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운
2025.6
저는 관심 받는 걸 너무 좋아해서 힘들어요. 속한 집단에서 가장 ‘신경 쓰이는 존재’라는 기분이 들면 말도 안 되게 행복해서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아요. 제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는 모임엔 다시 안 나가고 싶어요. 그 감정의 갭이 엄청 커요. 다른 사람들이 저를 공주처럼 대해 주면 너무 행복해요.
예쁨받는 기분을 참 좋아했다.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게 아무래도 맞는 듯했다. 트루먼 쇼가 정말 나에게 일어나고 있는 게 아닌지 몇 번이고 의심했다. 무대에서 빛나는 연예인을 응원하면서도 시기 질투가 일었다. 빛나는 사람을 무대 아래에서 응원하는 기분이 싫었다. 같은 인간인데도 내가 저 사람만큼 찬사받을 수 없다는 걸 인정할 수 없었다. 제법 정상적으로 보이진 않는 생각이다. 그러나 웃기게도 이 말을 꺼내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아니, 이런 생각을 가졌다고 인지하는 것조차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상담을 시작한 이후 뒤적거리던 심리학책에서 비슷한 사례 챕터의 주제는 다름 아닌 나르시시즘, 자기애성 인격장애였다. 인격이란 일상생활에서 드러나는 개인의 정서적, 행동적 특징의 총체다. 그러나 이러한 인격적 특성 때문에 지속적으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사회적, 직업적 기능과 대인관계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경우 이를 인격장애라 명명한다.
최근 언론에서도 종종 ‘자기애’나 ‘자기애성 인격장애’라는 표현을 마주할 수 있다. ‘갑질’이나 ‘분노조절 장애’와 같은 사건들이 빈번하게 언급되곤 한다. 어릴 때부터 재벌 2세나 3세로 자라 멋대로 살며 주변 사람들을 함부로 대하다 크게 사고를 치게 되는 식의 사례, 또는 자존심에 금이 갔다는 이유 하나로 분노를 주체하지 못해 타인에게 큰 피해를 주는 사건들이 보도된다. 이렇게 자기애성 인격장애는 본인뿐만 아니라 타인에게도 손해를 끼친다. 그럼에도 나는 이들과 비슷한 생각들 때문에 오랫동안 스스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힘들어했다. 그러나 과도한 경쟁만을 요구하는 현대 사회에서 어쩌면 나와 유사한 고민을, 불안을 가진 사람이 적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이런 그들과 나를 위해 이 문제의 근원을, 무의식 속의 정체를 파헤쳐 보고자 한다.
모두가 귀한 집 자식인 시대에서
이런 나르시시즘적인 성격 혹은 자기애성 인격장애 환자는 최근 들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1950년대 미국 베이비붐 세대의 아이들은 풍요로운 환경에서 자신들을 무조건 떠받드는 부모 밑에서 자랐다. 이들은 타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고 뭐든 자기가 먼저 가져야 하는 특성을 보였고, 이 세대를 미국의 정신분석학자들은 “Gimme first” 세대라 불렀다. 그런데 이들이 성년이 된 1970년대 이후 미국에서는 자기애성 인격장애 환자가 폭증했다.
1960년까지 출산율이 6.0에 달했던 우리나라도 산아제한 정책을 내놓기 시작했다. 1960년대 정부가 제시한 적정 자녀 수는 3명, 70년대에는 2명, 80년대에는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라는 표어를 걸고 ‘하나 낳기 운동’을 벌였다. 이 이후로 집에서 공주, 왕자처럼 자란 사람들이 많아지며 자기애성 인격장애 환자 또한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1가구 1자녀 정책을 시행하고 있는 중국에서도 그 영향으로 대부분의 청년이 자기중심적인 성향을 띄어 소위 ‘소황제’들이 많이 생겨났다. 세상이 언제나 자기중심으로 돌아간다고 믿는 일부 상류층 자녀들의 일탈과 같은 행동 또한 이런 자기애적인 병이라는 관점에서 해석해 볼 수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자기중심적이며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이 매우 부족하다는 것이다. 좌절에 취약해서 작은 실패도 잘 견디지 못하고 쉽게 우울해진다.
