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 난 정말 **핵심**을 찌른 걸까?

현아

by 동국교지

강의실에 앉아 노트북을 켜는 순간, 우리 곁에는 보이지 않는 조력자가 이미 대기 중이다. 과제의 개요를 잡고, 복잡한 전공 서적을 요약하며, 코딩의 오류를 잡아내는 생성형 AI는 이제 대학 생활의 공기 같은 존재가 되었다. 하지만 기술의 편리가 일상이 된 풍경 뒤로 무거운 질문 하나가 따라붙는다. “우리는 AI를 이용해 ‘공부’를 하고 있는가, 아니면 그저 정답을 ‘복제’하고 있는가?” 최근 주요 대학에서 발생한 AI 부정행위 사태는 이 질문이 단순히 개인의 양심 문제를 넘어 대학 교육의 근간을 흔드는 중대한 사안임을 시사한다. AI가 내놓은 매끄러운 답변 뒤에서 정작 학생의 ‘사유’는 사라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글을 통해 AI 시대라는 거대한 변화의 한가운데 서 있는 대학교와 대학생이 되찾아야 할 공부의 본질, 더 나아가 지능을 가진 인간으로서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이제는 재고해야 할 때: 대학생의 AI 사용 실태


학술지 <네이처>에 실린 대학생의 AI 사용 실태에 관한 설문 분석에 따르면, 대학생들은 주로 텍스트 생성과 글 향상 및 편집, 대학 교재 요약/필기/퀴즈 등 공부할 때 주로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대부분의 대학생이 AI를 학교 공부를 위해 여러 가지 방면으로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AI 활용이 시험에서의 부정행위로 이어진 경우도 많다. 2025년 11월, 서울대학교에서는 교양과목 ‘통계학 실험’ 중간고사에서 몇몇 학생이 AI를 이용해 문제를 푼 정황이 포착되어 부정행위로 간주했고 해당 분반 학생들은 재시험을 치르게 된 사건이 있었다. 같은 시기 연세대학교에서도 비대면 시험을 푸는 과정에서 일부 학생이 컴퓨터 화면에 여러 프로그램을 겹쳐 띄워 문제를 푸는 데 AI를 이용한 부정행위가 확인되었다.

AI로 과제와 시험공부를 편하게 처리하려는 학생들과 이를 막으려는 교수들 사이에 치열한 공방이 펼쳐지기도 한다. AI가 쓴 글인지를 가려내기 위해 생성형 AI 탐지 서비스 ‘GPT 킬러’, ‘GPT 제로’ 등을 사용하면, 학생들은 다시 AI 판독기를 피하고자 프롬프트에 자신의 글쓰기 스타일을 학습시키는 우회 전략으로 대응하는 식이다. 위와 같은 사태는 우리나라 전국 대학을 넘어 전 세계 대학교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다. 이제는 대학 교육 현장에서 AI를 어떻게 생산적으로 수용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와 함께, 기술의 오용을 막고 공정한 평가를 담보할 수 있는 구체적인 가이드라인 및 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한 시점이다. 이에 더해 AI를 학교 공부에 활용하고 있는 대학생들도 스스로 AI 이용에 대한 윤리적 고찰을 해야 할 것이다.


아코 드루와 >> AI 사용 찐후기


다음은 다양한 전공을 공부하고 있는 우리 동국대학교 학생들이 실제로 AI를 어떻게 쓰고 있는지에 대한 간단한 인터뷰이다.


한국문학이미래다: 저는 글의 개요를 짤 때 챗지피티를 많이 활용하는 편이에요. 인공지능에 내가 정한 글의 개요에서 부족한 부분은 없는지, 보완해야 한다면 어떤 부분을 추가하는 게 좋을지 등을 물어보고 개요를 수정합니다. 그리고 학과 공부를 할 때에도 많이 이용해요. 저는 ‘국제통상학’과 ‘문예창작학’을 복수전공 중인데, 두 과목 모두에서 AI를 많이 활용합니다. 먼저 국통 과목 공부를 할 때는 Gemini에게 헷갈리는 경제 개념들을 물어보거나, 개념을 활용해서 주관식 계산 문제를 만들어달라고 해서 시험 대비를 하기도 합니다. 문창 수업에서는 소설을 쓸 때 외국인 캐릭터를 등장시키고자 한다면 그 나라의 문화나 유행어, 인기 있는 이름들을 지피티한테 물어보기도 합니다.


