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 민주, 지원
2025년, 서울퀴어문화축제는 25주년을 맞았다. 제26회 퀴어 퍼레이드는 남대문로에서 우정국로까지 이어지는 거리를 함께 걷고 웃으며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연대하는 축제였다. 한국의 퀴어 퍼레이드는 2000년, 단 60여 명이 대학로에 모여 행진하는 작은 행사에서 시작됐다. “존재를 드러내는 것 자체가 정치다”라는 말처럼, 이 퍼레이드는 처음부터 단지 소수자의 모임이 아니라, 자유롭고 평등한 삶을 향한 움직임이었다.
동국교지는 올해 직접 퍼레이드 현장을 찾았다. 무지개 깃발과 따뜻한 눈빛, 사랑이 가득한 그곳은 ‘있는 그대로의 나’로서 환대받고 사랑받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즐거움이 가득한 이곳에도 혐오와 차별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 속에서 퀴어 퍼레이드는 다시 묻고 있었다. 우리는 어떤 사회를 만들어가고 있는가?
퍼레이드 밖 일상엔 아직도 성 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혐오와 편견, 그리고 그것이 불러올 수 있는 불이익과 위협이 도사리고 있다. 그렇기에 많은 이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지 않고 살아간다. 자신과 주변 인물의 안위를 위해 본인이 성 소수자인 ‘티가 나지 않도록’ 스스로 검열하며 침묵을 선택하기도 한다. 하지만 퍼레이드 현장은 달랐다. 함께 행진하는 이들과의 연대 속에서 이들은 혐오적인 시선에도 위축되지 않고 자기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었다.
축제 현장 밖에선 내가 ‘나’로 사는 것에 반대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확성기를 들고 “우리 딸을 돌려줘라.”, “우리 아들 돌려줘라”라고 외치는 사람들, 한복을 입고 찬송가를 부르며 “동성애 죄악”을 외치는 무리가 퀴어퍼레이드 출입구 반대편에서 시위를 진행하였다. 분명 그 목소리들은 퀴어 퍼레이드 참석자들을 향한 것이었지만, 정작 우리는 당황과 분노보다 유쾌한 웃음을 먼저 터뜨렸다. 함께 혐오 세력의 구호를 장난스럽게 따라하며 웃었고, 어떤 이들은 찬송가에 맞춰 몸을 흔들며 춤을 추었다. 이는 그곳에 있는 이들이 얼마나 자유로운지를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이 자유로움은 성 소수자에 대한 혐오가 사라졌기 때문이 아니다. 자신의 존재가 존중받고 있다는 감각, 그리고 함께 행진하는 이들이 서로를 지지하고 보호해 준다는 확신에서 비롯한 것이다.
그러나 행진하는 거리 바로 옆에서 몸에 오물을 바르고 앉아 “동성애는 똥이다”라고 외치던 사람을 마주했을 때는 모두가 잠시 말이 없었다. 유쾌하게 넘길 수 없었다. 우리는 서로 눈빛을 주고받으며 혐오 세력을 무시한 채 행진을 이어갔다. 그러나 움츠러들지 않았다.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니었다. 반대의 시선을 마주할 때마다, 함께 걷는 이들이 서로를 든든히 지켜줬다. 퀴어 퍼레이드는 단순히 거리를 걷는 행진이 아니다. 성 소수자의 존재를 도심에 드러내며 스스로에 대한 자긍심을 고취시키고, 혐오 세력에게는 성 소수자도 똑같은 ‘사람’임을 상기시키는 것이다. 이번 퀴어 퍼레이드에서는 혐오를 무력화시키는 유쾌한 저항과 침묵의 저항이 함께했다. 웃고 떠들며 가볍게 넘기고, 때로는 침묵으로 한 저항 속에서 단단한 연대의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오전부터 많은 사람들과 단체에서 참여하는 부스가 을지로 인근 거리를 빼곡하게 채웠다. 참가자들과 직접 이야기 나누고 준비한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 정말 ‘우리’라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더하여 다양한 지향과 가치를 거리낌 없이 얘기할 수 있는 이곳에서 해방감을 느꼈다. 어느 하나, 누구 하나 소외되지 않는 연대의 순간이었다. 다음은 동국교지가 직접 방문한 부스 중 몇 군데를 소개하고자 한다.