Narcissistic, my god I love it
‘자기애’라는 말의 어원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나르키소스라는 인물에서부터 비롯된다. 나르키소스는 강의 신인 케피소스와 요정인 리리오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로, 너무나 아름다운 외모를 가져 일찍부터 많은 사람과 요정에게 구애받는다. 하지만 나르키소스는 자신을 따르고 연모하는 이들에게 항상 냉담했고 아무런 관심조차 주지 않았다. 이에 상처받은 한 요정은 실연의 아픔을 겪으며 그렇다면 나르키소스 역시 그 누구도 사랑하지 못하도록 해 달라고 저주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르키소스는 사냥을 나갔다가 물을 마시러 호숫가에 가게 된다. 그러다 우연히 호수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고 사랑에 빠진다. 그는 물속에 비친 아름다운 자기 모습에 반해 그 자리를 떠날 수 없었고 그는 점점 말라가다 죽음에 이른다. 이후 호숫가에는 한 송이 꽃이 피었고 그 꽃이 바로 수선화(나르키소스)였다.
카라바조가 그린 <나르키소스>다. 앞서 말한 신화를 그림으로 표현했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그림 속 소년은 어둠에 갇혀 오직 물에 비친 자신만을 응시하고 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그의 자세다. 두 팔을 땅에 짚고 물을 향해 둥글게 몸을 말고 있는 모습은 마치 자기 자신 안에 갇힌 것처럼 보인다. 오직 호수에 비친 상만이 그의 우주인 것이다. 이 신화를 빌려 심리학자들은 ‘나르시시즘’을 자아도취, 자기애라는 용어로 사용하고 있다.
예술로 드러난 왜곡된 자기애
이러한 나르시시즘은 예술가들의 작품에서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이들은 넘치는 자기애를 자화상으로 남기거나 자신을 다른 대상에 비유하는 등의 방식으로 표현하곤 한다.
위 작품은 오스트리아의 표현주의 화가 에곤 실레의 자화상이다. 스치듯 자주 접했겠지만, 이 자화상 뒤엔 에곤 실레의 안타깝고도 묘한 사연이 숨어 있다. 오스트리아 출신 화가인 에곤 실레는 위 작품들처럼 자화상을 많이 그림 화가로 유명하다. 그는 죽기 전까지 200점이 넘는 자화상을 남겼을 정도로 자화상에 집착했다. 그는 왜 이렇게까지 자화상에 집착했을까.
“혜안을 가진 열 명을 포함한 천 명의 학자가 있습니다. 그들 중에는 한 명의 천재, 한 명의 발명자, 한 명의 창조자가 있습니다. 그리고 지식을 가진 사람은 몇천 명이나 됩니다. 이 세상에는 셀 수 없이 많은 훌륭한 사람과 앞으로 훌륭하게 될 사람들이 있겠지요. 그렇지만 나는 나의 훌륭함이 마음에 듭니다.”
실제로 에곤 실레가 스무 살에 같은 화가이자 친구인 페슈카에게 쓴 편지의 한 구절이다. 이 구절에서는 그의 자기애적 성향이 잘 드러나는데, 결국 그가 자화상에 집착하게 된 배경에는 자기애적 성향이 존재했던 것이다.
이렇듯 자기애성 인격장애는 유독 예술가들에게 많다고 알려져 있다. 그처럼 자기 자신을 모델 삼아 작품 활동을 하는 예술가 중 이런 성향을 띄는 사람이 많다.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 폴 고갱조차 자기애성 성격장애를 앓았던 것으로 사료된다.
고갱은 자신을 ‘예수’라고 생각했다는 것을 아는가? 그는 자신의 그림을 인정해 주지 않는 사람과 자신을 인정한 사람들이 공존하는 세상에서 스스로 예술을 위해 숭고한 희생을 하는 중이라고 생각했다. 마치 그리스도처럼 말이다. 모든 사람이 그가 부인과 네 명의 자녀를 버렸다고 생각했지만, 그는 가족까지 잃어가며 세상을 위해 희생하는 중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모순되게도 고갱은 가족을 버리고 타히티섬으로 떠나 자신이 원할 때마다 소녀들을 곁에 두고 찾았다. 이렇게 계속 곁에 있을 누군가를 두고자 했던 고갱은 말년에 쓸쓸하게 사망했다. 대인관계에 진정성도 없었을뿐더러 자신의 꿈을 이루려고 가족을 저버린 사람의 곁에 남아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빛의 화가로 알려진 렘브란트 또한 자화상에 집착한 화가이다. 그는 평생 80점이 넘는 자화상을 남겼다. 그의 작품에는 젊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의 분위기부터, 늙고 파산해 아무도 남지 않은 듯한 고독한 모습의 분위기까지 다양한 그의 얼굴이 담겨있다.
