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는 이름의 착취, 돌봄

민주

by 동국교지

I. 딸바보의 탄생

“우와! 핑크색! 나도 딸아빠가 된다니!” 유튜브나 sns의 ‘젠더리빌 파티 리액션 영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반응이다. 자신의 아이가 딸이란 것을 알게된 부모가(특히 부) 기뻐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러한 리액션 뒤엔 “난 사실 딸을 원했거든.”, “완전 딸바보 확정이다”와 같은 말이 따라 붙기도 한다. 젠더리빌 파티란 부모에게 임신한 아이의 성별을 처음으로 공개하는 행사다. 대개 남자아이의 경우 파란색, 여자아이의 경우 핑크색의 물건이나 음식으로 상징한다. 남아선호사상이 강하던 시절 여아를 임신하면 낙태를 하던 과거와는 사뭇 달라진 풍경임이 확실하다. 임신한 아이의 성별과 관계없이 사랑으로 키울 것이라는 의지가 보이기도 한다(성별을 공개하기 전에 늘 어떤 성별의 아이든 상관없다는 말을 자주한다). 심지어 ‘딸바보’라는 단어가 성행하는 것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여아를 선호하는 경향이 확산되고 있음을 체감할 수 있다.

남아 선호 현상의 축소와 여아 선호 현상의 확산은 출생성비의 변화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출생 성비(性比)란 인구의 성별 구조를 나타내는 지표로 여성 100명에 대한 남성 수의 비율을 말한다. 인간의 자연적인 출생 성비는 남:여=105:100이다. 자연 성비 상 남아 출생이 조금 더 우세하며 103~107까지를 정상범위로 본다. 그러니까 약 100명의 여자가 태어날 때 약 105명의 남자가 태어난다는 의미다. 1990년의 출생 성비는 116.5:100으로 자연 성비보다 약 11명 많은 남아가 태어났다. 1) 같은 해 셋째아 이상의 출생 성비는 193.7:100으로 수치의 불균형이 더욱 극대화되어 나타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자연 성비보다 약 88명 많은 남아가 태어난 것이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 이는 1980년대 태아 초음파 검사가 보편화되며 여아만 골라 낙태한 결과였다. 그러나 정부는 지나치게 불균형한 성비로 인해 인구학적 구조에 문제가 생길 것이 우려되자 1987년 ‘태아 성감별 금지법’을 제정했다. 법이 제정된 이후에도 사람들은 암암리에 태아의 성별을 진찰받고, 여아를 골라 낙태했다. 이후 규제가 더욱 엄격해지자 사전 조치로 활용되던 여아 낙태가 불가능해졌고, 남아가 나올 때까지 아이를 낳은 것이다.

이렇듯 극심한 남아선호사상에 의해 아이를 출산하던 남한 사회에 흥미로운 변화가 생겼다. 약 30년의 세월 만에 출생 성비의 정상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2023년 출생 성비는 105.1:100으로 정상 범위가 됐으며, 압도적인 남아 우세 현상을 보이던 셋째아 이상의 경우도 108.3:100으로 정상 범위보다 살짝 높은 수준이 됐다. 출생 성비의 정상화가 이루어지자 1987년 제정됐던 ‘태아 성감별 금지법’의 쓸모가 없어졌고, 2024년 해당 의료법은 위헌 판결을 받고 사라졌다. 헌재는 “현재 우리나라는 여성의 사회경제적 지위 향상과 함께 양성평등의식이 상당히 자리 잡아가고 있고, 남아선호사상이 확연히 쇠퇴하고 있다.”2) 라며 해당 법률의 불필요성에 대해 설명했다. 헌재의 남아선호사상이 쇠퇴하고 있다는 판단에 신빙성을 실어주는 것은 통계청의 출산 성비 자료뿐만이 아니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는 오히려, 여아 선호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국내 입양 아동 중 3명 중 2명이 여아로 집계되며, 한국리서치 조사에서 ‘딸이 하나는 있어야한다’는 응답이 62%로 ‘아들이 하는 있어야 한다’라는 응답(36%)보다 크게 높게 나타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어떻게 한국 사회는 몇십 년 사이에 여아를 임신하면 죄인이 되고, 여아만 골라 낙태하던 시절에서 여아를 선호하는 사회로 변화한 것일까? 헌재의 말처럼 “현재 우리나라는 여성의 사회경제적 지위 향상과 함께 양성평등의식이 상당히 자리 잡아가고 있”기 때문일까? 출생 성비의 정상화는 여성 인권 향상의 결과인 걸까? 만약 여아 선호가 성평등의 결과라고 믿는 이들이 있다면 다시 생각해 보라. 성평등이 이루어졌다면 여아를 선호하는 현상이 존재하지도 않을 것이다. 이는 여성을 ‘잘 돌보는 존재’, ‘모성애’, ‘효녀’와 같은 이름으로 규정짓고, 여성에게 돌봄 노동을 책임지우는 사회적 열망에서 비롯된 결과라고 해석할 수 있다.