대학교
동국대 QUDx성균관대 퀴어홀릭x중앙대 레인보우피쉬
많은 대학교의 성소수자 동아리에서 부스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동국교지는 동국대학교 성소수자 중앙동아리 QUD(큗)이 참여하는 부스에 방문했다. 간단한 퀴어 유형 테스트를 하고 해당하는 유형의 카드를 받았다.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는 부채를 만드는 체험도 하였다. 오늘만큼은 부채에 어떤 글자와 그림이 들어가도 눈치 볼 것 없었기에 우리는 마음껏 무지개를 그려 넣었다. 퀴어퍼레이드에 참여한 대학 부스는 이 외에도 경희대 아쿠아x고려대 사람과 사람x서울여대 슈퍼큐트, 숭실대학교 성소수자 모임 이방인, 연세대학교 중앙 성소수자 동아리 컴투게더, 한양대학교 하이퀴어 에리카x성소수자인권위원회, 홍익대학교 성소수자 동아리 홍반사가 있었다. 이와 같은 대학교 동아리의 많은 부스 참가는 존재만으로도 축제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젊은 대학생들의 열정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도 에너지를 주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이뿐만 아니라 대학의 이름을 건 부스들은 ‘정상성’에 물든 대학교 속에도 성소수자는 있다는 용기 있는 외침으로 다가왔다.
종교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종교 관련 부스 중 불교는 유난히 인기가 많다. 불교 철학이 그 누구도 배제하지 않고 자비를 베푸는 덕분인 듯하다. 부스에서는 스님들이 미소를 지으며 무지개 실 팔찌를 묶어 주었고, 행복을 기원하는 말도 건네주었다. 본 체험은 동국교지 교지원들에게, 그리고 퀴어퍼레이드 참석자들에게 마음속이 깊이 따뜻해지는 경험을 선물하였다. 오후가 되자 이 부스 앞에는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불교부스 줄 길어요. 잠시 후에 다시 와주세요.”라는 팻말까지 등장할 정도였다.
개신교와 천주교 단체의 부스도 눈에 띄었다. 해당 종교인들 사이에선 교리를 어떻게 해석하는지에 따라 동성애 및 성소수자에 대한 시각이 달라지기에, 언제나 갈등이 끊이지 않는다. 일부 신도들은 신을 핑계 삼아 혐오를 내뱉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종교를 믿든 신도들에겐 다른 이를, 다른 이의 사랑을 부정할 자격이 주어지진 않는다. 어떤 종교를 믿더라도 교리 때문에 자신의 존재와 사랑을 부정할 필요도 없다. 하나님은 사랑을 말했고, 신은 실수하지 않는다. 모든 이들은 존재하는 것만으로 환대받기에 충분하다. 또한 어떤 사랑도 실수나 잘못 따위로 치부될 수 없다.
정당
기본소득당 여성위원회x기본소득당 청년•대학생위원회
기본소득당 여성위원회와 청년•대학생위원회가 운영하는 부스에서는 생활동반자식이 진행되었다. 부스에서 진행된 생활동반자식은 ‘생활동반자법’의 발의를 기념하며 동시에 법안의 제정을 염원하는 의식으로 볼 수 있다. ‘생활동반자법’은 2023년에 성인 2명이 같이 살고 있다면 부부처럼 법적으로 보호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발의된 법안이다. 본 법안은 기존 사회가 제시하는 이성애•가부장적 가족에서 벗어나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인정될 수 있도록 돕는다. 생활동반자식은 이러한 맥락에서 생활동반자들끼리 치루는 의식이다. ‘생활동반자’라는 개념 등장을 기반으로 우리는 남녀 간의 결혼으로만 가족을 구성한다는 법의 폭력적인 강요에서 벗어나야 한다. 서로 사랑한다면 누구나 가족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결혼식이 아니라 생활동반자식을 한다. 이날 사랑으로 연결된 수많은 가족이 탄생했길 바란다.