깜냥이러버: 저는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를 주전공으로 하고 있고, 광고홍보학과랑 국어국문문예창작학부를 복수전공하고 있는데 우선 미컴이나 광홍에서는 심층적이지 않은 자료 조사나 캐릭터 그리기에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다만 연구 방향 설정이나 결론 부분에선 제가 직접 문헌을 읽고 깊이 사유하는 게 필요했습니다. 국어학을 공부할 때는 이해가 어려운 문법이나 어휘를 AI에게 물어보면, 이해하기 쉽게 사례를 설명해 줘서 도움이 됐어요. 대학에서 AI 사용에 지속적으로 경계할 필요는 있을 거 같습니다. AI를 이용해 정보를 얻을 수는 있겠으나, AI를 이용해 과제하는 건 어쨌든 표절이라고 느끼거든요. 요즘은 교수님들이 AI를 이용해 표절 검사를 하시기도 하고요. AI를 기초적인 지식이나 논의의 흐름을 파악하는 용도로 쓰는 건 유용하지만, 딱 그 정도에 멈춰야 AI를 바람직하게 이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흥선대원군: 저는 사실 AI를 사용한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이제껏 사용하지 않은 이유는 “그깟 기계 따위가 사람보다 얼마나 더 낫겠냐. 설령 그렇다고 할지라도 난 기계에 종속되지 않으리”라는 저의 거만함과 오만함 때문이었습니다. AI를 똑똑하게 사용한 학우들이 많아 상향 평준화된 결과에 AI 없이 살아남으려면 두세 배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신체적, 정신적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습니다. ‘이렇게 하다가는 죽겠다!’라는 생각에 압도되었고 저번 학기부터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AI의 능력을 경시했던 과거의 제가 무안할 정도로 AI는 시간을 혁신적으로 단축시켜주고, 꽤 훌륭한 답을 줬습니다. 제가 직접 기사를 읽거나 통계청에 들어가 볼 필요 없이 한 번에 필요한 정보들을 찾아주고, 전공과 관련된 원문 구절의 의미를 해석해주어 AI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Norwegian HotGirl: 광고홍보학과를 복수전공하면 아이디어를 내고, 기획부터 캠페인 시안까지 직접 보여줘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이디어의 방향이 잡혔을 때 필요한 부분에 AI를 조미료처럼 활용하는 것은 아주 효율적인 활용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특히 네이밍에서 AI를 자주 활용했고, 굿즈 시안 제작 같은 경우에도 예전에는 포토샵으로 오랜 시간을 들여야 했다면 요즘은 AI를 이용해 굉장히 높은 퀄의 제작물을 완성할 수 있어 유용하다고 느낍니다. 실제로 최근 수업에서는 AI를 활용한 캠페인을 기획한 적이 있었는데 AI를 이용해 이미지뿐만 아니라 영상, AR, 심지어 어플까지 저희가 직접 제작하고 시연하면서 미디어나 광고 기획 측면에서는 AI가 큰 도움이 된다는 걸 몸소 실감했었어요. 잘 활용하면 대학생에게 요구되는 수준을 넘어서는 결과물도 충분히 만들어낼 수 있고 이미 그렇게 활용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습니다. 추가적으로, 저는 현재 교환학생으로 노르웨이에 와 있는데, 제가 무사히 도착해서 잘 적응할 수 있었던 건 번역과 회화 연습을 도와준 AI 덕이 정말 컸다고 생각합니다.


