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아, 지원, 지운
2024년 11월 11일, 동덕여자대학교에서 ‘공학 전환 반대 시위’가 시작되었다. 학생들은 민주적인 의견 수렴의 절차 없이 학교 측이 일방적으로 추진한 공학 전환 결정에 반대하며, 학교의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투쟁했다. 이러한 ‘여대’를 지켜야 한다는 목소리는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동덕여대 이슈’가 단지 ‘학교 운영 방식을 둘러싼 갈등’ 정도로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일부 재학생들의 ‘변화에 대한 저항’으로만 치부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동덕여대 재학생 대자보에는 “여대는 소멸할지언정 개방하지 않는다”라는 문구가 등장한다. 이 문장은 폐쇄와 고집의 선언만이 아니다. 오히려 여대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만큼, 여성이 어디서든 안전하고 동등하게 권리를 누릴 수 있는 사회가 도래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유리천장은 여전하고, 사회 속 여성의 위치는 불안정하다. 그나마 여성의 사회 진출이 과거에 비해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인식 속에서 여성은 ‘엄마’, ‘아내’, ‘조력자’로만 존재하길 강요받고 있으며, 목소리를 낼수록 조롱과 혐오의 대상이 되기 일쑤다. 그렇기에 여대는 여전히 사라질 수 없는 공간이다. 아직은 ‘소멸’이 아니라 ‘존속’이, 여성들의 ‘연대’가 필요하다.
시위 이후 학교와 사회는 동덕여대 학생과 여성들에게 돌을 던졌다. 동덕여대 학교 본부는 교지 편집비 예산을 삭감하는 방식으로 학생 사회의 비판에 응답했고, 이는 표현의 자유와 학생 자치의 기반을 침해하는 또 다른 폭력이 되었다. 또한 학교를 고소했다는 명분으로 총학생회 및 단과대 학생회 장학금 지급을 보류하기도 하였다.1) 학생들의 목소리는 침묵을 강요당했고, 질문은 회피되었으며, 이들의 공간은 점점 더 위태로워지고 있다. 시위는 학교 측의 비민주적 행태를 수면 위로 드러냈을 뿐만 아니라, 여성을 둘러싼 사회적 시선과 차별, 그 위에 덧씌워진 ‘여자대학’에 대한 왜곡된 인식들이 충돌하며, 우리 사회에 아직도 ‘여성혐오’가 깊숙이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시위 이후 온라인과 오프라인 곳곳에서는 학생들의 외침을 조롱하고 폄하하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요즘 세상에 여대가 왜 필요하냐”, “나중에 애도 낳으셔야 하는데” 등의 반응은, 이 시위가 촉발한 한국 사회 여성혐오의 민낯이다.
단지 ‘동덕여대만의 문제’를 논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 사태를 통해 여전히 여성에게 안전하고 독립적인 공간이 필요함을, 그리고 여대의 존재 이유는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입증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동덕여대에서 시작된 화두, 외면해 온 질문, ‘여대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는 이 질문에 대답하려 한다.
2024년 하반기, 동덕여자대학교는 장기적 발전 전략을 논의하면서 일부 단과대학의 공학 전환 방안을 내부적으로 논의하였다. 그러나 이와 관련된 정보가 일부 교수들에 의해 공식적인 의견수렴 절차 없이 확정된 것처럼 언급되면서, 학생들은 학내 커뮤니티를 통해 깊은 우려와 반발을 표했다. 학교의 해명과 달리 내부 회의에서는 공학 전환 방안에 대한 위원 간 동의가 있었고, 이는 학교 측이 학생 의견을 철저히 배제한 채 비민주적으로 대학 운영 방향을 결정하고 있었음을 방증한다.
학생들은 이러한 상황을 묵과할 수 없다는 판단 아래 11월 11일 본관 점거 시위에 돌입했고, 본관 및 행사 시설 일부에 대해 물리적 저항을 벌였다. 이에 학교는 학생들이 진행하는 시위의 본질과 문제 제기를 외면한 채, 열한 명의 학생을 특정하여 본관 재점거 및 시위 금지, 구호·노래 금지 등을 요구하는 가처분 신청을 통해 법적 대응에 나섰다. 이후에도 학교는 본관 출입 전면 금지, 학생활동 지원위원회를 통한 조사, 집회 및 홍보물 제한 등의 방식으로 학생들의 활동을 통제하려 했다. 총학생회와 학생들은 이에 맞서 계속해서 입장문을 발표하고, 학생총회를 열며 공학 전환 논의의 전면 중단과 학교의 공식 사과, 그리고 학생 자치 탄압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학교 측은 여전히 명확한 책임을 회피하며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으며, 이는 동덕여대가 민주적 절차와 학내 구성원 간의 대화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동덕여대 학생들은 이러한 학교 내부의 탄압과 더불어, 학교 외부에서 사회적으로도 탄압받았다. 동덕여대 학생들은 학생 사회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어떤 폭력과 혐오를 감내해야 했을까.