한국 사회는 지난 수십 년 사이 출산율 감소와 기대수명 증가라는 극적인 인구 구조적 변화를 겪었다. 한 세대 전만 해도 다섯 명이 넘는 자녀를 둔 가정이 드물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날의 출산율은 세계 최저 수준인 0.7명이다. 반면 기대수명은 꾸준히 증가하여 평균적으로 80년 이상의 삶을 살게 된다. 이렇게 ‘덜 낳고, 오래 사는 사회’에서는 돌봄이 필요한 인구는 늘고, 돌봄의 기간 또한 길어진다. 이토록 무거워진 돌봄의 책임은 누구에게 향하고 있는가.


II. 돌봄의 최전선에는 언제나

사람은 누구나 혼자 살아갈 수 없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우리는 누군가의 돌봄을 받으며 살아간다. 갓난아기의 수유와 기저귀를 가는 일부터 시작해 어린이의 성장과 교육, 질병과 위기 상황에서의 간호, 그리고 노년기의 병약한 삶에 이르기까지 인간은 삶 전체에 걸쳐 타인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돌봄은 단지 특정한 조건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인간 존재 자체를 가능하게 하는 기반이며, 삶의 지속을 위한 필수적인 행위다. 누구도 돌봄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나 이처럼 보편적이고 불가피한 돌봄의 책임은 이상할 정도로 특정한 집단, 즉 여성에게 집중되어 있다. 돌봄은 보이지 않는 노동, 침묵의 책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여성을 옥죄었으며 이를 내면화하게 했다.

한국 사회에서 누군가를 돌보는 일의 일차적인 책임은 그의 가족에게 묻는다. ‘가족 일이니까, 가족끼리 알아서 해결해라’라는 태도로 돌봄을 철저히 사적 영역으로 간주한다. 가족끼리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서 돌봄의 주체로 가장 먼저 호명되는 사람은 언제나 여성이다. 전통적으로 여성은 ‘따뜻한 어머니’, ‘헌신적인 아내’, ‘효녀’의 모습으로 이상화되어 왔다. 이 이미지는 여성이 타인을 돌보는 데 있어 ‘본능적으로 적합하다’라거나 ‘더 잘할 수 있다’라는 식의 전제를 바탕으로 한다. ‘모성애’는 여성의 본성처럼 이야기되며 돌봄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미화된다. 그러나 이러한 담론은 여성의 돌봄 노동을 자연화하고, 무보수화하며, 사회적 책임이 아닌 ‘개인의 도덕적 의무’로 전가할 뿐이다. 그렇기에 여성은 부모가 병들거나, 조부모가 연로하거나, 어린 자녀를 양육할 때 등 모든 돌봄이 필요한 순간에 ‘딸’, ‘엄마’, ‘효녀’, ‘이모’와 같은 이름으로 호명된다. 이러한 호명이 우연이나 개인적 상황의 결과가 아닌 범사회적으로 발생하는 현상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성이 돌봄에 적합하다는 오랜 사회적 통념과, 그 통념을 재생산하는 성차별적인 구조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인 것이다.