현대 사회에서 나르시시즘이란
라쉬1)에 따르면 결국 현대의 나르시시즘이 전통적인 ‘자기애’와는 다른 경향을 띤다. 전통적인 ‘자기애’란 자신을 사랑하고 긍정하는 자연스러운 감정이지만 현대의 나르시시즘은 자신의 가치를 외부의 ‘인정’에 의존한다. 그러므로 당연하게도 외부, 그러니까 타인의 평가에 일희일비하며 항상 불안과 공허함을 안고 살게 되는 것이다. SNS의 발달 또한 이러한 현상을 만들어내는 것에 일조하고 있는 것이고 말이다.
현대 사회는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변하고 있다. 그러나 버튼 하나만 누르면 수많은 사람의 수많은 일상과 변화를 확인할 수 있고, 마치 공허한 신기루처럼도 느껴진다. 그저 발 닿는 생활 반경 내의 사람들과 교류하고 비교 대상은 그들뿐이던 시대와 다르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그러니까 발 닿지 않는 곳의 수많은 사람이 비교군이 되고 내집단처럼 느껴질 수 있다는 말이다. 우리 사회는 이를 이용해 개인의 기대를 말도 안 되게 부풀린다. 가장 아름답고, 가장 비싸고, 가장 닮고 싶은 모습을 꾸준히 광고와 미디어에 노출하고, 사람들은 점점 본인의 현실을 왜곡하여 인지하거나 미디어 속의 모습과 현실의 차이를 자각하고 과도한 기대와 실망을 겪는다. 이러한 기대는 점점 더 비현실적으로 되고 있으며 누구나 스몰 럭셔리를 소비하고, 이 정도 성형은 ‘시술’이니 당연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수많은 압박 속에 개인을 구겨 넣게 만든다.
자기애성 인격장애
이렇게 왜곡된 ‘자기애’는 자기애성 인격장애로도 이어질 수 있다. 자기애성 성격장애의 사전적 정의는, 자기도취와 자기중심적 성격이 굳어져서 부적응적인 상태가 지속되는 상태, 또는 자신이 타인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우월하다는 느낌 때문에 일상생활에 적응을 못 하는 상태, 그리고 과도하게 자신이 중요하다는 느낌이나 존경에 대한 과도한 요구라든지 타인에 대한 공감 결여가 장기간에 걸쳐 나타나는 것이 특징인 인격장애다.
2025. 8.
너무 쓰레기 같아서 말 못 하겠는데……
사실 저는 욕심이 너무 많고 이기적인 사람인 것 같아요. 엄마가 저보고 대학 가더니 왜 그렇게 다른 사람 같아졌냐고 그러더라고요.
2025. 10.
대학교 초반엔 하나만 해도 엄청나게 잘한 것 같고 뿌듯했는데, 지금은 20가지를 넘게 해도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 같아요. 성취를 이뤄서 행복한 것도 잠시고, 계속해서 뒤처진다는 불안감을 느껴요.
2025. 11.
선생님, 월초가 전혀 기억이 안 나요. 너무 다급하게 지나가는 하루들을 감당하기가 버거워서 울었어요.
왜 그랬을까. 왜 그렇게 끝없이 인정을 원했을까.
누구나 잘했을 땐 주변 사람들에게 칭찬받고 싶어 한다. 열심히 노력하고 그것이 결실을 이뤘다면 그에 대해 칭찬과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자기애성 성격장애 환자들은 칭찬받고 싶다는 욕망이 과하다 못해 넘쳐난다는 것이 문제다. 주변 모든 사람이 열과 성을 다해 칭찬을 퍼부어야만 겨우 직성이 풀리는 것이다. 바라던 칭찬이 돌아오지 않을 때는 심한 모욕감을 느끼고 분노한다. 모든 사람이 자신에게 긍정적인 피드백을 줘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경향의 자기애성 인격장애 환자는 무한한 성공욕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의 존경과 관심을 끌려고만 하지, 그들과 잘 공감하진 못한다. 이들은 출세나 성공을 위해서 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모든 것을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고 자기 능력에 대해 비현실적인 자신감을 가진다. 또한 사회적으로 성공하거나 유명한 사람하고만 어울리려 한다. 사소한 비판도 참지 못하고 화를 잘 낸다. 그렇기에 이들은 잘나갈 땐 괜찮지만 작은 실패만 겪어도 극단적으로 우울해지는 것이다. 이런 유형의 자기애성 성격장애 환자를 밀론은 ‘엘리트형 나르시시스트’라고 정의한다. 사회적 성공을 갈망하고 사람들의 칭송에 중독된 사람이다.