1) 언론
동덕여대 시위를 폭력 시위로 프레임 씌우고 동덕여대 학생들에 대한 혐오를 재생산한 대표적 주체 중 하나는 ‘언론’이다. 대다수의 언론은 동덕여대 시위 과정을 폭력, 난장판, 손해, 불법 등으로 규정하며 묘사했고,2) 자극적인 기사 제목과 함께 학생들을 향한 혐오, 조롱성 댓글은 그대로 기사화했다. 이는 학생들에게 편향적 프레임을 씌우는 차별적 시선과 태도이며, 학생들에 대한 부정적 담론을 형성한 2차 가해다. 한국기자협회 윤리강령 및 실천 요강에 따르면, ‘기자는 정확하고 객관적인 보도를 위해 노력하고, 확인되지 않은 보도는 하지 않는다’라는 사실 보도 원칙과 ‘선정적·폭력적 요소를 과장하거나 자극적으로 보도해서는 안 된다’라는 자극적 보도 금지 조항이 있다. 폭력 시위, 손해배상 54억 등의 표현들은 확인되지 않은 추정이거나 선정적인 표현일 수 있으므로, 이를 기정사실화하여 기사를 쓴 것은 윤리강령 제3조 보도 준칙 제⑥항 위반한 것이다. 인간의 존엄과 가치 존중 및 명예 훼손 금지 또한 가장 중요한 원칙 중 하나로서, 언론은 사람들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인격권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언론의 아래와 같은 시위의 자극적 묘사와 폭력 시위 프레임은 학생들에 대한 혐오와 조롱성 댓글을 기사화하는 것으로서 실천 요강 제1조④항 윤리 강령을 위반한 것이다.
이러한 언론의 프레임과 달리, 동덕여대 시위는 폭력 시위라고 볼 수 없다. 권김현영 이화여대 한국 여성연구원 기획 연구위원은 한국의 학원 민주화 투쟁 역사3)를 보면 지금의 동덕여대 시위는 폭력적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기물 훼손을 폭력으로 규정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집회와 파업권을 무시하는 관점이라며 시위를 폭력적으로 보는 시각에 반박했다.4) 동덕여대 학생들은 학내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투쟁했음에도 불구하고 언론의 잘못된 여론 형성으로 인해 불합리한 조롱과 비난을 감수해야만 했다. 더 나은 사회를 위한 학생들의 어려운 용기는 비합리적인 사회에 짓밟히고 무력감, 회의감, 상처가 되었다.
2) 정치권
언론뿐만 아니라 유명 인사들 또한 SNS를 통해 동덕여대 학생들에 대한 공격적 언행을 서슴지 않았다. 한국산업인력공단 이우영 이사장은 페이스북에서 블라인드 채용 제도라 할지라도 가능하다면 이 대학 출신은 걸러내고 싶단 생각, 아들을 둔 아비 입장에서 이 대학 출신 며느리는 절대 받아들이지 않을 거란 생각을 하게 된다며, 동덕여대 학생들을 악의적으로 묘사했다.
현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은 동덕여대 시위에 대해 SNS에 “그저 비문명일 뿐”이라는 게시글을 올리고, TV 프로그램 SNL에서 동덕여대 학생들이 자기 앞에서는 폭력을 행사하지 않을 거라며 학생들을 조롱했다.5) 이는 특정 사회적 약자 집단의 목소리를 비난하고, 그들을 통해 다른 집단과의 갈등을 부추겨 정치적 이득을 얻으려는 의도로 행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동덕여대 시위와 관련한 젠더 이슈를 2025 대선의 표 갈라치기 전략으로 사용한 것이다. 막대한 파급력을 가진 유명인들의 이러한 행보는 동덕여대 학생들뿐만 아니라 여성 자체를 혐오하는 표현으로까지 이어져, 여성혐오를 재생산하고 있다.
정치권이 동덕여대 시위뿐만 아니라 젠더 이슈를 정치 전략으로 사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2022년 제20대 대선 과정에서 ‘여성가족부 폐지’를 대표 공약으로 내세웠다. 이는 구체적 대안 없이 단순한 폐지만을 강조한 채 여성혐오를 정치적으로 활용한 대표적인 사례로, 제21대 대선 당시 이준석 후보와 마찬가지로 공정과 역차별 프레임을 통해 20대 남성 유권자층을 집중적으로 공략했다. 이렇게 여성혐오를 표 갈라치기 수단으로 활용한 갈라치기 정치 전략은 이후 동덕여대 시위에 대한 사회적 반응 속에서도 반복되었다. 여성 문제를 구조적 차별에 대한 문제 제기나 사회적 소수자의 권리문제로 접근하기보다 소수자 혐오를 확산하는 데 일조했다.
3) 남초 커뮤니티 여론
시위 이후 온라인 남초 커뮤니티를 중심으로도 동덕여대 학생들에 대한 혐오가 들끓었다. 반여성주의 단체인 신남성연대는 ‘동덕 폭도’라는 단어를 쓰며 학생들 신상을 특정하겠다고 나섰다. 일부 누리꾼은 “취업길 막혔다”, “페미는 회사에서 안 뽑는다” 등의 혐오 댓글을 쓰고, 칼부림 예고 글을 올리는 등 동덕여대 학생들을 겨냥한 조롱, 비난, 공격을 이어갔다.
성신여대, 덕성여대 또한 남녀공학 전환을 둘러싸고 시위가 일어난 적이 있다. 여대뿐만 아니라 타 대학에서도 학교 측의 비민주적 결정에 대항하여 학생들이 시위를 진행했던 사례는 많다. 그런데 동덕여대 시위만 유독 프레임화, 젠더 이슈화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 시위의 본질이 왜곡되어 남초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여성이 공격의 표적이 되었기 때문이다. 동덕여대 학생들은 학교 측의 불투명하고 일방적인 공학 전환 추진 과정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한 것이었지만, 남초 커뮤니티에서는 이를 ‘여성이 남성을 배제하려 한다’라는 식으로 재해석했다. 에펨코리아, 디시인사이드 등에서는 시위 관련 게시글이 다수 올라왔고, ‘동덕여대는 폐지해야 한다’, ‘남성 차별을 일삼는 페미니즘의 상징’이라는 프레임이 형성되었고, 일부는 해당 학생들의 신상을 추적해 유포하는 사이버 불링 양상으로까지 이어졌다.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2018년 혜화역 시위, 2022년 대선의 여가부 폐지 공약 등의 일련의 사건들을 거치며 여성에 대한 혐오와 폭력이 극심해진 상황과 더불어 이러한 남초 커뮤니티의 여성혐오가 일상화된 상태였기 때문에, 동덕여대 시위라는 작은 불씨가 여성혐오로 번진 것이다.