Number1Girl: 저는 AI를 주로 번역기로만 사용합니다. 글을 쓸 때는 제가 써야 제 것이라는 느낌이 들어서 사용하지 않습니다. 주변 친구들은 AI를 과제 작성에 있어서 전반적으로 스스럼 없이 사용하는 편인 것 같습니다. 저는 이런 식의 사용은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긴 합니다. 직접 지적하진 않지만 교수님이 내주시는 과제는 대부분 사고를 동반하는데, AI를 사용해 전체를 작성하면 그 과정이 없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쓰더라도 스스로의 생각을 확립하고 고민하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단순 과제 수행을 위한 사용은 대학에서 공부하며 지향해야 하는 바와도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옹심이: 저는 문예창작 전공이어서, 글을 쓰고, 작품에 대해 이해를 하는 것은 오롯한 ‘나’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AI 사용 자체를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다 타 전공 수업에서 한국의 지난 부동산 정책과 관련한 레포트를 작성하기 위해 자료를 찾던 와중, 챗지피티를 사용하는 친구의 도움으로 불과 몇 초 만에 자료 조사를 마쳤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저는 홀린 듯이 챗지피티 회원가입을 했고, 이후로는 AI 프로그램을 열심히 활용했습니다. 어느덧 1. 원문을 읽고 2. 내용을 정리하고 3.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인터넷에 찾고 4. AI에게 물어보고 5. 틀린 것이 있다면 다시 찾아보고… 을 반복하며 제 대학 생활 한켠에 AI가 자리 잡은 것을 느끼며 든든하기도 하고, 과연 이것이 진정한 학습이 맞는 것일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예전에는 제대로 이해하지 않고 넘겼던 기초적인 내용도 차근차근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어서 기쁩니다.


AI 시대에서 대학생으로서 가져야 할 태도


이렇듯 대학생의 AI 사용률이 거의 100%가 되는 현 상황 속에서, 대학생으로서 가슴에 손을 얹고 양심적으로 생각해 보자. 우리는 정말로 AI를 학습 ‘보조’용 도구로 잘 활용하고 있는가? AI에게 과제나 문제를 복사+붙여넣기 하여 질문을 학습시킨 뒤, AI가 내놓은 답을 수용하기에 급급하고 있지는 않은가? 대학교에서 전공에 대한 심화적인 지식을 습득하고 체화하여 사회에서 그 지식을 펼치기 위한 교육을 받는 학생의 입장에서, AI를 학습 보조용 도구로 잘 활용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대학에서 이제 막 배우기 시작한 학생들은 AI가 출력한 내용이 사실인지 아닌지 가려내기 어려울뿐더러, AI의 답을 붙여넣기만 한다면 혼자서 고민하고 사유할 필요가 없어 습득한 지식을 온전히 ‘체화’하기도 어렵다. AI가 내놓은 답을 단순히 읽고 이해했다고 해서 그 내용을 체득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AI 활용에 대한 자성 없이 단순히 AI가 제시한 답변을 받아들이는 데에만 그친다면, 지식이 자신의 사고와 경험 속에 내재화되지 못하며 결과적으로 학문적으로 성장할 수 없다. 이는 대학에서의 핵심 가치인 비판적 사고, 탐구 과정의 축적, 사유의 확장과도 배치된다. 대학은 단순히 정답을 습득하는 공간이 아니라, 어떠한 문제에 대해 스스로 사유하고 탐구하며 타인과의 토론과 교류를 통해 이해를 심화시키는 학문의 장이다. 이러한 과정 그 자체가 대학 교육의 의미이며, 학문 활동의 본질이다. 과제나 시험 역시 단순한 평가 수단이 아니라, 해당 학문적 쟁점에 대해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있는지 점검하고 사고의 범위를 확장하기 위한 과정으로 제시되는 것이다. 따라서 대학교에서 능동적으로 학습하고 지식을 체화해 나가기 위해서, 인위적으로라도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깊이 사유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4년 동안 비싼 등록금을 내며 다닌 대학교에서 배운 것이 ‘복붙하는 능력’ 하나라면,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본인만의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인재는 안 그래도 AI 때문에 경쟁이 치열해진 취업 시장에서도 경쟁력이 없을 수밖에 없다.