대사관
(덴마크, 독일, 룩셈부르크, 벨기에, 캐나다, 호주)
주한호주대사관x주한뉴질랜드대사관x주한영국대사관
호주, 뉴질랜드, 영국 등 여러 나라의 대사관들이 함께한 부스도 동국교지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특히 호주와 뉴질랜드의 대사관 부스에서는 귀여운 쿼카가 그려진 옷을 입고 웃는 얼굴을 한 사람들이 보였다. 그들은 “사랑만 있다면 누구나 결혼할 수 있어!”, “어떤 형태든 상관없어!”라는 문구가 적힌 포스터를 들고 있었다. 교지원들은 모두 발길을 멈추고 사진을 찍었다. 이 문구는 퀴어 퍼레이드에 참가한 모두가 그리는 삶을 담아내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뜻깊게 다가왔다. 사람들의 웃는 얼굴을 보니 어떤 혐오도 이겨낼 든든한 방패가 생긴 것 같았다. 하루빨리 전 세계에서 사랑만으로 가능한 결혼이 치러지고, 모든 형태의 사랑과 가족이 자연스러워지는 날이 오길 바란다.
기타
민주노총x언론노조
언론노조는 25년 만에 퀴어퍼레이드에 처음으로 참가했다. 성소수자를 폄하하는 표현을 사용한 헤드라인을 뽑아 최악의 헤드라인을 고르는 투표가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이를 반성하듯 언론노조 성평등위원회는 퀴어 퍼레이드 직전 ‘성소수자 인권 보도 준칙’을 발표하였고, 이 준칙이 인쇄된 종이가 부스에 부착되어 있었다. 미디어와 언론의 영향력이 막강해졌고, 사람들이 언론을 통해 사회 속 여러 문제들을 쉽게 접할 수 있는 현세대에서 언론노조의 참가는 그 의미가 크다. 더불어 ‘성소수자 인권 보도 준칙’의 발표는 여전히 성 소수자 혐오가 만연한 사회 속에서 언론이 앞장서서 이러한 혐오를 바로잡겠다는 의지를 어렴풋이 보여주었다. 동국교지는 이번 부스 참가에서 더 나아가 성소수자 의제가 더 이상 언론에서 정치적으로 이용되지 않길, 성 소수자 혐오가 담긴 헤드라인과 기사를 마주하지 않길 바란다. 그리고 언론노조의 퀴어 퍼레이드 부스 참가가 계속되길 기대한다.
나사랑클럽x해탈컴퍼니
성소수자 관련 문구를 담은 굿즈들도 교지원들의 발길을 멈춰 세웠다. 특히 나사랑클럽x해탈컴퍼니의 스티커가 동국교지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스티커에는 불교 철학을 기반으로 각박한 세상 속에도 나를 이해하고 사랑하자는 내용의 문구들이 담겨있었다. ‘너의 번뇌마저 사랑한 거야’, ‘소원은 하나, 오직 나의 행복’, ‘정체성 찾아드립니다’ 등 나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찬 산뜻한 문구들은 퀴어 퍼레이드 속 연대감과 동행의 기억을 되새겨준다. 이 문구들은 지금도 퀴어 퍼레이드 이후에도 우리 곁에 함께 하고 있다.
