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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책 내고 싶으세요

그럼요, 내고 싶지요

by 작가 지상

#1. 과식, 과독하는 시대


책이 귀한 시대에는 사람들은 정보에 굶주렸었다. 하여 신문, 잡지를 매일 읽었었고 소중한 책은 밥을 굶어 가면서도 사서 읽었다. 그런데 이젠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다. 인터넷만 키면 뉴스, 정보, 심지어는 타인들의 시시콜콜한 사생활까지 알 수 있다. 과식 상태고 과독 상태다. 영양가 있는 것은 물론 허접한 것들도 늘, 항상, 언제나 먹어서 배가 부른 상태다. 그러니 아무리 몸에 좋다 한들 좋은 음식이 당기겠는가?

어설프게 아는 것은 많아지는 데 피곤하고 정신이 부실해진다. 하여 제정신을 찾고 싶은 사람들은 역설적으로 정보를 차단하고 싶어진다. 오히려 절제, 금식, 금독이 필요한 시대다. 하지만 생존하려면 또 엄청난 양의 정보를 먹어야 하는 시대다.


책 내기 힘들다, 내글을 사람들이 안 읽는다, 건성으로 읽는다...그런 불만이 있을 수 있지만 어쩔 수 없는 시대 현상이다. 수요 쪽에서는 과식, 과독 현상이 일어나서 점점 줄어들고, 반면에 '내글 좀 봐줘요' 하는 공급은 엄청나게 늘어난 상태이기 때문이다. 거기다 너무나 많은 관계 속에서 슬쩍 보고, 혹은 안 본 상태에서 라이킷만 부지런히 누르는 행태가 지배적인 상황이다. 어쩔 수 없는 구조적인 상황이다. 이 상황에서도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글을 쓰는 사람들은 대단한 사람들이다. 그런 경쟁을 뚫고 나온 글들이기 때문이다.



#2. 책을 안 읽는 시대지만, 글은 홍수같은 세상


우선 사람들이 책을 안 읽고 (휴대폰, 컴퓨터 보느라), 책은 안 사고 (읽더라도 도서관에서 빌려 읽고), 책에 있는 내용은 어디서도 접할 수 있는 게 많으니까, 굳이 읽고 싶은 생각이 안 든다. 지금 이 브런치 스토리도 그럴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의 글을 동시에 읽으려면 몇 명에게 집중하지 못하고 건성으로 읽게 되고, 다들 자기것 쓰고 발표하기에 바쁘다. 즉 책은 안 읽어도, 글은 홍수처럼 많은 세상이다.


나도 한동안 남의 책을 읽지 않았다. 그러다 아, 이렇게 가다가는 내 머리통이 텅 비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진지한 마음으로 10여년 전부터 책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그 결과 예전에 알지 못한 기쁨을 누리고 있다. 그 이야기는 몇 년 전에 낸 '중년독서(이지상, 아르테)'에 적은 적이 있다. 역시 책은 소중하다. 그러나 우선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돌아보자. 이런 시대에 책을 낸다는 것은 과식한 사람들에게 자꾸 음식을 내놓는 꼴이다.



#3. 책이 안 팔리는 상황에서 책을 낸다 함은?


책을 만들어 파는 출판사는 점점 기울고 있다. 안 팔리는데 흥이 나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책 좀 내달라고 출판사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은 엄청나게 많아졌다. 즉 남의 책은 안 읽지만, 나도 한번 책 내보자는 의욕이 넘치는 시대가 되었다.


왜 그럴까?

여전히 책은 그래도 신뢰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책의 저자라고 하면 그 분야의 전문가라는 인식이 아직은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도 지금은 변했다.) 수많은 기획서, 원고들이 출판사 편집자들에게 전달된다. 하지만 편집자들은 피곤하다. 읽기도 귀찮다. 업무가 많은데 함량 미달의 원고들이 쇄도하니 짜증도 난다.


