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라는 티벳 속담이 있다. 웬만한 일들에 대체로 적용되는 '열심히 성실하게'라는 원칙은 걱정에는 반대로 작용한다. 열심히 성실하게 걱정할수록 걱정의 크기는 줄어들기는커녕 더 커진다. 걱정은 앞으로 닥쳐올 일들을 예상하고 대비하게 해 주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걱정이 심할 경우 오히려 걱정했던 일이 마치 실제로 닥친 것과 같은 두려움과 공포감 마저 느낄 수 있다.
우리 엄마는 프로걱정러다. 엄마와 외출하려면 인내심이 필요할 때가 있다. 둘이 밖에서 장을 보기로 하고 밖으로 나와 한참 걷는데 엄마가 가스 밸브를 잠갔나 안 잠갔나 걱정이 된다며 다시 집에 가서 확인해 봐야겠다고 하셨다. 쨍하게 더운 날이라 그냥 가자고 할까 생각했지만 나는 우리 엄마 스타일을 잘 안다. 우리 엄마는 외출 전에 이걸 확인 안 하면 외출하는 내내 가스 생각을 할 것이다. 이미 엄마의 머릿속에서 가스는 폭발하고 집은 홀랑 타서 우리는 알거지가 되어 있다. 심지어 엄마는 집이 다 타더라도 너희들 아기 때 사진은 꼭 건져야 하는데, 집문서는 꼭 가져와야 하는데 하면서 2차 3차 걱정으로 넘어간다. 가스 밸브 확인은 곧 엄마의 안녕인 것이다. 집에 가서 가스를 확인한 엄마는 밝은 얼굴로 밸브가 잘 잠겨있었다며 웃었다. 다시 장 보러 길을 가는데 이번엔 현관문을 안 잠그고 나온 것 같다고 다시 가봐야겠다고 하셨다. 깊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장 보는데 30분이면 되는데 이것저것 확인하러 왔다 갔다 하는 시간만 이미 30분이 지나고 있었다...
걱정은 우리의 생각 속에서 우리를 움츠러들게 한다. 어느 회사 광고에서는 걱정 인형이라는 애들이 나와서 우리의 걱정을 모두 가져가 주겠다고 하는데 진짜 그런 인형이라도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귀엽게 생긴 작은 인형들에게 시커먼 우리의 걱정을 다 뒤집어 씌우자니 좀 미안하긴 하지만.
인간이 경험하는 타임라인은 [과거-현재-미래]로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실제 존재하는 것은 찰나의 현재뿐이다. 과거는 인간의 기억 속에, 미래는 인간의 관념 속에서만 존재할 뿐 실존하는 것은 현재뿐이다.
어느 날 우연히 다큐 채널에서 얼룩말의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초원에서 평화롭게 물을 마시던 얼룩말이 풀 숲에 숨어있는 사자를 발견하고 쏜살같이 도망친다. 죽을힘을 다해 도망쳐 겨우 사자를 따돌린 얼룩말의 이야기. 다큐멘터리 채널 등에서 우리는 보통 여기까지만을 본다. 잡히든지 도망치든지 결판이 난 후에는 보통 다른 동물의 이야기로 넘어가곤 하기 때문에, 사자를 따돌린 얼룩말이 그 후에 어떻게 행동하는지는 보통 잘 모른다. 방금 죽을뻔했던 얼룩말은 놀랍게도 사자에게 쫓기기 전에 물을 마시던 바로 그 웅덩이로 돌아가 다시 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아니, 얼룩말은 기억력이라는 게 없나? 방금 죽을 고비를 넘겼는데 거길 또 간다고? 사람이라면 웅덩이 앞에 풀이 살랑거리기만 해도 사자 트라우마에 시달릴 텐데, 동물은 그렇지 않다. '투쟁-도피(fight or flight)'반응으로 얼룩말은 긴급한 상황에서 교감신경계의 빠른 대응으로 위기에 대처한다. 그리고 위험이 사라짐을 인지하는 즉시 '투쟁-도피(fight or flight) 반응'은 멈춘다. 얼룩말에게 생존을 위협하는 스트레스는 사자가 눈앞에 보일 때뿐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현재를 살아가는 존재의 위대한 점이다.