동국교지는 ‘윤석열 퇴진을 위한 성소수자 공동행동’과 함께 4호차를 따라 행진하였다. 각종 단체 사람들과 행진하며 타 대학의 교지편집위원회와 생활자치도서관, 학생회들의 깃발을 볼 수 있었다. 무더운 날씨에도 사람들은 깃발을 휘날리며 구호를 제창하고, 개사한 노래를 따라 부르며, 같이 걸었다. 행진하며 지나친 각종 음식점과 카페에선 유리창 너머로 사람들이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다들 무더위와 행진에 지친 상태였지만, 행진하는 길에서 만난 반가운 연대가 참석자들을 또다시 걷을 수 있게끔 북돋아 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멈추지 않고 종각역에서부터 을지로입구역까지 3km가량 걸었다.
같이 걷는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인류학자 팀 잉골스는 걷는다는 것은 발걸음을 옮기며 세계와 마주하고, 리듬과 감각 속에서 관계를 맺는 일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퀴어퍼레이드에서 같이 발걸음을 옮기며 잠시나마 차별이 사라지고, 편견 없이 서로를 사랑하는 세상을 만날 수 있었다. 또한 6월의 무더위를 만끽하며, 같이 구호를 제창하고 노래 부르면서 서로의 연대를 더욱 단단히 했다. 참석자들은 잠시 뒤처지고 지치더라도 끝까지 같이 걸었다. 이처럼 멈추지 않는 행진의 힘은 을지로 일대를 사랑과 배려로 가득 채웠다. 이 힘은 타인을 구분 짓거나 배제하지 않았으며, 서로를 지켜주고 보듬어주었다.
동국교지는 퀴어퍼레이드의 꽃이라 불리는 ‘행진’을 하면서 속도와 상관없이, 타인의 정체성과 성적 지향성과 상관없이, 그저 같이 걷는 법을 배웠다. 또한 그날의 행진을 통해 앞으로도 멈추지 않고 사랑할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을 땀으로 눅눅한 피부에 깊게 새길 수 있었다.
동국교지는 2025년 6월 14일 토요일, 서울 퀴어퍼레이드에 참석하여 뙤약볕 밑에서 멈추지 않고 걸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깃발을 휘날렸고 같이 소리쳤다. 이 세상에 옳지 않은, 금지되어야 하는 사랑은 없다고. 그러나 혐오가 만연한 현 세태에서 이를 잊은 사람이 많은 듯하다. 사랑의 대상이 남들과 같지 않다는 이유로 다수 집단은 ‘정상성’이라는 이름 하에 그들을 구속하고 핍박한다. 그러나 올해 주최 측 추산에 따르면 ‘서울퀴어퍼레이드’의 참석자들은 약 17만 명이다. 해당 수치는 퀴어문화축제가 더 이상 ‘퀴어’만을 위한 축제가 아님을 시사한다. 퀴어퍼레이드는 서로 다른 존재들이 서로와 서로의 사랑을 향해 깃발을 들고, 해고 노동자들의 외침이 교차하는, 더 넓고 다양한 연대를 포괄하는 정치적 광장이 되었다. “어떤 우아한 이론을 갖다 붙여도 혐오는 혐오이고, 어떤 낙인을 붙여도 사랑은 사랑이다.”1)라는 말이 있다. 우리 교지가 6월의 한 여름날 을지로입구 광장에서 목도한 연대와 사랑은 어떤 사랑에 붙은 낙인을 지워내고, 세상을 혐오에서 일깨우기에 충분한 힘을 지니고 있었었다. 이 글을 보는 당신, 아직 퀴어퍼레이드에 참석해 본 적이 없는가? 그렇다면 다음 해에 열리는 퀴어퍼레이드에 참석해보기를 추천한다. 우리 교지는 당신도 이 열렬한 사랑과 배려의 현장을 목격하기를, 그날을 계기로 그릇된 논리와 다수성에 매몰되지 않고 당신과 타인의 사랑을 지켜나가길 바라기 때문이다. 그렇게 결국 모든 혐오가 무지갯빛 사랑으로 뒤덮이는 날까지, 우리는 결코 사랑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참고문헌
1) 김승섭, 「아픔이 길이 되려면」, 『동아시아』,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