남초 커뮤니티의 여성혐오는 온라인을 넘어 오프라인으로까지 이어졌다. 경향신문이 진행한 동덕여대 재학생 인터뷰에 따르면, 한 유명 남성 유튜버가 학교에 무단침입하여 학생들이 쫓아내야만 했던 일이 있었다고 한다.6) 그는 해당 남성을 경찰에 넘기고 학교로 돌아가는데 너무 무서워 울음을 터뜨렸다고 언급하며, 학우들에게 이 사건이 트라우마로 남았다고 전했다. 실제로 시위 이후 무력감, 우울감, 불안감 등에 시달려 정신과를 다니기 시작했다는 학생들도 있었다. 이 밖에도 학생들을 무단 촬영하려다 항의를 받자 멱살을 잡은 남성, 정문 앞에서 고성을 지르는 남성도 있었다.
개인은 자신의 의견이 소수일 때는 침묵하다가 다수와 일치한다고 느끼면 쉽게 의견을 드러내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경향이 온라인 공간에서 반복되면서, 여성혐오적 발언과 태도가 나선형처럼 점점 강화되고 확산되었다. 이 현상은 오프라인으로까지 이어져, 앞선 사례들과 같이 여성혐오가 일상 공간에도 깊이 스며든 심각한 상황을 초래했다. 여성들이 거리도, 공중화장실도, 가장 안전해야 할 공간인 학교까지도 마음 놓고 다니기 어렵게 된 것이다. 이는 여성들의 일상을 위협하는 매우 심각한 사회적 일탈이며 강하게 지탄받아야 한다.
언론은 동덕여대 학생들에 대한 왜곡된 시선을 주입하고, 정치권은 표 갈라치기 전략에 학생들을 이용했으며, 남초 커뮤니티에서는 여전히 학생들 및 여성에 대한 혐오 표현이 난무하고 있다. 이는 모두 여성혐오에서 비롯된 결과이며, 우리 사회에 여성을 향한 혐오가 아직도 만연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최근까지도 여대를 중심으로 한 여성혐오는 계속되고 있다. 지난 7월 7일, 광주여대와 성신여대는 남성연대 회원으로 추정되는 인물에게 ‘여자에게 학문은 필요없’다며 폭발물을 설치했다는 협박 메일을 받았다.7) 현 사태는 여성들의 표독스러운 고집이 아니다. 여대는 여전히 낮은 여성 인권이 남성 인권과 동등해지기 위해 존속되어야 하는 장소이자,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위한 교육 기관이다. 여대는 여성 인권 신장으로 말미암아 자연 소멸해야 할 상징적 공간이다.
여대의 공학 전환 논의와 비민주적인 진행 절차에 따라 시작된 여대 재학생들의 저항은 필사적인 행위였으나, 사건이 외부로 퍼져나가며 재생산된 폭력은 그들을 공격했다. 그중에선 ‘여자대학교’의 존속에 대해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당연하다는 듯, “남자 대학교는 없는데 여자대학교는 왜 있냐?”라거나 “그냥 남자가 싫은 거 아니야?”와 같은 무지하고 폄하적인 발언을 일삼는다. 학교 측에서는 신입생 미달을 이유로 공학 전환을 시작한 것이라 변명하고 외부에서는 학생들의 투쟁을 단순히 폭력으로 치부하기도 한다. 정말 단순히 여대가 왜 존재해야 하는지 몰라서 공학 전환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투쟁의 목적을 알아보려는 노력도 없이 비난만 내뱉는 것은 명백한 여성혐오이자 폭력이다.
여대 재학생들은 여전히 뜨겁게 투쟁 중이다. 여성이 온전히 평등하지 않은 사회 속에서 여대를 지키려는 것은 당연하다. 동덕여대 총학생회장은 여전히 여성 인권이 보장된 상태가 아니기에 “여성들이 불평등과 혐오에서 벗어나 마음껏 교육을 받고, 자유롭게 성평등을 논의할 수 있는 공간이 바로 현재 우리 대학의 역할”이라고 언급했다.8) 그리고 이 사태를 지켜본 한 숙명여대 재학생은 “차별받지 않고, 안전을 보장받고 싶은 여성들의 처절한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길 바란다.”라고 밝혔다.9) 공학 전환 논의가 나온 동덕여대, 성신여대뿐만 아니라 다른 ‘여대생’들은 함께 여대 존속을 외치고 그 필요성을 분명히 한다. 이들에게 여대는 그저 ‘여자만 다니는 대학교’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 곳이기 때문이다. 여자대학교가 우리 사회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무슨 역할을 수행하고 있기에 재학생들이 이토록 절실하게 투쟁하는 걸까. 이에 대한 답변을 얻기 위해 여대에 재학 중인 학생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았다.