그러면 인간은 어떤가? 출근길에 사자와 호랑이의 습격을 받을까 나무 뒤를 조심히 살피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얼룩말과 같이 생존을 위협받지는 않는다. 그러나 인간의 머릿속에서는 그에 상응하는 미래의 여러 위험이 예견된다. 이 직장에서 언제까지 다닐 수 있을까? 혹시 짤리진 않을까? 이 사람과 결혼해서 잘 살 수 있을까? 내가 언제까지나 건강할 수 있을까? 우리 애가 잘 클 수 있을까? 인간의 걱정은 끝이 없다. 현재를 벗어나 미래에 초점을 맞추면 맞출수록 불안해지고 걱정은 늘어간다. 현대인들은 얼룩말보다 고등한 존재일지 몰라도 스트레스에는 얼룩말보다 취약하다. 경쟁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들은 학교에서, 직장에서, 또래 모임에서, 그리고 SNS를 통해 끊임없는 투쟁-도피(fight or flight) 반응에 노출된다. 쉴 새 없이 일어나는 투쟁-도피(fight or flight) 반응은 교감신경을 끊임없이 자극해 만성적인 스트레스를 유발하고, 우리는 그 속에서 쉬고 멈추는 방법을 점점 잊어간다.
내일 당장 죽을지 모르는 인간은 필연적으로 실존 불안(existential anxiety)을 느낀다. 걱정을 조금은 깔고 가는 게 우리 존재의 숙명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걱정이 있어도 괜찮다. 다만 걱정에 매몰되지는 말자. 언젠가 사자가 수풀에서 나를 덮칠지 모른다며 24시간 내내 사자를 두려워하는 얼룩말은, 사자에게 잡혀 먹히기 전에 먼저 신경쇠약으로 죽을지도 모른다. 내 뜻대로만 되지 않는 현실을 통제하고자 하는 통제욕구가 지나치게 커지면 걱정 속에서 허우적거리게 된다.
우리 삶에는 기쁨과 사랑과 환희의 순간도 있고 슬픔과 상실과 고통의 순간도 있다. 이것과 저것, 이쪽과 저쪽이 다 있는 게 본래 우리 삶이다. 우리 모두 약간의 불안과 약간의 걱정과 약간의 기쁨과 약간의 즐거움을 느끼며 살아간다. 삶은 내 뜻대로만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지나고 보면 그때는 실패라고 생각했던 일이 나에게 성공을 가져다주기도 하고, 그때는 좋다고 여겼던 일로 지금은 괴로워하기도 한다. 사실 우리는 어떤 것이 인생에 도움이 되는지, 뭐가 나에게 좋고 나쁜지 잘 모른다. 그런 평가는 삶의 마지막까지 다 살아보고 나서 죽기 직전에야 내릴 수 있을만한 성질의 것일지도 모르겠다.
젊고 건강한데 돈이 좀 없거나, 돈은 좀 있는데 늙고 병이 들었든가, 돈도 있고 건강하고 젊은데 같이 나눌 사람이 없어 외롭다든가... 우리 삶은 순간순간 어느 것은 채워지고 또 어느 것은 부족하다. 모든 것이 일제히 완벽한 순간은 실은 없는지도 모른다. 삶 속에서 우리 기대대로 모든 것이 풍족하고 완벽하기를 기대한다면 삶의 대부분의 순간이 괴로움이 된다. 불행의 요소를 걱정하며 미연에 제거하려고 하기보다 행복의 요소에 집중하고 행복을 누리면 어떨까.
직장상사에게 한판 깨져서 속상하지만 위로해 줄 동료들이 있는 사람은 행복할 수 있다. 돈이 풍족하진 않지만 불금에 치킨을 시킬 수 있고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당신은 행복할 수 있다. 잘 빠지지 않는 살 때문에 걱정이지만 먹을 것이 없어 괴롭지 않은 당신은 행복할 수 있다. 행복의 요소에 집중하면 생각보다 괜찮은 순간순간을 만나게 된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집중하기보다 내가 가진 지금의 행복에 초점을 맞추면 감사가 일어나고 행복감을 느낄 수 있게 된다. 행복의 회로가 만들어진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행복할 수 있다.
지금 행복하자. 지금 행복하기로 결심하자.
과거를 후회하기보다 미래를 걱정하기보다 현재에 머물러 눈앞에 있는 작은 행복들을 느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