여성에게 더 많은 돌봄 노동이 부여된다는 사실은 통계청이 발표한 2019년 생활시간조사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해당 통계에서 여성은 하루 평균 187분을 돌봄 노동(가정관리와 가족 보살피기를 더한 값)에 사용한 반면, 남성은 54분에 불과했다. 이는 단지 시간의 차이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누구의 시간이 일상적으로 더 ‘할애되어야’ 하고, 누구의 시간이 더 ‘자기 자신을 위한 시간’으로 보장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여성의 시간은 타인을 위해 끊임없이 쪼개지고 사용된다. 타인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휴식, 경력 개발, 건강 관리 등을 포기한다. 자기 삶의 삯을 내놓아 타인이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여기서 더 문제가 되는 점은 성적 고정관념에 근거한 여성혐오적 인식이 노동시장과 사회제도 속에서도 그대로 작동한다는 점이다. 많은 기업은 여성을 채용할 때 여전히 결혼과 출산, 양육이라는 미래의 ‘리스크’를 염두에 둔다. 여성은 결혼 적령기나 출산 가능성이 있는 나이에 있을 경우 채용 과정에서 불이익을 경험하거나, 비정규직이나 계약직 등 불안정한 고용 형태로 채용되기 쉽다. 실제로 출산 이후 직장에 복귀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는 응답을 한 여성의 비율이 2명 중 1명에 이를 정도다.3) 이처럼 여성에게는 경력 단절의 공백이 빈번히 발생하며, 이는 여성으로 하여금 생애 전체의 경제적 불안정과 사회적 배제를 경험하게 한다.

돌봄이 여성의 몫으로만 전가되는 사회에서, 남성이라고 해서 돌봄 문제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일례로 육아휴직 제도가 법적으로는 성별 구분 없이 보장되어 있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남성의 육아휴직 사용률이 극히 낮다. 네 명의 남성 중 단 한 명만이 배우자의 출산 시 육아휴직을 사용한다는 통계는 제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성이 현실적으로 육아에 참여할 수 없도록 하는 사회적 압박이 작용함을 알 수 있다. 그 결과 남성 양육자의 부재 속에서 여성이 전적으로 육아를 도맡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조부모의 돌봄이나 비용을 들여 외부 기관에 의존하지 않는 이상, 한 사람에게만 육아와 가사노동이 집중되는 구조는 일과 육아의 양립을 불가능케 한다. 이런 상황에서 양육자 중 누군가는 일을 포기하고, 육아에 전념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앞서 살펴보았듯 돌봄을 여성의 역할로 간주하는 한국 사회에선 대개 남성보다는 여성에게 장기적인 육아휴직 혹은 퇴사하도록 압박한다. 이러한 불평등 구조는 여전히 가정 내부의 문제, 사적인 선택, 여성의 자발적 희생으로 포장되며 정치적 공론의 장에서 배제된다. 한 여성이 아이를 돌보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었다면, 이는 ‘가족을 위한 희생’으로 칭송받지만, 동시에 사회는 그 선택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며 구조적 문제점을 발견하지도, 해결을 위해 고민하지도 않는다. 심지어 돌봄 노동은 시장에서조차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다. 요양보호사, 보육교사, 간병인 등 돌봄을 직업으로 수행하는 이들의 임금은 낮고, 노동 강도는 높으며, 사회적 인식은 여전히 낮다. 이마저도 여성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돌봄과 여성화의 연관성을 알 수 있는 좋은 사례다.

결국 이 사회는 돌봄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부정할 순 없지만, 그 돌봄을 누구의 몫으로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성차별적이고 불평등한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현대 사회의 기득권자인 남성, 정치인, 기업가에게 이익이 되는 현 상황을 개혁할 이유를 못 느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모든 인간에게 돌봄이 필요하고, 언젠가는 돌보는 위치에 놓인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우리는 그 부담을 오직 여성에게, 그리고 그중에서도 특정한 위치에 있는 여성에게 몰아세우고 있는 것이다. 돌봄 노동을 떠맡은 여성은 자신의 삶을 유보한 채 타인의 삶을 유지하는 데 자신을 희생한다. 누군가를 돌보는 데 드는 시간, 노력, 비용을 한 사람이 감당하기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 그렇기에 자신의 삶을 희생하며 돌봄 노동을 하는 것이다. 이들은 직장을 포기하거나, 인간관계를 단절하거나, 개인의 미래 계획을 재설정하며 삶 전체가 뒤흔들린다. 「비혼 딸의 부모돌봄 경험이 말하는 것들: 부정의(不正義)한 독박 돌봄으로부터 돌봄 민주주의를 향하여」를 통해 독박 돌봄을 떠맡은 이들이 겪은 자기 희생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해당 논문은 14명의 부모돌봄 경험이 있는 비혼 여성에 대한 심층 인터뷰에 기반한 질적 연구 자료다. 심층 인터뷰를 중심으로 진행된 연구이니만큼, 돌봄 과정에서 실제로 어떠한 고충이 있었는지 자세히 알 수 있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인터뷰 내용 일부를 발췌하여 하단에 수록했다.