ー여대에서의 경험, 기회
여대는 남녀공학보다 여성들이 설 자리가 훨씬 많다. 본 경험은 여성들의 사회생활에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여대에서는 어떤 경험과 기회가 여성들에게 어떻게 더 주어지는지, 그 경험을 통해 사회에 나가 어떤 도움을 얻을 수 있을지 여대 재학생들에게 질문하였고 유의미한 답변을 받을 수 있었다. 이화여대에 재학 중인 A씨는 대학에 대해 “단순히 강의실에서 공부하는 게 다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라며 강의실 밖으로 나가 행동하고 연대하고 참여하는 것을 대학에서만 할 수 있는 진정한 공부로 꼽으며 본인의 경험을 공유했다. 또한 “여대에서는 모든 일을 여자가 한다. 학생회장도 여자고 선거 준비위원회도 여자다. 축제나 MT 준비 과정에서도 마찬가지이다.”라고 답했는데, 그는 대학 외부 연합동아리 활동을 하며 본인이 무거운 물건을 들거나 고기를 구울 때 남성들에게 도와주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다만 이는 모두 여대에서는 여성들이 스스로 했던, 그들이 스스로 할 수 있었던 일이었다. A씨는 해당 경험을 언급하면서 “연합동아리를 하면서 느낀 건 남녀공학의 여자 학생들과 여대 재학생들은 달랐다는 점이다. 남녀공학의 여자 재학생들은 가만히 있어도 누군가 대신 해 주기에 굳이 해야 할 필요성을 못 느끼는 거 같았다. 그러나 이런 경험이 쌓이고 쌓인다면 그 이후에는 당연히 여성의 사회적 경험이나 주체성에서 격차가 벌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여대를 다니면 훨씬 주체적이고 독립적으로 자신의 길을 개척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답했다.
인터뷰이가 언급한 것처럼 남녀공학의 여성들은 무거운 물건을 남성들이 들어주는 걸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여자는 연약해”, “힘은 남자가 쓰는 거지” 등의 사회의 가부장적인 관념을 내재화해 버린 것이다. 물론 남녀 간의 신체적인 차이가 있는 것은 맞다. 그러나 그 차이는 여성들이 물건을 스스로 들지 못할 정도로 절대적인 게 아니며, 개개인 간의 차이도 꽤 크다. 이는 여성의 신체와 역할에 대한 가부장적인 편견이 내재화된 결과이다. 하지만 여대에서는 다르다. 그동안 여자가 하는 일이 아니라고 했던 일들을 여성들이 자연스럽게 한다. 무거운 물건을, 박스를, 장비를 들고 불을 피우고 고기를 굽는다. 이처럼 사소한 편견을 깨는 경험은 단순한 일 같아 보이지만, 앞선 경험을 거치면서 여성들이 점점 주체적으로 사회 속에서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성신여대 재학생 B씨는 같은 질문에 공학에서 온 동기에게 학생회장은 남자가, 부학생회장은 여자가 하는 암묵적인 법칙이 존재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반면 여대는 구성원이 다 여성이기 때문에 모든 일을 여성이 주도적으로 이끌 수 있으며, 이를 통해 능력을 기를 기회를 쉽게 얻고 성장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동덕여대 재학생 C씨도 학생회나 동아리에서 임원을 맡았을 때 편견에 맞서 부담 없이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고 답변했다.
여성은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여대는 이를 돕고 있다. 공학에서는 어떠한 직책을 맡을 때 여성에게 더 높은 잣대를 들이밀거나 탐탁지 않은 눈길을 보내곤 한다. 그러므로 여성이 높은 직책에 오르기 위해서는 더 많은 조건이 따라붙는다. 그러나 여대에서는 여성들이 적극적이고 주체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기회와 경험을 당연하게 제공받으며, 여성을 수동적으로 취급하는 사회의 차별적 분위기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이러한 경험은 전통적으로 사회 속에 깊숙이 뿌리 박힌 여성혐오와 차별에서 벗어나 여성이 주체로 설 수 있게 돕는다. 재학생들의 답변을 톺아보아도 여대는 모든 여성에게 동등한 기회가 주어지는, 여전히 여성들에게 상징적이고 필요한 공간임이 자명하다.
ー여대의 기능
이뿐만 아니라 재학생들을 위해 여대가 반드시 수행해야 할 기능이 있다. 여대는 여성만 있는 공간이기에 범죄의 대상이 되기 쉽다. 물론 모든 대학교는 학생들을 보호해야 하지만, 여대는 더욱 안전한 학교를 조성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범죄로부터 적극적으로 학생들을 보호할 의무를 진다. 여대의 기능에 대해 재학생들에게 질문했을 때 그들도 공통된 답변을 내놓았다. 성신여대 재학생 B씨, 동덕여대 재학생 C씨 그리고 숙명여대 재학생 D씨 모두 ‘안전 보장’을 여대가 수행해야 할 중요한 기능으로 꼽았다.
수많은 여성들이 여전히 사회에서는 ‘안전하다’라고 느끼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재학생들도 공통적인 답변을 하는 것이다. 여성들은 화장실과 같은 공공 장소에선 불법 촬영을 걱정하고, 연인과 헤어질 땐 안전한 이별을 염원하며, 계속되는 여성 대상 범죄로 인해 어두운 밤길을 마음 놓고 거닐지 못한다. 이는 대학도 예외가 아니다. 남대생은 여자 화장실에 숨어들어 옆 칸을 촬영하는가 하면,10) 대학원생도 불법 촬영으로 빈번하게 적발된다.11) 심지어는 연구교수까지 불법 촬영을 자행하여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다.12) 대학 내 불법 촬영은 여성들이 일상 속에서 빈번하게 마주하는 두려움이며 해결되지 않고 있는 심각한 문제이다. 여자 화장실에는 불법 촬영으로 인해 모든 구멍을 필사적으로 막은 흔적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다행히 학교의 구성원이 모두 여성인 여대 안에서는 이런 걱정을 덜 수 있다. 여대는 주변 경찰서와 협조하여 범죄예방을 위해 더욱 신경 쓰고, 늦은 시간에는 외부인 출입을 막기 위해 학교 문을 잠그는 등 재학생들이 범죄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노력한다. 그러나 사회는 여성을 보호하지 않는다. 많은 여성이 범죄의 피해자가 되어 소리쳐도 여성 대상 범죄임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반면, 이화여대에서는 ‘여성혐오와 여자대학, 그 변화의 시작’ 콘퍼런스를 열어 여성혐오에 대해 고민했고13) 숙명여대는 서울시여성가족재단과 여성 안전·돌봄·경력개발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한 바 있다.14) 여성의 사회적 안전이 위협받는 현 세태에서 여대는 보다 적극적으로 여성을 보호하고 여성혐오를 직시하며 맞선다. 여성들을 위한 대표적인 기관인 ‘여대’는 단지 재학생들을 위한 안전 보장에 힘쓰는 것만으로도 여성이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한다. 즉, 여대는 여전히 여성혐오적인 현 사회에서 본보기가 되는 기관이며, 평등한 사회를 개척하는 시작점이 될 수 있다.
