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둘째는 참으로 활달하다. 돌 즈음엔 놀이터를 뛰어다녔고 두 돌 즈음엔 냉장고를 올라탔으며 침대 위에서 3 연속 구르기를 했다. 참고로 여자아이다... 차분했던 첫째와 전혀 다른 둘째를 키우면서 가지고 태어나는 기질의 영향이 굉장히 크다는 것을 몸소 체험했다. 둘째는 아침에 일어나면서부터 대체로 기분이 좋은데 가끔은 자면서 잠꼬대를 하면서도 웃는다.
이런 둘째를 보면서 드는 의문 하나.
'사람의 감정에도 디폴트 값이 있을까?'
영혼 체인지라도 해서 서로의 몸에 들어갔다 오지 않는 이상 상대의 기분을 정확하게 알 수는 없겠지만, 대체로 기분이 좋아 보이는 사람은 어떤 이벤트에 따라 잠시 기분이 저조했다가도 다시 본래 감정상태로 돌아오고, 대체로 기분이 안 좋아 보이는 사람은 잠시 기분 좋은 일에 반응했다가도 다시 본래 다운된 감정 레벨로 돌아가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평소 어떤 사람의 기본 감정레벨을 '디폴트 감정'이라고 명명해 보자. 이런 디폴트 감정은 어떻게 정해지는 걸까? 어떻게 하면 디폴트 감정 레벨을 높일 수 있을까?
나의 디폴트 감정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기분이 다운될 때가 많았다. 해야 할 일이 많고 힘들어서 기분이 다운된 건지, 아니면 기분이 다운되어서 일이고 뭐고 하기 싫은 건지 구분하기 쉽지 않았다.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처럼. 아침에 일어나면 물 먹은 솜을 지고 다니는 것 마냥 마음이 무겁고 기분이 다운될 때가 많았지만 의지적으로 으쌰으쌰 힘을 내어서 생활해 왔다. 그러면서도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인생은 고苦라는 부처님 말씀처럼 남들도 다들 그렇게 힘내서 사는 줄 알았다. 그런데 둘째를 낳고 기르면서 의지를 발휘하지 않아도 대체로 기분 좋은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려서 감정을 숨길 수 없고 굳이 그럴 필요도 못 느끼는 순수한 우리집 둘째는 나에게 좋은 관찰대상이었다.
언젠가 상담 선생님께 둘째 이야기를 하면서 나는 대체로 아침에 기분이 다운되면서 시작하고 마음이 무거울 때가 많은데 이런 것이 상담을 통해 개선되는지 선생님께 물었다. 선생님은 '점차 걷어내야지요.'라고 미소로 답했다. 나는 슬프거나 다운되는 느낌이 조금만 느껴져도 너무 싫고 무서웠는데 그 이유를 상담을 통해 알았다. 물에 빠져 죽을 뻔했던 사람이 그 이후로 물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슬픔이나 우울을 원치 않게 오래 경험한 사람은 슬픔이나 우울 등 특정 감정에 대한 무의식적인 거부반응을 갖게 된다. 저 멀리서 슬픔의 파도가 작게 일렁이면 이미 마음속에서 쓰나미를 맞은 듯 두려움이 이는 것이다.
상담을 시작하면서 자기돌봄을 하기로 하고 내 마음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는 연습을 하면서 처음에는 오히려 기분이 더 다운되기도 했다. 내 마음은 온갖 감정과 생각이 다 스치는 곳이었다. 사람들의 말처럼 나는 밝고 명랑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내 기분과 마음은 마냥 밝고 명랑하지만은 않았다. 내가 바라는 대로 즐겁고 밝은 감정만 생겼으면 좋겠는데 내 마음은 결코 그렇지 않았다. 순간순간 감정이 일어나고, 좋았다가 싫었다가 난리 부르스였다. 그렇다고 다시 내 감정이야 뒷전으로 밀어두고 성취를 위해서 내달리고 사람들에게 맞춰주면서 살던 과거의 삶으로 다시 돌아가기는 더 싫었다. 뒤로 가긴 싫은데 앞으로는 어떻게 가야 할지를 몰랐다.
사람들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불쾌의 감정은 싫어하고 쾌의 감정은 좋아한다. 누구나 기쁨, 즐거움, 환희 같은 감정은 오래 많이 느끼려 하고 슬픔, 우울, 분노, 질투 등은 짧고 적게 느끼고 싶어 한다. 만약 불쾌는 배제하고 쾌의 감정만 지속적으로 느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사람들은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그렇게 하고 싶어 할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 그런 방법은 없다. 마약처럼 짧은 순간 강렬한 쾌를 제공하는 것들은 그만큼 강렬한 대가를 요구한다.
쾌의 감정을 선호하고 불쾌의 감정을 싫어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그런데 불쾌의 감정에 원치 않게 장기간 강하게 노출된 경우에는 불쾌의 감정을 더욱 강렬하게 거부하게 된다. 지독하게 싫었던 그때의 감정을 다시는 느끼고 싶지 않다는 그 마음이 불쾌감정에 대한 거부감을 증폭시킨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유발할 만큼의 강렬한 사건을 경험했거나, 트라우마를 일으킬 정도는 아니지만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불쾌의 감정에 노출된 경우가 그렇다. 비극적인 사고, 성적인 학대나 폭력처럼 짧고 강렬한 사건을 비롯해서 오랜 기간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일들, 이를테면 가정 내에서 이루어지는 정서적이거나 신체적인 학대나 방임, 또래 사이에서의 폭력이나 따돌림 등이 그 예다. 이러한 사건들은 개인을 압도한다. 사람들은 절대로 경험하지 않고 싶고 느끼고 싶지 않은 사건들을 겪으며 불쾌의 감정에 대한 강렬한 거부감을 가지게 된다. 행복해지고 싶다는 마음보다는 불행해지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랄까.