“네가 있는데 왜 간병인을 쓰냐. 정말 저는 인간에 대한 환멸을 많이 느꼈어요... 경제적으로 짐을 지게 될까봐 ‘그건 다 오로지 너의 몫이야.’그런 게 너무 힘들었어요.”(사례4)

“2년 병원생활을 저 혼자 간병했거든요.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 없이... 퇴원을 했는데 오빠나 모셔갔으면 했는데 다들 안 된다고 하니까... 그 이후로도 재활병원 3년을 제가”(사례10)

“주말에 나도 목욕도 좀 하고, 정말 중요한 거는 내가 직접 내 고객을 만나야 돼요. 그런 경우엔 어쩔 수 없이 주말에라도 가야하는데 (형제 자매들에게)요청하면 아무도 안와요... 다 직장을 다녀서 안 된다. 나도 직장 다니는데. 그래서 거의 도움을 못 받았다고 볼 수 있죠.”(사례11)

“친구 관계도 다 끊어졌어요. 24시간 엄마랑 있어야 되니까... 내가 찾아가서 만나는 건 없어졌고. 그런 관계도 다 이제 단절되고.”(사례12)4)


III. 지극히 사적인 돌봄

독박 돌봄의 문제는 단순히 여성 개인에게 돌봄이 집중된다는 수준에 머무르지 않는다. 돌봄 노동자들의 인터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듯이 이 문제의 이면에는 돌봄 노동을 수행하는 사람들의 존재와 감정, 희생이 사회적으로 철저히 지워지고 있다는 문제가 있다. 되려, 돌봄을 기대에 못 미치게 수행했을 때 ‘제대로’ 돌보지 않았다는 이유로 ‘나쁜년’, ‘후레자식’과 같은 비난을 듣기도 한다. 돌봄은 우리 모두가 의존할 수밖에 없는 삶의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실질적으로 수행하는 노동자들의 현실은 언제나 사회의 시야 밖에 있다. 이들의 노동은 정당하게 평가되지 않으며 심지어 돌봄이 노동으로조차 인식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다면 왜 이처럼 중요한 노동이 사회적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을까. 핵심적인 이유 중 하나는 돌봄의 문제가 여전히 '가족 내부'의 문제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문제이자 구조적 이슈로 다루어져야 할 돌봄은 오랜 시간 동안 사적 영역에 머무르며 공공의 책임으로 확장되지 못했다. 이로 인해 돌봄의 책임은 '가정이 해결해야 할 문제', 더 정확히는 '가족 안의 여성 혹은 순응적인 자녀가 감당해야 할 몫'으로 인식되어 왔다.

이러한 배경에는 복지국가의 젠더 모델이 있다. 많은 복지국가는 기본적으로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malebreadwinner model)'을 전제로 제도를 설계해 왔다. 이 모델은 남성이 임금노동을 통해 생계를 책임지고, 여성은 무급 노동자인 아내이자 엄마로서 가사와 돌봄을 전담한다는 암묵적 합의 위에서 작동한다. 국가의 정책과 제도는 이러한 가족 구조를 이상적인 단위로 간주하고, 돌봄의 필요 역시 가족 내부에서 자원 동원을 통해 해결되리라는 가정을 한다. 그 결과 돌봄은 개인적 문제로 축소되고, 구조적 해결이나 공공적 책임을 요구할 수 있는 근거를 말살시킨다. 예컨대 요양이 필요한 고령의 부모를 부양해야 하는 상황에서 국가는 최소한의 재정 지원이나 서비스 제공만을 마련한 채, 실질적인 간병과 책임은 가족에게 떠넘긴다. 이때 ‘가족’이라는 이름은 실상 너무도 구체적인 개인, 즉 여성이나 결혼하지 않은 자녀를 가리킴을 알 수 있다. 돌봄의 책임이 가족 내부의 권력 구조를 따라 부여되는 것이다. 국가가 돌봄을 사적 문제로 간주하여 가족에게 무책임하게 넘긴 돌봄의 책임은 가족 내 권력투쟁을 야기한다.

