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
- 공산주의에 대한 알 수 없는 공포감
21세기인 현재, 여러 매체나 거리 등에 문구를 통해 ‘공산주의’, ‘공산화’라는 글자를 빈번히 보게 된다. 대부분 그 글자 누군가를 향한 비방을 위해 사용된다. 중국인의 무비자 입국 허용에 대해 우려1)를 명목으로 폭언과 혐오 발언을 쏟아내는가 하면 20대 남자의 47%가 ‘이재명이 대통령이 되었으니 한국은 공산화될 것이다’에 동의한다는 웹 조사 결과도 볼 수 있었다.2) 뿐만 아니라, 반중을 넘어 중국 혐오 시위를 지속하는 윤석열 전 대통령을 지지 단체는 “한국 사회가 친중 공산화되어 가고 있다”라고 주장하기도 한다.3) 인스타그램에서는 소개란에 ‘멸공’을 거꾸로 적어 표기하는 것이 일부 젊은 층 사이에서 확산하며 논란이 되기도 하였는데, 정용진 신세계 그룹 회장 또한 1년만에 인스타그램 활동을 재개하며 소개란에 ‘멸공’을 거꾸로 적은 문구를 넣었다가 비판받자 삭제하기도 했다.4) 일부 사람들에게 ‘공산주의’라는 것이 악마처럼 보이는 듯하다. 대체 공산주의가 무엇이기에 이들에게 공포와 공격의 대상이 되는 것일까?
공산주의는 19세기 사상가인 마르크스 그리고 엥겔스가 함께 쓴 <공산당 선언>에서 제시되는 자본주의의 모순에 대한 대안이다.1)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생산과정에서 노동의 대상이나 도구를 뜻하는 생산수단을 노동자가 소유하지 못한 채, 생산수단을 소유한 소수의 자본가에게 착취당한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는 3가지 형태의 노동소외를 겪게 된다. 노동자의 생산물이 자신에게 귀속되지 않기에 생산물로부터, 기계적으로 기능해야 하는 생산과정으로부터, 그리고 인간과 인간 사이 또는 인간 본성으로부터 소외가 나타나 문제가 발생한다.5) 자본주의에서 핵심인 자본은 사실 노동이 있어야 생산되지만, 자본이 그 노동을 소외시키며 착취하기 때문이다. 이에 공산주의는 인간의 유적 본질2)을 실현하고 소외를 극복할 것을 주장한다.6) <공산당 선언>에서 모든 노동자가 단결하여 혁명을 통해 생산수단을 공동으로 소유하는 공산주의 사회를 달성해야 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계급3)의 지배 수단이 되는 ‘국가’가 없고 생산수단을 사적으로 가지며 일어나는 모순을 제거한다. 사실 공산주의는 독재의 수단이거나, 자유를 막는 공포스러운 존재가 아닌 것이다. 오히려 자본주의 사회에서 발생하는 부의 불균형, 인간의 대상화, 시장 숭배와 같은 여러 폐해를 개선하고자 탄생한 대안이다. 마르크스는 공산주의를 통해 모든 착취와 불평등을 멸(滅)하기를 바랐다.7) 그러나 여전히 자본주의가 존재하는 현대 사회에서 공산주의는 민주주의의 반대로 오인되며4) 공산주의 국가, 정확히는 사회주의 국가5)를 향해 온갖 비난을 쏟아내기 일쑤다. 특히, 한국에서는 가깝고도 먼 북한을 이야기할 때 더욱이 그런 관념들을 표출하는 편이다.