이 글을 읽는 이공계 학생들은 AI가 전공 경쟁력에 필수적인 만큼, AI와 별개로 독자적 사고를 해야 한다는 주장에 의문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AI와 밀접한 이공계 학생들이야말로 윤리적 각성이 필요한 사람들이다. 기술이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선(善)이 될 것인지, 혹은 예기치 못한 재앙의 시초가 될 것인지는 전적으로 기술 설계자의 윤리적 감수성에 달려 있기 때문에, 기술을 직접적으로 설계하고 다루는 이공계 학생들에게는 누구보다 막중한 책임이 뒤따른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들은 자신이 만드는 기술이 인간의 삶과 사회 전체를 어떤 방향으로 끌고 갈지, 그리고 공동체의 가치를 훼손하지는 않을지 사전에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이처럼 전공과 상관없이 대학생이라면 AI라는 신기술에 대해서 고민하고 인식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이는 취업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함뿐만 아니라 대학 생활 자체를 잘 보내기 위함이다. 이와 관련하여 과학 커뮤니케이터 ‘궤도’가 강연에서 우리 동국대학교 학생들에게 조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1) 궤도는 대학 생활 동안 학생들은 AI를 쓰는 사람들보다 더 잘할 수 있는 것을 찾는 것이 과제라고 했다. 추론력과 기억력같이 AI가 이미 잘하는 것에 집중하기보다, AI가 못하는 것과 본인이 남들보다 뛰어난 필살기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답변했다. 이 고민 없이 대학에 다닌다면 그저 ‘복붙’만 할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라며, ‘어떤 것을(무엇을)’ 복붙할지를 고민하는 대학 생활을 보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궤도는 질문하는 능력이 아주 중요하다고 역설하기도 했다. 질문은 본인이 무엇을 모르는지 명확하게 해주며, 지금까지 당연하게 여긴 전제의 틀을 깨주는 역할을 한다고 피력했다. 어떤 질문들은 질문 그 자체로 이미 완벽하며, 이렇게 좋은 질문을 하는 능력은 AI를 활용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꼭 필요한 능력이라고 설명했다.

대학생으로서 AI에 대한 성찰이 필요한 또 다른 이유는 학습할 때의 정직성이 미래의 도덕 판단의 기초가 되기 때문이다. 사실 AI가 출력한 답을 과제나 시험에 그대로 제출하는 행위는 엄연한 부정행위이자 자신을 속이는 일이다. 설령 AI 활용 사실을 명시하더라도, 그 결과물을 온전히 자신의 사유에서 나온 산출물처럼 포장하는 것은 거짓말과 다름없다. 우리는 대학이라는 학습공간 안에서 이 거짓말의 유혹과 치열하게 싸우며 시행착오를 겪어야 한다. 대학은 사회적 책임을 온전히 짊어지기 전 다양한 가치관을 충돌시키며 윤리적 근육을 키울 수 있는 최적의 연습 공간이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 신기술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 고민하고 비판적으로 바라본 경험은, 훗날 사회에 나가 기술을 맹목적으로 추종하지 않게 만드는 견고한 가치 판단의 기반이 될 것이다. AI를 무작정 쓰지 말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AI라는 기술을 활용하되, 그 기술에 맹목적으로 끌려다녀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인공’지능’이 있다면 인간의 ‘지능’은 정말 쓸모없는 것일까?