나는 초보자일 때 이런 상황을 잘 몰랐었다. 본격적으로 책을 내기 시작한 1990년대 후반일 때도 편집자들은 늘 바빴고 출판사들은 열악했다. 2000년대 들어가니 점점 더 그랬다. 하여 나는 나 자신과 내 원고를 설명하는 ‘기획서’ 혹은 ‘출간 제안서’ 등을 쓰기 시작했다. 이 원고의 내용이 어떤 것이며, 주제와 소재는 무엇이고, 왜 내가 이 책을 내고, 예상 독자층은 어떤 사람들이고 등등을 저자 스스로 정리해서 출판사에 제출했다. 그럼 편집자들에게 도움이 된다. 그전에는 무식하게 1, 2천 매의 원고를 소포로 발송한 후 결과를 기다렸었는데 (1990년대 말에 그랬었다.) 바쁜 편집자들이 그걸 읽겠는가? 내가 종종 원고 거절을 당한 이유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그러다 인터넷 환경이 되면서 일은 쉬워졌지만 그런 식으로 원고를 들이밀면 편집자들은 원고를 잘 읽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 원고가 한 둘이어야지. 그래서 기획서, 출간 제안서 등을 나름대로 만들어서 첨부하기 시작했고 다 된 원고가 있어도 다 보내지 않고 샘플 원고만 보냈다. 그러고 나서 관심이 있으면 원고를 다 보내주었다. (그래서 출판사에서 처음에는 좋아했다. 그러나 그것도 어느 순간 또 변했다. 그런 기획서, 출간제안서조차 너무 흔해지니까.......)


글 쓰는 방법, 원고를 출판사에 보내는 방법, 출판사 사정, 계약서, 인세, 편집자와의 갈등, 교정, 교열, 책 내고 난 후 유통, 홍보 그리고 독자들로부터의 혹평을 어떻게 지혜롭게 극복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는 매우 구체적인 경험과 함께 쓸 이야기가 많고, '여행작가 수업'에 적었지만, 글쎄 이 브런치 연재에서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별로 안읽는 상황이라면 그런 이야기 할 필요도 없고, 상황도 변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편집자들이 불쑥 들이미는 남의 원고를 보고 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기획, 내고 싶은 성향이 분명하여, 이것을 자기 주도로 하고 싶어한다. 즉 편집기획자의 권한이 더 세진 상황이다. 그래서 이런 편집기획자들은 브런치나 인터넷에서 자기들이 내고 싶은 책 원고를 찾는 경향이 많다. 이런 환경에 맞추자면 브런치 스토리를 더 열심히 쓰는 것이 좋을 수도 있다.



#4. 저자와 작가가 넘쳐나는 세상


누구나 작가, 누구나 사진작가, 누구나 1인 출판사 대표, 누구나 1인 방송국 대표, 누구나 1인 매체 대표가 되는 세상이 되었다. 자기 스스로 책을 내는 경우도 많아졌다. 두가지 방법이 있다.


우선 1인 독립 출판.

자기 스스로 원고를 쓰고, 스스로 출판사를 만들어 책을 내고 독립출판 서점에서 책을 판매한다. 자신이 작가, 출판사 대표가 되는 것이다. 이거 편집 기술을 스스로 배워서 자기가 하는 경우도 많다.


또 하나는 자비 출판.

원고는 자기가 쓰고 출판사에 비용을 대면 출판사가 출판을 해주고 유통, 판매를 대행해 주는 것이다. 즉 다른 출판사의 이름을 빌려서 스스로 저자가 되는 것이다.


나는 이런 방식으로 책을 내지는 않았지만 나에게 강의를 들었던 사람들 중에서 1인 독립출판을 하거나 자비 출판을 한 사람들이 있어서 그 사정을 잘 안다. 이런 방식의 출판에서 좋은 점은 저자가 자기 스스로, 자기 뜻을 펼친다는 것. 독창적인 책이 나올 수도 있다는 것. 어쨌든 책의 저자로서 활동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는 것이다. 단점은 ‘돈만 내면’ 다 되니 전문가들로부터 인정받는 단계가 사라진다는 것. 결국 수많은 함량 미달의 저자, 작가가 양산된다는 것이다. 또한 이런 책들도 많아지다 보니 식상해지고 점점 책은 팔리지 않아 방이나 창고에 자기 책을 쌓아 놓으며 한숨을 쉴 수도 있다.