- 역사적 출발
1) 세계 진영 대결 속 한반도
한국의 반공산주의, 반공주의 이념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아주 깊고 오랫동안 뿌리박힌 사회적 역사적 배경을 기반으로 한다. 그 출발인 남북한 분단은 ‘미소 냉전’, 미국과 소련 간의 진영 경쟁이라는 역사 속에서 탄생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미국과 소련의 관계인 냉전(Cold War)은 권력 정치적 힘의 대결이지만 실제 총과 무기를 가지고 싸우는 열전과는 구별되는 형태의 모습이었다.8) 따라서 이데올로기적인 측면이 더 부각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제2차 세계대전 종전과 함께 강대국에 의해 동아시아 국가의 영토 분할이 카이로·얄타·포츠담 회담을 거쳐 결정되었다. 베트남, 독일, 예멘 등과 한반도까지 자본주의, 사회주의 진영 대결6)의 결과로써 멀쩡히 하나였던 국가들이 두 동강 나게 된 것이다. 한반도의 경우는 미국의 영향력 팽창에 대비하려는 소련, 소련의 적화(赤化) 확대를 저지하기 위한 미국이라는 각각 다른 목표를 가진 두 국가의 신탁통치로 분단이 시작되었다.9) 이후 1948년 남북한 각각에서 두 개 정부수립이 출범하여 기존의 물리적인 영토 분단이 정부·체제·제도의 분단으로까지 이어졌다.
1950년 6월 25일에는 모두 알고 있는 것처럼 한국전쟁7)이 발발하였다. 한국전쟁은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되었지만, 한반도에 깔린 내부 갈등과 냉전이 준 영향과 함께 이해해야 한다. 미국의 세계 전략이 크게 작용했기에 내전의 성격을 띤 국제전으로 해석하기도 한다.10) 실제로, 한국전쟁은 세계적인 규모의 제한전쟁(limited war)8)으로 이어졌다. 먼저, 당시 미국의 트루먼 행정부는 이 전쟁을 단순한 한반도 내부의 전쟁이 아닌 세계대전의 차원으로 이해했다. 일례로 1차 블레어하우스 회의에서 “한국의 사태를 좌시하면 대만이나 일본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와 서유럽, 특히 독일에서 미국의 위신은 현저하게 손상될 것”이라고 언급하였다.11) 이는 한반도를 이데올로기적 전장으로 규정한 것이다. 실제로, 당시 두 국가는 서로를 경계하며 각자의 세력을 확대하는 길을 꾀하고 있었기에 한반도의 전쟁은 단순한 남과 북 충돌,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소련에게도 한반도는 전략적인 공간이었고, 미국과 관계가 악화하자 한반도 북부만이라도 공산화 체제를 공고히 구축하려 했다.12) 그러나 당시 지도자 스탈린에게 군사력이 월등한 미국과의 충돌은 두려움의 대상이었기에 직접 개입하는 대신 중국의 참전을 유도하는 방식을 택했다.13)
미국은 한국전쟁으로 소련의 차후 행동을 억제하고 소련을 비롯한 공산권에 대한 예방 전쟁적 차원의 이중적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며 개입했다.14) 1953년 판문점에서 정전 협상에 합의한 후, 미국은 공산주의 진영의 군사적 공격에 대비하고 위협으로부터 보호하겠다는 등의 이유로 남한 영토에 미군을 주둔시켰다. 현재까지도 한국 땅에 ‘안보’라는 명목하에 미군의 주둔이 이어지고 있으며, 미국은 ‘동맹’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이 대부분의 방위비를 부담하게 한다. 합동군사훈련 진행에는 북한의 반발이 이어지지만 굴하지 않는다.15) 더불어 한국은 휴전 국가로서 전시작전통제권을 한미연합군사령관9)이 한미 대통령의 승인을 받아 행사하게 되어 있다.16) 결국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지금까지 미국의 영향 아래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두 국가론을 선언한 북한에서는 대화를 위해 군사훈련 중단을 요구하고 있고, 미국은 한국의 안보보다는 대중국 견제라는 목적이 훨씬 확대되었는데도 말이다.