가족 내 권력투쟁의 결과는 권력 구조의 가장 말단에 위치한 여성, 자녀, 비혼 자녀가 돌봄의 책임을 떠안게 한다. 이는 소수의 가족 구성원에게 돌봄 노동을 부과하겠다는 의지이자 책임 전가이며, 이렇게 회피된 독박 돌봄은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취급되고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니까”, “가족 일이니까”라는 말로 정당화된다. 문제는 이러한 구조가 단지 여성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돌봄이 사적 영역에 머무르고 가족 내부의 개인에게만 전가될 때, 이는 궁극적으로 사회 전체를 병들게 한다. 돌봄 수행자는 장시간의 신체적 노동과 지속적인 감정노동, 경제적 부담을 동시에 짊어지며, 그 결과 정신적·신체적 소진이 가속화된다. 특히 자기 삶을 돌볼 여유 없이 타인을 돌보는 역할에 고립된 사람일수록 우울감, 분노, 신체 질환 등의 위험에 쉽게 노출되는데, 이들의 고통은 ‘착한 사람’, ‘책임감 있는 가족’이라는 이미지에 묶여 표현되거나 당연히 감내해야 하는 것으로 치부되며 묵살된다.

기대수명의 연장과 저출산은 돌봄 수요를 더욱 늘리고, 돌봄 노동자는 점점 부족해지고 있다. 그럼에도 돌봄을 여전히 가족의 책임으로만 간주한다면 그 부담은 필연적으로 가족 내 권력 구조의 가장 취약한 위치에 있는 이들에게 집중될 수밖에 없다. 이는 ‘독박 돌봄’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억압과 불평등을 낳고, 돌봄 노동자를 소진시키며, 궁극적으로 사회 전체의 재생산 기반을 위태롭게 한다. 현재와 같은 지속 불가능한 체계로는 늘어나는 돌봄 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고령화가 일찍이 진행된 일본이나, 훌륭한 복지 수준을 제공하고 있는 북유럽의 경우 돌봄을 사적 영역에서 공적 영역으로 확장하는 논의가 활발히 진행돼 왔다. 일본은 2000년 ‘개호보험제도’를 도입해 고령화 속도가 빠른 현실에 대응하고자 했다.5) 개호보험은 40세 이상 국민이 보험료를 납부하고, 필요시 장기 요양·재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사회보험 체계로, 시·정·촌이 보험자로서 운영에 책임을 진다. 이 제도는 돌봄을 가족의 무급 노동에서 분리하여 사회 전체가 비용과 책임을 나누는 구조로 전환한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6) 하지만 민간기관 중심의 운영과 서비스 질 편차라는 한계도 지적되며, 일본 내에서도 공공 주도의 관리 강화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독일 역시 1995년 ‘간병보험제도’를 시행하여 가족 구성원의 부담을 줄이고, 요양시설과 재가돌봄 서비스의 질을 국가가 관리·감독하는 구조를 확립했다.7) 두 나라의 경험은 돌봄을 공적 책임으로 재구성하는 데 사회보험 기반이 효과적임을 보여준다.

북유럽 복지국가들은 이를 한층 더 확장해, 돌봄을 보편적 권리로 보장하는 모델을 발전시켰다. 스웨덴과 덴마크의 ‘국민 모두가 돌보는 사회’ 모델은 단순한 서비스 제공을 넘어, 설계·운영 과정에 시민과 당사자가 참여하는 민주적 의사결정 구조를 제도화했다. 이를 통해 돌봄의 질을 높이고, 정책의 투명성을 확보하며, 돌봄 노동자의 처우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구조를 만들어냈다. 이러한 사례들은 돌봄 민주주의가 단순한 이념이 아니라 실제 정책 설계와 집행에서 구현될 수 있는 구체적 모델임을 보여준다.


IV. 지속 가능한 사회를 위한 돌봄 민주주의

돌봄 민주주의란 돌봄의 제공 여부, 방식, 우선순위, 자원 배분 등에 관한 의사결정 과정에 국가와 지방정부뿐 아니라 시민사회, 돌봄 당사자, 돌봄 노동자가 함께 참여하는 체계를 뜻한다. 이는 돌봄을 단순히 ‘받는 서비스’가 아니라 ‘모두가 함께 결정하고 분담하는 공공의 권리’로 자리매김하게 하며, 현장의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해 실효성을 높이고, 책임을 사회 전체로 분산시켜 특정 집단에 과도한 부담이 집중되는 것을 방지한다. 또한 서비스 이용자와 제공자가 정책 결정 과정에 함께 참여함으로써 돌봄의 접근성과 질을 향상하고, 돌봄 노동의 사회적 가치를 재평가한다.