이러한 자기애성 성격장애를 심리학에서는 NPD(Narcissistic Personality Disorder)라는 약자로 부른다. 미국 정신질환 협회의 DSM에 정의된 자기애성 성격장애 측정 방법을 첨부하니 간단하게 자신을 점검해 보았으면 한다.
① 자신의 중요성에 대한 과대한 느낌이 있는가?
② 무한한 성공, 권력, 아름다움, 이상적인 사랑과 같은 공상에 몰두하고 있는가?
③ 자신은 특별하고 특이해서 특별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믿는가?
④ 주변 사람들로부터 과도한 칭찬이나 존경을 요구하는가?
⑤ 자신이 특별한 자격이나 능력이 있는 사람으로 느껴지는가?
⑥ 대체로 대인관계가 착취적인가?
⑦ 타인에 대한 감정이입이 결여되어 있는가?
⑧ 다른 사람을 자주 부러워하거나, 다른 사람이 자신을 시기하고 있다고 믿는가?
⑨ 오만하고 건방진 행동이나 태도를 보이는가?
아래 9가지 기준 중 5가지 이상의 영역에 해당하면 자기애성 성격장애 가능성을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위 이야기들이 왜인지 익숙하지 않은가. 끝없이 경쟁하고, 끝없이 남과 비교당해야만 하는 한국 사회에서 수많은 사람이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을 것이다. 당장 유튜브나 인스타그램만 검색해도 비슷한 불안을 안고 사는 사람들이 꽤 많다는 걸 알 수 있다.
바쁜 경쟁 사회 속에서 자주 발생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유형으로 ‘보상형 나르시시스트’가 있다. 보상형 나르시시스트는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라 자랑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엔 엄청난 열등감과 수치심이 깔린 사람들이다. 이들은 상상의 세계로 도피함으로써 힘든 상황과 개인의 실패를 보상하고자 하는 경향이 심하게 크다. 상상 속에서 그들은 현실과 정반대로 성공해 만인의 부러움을 사고, 다른 사람들은 전부 못되고 실패한 인생을 산다. 결국 과도한 자괴감과 수치심을 보상하기 위해 비현실적인 상상에 빠져드는 것이다. 물론 잠깐의 도피가 힘든 현실을 막아줄 순 있지만, 어린 시절을 넘어 이런 방법으로 계속해서 상상 속으로 회피하다 보면 현실 감각을 잃고, 소위 ‘근거 없는 자신감’을 굳게 가져버리게 된다.
이런 유형의 나르시시즘은 자신을 고통스럽게 할 뿐만 아니라 주변인들에게까지도 손해를 끼치게 된다. 그러나 위 이야기들이 왜인지 익숙하지 않은가. 끝없이 경쟁하고, 끝없이 남과 비교당해야만 하는 한국 사회에서 수많은 사람이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을 것이다. 당장 유튜브나 인스타그램만 검색해도 비슷한 불안을 안고 사는 사람들이 꽤 많다는 걸 알 수 있다. 또한 그들만을 나무라기엔 나르시시즘적 성격이 형성되는 데에는 수많은 외부 요소가 작용한다. 성장 과정, 후천적으로 겪게 된 사회 환경 같은 것들 말이다. 마치 인정을 원하고 인정받아야 하는 사회가 만들어 낸 안타까운 결과처럼도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를 당사자가 인지했다면, 나르시시스트는 아니더라도 비슷한 불안을 겪고 있다면, 자신의 노력으로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 지금 내가 어떤 상태인지 인지하는 것부터가 큰 시작을 내디딘 것이다.
사랑해서 미워했던 것
2025. 12.
- 그래도 이제 편하게 그 이야기를 하시네요. 이기적인 것 같다는 거, 사람들이 본인을 사랑해 줬으면 한다는 거, 처음엔 정말 힘들어하면서 말을 꺼내셨잖아요.
그러게요. 잊고 있었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그렇네요.