학문 기관으로써도 여대는 꼭 필요하다. 남녀공학에는 여성학 강의가 많이 없고, 관련 수업을 듣는 사람을 이상한 사람 취급하며 검열하려 한다. 반면 여대에서는 페미니즘과 여성학을 배울 기회가 많다. 학부와 대학원을 포함해 여성학과가 개설되어 있는 대학교를 살펴보면 절반 정도는 여대이며, 대부분의 여대에 여성학 관련 전공이 개설되어 있고 관련 강의도 많다. 덕성여대에는 여성학과가 없지만 교양수업으로 ‘여성과현대사회’, ‘여성과노동’, ‘여성심리학’, ‘여성학입문’, ‘여성주의소셜디자인’ 등이 개설되어 있고 학생들의 만족도도 높은 편이다.15) 이화여대는 아시아 최초로 여성학과를 개설한 만큼 ‘여성학’이라는 수업은 명강의로 꼽히며 이외에도 다양한 여성학 관련 수업이 있다. 여성학은 여성에 대한 뿌리 깊은 차별과 편견을 파고드는 학문이기에 의미가 크다. 이렇듯 여대는 학문 경험의 폭을 넓힌다. 이은아 이화여대 여성학과 교수는 여대가 사회의 평등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지식 생산의 장으로서 역할을 앞으로도 계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16) 또한 여대는 페미니스트가 되어도 안전한 공간이다. 학생들은 여성학 수업을 들음으로써 여성을 둘러싼 혐오와 차별에 대해 더 고민하게 되고, 작은 일일지라도 여성을 위한 목소리를 내는 법을 배울 수도 있다. 여대는 여성학을 쉽게 배울 수 있는 공간이기에, 여성들이 사회 속 여성혐오 및 차별을 명확히 탐구하고 평등한 사회로 나아가게 하는 데 보탬이 될 것이다.
인터뷰를 진행하며 재학생들의 의견을 통해서도 여대 존속의 필요성을 다시금 되새길 수 있었다. 성신여대 재학생 B씨는 여대가 차별이 만연한 사회로 나가기 전 마지막으로 여성만 있는 공간으로서 유의미한 공간이라고 설명하며, 이 곳에선 여성들이 편하고 자유롭게 의견을 주장할 수 있다고 밝혔다. 숙명여대 재학생 D씨는 “여대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불평등을 겪어온 이들이 주체가 되어 말하고, 결정하고, 성장할 수 있는 공간이다. 여전히 우리 사회 곳곳에는 여성에 대한 구조적 차별이나 혐오, 그리고 무의식적인 성별 고정관념이 깊게 자리하고 있다. 이같은 현실 속에 여대는 여성들이 스스로의 가능성을 검열 없이 펼칠 수 있는 드문 공간이라는 점에서 분명한 존재 의의를 지니고 있다.”라고 답변했다.
재학생들의 답변처럼 여대는 평등한 공간이다. 남녀공학에서는 사회와 비슷하게 남성중심주의 문화가 작동하기 때문에, 여성들이 ‘남성문화’라고 포괄할 수 있는 정치문화, 술 문화, 군대문화 사이에서 살아남아야만 한다. 남성문화가 자리 잡은 남녀공학의 대학 사회에선 학생들이 차별과 여성혐오가 일상화된 곳에서 작은 사회를 경험하고 고등교육을 받는다. 그러나 여대는 다르다, 여대에서는 여성이 무엇을 해도 유별나지 않다. ‘남성문화’가 작동할 수 없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성별 때문에 여대 재학생들은 위축되거나 제약받는 일이 없다. 여대는 사회가 여성을 규정하는 시선에서 벗어나 있고, 성별 때문에 재학생들이 위축되거나 제약받는 일이 없다. 여대는 여성들이 해방감과 자유를 만끽하게 한다. 그리고 안전한 공간에서 주체적으로 행동할 수 있고 원하는 교육을 받으며 성장하게 돕는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이만큼이나 여성들을 돕는 공간은 여대밖에 없다. 여성들에게 여대는 여전히, 절실하게 필요하다.
아직도 여자대학교는 정말로 필요한 존재인지, 충분한 답이 되지 않았는가? 여기서부터는 추상적인 이론이나 당위론적 주장보다는 명확한 근거를 통해 여자대학교의 존재 이유를 객관적으로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과연 여자대학교는 우리 사회에 얼마나 실질적 기여를 하고 있으며,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반장’, ‘회장’, ‘대통령’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어떤 이미지가 그려지는가? 어떤 성별을 먼저 떠올렸는가? 대부분 남성의 이미지를 떠올리는 게 보편적일 것이다. 우리나라는 가부장의 권위를 중시하는 유교문화의 영향으로 남존여비 사상에 기반한 전통적 성 역할이 오랫동안 유지되어왔다. 이에 어릴 때부터 보고 들은 전통적 성 역할의 이미지가 무의식에 자리 잡아 지금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현재는 이전에 비해 많은 구분이 사라졌고 기회의 불평등 또한 개선되었다고 하지만 절대적인 수치로 보았을 때 이 문제들이 충분히 해소되었다고 보긴 아직 어렵다. 한국은 2024년 기준 OECD 회원국 유리천장지수 순위에서 12년 연속 최하위인 29위를 달성했다. 한국 노동자의 평균임금은 OECD 평균과 격차를 계속 좁혀가고 있는 반면 아이러니하게도 성별 임금 격차는 2022년 기준 31.2%로 1위를 차지했다.