2) 이승만 정부와 반공 이념의 출발
초대 대통령이었던 이승만은 10년이 넘는 집권 기간 동안 반공 이념을 정책적 명시하여 통치 도구로 이용했다. 그 기간 동안 사람들의 머릿속에 자연스레 스며들 수밖에 없었다. 이승만은 자타가 공인하는 철저한 반공주의자로, 공산주의를 전염병으로 간주해 공산주의와의 타협이나 공존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이승만은 해방 이후 통일국가를 꿈꾸던 이들의 비판을 뒤로 한 채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주장하였고 한국전쟁 이전부터 북진통일 정책을 언급하고 추진할 정도였다.17) 그의 그런 신념은 한국전쟁 당시, 그리고 종전 협상 때까지도 지속되어 ‘반공 통일전선’ 조직과 ‘북진통일론’ 등을 계속해서 주장했다.18) 그의 반공주의적 태도는 임기 내내 지속되며 북한과의 대화와 한반도의 평화 정착에도 악영향을 미쳤고, ‘반공’을 민중에 대한 권위주의적인 폭력 기제로 변질시키거나 권력 독점을 위해 정적 제거 및 억압의 수단으로 사용하였다.19)
이승만 정권의 반공 이데올로기에서 중요한 부분이었던 공산주의자에 대한 이미지는 여순사건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더욱 구체화하고 강화하였다. 당시 제주도에서 실직난, 흉년 등 여러 사회문제가 겹친 상황에서 3·1절 기념 제주도대회에 참가했던 이들에게 경찰이 발포하는 사건이 일자, 민심이 더욱 악화되며 대규모 민·관 총파업이 벌어졌고 이를 남로당10) 제주도당에서 주도하였기 때문에 국가는 매우 강경하게 진압하며 수많은 주민이 학살됐던 제주4·3사건이 벌어지고 있었다.20) 여수·순천 10·19사건은 제주4·3사건을 진압하라는 국가의 명령을 국군 제14연대 일부 군인들이 거부하고 투쟁하며 시작됐다.21) 이 사건에서도 남로당의 주도가 두드러졌기 때문에 국가에서는 공산주의자를 맞서서 전멸시켜야 하는 타자로서 위치시켜 공격했다. 당시 신문보도는 정부 발표에 의존하고 있었기에 전남 여수에서 14연대가 반란을 일으켜 순천을 점령하고 점차 북진하고 있다거나, 14연대 반란은 극우와 극좌세력의 합작품이라거나, 반란 세력이 살인과 방화를 일삼고 있다는 등 당시 국무총리의 편향된 시각의 기자회견 내용을 그대로 받아 보도했다. 정부는 여순사건을 소련 제국주의의 음모 아래에서 공산주의자들이 일으킨 민족 분열의 반동으로 파악했고, 신문들은 이러한 정부의 의도와 오류를 그대로 반영할 수밖에 없었다.22) 정부의 의도와 신문 보도를 거치며 여순사건은 ‘빨갱이’라고 호명되었고 단순한 반공 세력을 넘어 ‘제거해야 할 적’으로 취급받았다. 정부는 ‘빨갱이’ 세력을 짐승, 비인간, 악마 등으로 간주하면서 불법적인 계엄령과 국가 폭력을 단행했다.
이 시기를 거쳐 공산주의는 반국가 이데올로기라는 틀로 자리 잡았고 나아가 민족을 구분하는 기준이 되었다. 이승만 정권에게 여순사건은 반공 민족을 탄생시키는 주요한 계기였던 것이다.23) 더불어 반공교육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반공 이념을 감정적으로 확산·내면화시켰다. 적개심과 증오, 공포를 기반으로 하는 배제 교육을 진행했고, 소설과 영화를 활용하여 ‘빨갱이’나 ‘북한 괴뢰군’ 등을 등장시키며 이를 부정적으로 형상화하기도 했다. 반공 이데올로기는 단순히 국가 생활이나 사회 생활에서만 사용된 것이 아니라 개인 생활을 다룬 내용까지 침투해 결합하였기 때문에 개개인의 감정과 이념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24) 이후 언급할 국가보안법 제정과 함께 한국에서 ‘반공’은 시대정신, 나아가는 국가를 대표하는 이념으로 자리하게 되었다.