책을 내고 나면 ‘나도 작가다’라고 생각하면서 뿌듯해지고 사람들도 그렇게 불러준다. 그것이 1인 독립출판인지, 자비출판인지 모르니 독자들 앞에서 ‘작가 반열’에 오르는 것이다. 아니 이미 '작가'라는 명칭은 타이틀 인플레 현상 속에서 남용되고 있다. 이젠 인터넷에서 뭔가를 발표하면 작가라고 불리기도 한다. 또한 스스로 독립서점에 책을 깔고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블로그에 홍보한다. 그러나 안 팔린다. 풀이 죽는다. 작가란 명칭이 빚 좋은 개살구처럼 여겨진다. 결국 이렇게 책을 내고 나면 다른 고민이 뒤따르게 된다. (물론 분야마다 다르지만 내가 활동한 여행작가 분야는 그런 경향이 있다.


그럼 이런 상황에서 책을 내고, 작가 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물론, 이런 과정을 통해 세상에 크게 알려지면서 책도 많이 팔리고, 인정받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안 그렇다. 서로 '작가님' 하고 불러주지만, 그런 타이틀이 유명무실하게 느껴져서 허탈할 수도 있다.



#5. 인터넷 환경에서 다른 길을 찾는다.


이제 많은 저자, 작가들이 인터넷 환경에서 다른 길을 찾기 시작한다. 나도 책을 많이 내왔지만, 20년째 블로그를 해오고 있고,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오디오북, 팟캐스트, 유튜브 등을 해보았다.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도 해보았고, 지금은 브런치 스토리를 한 지 2개월 정도 되었나? 이런 가운데 수많은 것들이 관찰되었다.

처음에는 흥미로 한다. 그러나 점점할수록 돈도 벌고 싶어진다. 그런데 마음대로 안된다. 여기서 수많은 고민이 또 생기게 된다. 산 넘고 강 건너면 항상 들판이 나오는 것이 아니다. 산 넘으면 절벽, 강 건너면 폭포가 나오는 경우도 종종 있다. 달려드는 고민들은 이런 것들이다. 이것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까?


그럴 때 자기 행동의 의미를 돌아보게 된다. 내가 왜 이것을 하고 있지?


돈을 벌기 위해서? 돈을 벌기 위한 영역은 많잖아. 사업을 하든, 장사를 하든, 투자를 하든. 돈은 다른 데서 벌고 이건 취미로 할까?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직장에 다니든, 결혼을 했든 삶은 안정되었지만 뭔가 허전하다. 나 자신을 표현하고 싶다. 훗날 뭔가 할 수 있는 토대를 쌓고 싶다. 부업으로 돈도 벌고 싶다. 그런데 글 말고도 할 것은 많잖아. 굳이 글로 표현하고 싶은 이유는 무엇일까?


재미로? 진짜 글쓰기가 재미있는가? 돈 때문에, 혹은 헛된 명성 때문에 하고 싶은 것은 아닌가? 이런 질문에 대해서 나름대로 답을 얻어야 글을 쓸 힘이 나고 책을 내게 된다. 즉 분명한 목표 의식이 있을 때 도움이 된다.



#6. 어떤 글쓰기를 할 것인가?


