짓게 뭐 대단한 줄 알아?' 아버지는 내 안에 초자아의 소리로 내재화되어 있었다.




예전에 나온 영화 중에 맷 데이먼 주연의 '굿 윌 헌팅'이라는 영화가 있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로빈 윌리엄스 아저씨가 성인이 되어서도 어린 시절 받았던 학대로 인해 괴로워하는 주인공에게 '그건 너의 잘못이 아니야.(It's not your fault.)'라고 반복해서 말해주는 장면이 있다. 정말로 정말로 그렇다. 학대도, 상처도, 초자아의 가혹한 비판도 우리의 잘못이 아니다. 우리는 어렸고 약했고 사랑과 보호가 절실히 필요했지만 받지 못했을 뿐이며, 자식을 올바른 방법으로 사랑할 수 없었던 부모지만 그들을 마음에 새겼을 뿐이다.


초자아의 비판에 속수무책 당하지 말고 나 자신이 스스로의 보호자가 되어 나를 변호해 주자. 내가 나의 부모가 되어 나를 재양육하자. 우리의 몸은 성장해서 어른이 되었을지라도 상처받은 우리의 내면아이는 성장을 멈추고 우리 안에서 여전히 울고 있다. 지금은 입적하신 틱낫한 스님도 '모든 사람의 마음에는 5살짜리 아이가 있다'고 하셨다. 어린 내가 들었어야 할 말, 어린 내가 받고 싶었던 위로를 오직 나는 할 수 있다. 나의 기억 속에서 언제고 나는 과거로 돌아갈 수 있으므로. 우리는 아프고 슬펐던 기억의 조각으로 다가가 울고 있는 어린 나에게 위로를 건넬 수 있는 유일한 존재다.




나의 기억의 단편을 하나 소개해본다.

내가 9살, 남동생이 6살이었던 어느 겨울이었다. 근처 교회에서 주일학교에 오면 초코파이를 준다고 해서 동생을 데리고 갔었다. 예배를 마치고 나오는데 눈이 어마어마하게 오는 거다. 내가 살던 강원도 산골은 몇시간만에 무릎만치의 눈이 쌓이는 곳이었다. 내 걸음으로 집까지 30분은 걸어야 하는데 눈이 너무 많이 오니까 앞은 안 보이지, 발이 쑥쑥 빠져서 걸음은 느리지, 동생은 옆에서 엉엉 울지 너무 당황스러웠다. 이미 눈이 무릎 정도까지 쌓여있던 터라 동생에게 누나가 먼저 간 발자국을 따라서 와야지 신발에 눈이 안 들어간다고 얘기했는데 동생은 말을 듣지 않고 제멋대로 뛰어다녔다. 그러다 얼마 안 가서 신발이 다 젖어서는 '누나, 발이 차가워!' 하면서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나는 젖지 않은 내 신발을 동생 발에 신기고 젖은 동생 신발을 꺾어 신고는 동생을 업었다. 그리고 한참을 걸었다. 너무너무 힘들고 춥고 무서웠다. 발에는 감각이 없었다. 거의 맨발로 걷고 있었으니까. 집 근처에 다 와서 저 멀리 눈발 뒤에 흐릿하게 엄마가 보였을 때 참았던 눈물이 터졌다. 그 눈물의 의미가 안도감인 줄만 알았던 나는 왜 집에 도착하고도 가슴이 시린지를 알지 못했다.

상담 선생님에게 이 이야기를 했을 때 상담선생님은 눈물을 글썽이며 가슴 아파했다. 이 짧은 이야기 속에는 나의 어린 시절의 많은 슬픔이 녹아 있다. 부모님이 쉴 수 있도록 동생을 돌보던 제2의 엄마, 어린 시절부터 나 자신의 욕구보다 가족의 욕구를 우선시하는 일찍 철든 아이. 나는 상담 선생님과 함께 그 아이에게 위로를 건네기로 했다. 나는 눈 오던 날 집에 돌아와 추위를 녹이는 어린 나에게 다가간다. 방문을 열고 눈인사를 한 후, 그 아이를 꼬옥 안아주었다. '넌 참 따뜻한 아이구나. 동생 업고 오느라 힘들었지?'라고 말하고 한참을 안아주었다. 아이가 내 품에 안겨서 엉엉 운다. '너를 희생하면서까지 동생을 돌보지 않아도 괜찮아. 너는 누나일 뿐이지 엄마가 아니니까.'라는 나의 위로에 아이가 젖은 눈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어린 시절 부모에게 받지 못한 돌봄을 나 자신이 스스로에게 해 줄 수 있다. 앞선 글에서 이야기했듯이 욕구는 사라지지 않는다. 채워지지 않은 욕구는 무의식의 일부가 되었을 뿐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사랑받고 보호받고 위로받고자 했던 나의 욕구를 이제라도 충족시켜 주자. 어른이 된 지금의 내가 내면아이의 양육자가 되어 자기 재양육을 할 수 있다. 과거의 아픈 기억이 떠오르면 그 장면에서 내가 들었어야 할 말을 그때의 나에게 전해주자. 이 어린아이를 나만큼은 어떤 일이 있어도 수용하고 사랑하겠다는 마음으로 기억을 더듬어보면 상실되었던 나의 욕구가 보인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나의 진심 어린 위로를 받은 기억은 조금씩 슬픔을 지워간다. 치유되기 시작한 것이다.