- 반공 이데올로기 사례
1) 반공 이데올로기의 강화
국가 폭력의 과정에서 제정된 국가보안법은 남한 땅을 모두 반공 체제로 물들이기 시작했다. ‘국가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반국가 활동을 규제’하겠다며 만든 이 법은 모호한 정의와 목적성을 무기로 반대 세력을 제거하는 데 사용되었다. ‘반국가 활동’이라는 이유로 구속된 사람이 첫해만 11만 명이 넘었고 당시 20세 이상 인구의 15%나 해당하는 수였다.25) 이후에도 멈추지 않고 정부는 경찰 조직과 관료조직, 자본가 계급을 장악해 사회 각 영역에서 ‘빨갱이’ 축출을 이어 나갔다.26) 반공이라는 이름으로, 부정한 권력을 이어나기 위한 잔혹한 검열 도구로 이용했던 것이다.
이승만 정권이 4·19 혁명으로 하야한 후,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박정희 정부는 ‘반공을 국시(國是)의 제일의로 삼고 반공 태세를 재정비 강화’11)해 국민에게 적극적으로 반공 이데올로기를 주입하는 데 집중했다. 전국 곳곳의 건물 벽면에는 ‘멸공(滅共)’이라는 두 글자가 붉게 새겨졌고 이때부터 공산주의는 단순한 반대의 대상을 넘어 박멸의 대상으로 자리하게 되었다. 정규 교육과정에서 ‘반공도덕’ 과목을 배웠고 반공을 주제로 글짓기대회, 웅변대회, 사생대회 등이 일상적으로 개최됐다.27) 이렇게 특정 세력을 공격하며 유신독재를 정당화했고 정권에게 충성할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정부에 반하는 사람들은 ‘공산주의자’라는 이름표를 붙여 탄압했다. 철저한 의도하에 주입된 ‘공산주의는 악마’라는 이미지는 아이들에게 뿌리 깊은 흔적을 남겼고 그 아이들은 우리 사회의 어른으로 성장했다. 이들이 중심이 된 우리 사회의 기저에는 해당 이데올로기가 그림자처럼 떨어지지 못한 채로 남아있다. 그리고 현재까지 공산주의와 사회주의가 무엇인지도 알지 못한 채, 답습한 시각이 그대로 고착화된 상태이다.
2) 반공 이념의 일상화
과거 공산주의자를 지칭하고 배제의 대상을 명명했던 ‘빨갱이’라는 멸칭은 오늘날 누구에나, 아무렇지 않게 쓰이는 말이 됐다. 각종 커뮤니티뿐만 아니라, 인터넷에 검색하면 정확히 누군가를 지칭하는지도 알 수 없지만 혐오를 담은 것을 분명하게 호명되고 있다. 우리 학교의 온라인 커뮤니티에 검색해도 비슷한 결과이다.12) 보수당을 언급하기도, 노동조합이나 각종 사회운동을 조롱하기도, 중국인들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심지어는 여성의 권리에 대해 이야기할 때나 동성애자 등 사회적 소수자를 언급하며 혐오 표현으로도 사용된다. 상대를 향해 증오와 적대를 표현할 때 통용되는 표현으로 자리한 듯하다. 관련 내용 연구를 살펴보면, 역시 ‘빨갱이가 정치 이념적으로 적대적인 타자를 혐오, 비하하는 표현에서 다른 가치를 지닌 타자를 공격하는 일반적, 일반화된 혐오 표현으로 진화하는 양상이 나타난다’라고 언급하고 있다.28) 오늘날 ‘빨갱이’는 이념화 시기를 지나 공격의 말로 변화했다.
