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아
동국대학교에 합격하던 때가 생각이 납니다. 두 번의 수능, 뒤처지는 감정, 이번에는 꼭 합격해야 한다는 불안감 속에서 동국대학교 ‘합격’이라는 두 글자는 묘한 확신을 주었습니다. ‘아, 12년동안 공부해서 대학교에 합격했으니 이제 걱정 없이 행복할 일만 남았겠지?’라고 안일하게 생각하며 개강 첫날 오르막길을 오르던 신입생 시절의 제가 떠오릅니다. 대학교에 대한 환상을 가득 안고 말이죠.
물론 학교생활은 즐거웠습니다. 그러나 어딘가 모르게 공허했습니다. 환상을 상상할 때는 손에 잡힐 줄 알았던 것들이, 막상 환상 속에서 살다 보니 손에 잡히는 것도, 눈에 보이는 것도 없었습니다. 환상 속에서 사는 것이 얼마나 위태롭고 불안한 것인지를, 깨달아버렸습니다.
환상이 비단 저에게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여러 환상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의심해 본 적 없는 믿음이라는 환상, 지금껏 알고 있던 것이 진리라는 환상, 노력하면 뭐든 이룰 수 있다는 환상. 어쩌면 세상에 눈에 보일 만큼 확실한 것이 없어서 이런 눈에 보이지 않는 희미한 것들에 기대어 살아온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때때로 환상은 누군가를 소외시키고, 배제하기도 합니다. 환상은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성공이며 어떤 삶이 가치 있는지를 규정하는 사회적 기준으로 작동하면서, 그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이들을 자연스럽게 주변부로 밀어내기 때문입니다. 이번 동국교지 87호에서는 사회에 만연한 그러한 ‘환상’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그 환상에서 벗어나, ‘탈환상’하는 과정을 담았습니다. ‘Intro: 난 정말 **핵심**을 찌른 걸까?’ 에서 AI라는 기술이 가진 화려함 뒤에 무지해지는 인간의 모습을 성찰하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믿음이라는 환상’ 챕터에서는 지금껏 우리가 믿어왔던 것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LOVE T♥ HATE ME’는 나 스스로를 사랑한다는 생각이 오히려 나를 갉아먹고 있었을 수도 있음을 이야기합니다. ‘로맨스를 좋아하세요?’는 낭만적인 신화로 가려져 있던 연애의 위험성을 직시합니다. ‘반공이 무엇인지는 알고 말하셔야죠’는 공산주의를 악마로 인식하고 있는 사람에게 그 오해를 깨고 진실을 마주하라고 말합니다.
‘진리라는 환상’ 챕터에서는 정답처럼 보이는 진리를 비판적으로 검토합니다. ‘버스 탈 땐 제발 안쪽자리부터 채워 앉아주세요’에서는 불편함을 피하려는 행동들 뒤에 숨어있던 혐오와 배제를 분석합니다. ‘추락하는 교권, 추락하는 대한민국’에서는 교권 추락은 단순히 학교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을 위태롭게 하는 사회 문제임을 고발합니다. ‘언론 유감: 객관과 중립 너머의 저널리즘’에서는 언론이 중립이라는 환상에 뒤덮여 있었음을 톺아봅니다.
‘노력이라는 환상’ 챕터에서는 노력하면 무엇이든 될 거라는 희망에 허구성을 짚어냅니다. ‘동국대 청소노동자의 외침이 들리는가’에서는 자비라는 환상 뒤에 가려진, 우리 학교 청소노동자의 노동권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들의 사인’에서는 좋은 직업이라는 환상을 걷어내고 진정한 직업적 소명이 무엇인지 이야기하며, ‘당신은 노동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은 우리 모두가 노동자이므로 이 모든 이야기가 결코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가 아님을 말합니다.
‘대학 가면 행복해진다’라는 환상적인 말은, 사실 대학이 나의 행복을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닌 대학교까지 진학하여 한층 더 성장한 나 자신이 나를 행복하게 해준다는 의미였음을,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그래서 환상을 직시하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환상으로부터 벗어나려 했습니다. 환상으로부터 탈피하는 일은 결코 환상적인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환상을 깨고 마주한 현실은 환상으로 뒤덮여있던 세상보다 훨씬 더 아름다울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동국교지 87집 <탈환상>을 통해 우리 사회를 둘러싸고 있었던 환상으로부터 벗어나기를 바랍니다.
동국대학교 교지편집위원회 제42대 편집장 김현아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