과거의 기억 그 자체는 바뀔 수 없지만, 기억의 느낌은 바뀔 수 있다. 자기 재양육을 통해 그때 내가 듣고 싶었던 따뜻한 위로를 전하면 고통스럽고 괴롭기만 한 기억이 조금 다르게 보인다. 어린 그 아이를 내 눈앞에서 마주했다면 어떤 말을 전하고 싶은가. 그 아이에게 어떤 말을 하고 싶은가. 너는 최선을 다했다고, 어린 너에겐 잘못이 없었다고 말해주지 않을까. 아이에 대한 연민으로 두 눈에 그렁그렁한 눈물을 가득 담은 채로. 떠올렸을 때 분명 슬픈 기억이지만 그건 어린 나의 내 탓이 아니었다. 어린 내가 들었어야 했지만 듣지 못했던 그 말을 전해주라.


최근에 해본 방법인데 효과가 좋았던 마더테레사 요법을 잠깐 소개한다. 마더테레사를 고른 이유는 별 거 없다. 나와 같은 성별이자 '훌륭한 존재'라는 상징이 하나 필요했을 뿐이다. 방법은 아주 단순하다. 어쩔 수 없었던 부당한 일에 마더테레사를 넣어보는 것이다. 나는 학대의 그 기억에 내가 존경하는 마더테레사를 넣어본다. 그때의 우리 아버지라면 아마 내가 마더테레사였어도 나를 때리고 욕했을 것이다. 마더테레사가 우리 집에서 나 대신 태어났어도 어린 시절 학대를 피할 순 없었을 것이라고 나는 감히 확신한다. 이 단순한 상상의 효과는 대단하다. 그 학대는 내 잘못이 아니었음을 마더테레사라는 존재가 강력히 증명한다. 그건 내 잘못이 아니었다.




내가 나 자신을 변호해 주기로 한지 일 년쯤 되었을 때 나는 알았다. 내 안에 가열찬 비판을 퍼붓던 초자아의 목소리가 어느 순간부터 잠잠해졌다는 것을. 내가 생각보다 괜찮고 생각보다 따뜻한 사람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자상하고 인내심 있는 남편과 따뜻한 상담 선생님의 위로와 지지가 큰 힘이 되었다. 나 자신을 통째로 아는 사람의 지지는 힘이 있는 법이다. 나를 있는 그대로 품고 지지해 주는 그들의 목소리를 내재화하자 엄격한 초자아가 힐난을 멈추기 시작했다.


많은 K-장녀/장남들이 아이답게 자라지 못한다. 가족 구성원으로서 제 역할을 수행하는 것을 넘어서서 부모나 형제가 감당해야 할 몫까지 짐 지고 살아간다. 자식이라면 자식만큼만 하면 된다. 부모나 형제에게 정서적인 부모 역할은 이제 관두자. 관계의 착취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을 돌보면 초자아가 아름다운 소리를 흘려보낸다.


나는 내가 받지 못한 사랑을 나의 아이들에게 준다. 그리고 동시에 나 자신에게도 그 사랑을 준다. 아이들과 같이 솜사탕을 나누어 먹으며 깔깔대는 지금의 이 순간에 나는 어린 나를 초대한다. 너도 이런 사랑을 받을 만한 아이였다고. 너 참 예쁜 아이라고. 그리고 나의 아이들과 또 어린 나와 함께 이 순간을 만끽한다.


가계의 길고 긴 정서적 학대의 대물림에서 벗어난 최초의 한 사람.

받지 않은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


당신은 정말 소중한 사람이다.


ⓒreddish, 출처 adobe 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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