“공산당이냐?”라는 말도 살면서 한 번쯤은 듣게 되는데, 이는 주로 무언가를 통제·분배하려는 대상에게 조롱의 의미로 사용된다. 색깔론을 사용할 때 정치권에서도 꾸준히 나오는 말 중 하나이다. 지난 8월 여당의 주도로 방송 3법과 노란봉투법이 의결되자, 야당에서는 전체회의 중 “공산당이냐”라고 소리치는 일이 있었다.29) 일상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공산당’이라는 호칭을 비난의 맥락에서 사용하고 있다. 최근에는 ‘공산당 OUT’이라는 문구와 함께 중국에 대한 혐오를 표출하는 것도 자주 보게 된다. 그리고 또 다른 공산주의 국가13)인 북한을 향해서는 ’북괴’라고 지칭한다. 해당 호칭은 ‘북쪽의 괴뢰국가나 정부’라는 뜻으로, 이승만 정권에서 그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며 부르던 호칭이다. 남북한은 서로의 공식 명칭을 ‘남한’과 ‘북한’으로 부르자고 합의했음에도 여전하다. 과거 국방백서에는 ‘북한을 주적’으로 명시했었고14) 휴전 국가로서 징병제를 시행하고 있는 국가이기에 군대에서 해당 이념이 확산해 북한을 ‘괴뢰국’으로, ‘주적’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리고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그런 생각이 대부분인 듯하다. 공식적으로 합의한 명칭을 두고 사용하는 해당 표현은 혐오 표현에 불과하다. 과거 한동안은 남북한이 서로에게 적이었을지 몰라도 현재는 대화와 상생의 상대이며, 한반도의 장기적 평화공존을 위하여 함께 협력해 나가야 한다. 타의에 의해 쪼개진 둘은 긴 시간 동안 불필요한 적대관계를 유지해 왔다. 북한은 오래도록 쓰던 남조선이라는 표현 대신 대한민국이라는 정식 국가명을 이야기하는30) 현재에 ‘북괴’는 시대를 역행하는 듯하다.
- 반공의 현주소
일상화된 반공이념은 최근 들어 더욱 심화되는 양상을 띠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멸공 챌린지가 이어지는가 하면, 멸공이 애국이라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밑도 끝도 없는 중국인을 향한 혐오도 끊이지 않는다. 중국 단체 관광객에 대한 한시 비자 면제가 시행되자, 정치인이 나서서 범죄율을 운운하고 중국 혐오 시위 참가자는 이들이 부정선거를 일으킬 것이라 주장했다. 또 최근 주가가 오르는 건 중국 불법 자본 때문이라는 음모론까지 제기하기도 했다. 이렇게 근거 없는 주장들은 사실과 다르고 전부 날조를 기반으로 한 가짜 뉴스에 불과하다. 심지어 특정 커뮤니티에는 북한이 남침할 것이라 주장하고 더 이상 자유 대한민국은 없다며 겁주는 말을 한다. 극우 보수 집회에도 비슷한 선전 문구가 가득하다. 이렇듯 극우화와 더불어 전개되는 오늘의 반공이념은 심각한 수준이다. 어느 것 하나 사실을 기반으로 하지 않는다. 의견이 다른 이를 공격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며, 이들이 목이 터져라 외치는 자유민주주의에 오히려 반하는 행동이다. 민주주의의 이념은 자유와 평등, 인간 존엄성을 실현하는 데 있기에 민주주의 국가에 살아가며 틀렸다고 생각하는 사상을 박멸할 수 없다. 과거 자신과 다른 의견을 ‘틀렸다’고 간주하고 멋대로 없애왔던 역사를 반성하고 벗어나야 한다. 이제는 그저 혐오일 뿐이다.