이러한 거시적 원리를 생활권 단위에서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방식이 바로 지역 돌봄이다. 지역 돌봄은 돌봄 수요와 자원이 지역마다 다르다는 점을 인정하고, 주민이 직접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여 해당 지역 특성에 맞는 돌봄 체계를 설계·운영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8) 고령화율, 산업 구조, 주거 형태, 인구 밀도, 교통 환경 등은 지역마다 크게 다르며, 이에 따라 필요한 돌봄의 내용과 형태도 달라진다. 예를 들어 농촌 지역은 고령자 비율이 높고 의료 접근성이 낮아 이동형 복지 서비스가 중요하고, 대도시의 경우 1인 가구·맞벌이 가정 증가로 아동·청소년 방과후 돌봄이나 응급 대응 서비스가 필수적이다.

지역 돌봄의 중요한 특징은 서비스 통합성과 접근성이다. 의료, 요양, 식사 지원, 주거 환경 개선, 문화·여가 활동, 심리 상담 등을 단절 없이 연계해 제공함으로써, 돌봄이 필요한 사람이 여러 기관을 전전하지 않고 한 체계 안에서 지원을 받을 수 있게 한다. 이를 위해 보건소·복지관·주민센터·요양시설·민간 의료기관 등 지역 내 자원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묶고, 서비스 중복을 줄이며, 누락되는 영역이 없도록 조정한다. 또한 지역 돌봄은 주민 참여를 제도적으로 보장한다. 서비스 수요자와 제공자, 지역 시민단체, 행정기관이 함께 회의와 기획에 참여하여, 실제 현장에서 필요한 내용이 정책과 사업에 반영되도록 한다. 이는 돌봄을 단순한 ‘행정 서비스’가 아니라, 지역 공동체가 함께 유지·발전시키는 사회적 관계망으로 만든다.

해외 사례로는 일본의 ‘지역포괄케어시스템’이 대표적이다. 이는 의료·요양·예방·생활지원·주거를 한데 묶어 시·정·촌 단위에서 제공하는 모델로, 고령자가 가능한 한 오래 익숙한 생활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다. 북유럽 국가들의 ‘커뮤니티 케어’ 역시 지방정부가 중심이 되어 재가 돌봄을 강화하고, 물리치료·심리 상담·가정 방문 등 다양한 서비스를 연계한다. 한국에서도 시범 사업이 확산되고 있다. 전북 완주군은 ‘마을 단위 커뮤니티 케어’를 통해 보건소·복지관·주민자치센터를 연결하고 방문간호사·생활지원사가 가정을 주기적으로 방문한다. 전남 신안군은 섬 지역 특성에 맞춰 이동형 복지서비스를 운영하며, 의료 인력과 사회복지사가 함께 배를 타고 섬마을을 순회한다. 서울 성북구는 아동·노인·장애인을 아우르는 ‘마을 돌봄 네트워크’를 구축해, 돌봄 사각지대를 최소화하고 있다. 지역 돌봄은 지역별 요구를 반영한 맞춤형 서비스 제공, 주민 참여를 통한 민주적 의사결정, 생활권 내 돌봄 접근성 보장, 지역 자원 최적화를 통해 돌봄의 질과 지속 가능성을 동시에 높인다. 이는 돌봄 민주주의의 가치를 현장에서 구현하는 가장 직접적이고 실효성 있는 방식이며, 중앙정부 정책의 사각지대를 메우고 지역 공동체의 회복력을 강화하는 중요한 기반이 된다.

결국 돌봄은 한 개인의 선의나 일시적인 호의로 유지될 수 있는 사소한 가정사가 아니다. 태어나서 숨을 거둘 때까지, 인간의 삶 전반을 지탱하는 필수 조건이자 사회를 지속시키는 근본적인 기반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돌봄은 유난히 여성과 가족에게, 그중에서도 가족 권력관계의 말단에 있는 이들에게 강제로 부여되어 왔다. 이 과정에서 돌봄 노동은 비가시화되고, 과소평가되며, 그 노동을 감당하는 사람들은 장기적인 소진과 배제 속에 방치됐다. ‘가족이 책임져야 할 일’이라는 오래된 관념은 여전히 강고하게 작동하고 있다. 그로 인해 돌봄이 필요하지만, 가족이 없거나, 가족이 돌보지 못하는 상황에 놓인 사람은 적절한 지원을 받지 못한 채 쓸쓸하게 삶의 마지막을 맞이하기도 한다. 고령화와 인구 구조 변화로 돌봄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현실에서, 이런 지속 불가능한 돌봄 체계를 더는 유지할 수 없다.