- 정말 당연하고 뻔한 이야기지만. 자기 자신을 인정해 주고 자기가 자신을 가장 소중하게 여겨줘야 해요. 자기애가 넘친다기보다 지금 자기애를 ‘추구’하는 상태처럼 보여요. 실제로 자기애가 높진 않은 거죠.
- 타인보다 자기 자신에게 좀 더 집중해 보세요. 선택하기 전에 내가 정말 할 수 있는 것인지, 하고 싶은 것인지 한 번 더 고민해 보세요. 무엇을 할 때 행복하고 무엇을 하기 싫은지 적어 보세요. 좋아하는 것을 일상 중간에 끼워 넣고자 노력해 보세요. 온전히 할 수 없으면 적당히 타협해서라도요. 만약 오늘 하고 싶은 일이 하루 종일 잠을 자는 것이라면 3시간 정도 낮잠을 잔다거나, 마라탕을 먹고 싶지만, 살이 찔까 봐 두려우면 컵라면 하나만 먹어 주는 식으로요. 지운 씨한테는 본인이 무엇을 할 때 진짜 행복한지 아는 게 가장 중요할 것 같네요.
참 아이러니하다. 자신을 너무 사랑해서, 사랑하지 못하는 것. 자신을 너무 사랑해서, 자신을 갉아먹는 것. ‘나르시시즘’이라는, ‘자기애’라는 말은 결국 그 누구보다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Love myself’라는 단어가 순식간에 퍼졌다. 너무나 당연하고 아무렇지 않게 넘기던 말. 입에 올리긴 쉽지만, 그 무엇보다 실천하기 쉽지 않은 것. 자신을 사랑하라고 말하는 사람조차 정말 자신을 온전히 사랑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그럼에도 나르시시즘, 자기애성 성격장애를 다루고 싶었던 이유는 현대 사회에 만연한 경쟁과 이로 인한 부작용을 스스로 다시 한번 인지하고 돌아보길 바라서다. 불안은 가만히 내버려둔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분명한 근원을 짚고, 해결 방안을 찾아가야 한다.
삶의 무게추를 옮겨 보기
나는 의사도, 그 무엇도 아니지만 그저 나와 비슷한 어려움을 겪었다면, 타인에게 인정받는 삶을 살기 위해 자신은 잊고 살고 있었다면 이야기해 주고 싶다. 물론 당장은 타인의 인정이 스스로 인정해 주는 행복보다 더 달콤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먼 미래, 아니 당장 그 목표를 달성하고 달콤한 인정을 받는 순간이 끝나면, 당신은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가장 먼저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행복한 순간”을 깨달아야 한다고. 결국 문제는 삶의 중심을 타인에서 나에게로 가져오는 것에 달렸다.
좋아하는 것을 깨달았다면, 다음 단계는 이를 삶의 순간마다 의도적으로 끼워 넣는 것이다.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 하루 몇 분이라도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잠깐이라도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 아무 의미 없이 잠을 자거나 게임을 해도 좋다. 중요한 건 행동의 이유를 타인에게서 찾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온전히 자신의 판단으로, 내가 원해서 했을 때 즐거운 일들이야말로 당신에게 의미가 있다. 이러한 판단과 행동이 반복되면, 아주 조금씩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언젠가 타인의 인정 없이도 내가 나를 인정해 주는 상태, 내가 나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물론 나조차 아직 그러지 못했기 때문에 장담할 순 없지만, 결국 중요한 건 스스로 노력하고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다. 타인의 인정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계속 상기시키는 것, 내가 무엇을 할 때 기분이 나쁜지 깨닫고 그런 일이 없게끔 노력하는 것, 좋아하는 것은 더 많이 하려고 노력하는 것. 그거면 충분하다. 차갑고 삭막한 세상인 만큼 적어도 스스로한테는 좀 더 따뜻해지면 좋지 않을까.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자주 행복했으면 좋겠다.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각주
1) Christopher Kit Lasch, 미국의 역사학이자 윤리학자와 사회 비평가
참고문헌
우도 하우흐플라이슈(장혜경 역), 『가까운 사람이 자기애성 성격 장애일 때』, 심심, 2021.
유범희, 『다시 프로이트, 내 마음의 상처를 읽다』, 더숲, 2016.
김소울, 「김소울의 삶과 미술심리(44)」, 『Korea Forbes』, 2023.09.27.,
https://www.forbes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3385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