결국 이는 기회의 불평등과도 직결될 수밖에 없다.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일수록 여성을 찾아보기가 매우 어렵다. 이런 면에서 국내 여성 교수 비율을 살펴보면, 2025년 기준 국립대학 전임 여성 교수 비율은 21.4%에 불과하며 한국해양대 1.5%, 금오공과대 1.3% 등 일부 국립대학의 경우 여성 교수 비율이 5%도 되지 않고, 서울대조차 7.0% 수준에 머물러 있다. 포항공대 3.3%, 한양대 11.1%, 중앙대 12.1% 등 사립대학들 또한 다수가 15% 이하의 비율을 보인다.
기업 리더십에서도 마찬가지다. 2022년, 자산 총액 2조 원 이상의 상장법인은 반드시 한 명 이상의 이사를 선임해야 한다는 내용의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시행되었다. 결국 이제는 기업에서 성별 다양성, 포용성을 증명하지 못하면 투자받기도 어려워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여성 리더는 섬세함, 공감 능력, 포용력, 공정성에 대한 높은 기준 등의 장점을 지녀 기업의 성공적인 경영을 위해 필수적이라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 리더는 여전히 매우 적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23년 여성 신입사원의 비율은 38.2%이지만, 중간관리자로 가면 비율은 22.1%로 떨어지고 고위직 여성 리더의 비율은 6%로 여성들은 아직 실질적 사회적 위치를 결정함에 있어 열세에 머물러 있다. 이런 사회에서 한국의 여자대학들은 여성 리더 육성의 토대가 되어 준다. 여자대학은 최초의 설립에서부터 여성의 유리천장을 타파하기 위해 존재해 왔다. 숙명여대, 성신여대, 동덕여대, 이화여대 등 대다수의 여자대학이 여성 인재, 여성 리더 양성을 목표로 삼고 있으며, 이는 충분히 우리나라에서 실질적인 성과로 입증되고 있다.
‘교수가 되고 싶으면 여대를 가라’는 말이 있다. 그 이유는 타 대학들에 비해 상당히 높은 여성 교수 비율을 보이기 때문이다. 광주여대 61.2%, 덕성여대 52.5%, 동덕여대 46.7%, 서울여대 51.9%, 성신여대 43.9%, 숙명여대 41.7%, 이화여대 53.4%이다. 이러한 수치로 보이듯 많은 여자 대학이 절반 혹은 그 이상의 여성 교수 채용 비율을 보인다. 국내 주요 대학들이 꽤 높은 자대 출신 교수 채용 비율을 보이는 것은 만연한 사실이다. 여자대학도 자대 출신 여성 교수를 많이 채용할 것이고, 따라서 여대를 나온 여성들에게 '교수'가 될 기회가 더 많이, 더 자주 주어지게 될 수밖에 없다. 황경숙 성신여대 교수대의원회장은 “성신여대는 자대 출신 박사들이 모교에서 강의할 수 있도록 학문 후속세대 양성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17)고 언급했다.
우리나라 여성 국회의원들 또한 이를 증명하고 있다. 이번 22대 총선의 지역구 여성 당선자 중 7명(약 19.4%)이 이화여대 출신이며, 숙명여대 3명, 덕성여대 1명 등 여자대학 출신 여성 당선자가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해당 통계는 여성 리더 양성이라는 여자대학들의 제1의 목표처럼, 많은 여성 정치인을 배출함으로써 정치계 여성 비중 확대에 기여해 오고 있음을 보여 준다. 또, 100대 대기업 여성 임원 출신 대학 중 이화여대가 89명으로 1위, 숙명여대는 14명으로 7위에 올라와 있다. 이처럼 여자대학은 여성 리더를 배출하고 유리천장을 완화하는 데 실로 유의미한 기여를 하고 있다.
벗, 수정이, 눈송이는 여대에서 재학생들이 서로를 부르는 독특한 호칭이다. 호칭 문화가 있는 곳이 공학 대학들도 있지만 여대의 호칭 문화가 특히나 널리 알려져 있고, 호칭과 엮인 따뜻한 이야기들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이같은 호칭 문화는 수평적 관계를 목적으로 만들어졌으며, 결과적으로 재학생들이 강한 소속감을 느끼게 하고 이들 사이의 견고한 연대를 형성해 주고 있다.
호칭 문화에서부터 시작한 이들의 연대는 단순한 소속감을 넘어 적극적인 행동으로 이어진다. 여대 재학생들은 남성 중심적 질서에 맞서 목소리를 내고, 정치적 사안에서도 침묵하지 않는다. 지난 2월 26일 이화여대 역대 총학생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을 촉구하는 2차 시국 선언문을 발표했다. 해당 시국 선언문은 역대 이화여대 총학생회장단 및 1만 5,000여 명이 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1,000명도 채 되지 않는 타 대학들의 수치(서울대 300명, 동국대 108명)에 비하면 압도적인 수치임이 확실하다. 숙명여대도 마찬가지로 ‘윤석열 퇴진을 위한 숙명여대 2,626인 대학생 시국선언’을 진행하였다. 숙명여대 재학생은 시국선언을 예로 들며 사회적 현안에 대한 공감대를 바탕으로 하는 연대의 힘이 여대이기에 더욱 자연스럽고 강하게 형성되는 것이라 언급했다. 2016년 박근혜 탄핵 집회의 시초도 이화여대 학생들의 학내 시위였다. 처음에는 평생교육 단과대학 설립을 반대하기 위한 시위였으나 이후 최서원(최순실) 씨 딸의 이화여대 부정 입학 건이 알려지며 시위는 더욱 확대되었고, 전국적인 촛불집회로 이어졌다.