레드 콤플렉스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는가? 공산주의에 대한 극도의 공포심을 가지는 현상을 뜻한다. 이 단어는 한국 사회에 아주 오랜 세월 혐오를 학습 받은 흔적이 사라지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현재의 근거 없는 공포는 말 그대로 ‘콤플렉스’이며, 우리 사회에 박힌 잘못된 증오 정서이다. 정치적으로 이용된 해당 이념은 얼마나 많은 희생자를 낳았는가. 그런데도 또다시 누군가를 차별하고 배제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 우리 사회를 잠식하고 공격하러 오는 그 무서운 이데올로기는 공산주의가 아니라 부당한 권력이 주입해 온 올바르지 못한 관념이다. 우리가 이들을 등한시하는 동안 중국은 첨단기술에 눈부신 발전을 이룩했고, 북한은 통일을 지우고 두 개의 국가임을 법에 명시하겠다고 예고했다. 우리는 얼마나 오랫동안 진실을 보지 못한 채 살아왔을까.
- 오해와 진실 사이에 선 당신
지금까지 한국 사회 아래에 깔려 있는 ‘반공 이데올로기’의 진실에 대해 알아보았다. 그 진실은 누군가 권력을 위해 이용했던 도구가 80년도 넘는 시간 동안 우리의 머릿속 깊숙이 지배해 왔다는 것이다. 생산수단을 공동으로 소유하여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하자는 공산주의는 민주주의의 반대말도, 우리의 자유를 억압할 공포에 대상도 아니다. 진실이 아닌 것을 가지고 타인을 공격하는 인터넷 속 말들은 절대 비판이 될 수 없다.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아직까지 과거의 공포에 붙잡혀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 모든 오해를 뒤로 하고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공산주의가 무엇인지 알았다면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반공’은 우리 사회에 잔존하는 낡은 프레임일 뿐이다. 서로 다른 가치를 지향하며 살아가고 있을 뿐이기에 좌우를 갈라 정치 성향에 관해 묻는다면, 어느 쪽이든 대답할 수 있다. 이는 잡혀갈 만하지도 않다. 헌법에 민주주의가 명시된 국가인 한국에서 모두가 정치적 권리를 가지고 있다. 타인의 존엄성을 해하지 않는다면 정치뿐만 아니라, 현대사회 모든 곳에서 다양성은 존중받아 마땅하다. 세계는 인간으로서 모두가 권리를 가지도록 싸워왔고 최대한 많은 이들에게 평등을 보장하도록 노력하고 있다. 이런 세상을 누리며 상대에게 상처 입히는 말을 내뱉으며 공격할 것인가? ‘반공’이라는 프레임 속에 갇혀 두려움에 떨고 있을 것인가? 그 프레임을 깨고 진실과 마주하길 바란다.
각주
1) 공산주의는 마르크스 그리고 엥겔스가 처음 제시한 개념은 아니나, 마르크스주의 정립을 통해 공산주의 체제의 이념을 확립하였고, 현재의 공산주의의 바탕이 되었기에 마르크스의 철학을 기준으로 설명한다.
2) 유적 본질이란 인간이 개별적 존재가 아닌 노동을 통해 본질을 실현하는 사회적 존재로 타고났다는 마르크스주의의 설명이다. 노동소외를 비판하며 등장하는 개념이다.
3) 마르크스는 인류의 역사를 계급투쟁으로 설명한다. 역사의 시기마다 두 계급의 갈등을 통해 발전했다고 본다. 해당 시기는 근대로, 부르주아(자본가)와 프롤레타리아(노동자)의 투쟁 단계이다.
4) 민주주의는 주권을 모든 국민에게 부여하는 정치체제이고, 공산주의는 사회적 소유를 지향하는 경제체제이기에 둘을 대립하여 비교하는 건 불가능하다.
5) 사회주의의 높은 단계가 공산주의이다. 이론적으로는 사회주의 시기에는 국가가 있을 수 있으나, 이 과도기를 거쳐 국가가 사라지고 생산수단을 공동으로 소유하는 공산사회가 등장한다.