그렇다면 대학생을 넘어 ‘인간’으로서, AI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스스로 사고하는 연습을 해야 하는 것일까? 유명 저서 『사피엔스』의 저자이자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AI가 지능 면에서 인간을 앞서기 시작할 때, 사유를 멈춘 인간은 경제적, 군사적 가치를 잃은 ‘무용 계급’으로 전락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AI의 등장으로 권위가 점차 인간에게서 AI로 이동하게 되면서 AI가 단순히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는 것을 넘어, 인간의 삶에 대한 모든 결정을 AI가 하게 될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인간은 자신의 존재 가치를 무의미하다고 느끼거나 소외되는 것을 필연으로 받아들이는 존재론적 위기에 직면한다. AI가 도출한 결과물이 개인의 사고와 노력의 산물보다 더 빠르고 정교하다는 경험이 반복되면서, 인간은 스스로의 사유와 성취가 점차 무가치하다고 인식하고, AI가 인간의 역할을 대체할 것이라는 생각은 인간으로 하여금 주체적으로 판단하고 창조하려는 동기를 약화한다. 이러한 의존이 일상화될수록 인간은 선택과 판단의 주체에서 점차 이탈하며, 기술이 목적이 되고 인간이 수단이 되는 주객전도의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이렇게 AI가 인간의 삶 전체를 통제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인간은 AI보다 잘할 수 있는 것을 찾거나 AI를 보조 도구로만 활용하는 능력을 기르는 교육을 받아야 한다. 끊임없이 자신을 재교육하고 사유하는 능력을 갖추고, 정부 또한 사람들을 재교육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어야만 새로운 시대의 변화 속에서 도태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사유하지 않는 태도인 ‘사유의 불능’이 유대인 학살과 같은 사회적 비극을 초래했다고 분석했다. AI가 출력한 답을 사유 없이 맹목적으로 수용하는 것이야말로 현대 사유의 불능이며, 이는 인간이 기술의 부속품으로 전락하는 심각한 소외 현상을 일으킨다. 이러한 현상은 최근 전 세계적으로 가속화되는 대학교의 인문·사회과학의 위축 및 폐과의 흐름과 맞닿아 있다. 효율성만 좇는 태도는, 인문학적 성찰이 없는 사회적 맥락과 결합하여 타인에 대한 무관심, 혐오 정서 확산, 폭력과 배제의 정당화로 이어질 수 있다. 최근 SNS상에서 무분별하게 타인을 공격하는 글을 쓰고, 특정 집단을 혐오하는 등의 경우가 많은 것이 그 사례이다. 이는 단지 온라인상의 표현 문제를 넘어,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전체주의적·폭력적 태도를 바탕으로 한 전쟁과 파시즘적인 행태를 방관하거나 심지어 정당화하는 사회적 기반을 강화하는 요인으로 작동할 수 있다. AI의 압도적인 유용성 앞에 인간의 무력함이 강조될수록, 우리는 더욱 진지하게 인문학적 가치를 재고해야 한다.

물질적 가치가 중시되는 현대 사회일수록 효율성과 경제성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도구적 이성’이 강화되며 인문학적 사유는 경시되고 있다. 철학자 찰스 테일러에 따르면 이러한 사고방식은 모든 것을 손익과 효용성으로만 평가하게 만들어 인간과 사회, 재난과 같은 문제들에 대한 관심을 약화시킨다. 그 결과 전쟁, 인권, 기후 위기 등 사회 문제에 대한 무관심이 확대되고, 이는 인간이 자신의 존재 가치를 무의미하게 느끼는 정체성 혼란으로까지 이어진다. 테일러에 따르면 인간은 더 나은 가치와 선(善)을 추구함으로써 인간 자신을 확인하는 존재이며, 타인을 고려한 도덕적 판단과 행동을 할 때 자아를 확립하고 행복해질 수 있다. 도구적 이성과 상반되는 AI에 대한 비판적 사고를 바탕으로 한 인문학적 사유는 위와 같은 사회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제공한다. 인문학적 사유는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복잡한 세계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게 하기 때문이다. AI에게 통제받지 않고 AI를 현명하고 슬기롭게 활용하는 주체적인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위와 같은 인문학적 사고를 AI에게 학습시켜 AI라는 기술을 사회를 이롭게 하는 데에 써야 한다. AI를 설계하고 학습시키며 활용하는 주체는 결국 인간이기 때문이다. AI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어떤 가치와 기준을 입력하느냐에 따라 기술의 방향성 또한 달라진다. 따라서 효율과 성과만이 아니라 타인에 대한 이해와 공감, 사회적 책임과 윤리적 판단과 같은 인문학적 감수성을 AI에게 학습시켜야 하며, 우리 또한 이를 반영하여 AI를 활용해야 한다. 이러한 가치가 전제될 때만 AI는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키는 도구가 아니라, 공동체의 문제를 완화하고 공공선을 증진하는 기술로 기능할 수 있다. 결국 우리가 스스로 사유하기를 멈추지 않아야 하는 이유는 기술에 주도권을 내어준 소외된 존재가 아니라, 인간다운 가치를 수호하며 공존의 길을 모색하는 주체로 남기 위함이다.