V. '우리'의 과업, 돌봄

우리는 더 이상 돌봄을 사적 영역에 가두어 두는 방식을 유지할 수 없으며, 이를 공공의 영역으로 끌어올려 모두가 책임을 분담하는 사회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 돌봄 민주주의는 이러한 문제를 근본적으로 전환하기 위한 원리다. 돌봄을 국가, 지방정부, 시민사회, 당사자가 공동으로 책임지는 구조 속에서 사회적 권리로 재정립하는 것. 이는 단순히 서비스 제공 범위를 넓히는 차원이 아니라, 누가 돌봄을 제공하고 누가 그 결정에 참여하는지를 재구성하는 작업이다. 돌봄 민주주의가 지향하는 것은, 돌봄을 받는 사람과 제공하는 사람이 모두 존엄을 유지할 수 있는 사회다. 그리고 이 원리는 생활권 단위에서 구현될 때 비로소 힘을 가진다. 그것이 바로 지역 돌봄이다. 지역 돌봄은 각 지역의 특성과 자원, 관계망을 바탕으로 촘촘하고 접근성 높은 돌봄 체계를 만드는 방식이다. 국가 단위의 큰 틀 속에서도, 실제 생활에서 체감할 수 있는 돌봄의 질과 안정성은 결국 지역의 촘촘함에서 나온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돌봄에 필요한 재원을 투입하는 것이 특정 집단을 위한 ‘혜택’이나 ‘선심성 지출’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은 돌봄을 제공하지 않는 사람도, 언젠가는 돌봄이 필요한 순간을 맞게 된다. 그때를 대비해 지금의 돌봄 시스템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것은, 미래의 나를 포함한 모든 구성원의 삶을 지키는 일이다. 돌봄 노동자가 소진되면, 우리는 한 사람의 건강과 존엄을 잃는 것뿐만 아니라, 그가 사회에 기여할 수 있었던 모든 가능성과 성취의 기회를 함께 잃는다. 이는 단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손실이다. 그러므로 돌봄 예산은 낭비가 아니라 사회적 손실을 예방하는 가장 효과적인 투자이며, 장기적으로는 의료비·복지비 등 다른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지름길이 된다.

돌봄 없는 민주주의는 공허하고, 민주주의 없는 돌봄은 불평등하다. 우리는 더 이상 돌봄을 사적 영역에 가둬둘 수 없다. 돌봄을 사회의 핵심 가치이자 집단적 책무로 선언하고, 이를 실현하는 제도를 구축해야 한다. 돌봄을 떠받치는 노동은 사회가 유지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핵심적 기반이다. 보이지 않은 누군가의 희생쯤으로 치부하면 안 된다. 우리 삶과 사회를 유지하는 돌봄은 아이의 웃음을 지켜내고, 환자의 고통을 덜어내며, 노인의 하루를 지탱하게 한다. 돌봄은 단순한 ‘봉사’가 아니라 가장 본질적인 사회적 기여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돌봄의 가치와, 수혜자의 희생을 지워버렸다. 너무 오랫동안 우리는 이 노동을 값없이 여긴 것이다. 돌봄 노동자를 가엾이 여기는 마음도 없이.

이제는 돌봄의 가치를 공적으로 인정하고, 정당한 존중과 보상을 통해 민주주의의 토대 위에 올려야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가족, 특히 여성들은 노쇠한 부모를 돌보고, 아이를 기르며 생계와 가사라는 끝없는 이중 부담에 시달린다. 돌봄이 제도적으로 보장되지 못하고 사적 영역으로 치부됐기 때문이다. 이에 돌봄 수혜자의 삶과 경력은 소모되고, 가족 구성원 간의 관계까지 무너져 내린다. 이런 현실을 단지 개인의 불운이 아니라 돌봄을 공적 책임으로 전환하지 못한 사회의 책임이 크다. 그러기에 국가는 돌봄에 관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데 앞장서야 하고, 지역 공동체가 이를 뒷받침해야 하며, 시민사회와 당사자가 함께 참여해야 한다. 돌봄이 누군가의 희생을 통해 유지되는 체계가 아니라, 모두의 권리이자 공동의 책무로 작동할 때 비로소 우리는 우리의 존엄을 지킬 수 있다. 이것이 지속 가능한 사회로 가는 첫걸음이며, 민주주의가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될 사회적 약속이다. 우린 모두 돌봄의 수혜자이자, 시혜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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