6) 관점에 따라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사회주의) 간 대결로 인식하기도 하나, 본 글에서는 반공주의적 맥락에 벗어난 이해를 지향하기 위해 경제체제 간 비교로 대신한다.
7) 6•25 전쟁이라는 용어가 주로 사용되지만, 해당 용어는 북한의 ‘남침’을 전쟁의 본질로 강조하여 국제 정세와 남북분단의 배경에 대한 이해를 방해할 수 있다. 따라서 내재적 접근을 지향하는 연구에서는 ‘한국전쟁’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8) 제한전쟁(limited war)이란 전쟁의 목적, 무기, 지역 등에 제한을 두고 외교교섭을 열어둔 채, 전개하는 전쟁이다.
9) 한미연합군사령관이라는 해당 직책은 미국 육군 대장이, 부사령관을 대한민국 육군 대장이 맡도록 정해져 있다. 주한미군 사령관이라고도 한다.
10) 남조선노동당을 가리킨다. 1946년에 결성되었던 공산주의 정당으로, 분단 이후 ‘북조선 공산당’이 먼저 분리되었고, 남한의 좌익 세력들이 모여 결성한 정당이 ‘남조선노동당’이다.
11) 박정희의 혁명 공약 1조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12) 동국대학교 서울캠퍼스 에브리타임 전체게시판 검색 결과 (2026.01.30. 기준, 최근 3개월 게시글 및 댓글 참고)
13) 앞서 설명한 것처럼, 마르크스주의에 따르면 ‘공산주의 국가’는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편의에 따라 해당 명칭을 사용했다.
14) 2004년도부터 해당 명칭을 삭제했다가 윤석열 정부 당시 잠시 부활했다.
참고문헌
1) 이미연, 「연일 ‘중국인 단체 관광객 무비자’ 우려 쏟는 국힘, 알고보니」, 『매일경제』, 2025.10.3., https://www.mk.co.kr/news/politics/11435780
2) 정민철의 이거 진짜예요? [@right_mind_2], 인스타그램 게시물, 2026.01.04.,
https://www.instagram.com/p/DTEki2PksbT/?utm_source=ig_web_copy_link&igsh=NTc4MTIwNjQ2YQ==
3) 최정민, 최유진, 이선욱, 「'이들은 왜 중국 국기를 찢는가?' 혐중 논란의 중심에 선 청년들」, 『BBC News 코리아』, 2025.10.28., https://www.bbc.com/korean/articles/c781n84npdgo
4) 김규찬, 「[단독]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 ‘멸공’ 문구 또 다시 등장…논란 커지자 삭제」, 『한국재난뉴스』, 2025.07.22., https://www.hj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760
5) 주디 콕스, 「마르크스의 소외론」, 김인식 역, 『마르크스21』, 3호(2009호 가을),
https://marx21.or.kr/article/71
6) 한형식, 『맑스주의 역사 강의』, 그린비, 2010.
7) 김인식, 「마르크스의 삶과 중심 사상」, 『마르크스21』, 22호(2017년 9~12월),
https://marx21.or.kr/article/266
8) 우리역사넷, 20세기의 중·후반의 세계 질서,
https://contents.history.go.kr/mobile/kc/view.do?levelId=kc_i502050&code=kc_age_50
9) 윤황, 남북분단의 고착화,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 2006.12.01.,
https://www.archives.go.kr/next/newsearch/listSubjectDescription.do?id=003318&pageFlag=&sitePage=
10) 고명섭, 「[책&생각] “한반도를 분단시킨 건 내 조국 미국이었다”」, 『한겨레』, 2023.06.09., https://www.hani.co.kr/arti/culture/book/1095225.html
11) 도진순, 「한국전쟁의 기본개념으로서 제한전(limited war)의 성립과 분화」, 한국사연구회, 『한국사연구』 제125호, 2004.6.
12) 송종환, 「한국전쟁에 대한 소련의 전략적 목표에 관한 연구」, 한국국제정치학회, 『국제정치논총』 제39집 제2호, 1999.12.