그런데 그렇게 불쾌의 감정을 느끼지 않기 위해 애쓰는 동안 아이러니하게도 쾌의 감정에도 점차 둔감해진다. 인간은 특정 감정을 선택적으로 느끼거나 느끼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어떤 감정을 느끼지 않기 위해서는 감정 센서 전체가 둔감해져야 한다. 고통을 덜 받기 위해 감정 전체에 둔감해지면 세상은 흑백이 된다. 감정을 무디게 해서 상처를 덜 받기로 선택한 대신 세상은 흑백이 되어 다가온다.
침대 밑에서 뭔가 튀어나올 것 같다며 우는 어린아이를 보라. 침대 밑의 어둠은 온갖 상상을 더해 두려움을 자극한다. 하지만 엄마와 함께 침대 밑에 빛을 비추고 아무것도 없음을 확인하는 순간 그 두려움은 끝이 난다. 감정도 비슷하다. 지독한 우울증을 경험한 사람은 우울의 감각이 조금이라도 느껴지면 이미 중증 우울증에 걸린 것 같은 두려움을 느낀다. 어려서 학대를 당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끼리 싸우는 소리에도 가슴이 고동친다.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아 아픈 자리에는 같은 자극이 두 배 세배 아니 열 배씩 아프게 느껴지기도 한다. 당연하다. 잘못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상처를 입은 사람이 다시 아프고 싶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상처는 불가항력이었음을 기억하자. 그 사건은 우리의 잘못이 아니다. 이제 우리는 안전한 곳에 있고 어엿한 성인으로서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힘이 있다. 이제 침대 밑에는 아무것도 없다.
심리학자이자 영성가인 타라 브랙은 『자기 돌봄』에서 우리의 마음을 바다에 비유해서 말한다.
바다는 파도를 일으키지만 파도를 바다라고 여기지 않는다. '나'라는 온전한 존재를 '바다'라고 볼 때 시시각각 일어나는 크고 작은 감정의 파도는 '나'가 아니다. 파도와 '나'를 동일시하지 않고 그 파도를 인식할 때 '나'는 고요한 바다로 돌아올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감정은 파도 같아서 끊임없이 밀려오고 사라진다. 가만히 두면 저절로 사라지고 다음 파도가 온다. 억누르거나 부정하지 말고 지금 다가오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살펴보자. 집채만한 파도일 거라며 무서워서 바라보지 못했던 그 감정의 파고는 실은 그렇게 대단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나 역시 의지적으로 명랑 모드로 살다가 그 '의지'를 멈추어보는 실험을 처음 했을 때 무척이나 두려웠다. 있는 그대로 나 자신을 보기로 마음먹고 우울하면 우울한 대로 화가 나면 나는 대로 두고 그저 관찰하리라 다짐했다. 이내 우울이 밀려왔고 평소와 같이 반사적으로 우울을 꺾기 위해 의지를 발휘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고 그냥 그대로 있어보았다. '이제 엄청나게 우울해질지도 몰라'. '질퍽한 늪에 빠진 그 느낌 속에서 또 한동안 허우적대야겠지.' 온갖 부정적인 예측들이 나를 자극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대로 있어보았다. '아, 나에게 지금 우울한 감정이 있구나.'하고 인식하는 것 외에는 더 이상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결과는? 유레카였다! 정말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우울한 감정은 아무 일도 일으키지 않고 그냥 사라져 버렸다.
감정은 나쁘지도 좋지도 않은, 그냥 감정일 뿐이다. 그저 감정이 일어났구나 하고 인식하고 그대로 두면 딱 일어날 만큼만 일어나고는 사라진다. 어떤 감정을 느끼지 않으려고 외면하려고 하면 할수록 그 감정은 침대 밑 괴물처럼 몸집을 부풀린다. 괴로움도 기쁨도 그냥 있는 그대로 허용하자. 당신이 분노를 느낀다고 해서 당신이 분노 자체가 되는 것은 아니다. 당신은 분노라는 파도를 바라보는 바다다. 인간에겐 오만가지 감정이 있다고 하지 않는가. 기쁨과 감사, 즐거움과 동시에 분노하고, 질투하고, 원망하는 당신의 마음은 아주 당연하고 매우 건강하다.
서두에 꺼냈던 디폴트 감정 이야기로 되돌아가보자. 저마다의 기질이나 처한 환경이나 겪어온 사건에 따라서 디폴트 감정은 다르게 세팅된다. 무채색의 감정을 가지고 살아왔던 사람이 단박에 컬러풀한 감정을 느끼는 것은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나에게 어떤 감정이 밀려오고 또 사라지는지 바라보는 이 단순한 행위를 통해 불필요한 감정소모를 줄이게 되어 감정에 훨씬 덜 휘둘리게 된다.
천둥번개가 무서워서 내내 안대를 하고 살아가기엔 나머지 날들이 아깝지 않은가. 시점에 차이가 있을 뿐이지 모든 사람의 감정은 해가 쨍쨍하기도 하고 비가 오기도 한다. 365일 해가 쨍쨍 내리쬐길 소망하지만 정말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어떨까. 365일 강렬한 햇빛이 내리쬐는 곳은 풀 한 포기 자라지 못하는 사막이 될 뿐이다. 맑기도 하고 바람도 불고 비도 내리고 눈도 와야 자연스럽지 않겠는가. 잠잠히 나를 바라보자. 눈을 감고 어떤 파도가 오고 또 사라지는지 잠잠히 바라보면, 무지갯빛 수많은 감정이 오고 가는 아름다운 바다의 장관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