책이든, 블로그든, sns든, 유튜브든 우리는 글과 말을 통해서 하고 있다. 아무리 책을 안 읽는 시대라 해도, 또 이미지, 동영상의 시대라 해도, 이처럼 언어를 많이 사용하고, 접하는 시대는 없었다. 컴퓨터, 인터넷이라는 매체의 발달 때문이다. 인쇄술의 꽃이 책이라면 이제 컴퓨터, 인터넷의 발달로 꽃들은 다른 곳에서도 피어나고 있다. 사실 책보다는 이제 인터넷 글쓰기가 더 흥할 수도 있다. 블로그, 페이스북, 그리고 웹소설 등이 더 재미있고 돈이 나올 수도 있다. 반응을 금방금방 볼 수 있고 수익성으로 연결이 될 수도 있다.


이쯤에서 선택을 해야 한다. 어떤 글쓰기를 할 것인가? 각 글쓰기의 성격은 무엇인가?


나의 경우에는 어느 정도 정리된 것이 있다. 지금 여기에 쓰는 이런 글은 소수만이 필요할 것임을 잘 알고 있다. 좀더 대중에게 접근하려면 다른 주제, 소재, 다른 스타일의 글이 필요한 것 같다. 그런데 나는 현재 시점에서 거기에 에너지를 쏟고 싶지는 않다. 그 에너지는 소설쓰기에 투입하고 있다. 다만, 이런 곳에 글쓰는 것은 타인들의 글을 읽고, 또 약간의 소통을 하면서 배우고 자극받는데 의미가 있다. 딱 거기까지만 한정된 목표를 갖고 있기에 그냥 하는 것이다. 관계의 수는 너무 많으면 피곤해진다. (그러나 목표가 다른 사람은 또 다르게 행동할 것이다. 각자도생이니까, 다 자기 입장에 따라 달라진다고 본다. )



#7 책을 내면 좋은 점과 고민


책을 내면 좋은 점이 확실히 있다. 우선은 자기 정리다. 어떤 책을 쓰든 정리가 되고, 쓰는 가운데 방향을 찾을 수 있다. 또 자기 치유의 과정도 발생한다. 운 좋으면 좀 팔리기도 하고 주변 사람에게 신뢰를 얻을 수도 있다.

반면에 허전하기도 하다. 잠시만 뿌듯하지 조금만 지나면 그렇다.

나는 그동안 26권의 여행기, 에세이 그리고 2권의 장편 소설을 출간하면서 수없이 그런 감정을 느꼈다. 안 팔리거나 남으로부터 혹평을 듣거나 무관심 속에 방치되면 모든 게 다 헛것처럼 느껴지고 회의에 빠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고 싶은 욕구는 무엇인가? 내 속에서 뭔가를 표현하고 싶은 이 욕망은 무엇인가? 언어는 무엇인가? 도대체 이 짓을 하고 있는 인간은 무엇이며 나는 누구인가?


이런 질문과 동시에 현실적인 문제들이 또 달려든다. 어떻게 글을 써야 하는가? 좀더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한 테크닉은 무엇인가? 문체와 스타일은 어떻게 다듬을 것인가? 어떻게 유통, 홍보를 스스로 하는가?


이런 것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끝없이 궁리를 하게 된다. 이 궁리가 사람을 살게 한다. 나도 수십 년 전부터 글을 써오면서 계속 이런 고민에 부딪히고 궁리했기에 이런 글을 쓰고 있다.



#8. 책을 안내도, 많이 안 읽혀도 글쓰는 것은 의미가 있다


글을 쓰면서 누구나 사람들로부터 호평을 받고, 구독자 수도 늘고, 또 책을 내고, 책도 많이 팔려 돈도 벌고...그런 욕심이 생긴다. 당연한 것이다. 안그런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내 마음대로 안된다는 것은 당연한 일. 처름에는 라이킷이 늘고, 구독자 수 늘면 신 바람 나지만, 그렇게 되면 이제 실질적으로 돈이 벌리거나, 혹은 책이 나오기를 바라게 된다. 책이 나오면 나온 것만 해도 뿌듯하지만, 그 다음엔 좋은 평을 받고 싶고, 책도 많이 팔려 돈으로 연결되기를 바란다. 그것이 안되면 또 회의가 든다.