13) 라규환, 「스탈린의 위협인식과정을 통한 한국전쟁 연구 : 소련이 한국전쟁에 직접 참전하지 않은 이유」, 고려대학교 대학원, 석사 학위논문, 2014.
14) 위에 글.
15) 유원중, 「국군보다 수십배 비싼 미군? 트럼프의 ‘수상한’ 방위비 계산법 [취재후/미반환 미군기지]④」, 『KBS 뉴스』, 2025.07.10.,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300675
16) 대한민국 국방부, 전시 작전통제권 전환, https://www.mnd.go.kr/mbshome/mbs/mnd/subview.jsp?id=mnd_010703040000
17) 홍용표, 「현실주의 시각에서 본 이승만의 반공노선」, 『세계정치』 8, 제28집 2호, 2007년 가을・겨울.
18) 김연철, 『70년의 대화』, 창비, 2018.
19) 김성보, 「전후 한국 반공주의의 균열과 전환」, 역사실학회, 『역사와 실학』 제62호, 2017.4.
20) 박찬식, 제주4·3사건 (濟州四三事件), 한국문화민족대백과사전,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51439
21) 박동찬, 여수·순천 10·19사건 (麗水·順天 10·19事件), 한국문화민족대백과사전,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6410
22) 김득중, 「[기획특집] 여순사건과 이승만정권의 반공이데올로기 공세」, 역사학연구소, 『역사연구』 제14호, 2004.12.
23) 위에 글.
24) 박길희, 「이데올로기와 국가폭력 그리고 담론의 탄생 - '열녀'와 '빨갱이' 담론 비교 연구 -」, 국어문학회, 『국어문학』 제88권 제88호, 2025.3.
25)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국가보안법 제정 배경], 2004.09.08.,
https://www.korea.kr/briefing/policyBriefingView.do?newsId=65062421
26) 박길희, 「이데올로기와 국가폭력 그리고 담론의 탄생 - '열녀'와 '빨갱이' 담론 비교 연구 -」, 국어문학회, 『국어문학』 제88권 제88호, 2025.3.
27) 박남일, 「[특집 ①] 분단 반공체제와 그 이데올로기」, 『사회주의자』, 2021.10.28.,
http://socialist.kr/special-issue-1-the-systems-and-ideologies-of-division-and-anti-communism/
28) 김종우, 「'빨갱이' 담론의 적대성 변화 : 국내 주요 일간지 텍스트 분석을 중심으로,」 건국대학교 인문학연구원, 『통일인문학』 제86집, 2021.6.
29) 허진무, 박하얀, 「[속보]“공산당이냐” 국힘 고성 속…‘방송 3법’ 법사위 통과」, 『경향신문』, 2025.08.01.,
30) 정욱식, 「북한, 이제 ’조선’이라고 부르면 어떨까요? [정욱식 칼럼]」, 『한겨레』, 2024.04.22., https://www.hani.co.kr/arti/politics/defense/1137528.html
김문주, 「다시 도래한 '빨갱이'의 시대, '빨갱이'에서 계몽을 생각한다」, 『평화뉴스』, 2025.02.19., https://www.pn.or.kr/news/articleView.html?idxno=31662
김연철, 『70년의 대화』, 창비, 2018.
박남일, 「[특집 ①] 분단 반공체제와 그 이데올로기」, 『사회주의자』, 2021.10.28., http://socialist.kr/special-issue-1-the-systems-and-ideologies-of-division-and-anti-communism/
이상원, 「“중국은 경멸 대상” 2030의 생각 [시사IN-한국리서치 공동 조사]」, 『시사IN』, 2025.11.26.,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56821
하종강, 「민주주의 흔드는 ‘레드 콤플렉스’ [하종강 칼럼]」, 『한겨레』, 2025.02.05.,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180781.html
한형식, 『맑스주의 역사 강의』, 그린비,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