결국 이는 여대가 여성들이 사회 구조 속에서 겪는 억압, 부당함에 대해 안전하게 이야기하고, 연대하며 실천할 수 있는 공간이 되어 준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사회적 불의와 민주주의의 훼손이 반복되는 현실 앞에서, 여성이 온전한 주체로서 자발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문화와 분위기가 곧 사회적 연대의 토대를 만들어 주고 있는 것이다.
'왜 여자대학이 필요한가?'에 대한 답은 우리나라만이 아닌 해외 사례를 통해서도 찾아볼 수 있다. 미국 동부에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명문 여자 대학들, 일명 ‘세븐 시스터즈’ (Seven Sisters)라고 불리는 명문 사립 리버럴 아츠 대학들이 있다. 이러한 별칭도 아이비리그 학교들과의 협력관계 때문에 생겨난 이름이다. 현재까지 여자대학으로 남아있는 학교는 Wellesley College, Smith College, Barnard College, Bryn Mawr College, Mount Holyoke College이며 힐러리 클린턴(전 미국 국무장관), 낸시 레이건(전 영부인), 안나 퀸드렌(퓰리처 수상 작가) 등 여러 유명인이 세븐 시스터즈를 졸업했다.
세븐 시스터즈 여대들은 독특한 커리큘럼과 인턴십, 강력한 동문 네트워크 등이 장점이다. 스미스 칼리지의 경우 한 학기 동안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에서 학생들이 연구를 진행할 수 있는 인턴십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마운트 홀리 요크 대학은 사회정의의 가치를 중요시하여 모든 1학년 학생들이 대학에서 마련한 사회 정의 세미나를 위한 리더십 (Leadership for Justice Seminar)에 등록해야 한다.
조사 결과, 해당 학생들은 공학 대학 학생들에 비해 높은 학교생활 만족도를 보인다. 바나드와 스미스 칼리지는 학교생활 만족도가 높은 리버럴 아츠 칼리지 순위에서 각각 3위와 5위를 차지했다. 또한 미국은 대학 캠퍼스 범죄가 빈번함에도 불구하고 여자대학들은 캠퍼스 범죄율이 낮아 상대적으로 안전하다.
또한 미국에서 대학 졸업률은 교육 효과를 측정하는 중요한 지표가 된다. 특히 미국의 높은 대학 등록금을 고려할 때, 졸업률은 대학의 교육 투자 대비 효과를 보여주는 핵심 지표이다. 여자대학들은 남녀공학에 비해 현저히 높은 졸업률을 보인다. 바나드 칼리지의 졸업률은 87%로 이는 예일, 유펜, 브라운 대학들보다도 높은 수치다. 스미스 칼리지는 82%, 마운트 홀리요크 칼리지 81%, 웰슬리 칼리지 78%로 모두 높은 졸업률을 보인다. 여자대학은 의대와 로스쿨 진학률도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여성들이 진입하기 어려웠던 전문직 분야에서도 여자대학이 효과적인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여기서 여자대학의 폐쇄성을 우려할 수 있지만, 많은 대학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남녀학생이 함께 수업을 듣도록 한다. 바나드 칼리지는 컬럼비아 대학과 제휴를 맺어 두 대학 졸업장을 받을 수 있으며, 스크립스 칼리지 학생은 클레어몬트 매키나 컨소시엄을 통해 여러 학교의 수업을 교차 수강할 수 있다. 스미스 칼리지와 마운트 홀리 요크 칼리지 학생은 앰허스트, 햄프셔, 매사추세츠 앰허스트 대학에서 수업을 들을 수 있고, 웰슬리 칼리지 학생은 MIT, 올린 공대 수업에 참여할 수 있다. 바나드 칼리지 음대생들은 줄리어드에서 뮤지션들과 함께 연습할 수 있다. 이는 재학생들에게 충분한 학문적 상호 보완을 가능하게 하며, 오히려 공학 대학에서보다 더 많은 기회와 경험을 쌓을 수 있다. 이렇게 학생들은 여성대학만의 장점을 누리면서도 타 대학들과 교류하고 더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이젠 확실히 대답이 되었을 것이다. 결국 여대는 여성이 사회 주체로 성장할 수 있는 가장 든든한 발판이 되어 주고 있다. 여대는 유리천장을 통타하기 위해 수많은 여성 리더를 배출하고, 그 안에서 여성들은 사회의 불의 앞에 침묵하지 않는 끈끈한 연대의 힘을 지닌다. 또한 세계적으로 검증된 여대의 교육적 성과들은 여대의 존재 가치를 명확하게 입증하고 있다.
여대는 여성에게 펼쳐질 평등한 사회의 시작이며 출발점이다. 여성에 대한 교육이 전무하던 시절, 여성에게도 고등교육을 제공하고 사회 진출의 발돋움할 수 있도록 설립했던 여대의 시작 의의는 현재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더하여 계속 언급해 왔던 여성에 대한 차별과 불평등이 만연한 우리 사회의 현실은 여대 존속의 근거가 된다. 여대는 평등한 사회에서는 자연히 소멸할 것이기 때문이다. 불평등한 사회 속에서 여성들에게 안전하고 자유로운 학문의 공간을 제공하는 것만으로도 여대의 존재 가치는 충분하다. 그렇기에 ‘여대’, 여자대학교는 ‘여성을 위한 평등한 교육’이라는 설립 이념을 기억해야만 하고, ‘여자대학교’는 존속되어야 한다.