그런데 책은 요즘 전반적으로 안 팔리는 세상이다.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보고, 웬만하면 안 읽는다. 돈안내고 읽는 인터넷 글들이 얼마나 풍성한가? 그거 유료화시키는 것도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또한 아무리 라이킷이 많아도, 많은 이들이 제대로 읽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 회의가 든다. 그러나 자신은 또 남의 글을 제대로 읽나? 이런 구조에 들어오면 다 비슷한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브런치 스토리라는 이런 플랫폼이 매우 소중하게 여겨진다. 또 유튜브도 그렇다. 읽고, 듣다 보면 정말 소중한 것들이 종종 발견된다. 이런 플랫폼이 없었다면 어떻게 그것을 우리가 알 수 있나? 물론, 함량미달들도 많지만.


나는 지난 30여 년간 무작정 여행을 떠났고, 하다 보니 여행작가가 되었고, 준비된 길을 간 것이 아니라 맨땅에 헤딩하듯이 부딪혔다. 누구에게도 배우지 않았다. 그러니 좌충우돌할 수밖에. 그동안 책을 내는 가운데 수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이미 몇 년 전 ‘여행작가 수업’(엔트리, 2015) 이란 책을 내면서 일단 정리가 되었다. 빨리 이런 물음에 대한 답을 알고 싶은 분들은 우선 그 책을 보면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책은 5, 6년 동안 상상마당에서 ‘여행작가 수업’을 하며 쌓은 경험을 적은 것이다. 글 쓰는 데 필요한 테크닉, 출판 환경, 메커니즘, 고민, 갈등, 여행작가의 어려움 등 수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런데 절판이 되었으니, 도서관에 있을지 모르겠다.)

여기에 쓰는 것들은 그 부분이며, 또 달라진 환경에 맞춰서 쓰고 있다.



#9. 책을 쓴다는 것은 집을 짓는 것과도 같다.


책을 쓴다는 것은 집을 짓는 것과 같다. 이것을 항상 명심해야 한다. 무작정 쓰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필요한, 혹은 멋진 집을 짓는 것이다. 정신적인 집을 한 채 짓는다는 것은 뿌듯하다. 그 책을 써서 돈을 많이 벌고, 명예를 많이 얻겠다는 생각을 가지면 별로 권하고 싶지 않다. 그런 정신으로 만든 집은 부실하며 또 한다 해도 너무 힘들고, 결과가 신통치 않을 수 있다. 책을 필사적으로 안 읽는 시대이게 때문이다. 그냥 안 읽는 것이 아니라...죽기살기로...안 읽는 시대다. 책을 주어도 안 읽는 시대다. 그리고 휴대폰을 붙잡고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엄청나게 많아진 시대다. 이제 책은 아무나 읽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자기만의 멋진 집, 혹은 소박한 집을 만들고 그 안에서 잠시 거주하는 기쁨을 누리고 싶다면 해볼 만한 일이다. 그렇다. 잠시다. 책 한 권 쓰고 그 안에 평생 안주할 수는 없다. 다만 한참 비바람이 불 때 소박한 안식처 혹은, 햇살 따스할 때는 평화로운 안식처가 된다. 그리고 나처럼 정신적인 방황을 할 때는 등에 지고 가는 집이 될 수 있다. 한옥을 짓는가, 양옥집을 짓는가 또 방은 몇 개, 거실은 어떻게 등등 설계도가 필요하다. 책 쓰는 것도 당연히 설계도, 즉 기획서가 필요하다. 지금 내가 말하는 것은 여행기 혹은 실용서 등 대중적인 글쓰기를 말한다. 문학 쪽은 예외다. 거긴 창조적인 순간들이 있다. 그것이 소설, 시의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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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처음부터 책 쓰기를 생각하면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냥 한편의 글 쓰는 것을 즐겨야 한다. 우선 먼저 짧은 글, 자유로운 글쓰기를 먼저 할 줄 알아야 된다. 그것은 집 짓기에 필요한 수많은 재료를 수집하고 다루는 일이다.