AI 시대에서 대학교의 역할


이미 우리는 AI가 없던 과거의 시대로 돌아가는 것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무조건적인 규제와 금지로 대응하기보다는 대학 사회가 AI를 주체적으로 수용하고, 기술 활용의 윤리적 경계와 적절한 규범을 선제적으로 제정해야 한다. AI를 맹목적으로 사용하여 부정행위가 빈번한 현 세태 속에서, 성균관대 교육학과 양정호 교수는 부정행위 방지를 위해 학내 시설을 활용한 대면 시험을 재개하고 감독을 강화하는 실질적인 조치가 필요하며, 이를 단순히 개별 교강사의 책임으로 미루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부정행위를 예방하는 동시에, 대학 교육의 핵심은 비판적으로 사유하는 인간 고유의 힘을 잃지 않도록 돕는 데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대학 교육 현장은 AI를 통해 원하는 정보를 정확히 도출해 내는 활용 방법론에 대한 교육을 본격화해야 한다. 그 구체적인 방안으로 영남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박한우 교수는 AI를 학습 파트너로 삼아 존재론적·도구적 역량을 확장해 가는 학생들에게 과거의 낡은 기준을 강요하기보다는, 확장된 비판적 능력과 AI 협동 창의성을 공정하게 측정할 수 있는 새로운 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결국 AI 시대의 대학은 단순히 지식을 전수하는 곳을 넘어, 확장된 기술을 도구 삼아 인간의 역량을 새롭게 정의하고 실천하는 실험실이자 성찰의 장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학기가 시작된 지금, 우리가 과제와 시험에 가장 먼저 활용하는 것 중 하나가 AI일 것이다. 대학교뿐만 아니라 다양한 대외 활동들, 더 나아가 생활 전반에서도 AI와 함께 할 것이다. AI라는 기술이 너무나도 빠르게 우리의 일상에 스며들어버린 지금, 기술 사용의 올바른 방향성과 윤리적인 고찰을 요구하는 질문을 하는 것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이제는 AI가 내놓은 답을 무분별하게 수용하는 객체가 아니라, AI를 본인의 사유 과정을 확장하는 데에 이용하는 주체가 되기 위해 고민을 해야 할 때이다. 단순히 AI가 내놓은 답을 복사하기만 하는 대학생이 아니라, AI 시대에도 여전히 배우고 성장하며 사회로 진출할 준비를 하는 ‘대학생다움’에 대해.




각주

1) 2025년 11월 12일 동국대학교 본관 남산 홀에서 진행된 명사 특강: 과학과의 만남, 궤도와의 대화. ‘AI와 함께하는 새로운 미래, 한걸음 먼저 알아보기’


참고문헌

김창용, ⌜서울대도 ‘AI 커닝’ 의혹…학생들 "교양과목서 부정행위? 학교 망신"⌟ , 『중앙일보』, 2025.11.12,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81574

김태욱,강한들, ⌜연달아 터진 대학가 ‘AI·비대면 시험 컨닝’에···대학생들 “터질 게 터졌다”⌟, 『경향신문』, 2025.11.11.,

https://www.khan.co.kr/article/202511111545001/?utm_source=urlCopy&utm_medium=social&utm_campaign=sharing


전율, ⌜학생은 "의존" 교수는 "축출"…AI 활용 두고 혼란스러운 대학가⌟ , 『중앙일보』, 2025.11.12,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81399

모두의핸드북. (2024.04.29). 유발 하라리가 말하는 미래의 모습 | AI와 새로운 계급 [Video]. YouTube. https://www.youtube.com/watch?v=CIjqNOS6p84

윤영균, ⌜[만나보니] 대학가 뒤흔든 AI 컨닝···‘부정행위’? ‘학습 혁명’?”⌟ , 『대구MBC』, 2025.11.29, https://v.daum.net/v/20251129100437610?f=p

김재호, ⌜대학생 86%, AI로 공부한다⌟, 『교수신문』, 2025.10.27.,

https://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147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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