더불어 여대는 구성원들에게 다양한 기회를 제공하고 여성혐오가 작동하지 않는 공간으로서 기능하고 있으며 여성 리더를 양성하고 학생 간의 연대를 형성한다. 그러나 공학 전환을 시도하는 학교는 오히려 이에 반(反)하는 듯하다. 인구 감소에 대응해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공학 전환을 추진한다는 학교 측의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권김현영 여성현실연구구소장은 “학교 재정이 부족한 것도 아니고, 지원자 미달 사태가 발생한 것도 아닌데 공학으로 전환을 얘기하는 것은 편의적인 발상”이라고 말했다.18) 여대 공학 전환에 대한 학생들의 투쟁은 감연하고도 당연한 것이며, 이런 상황을 제대로 보려 하지 않고 여성혐오를 재생산했던 이들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더불어 그들의 존재 또한 여대 존속의 필요성을 방증한다.
우리 사회는 여성이 하나의 주체로 존중받는 평등한 사회로 나아가야 하며, 그때가 되면 여대는 자연히 소멸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여성혐오가 만연한 사회에 살고 있으며 여성들이 안전하고 자유롭게 교육받을 공간이 필요하다. 따라서 그전까지 여대는 존속되어야만 한다. 여자대학교가 소멸해도 되는 날이 올 때까지 우리는 멈추지 않고 여대의 존속 필요성을 역설할 것이다.
혐오에 눈이 멀어 앞을 보지 못하고 외면하는 사람들이 이 진실을 마주하길 바란다.
참고문헌
1) 인스타그램, 「딱 정리해주는 학생 시위에 대한 ‘동덕여대’의 대응」, https://www.instagram.com/p/DFXQ4jEyIkT/?utm_source=ig_web_button_share_sheet, 2024.07.24.
2) 김세원, 「여성연합 “동덕여대 시위 ‘불법·악마화’ 프레임은 여성혐오 증거” 」,『여성신문』, 2024.11.28
3) 1960년 4.19 혁명, 1970년대 유신 반대 운동, 1980년 광주 항쟁과 전국 대학생 연대, 1987년 6월 항쟁 등은 모두 대학생들이 결정적 역할을 하여 민주주의에 기여했다.
4) 문준아, 「동덕여대 사태로 본 '여대'의 의미」, 『BBC코리아』, 2024.11.25.
5) 문광호, 「“페미 동아리가 계엄군 행세”…‘동덕여대 시위’를 ‘계엄군’에 비유한 개혁신당 최고위원」, 『플랫』, 2024.12.05.
6) 조형국, 「20대 남성, ‘남녀공학’ 반대 시위 중인 동덕여대에 한밤중 무단 침입」, 『플랫』, 2024.11.15
7) 신혜연, 「"여자 배울 필요 없다, 폭탄 10㎏ 설치" 성신·광주여대 덮친 여혐」,『중앙일보』, 2025.07.07
8) 문준아, 「동덕여대 사태로 본 ‘여대’의 의미」, 『BBC 뉴스 코리아』, 2024.11.25
9) 전세라, 「[여대 재학생 4인 인터뷰] “여성 혐오 사회에서 자유롭게 목소리 낼 수 있는 곳이 ‘여대’”」, 『투데이신문』, 2024.11.20
10) 윤서영, 「[단독] “화장실 가기 겁나요”.. 대학교 화장실 또 불법 촬영」, 『MBC』, 2024.06.04.
11) 이연우, 「대학교 화장실에 ‘몰카’ 설치한 대학원생 입건… “혼자 보려고”」, 『경기일보』, 2019.01.16.
12) 장연제, 「충남대 “교내 女화장실 불법촬영 연구교수, 단기계약 연구원”」, 『동아일보』, 2019.10.31.
13) 정보현, 「'여성혐오와 여자대학, 그 변화의 시작' 여자 이전에 인간임을 감각할 수 있도록」, 『이대학보』, 2024.11.17
14) 박시현, 「숙명여대-서울시여성가족재단, IT 분야 여성 경력 개발 지원 협약」, 『중앙일보』, 2025.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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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윤한슬, 「2000년 이후 성공사례 없는 여대→공학 전환… 동덕여대는?」, 『한국일보』, 2024.11.24.
17) 장우진, 「강사법 TF 마무리 이달 내로 시행령 발표」, 『교수신문』, 2019.01.28.
18) 윤한슬, 「2000년 이후 성공사례 없는 여대→공학 전환… 동덕여대는?」, 『한국일보』, 2024.11.24
-명숙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상임활동가, 「"소멸할지언정 개방하지 않는다" 동덕여대 시위가 던진 질문은?」, 『프레시안』, 2024.11.15. (http://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4111512010617571)
-미래교육연구소장 이강렬 박사, 「미국 명문대로 구성된 파이브 칼리지 컨소시엄」, https://brunch.co.kr/@josephlee54/5902, 2025.07.24
-미래교육연구소장 이강렬 박사, 「여성 아이비리그 대학... ‘세븐 시스터즈’」https://brunch.co.kr/@josephlee54/777, 2025.07.24.
-이해광, 「여대판 아이비리그 ‘세븐 시스터즈’ 아시나요?」, 『한국일보』, 2019.05.28, (http://www.koreatimes.com/article/1249625)
-이대학보, 「여대생, 서로 소통하며 소속감을 다지다」,https://inews.ewha.ac.kr/news/articleView.html?idxno=18479, 2025.07.24.
-이혜리. (2024, 11). 소멸과 개방 사이 동덕여대 학생 투쟁이 말하는 것들. 주간경향,(1605), 1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