여행기의 경우 길을 따라가는 여행기는 비교적 쉬운 편이다. 자기 일기장 보면서 길을 따라가면 되니까. 그러나 이것도 한두 달간의 여행 정도면 쉽지 여행 기간이 1년이 되거나, 여행 자체가 삶이 되거나, 여러 차례의 여행이 겹치면 골치가 아파진다. 그걸 다 쓸 수가 없기에 이제 어떤 부분은 강조하고, 어떤 부분은 잘라내는 식의 기획, 초점이 필요하게 된다.


하물며 삶에 대한 이야기, 자신의 수많은 경험에 대한 것을 책으로 쓰려면 설계도가 필요하다. 집을 무작정 짓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기획을 먼저 견고하게 세우면 글이 잘 안 나오기도 한다. 실용서, 자기 계발서 등은 다르겠지만 적어도 문학, 여행기, 에세이 등은 안 그렇다. 원래 하던 짓도 멍석을 깔아 놓으면 안 한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10.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를 둘다 활용해야 한다.


글은 의식 세계와 무의식 세계가 결합하면서 발생하는데 의식 속의 기획성이 너무 강하면 무의식 세계가 죽는다. 거기서 솟구치는 창조성이 사라진다. 답답하다. 반대로 무의식 세계에만 맡길 수도 없다. 책은 의식 세계로 들어오는 것이기에 거기서 요구하는 것도 따라 주어야 한다. 나는 이런 과정에서 또 고민이 많았다. 무의식의 세계를 활용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다. 그런 이야기를 하려면 너무 길어져서 자제하지만...


그렇게 책 원고를 쓴 후, 그것을 출판사를 통해 내는 과정은 또 다른 세계다. 출판계가 문화적이라고? 천만에. 나는 처음에 그런 줄 알았다. 작가의 고민을 다 알아주고 같이 고민하는 곳인 줄 알았다. 아. 물론 그런 편집자들도 있었다. 그러나 출판사는 비즈니스 하는 곳, 즉 돈을 벌어야 하는 곳이다. 직원들을 먹여 살려야 한다. 나는 책을 내는 가운데 그들을 이해하게 되었다. 생존의 처절한 고민이 지배하는 곳이다.



#11. 출판사에 싫어하는 작가들의 소리


출판사에서 제일 싫어하는 작가들의 소리


“저는 책 잘 안 팔려도 좋아요. 의미, 보람으로 하는 겁니다.”


그건 수십 년 전에나 존경받을 말이었다. 죽느냐, 사느냐 전투를 벌이는 전투원 앞에서 그런 한량 같은 소리를 하면 싫어한다. 그러나 저자, 작가가 또 돈벌이를 위해서 아등바등하는 모습을 보이면 편집자들은 실망한다. 작가는 작가의 본분이 있는 것이다.


어쨌든 돈 벌려면 호떡을 파는 게 낫다. 정말이다. 그 생산성을 생각하면 그렇다. 그럼 왜 쓰는가? 돈이 잘 안되는 데도 왜 하려고 하는가? 글에서 나를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와 돈을 벌어야 하는 현실 속에서 부딪치는 갈등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현실 속에서 어떻게 생존할 것인가? 결국 삶과 내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무엇인가? 그런 고민들을 상대하면서, 뭔가 답을 궁리하는 행위, 그것이 사람을 살게 한다. 해답은 계속 바뀔 수도 있지만 고민하는 행위 자체가 곧 삶이고, 글쓰기다. 이걸 즐겨야 한다.


단, 나는 여행기, 여행 에세이, 소설을 기반으로 한 이야기다. 실용서, 자기계발서 등은 철저히 의식적인 기획, 의도성이 먼저 앞서는 태도가 필요하다. 어쨌든 글쓰기에는 스펙트럼이 매우 넓다. 나도 전혀 몰랐었다. 그냥 뛰어들어 정신없이 수십년 동안 쓰다 보니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리고 어디서라도 혹시 필요한 사람이 있을지 몰라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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