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늘, 항상, 언제나 쓰는 것이 중요하다
1. 여행작가가 탄생하는 과정을 지켜보면
나는 1988년 10월부터,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고 여행을 떠났었다. 무작정 배낭 메고 세게로 뛰쳐 나갔었다. 그 시절 나같은 사람을 두고 매스컴에서는 배낭여행가, 여행 전문가 등으로 불렀다. 기자나 방송 작가들이 나처럼 여행한 사람들에게 와서 수많은 정보를 물었다. 그때는 인터넷도 없었고, 제대로 된 가이드북도 나오기 전이었다. 그러다 나중에 번역판이 나오고, 점점 한국인들이 쓴 가이드북이 나왔다.
그 무렵부터 이런 가이드북 작가를 주로 '여행작가'라 불렀다. 그리고 점점 여행기, 여행 에세이등이 나오기 시작했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의 이야기다. 이때 배낭여행가, 여행전문가는 남들이 안 가본 데를 많이 가본 것, 혹은 여행한 나랏수를 내세웠고, 여행작가들은 한 나라를 깊이 파거나, 여행정보를 남보다 샅샅이 아는 것을 내세웠다. 그렇게 점점 분화가 된다. 나는 배낭여행가, 여행전문가를 거쳐서 여행작가라 불리었는데 여행가이드북이 아니라 여행기, 여행에세이 등을 오래 써서 그랬다. 이제 여행작가라 함은 가이드 북 작가만이 아니라 여행기, 여행 에세이 작가도 여행작가라 불리기 시작했다.
2. 여행작가가 되려면 대학의 어떤 과를 가야 해요?
종종 젊은 친구들에게 이런 질문을 받았었다. 얼핏 생각하면 국문과, 문예 창작과가 좋을 것 같지만 여행작가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나만 해도 대학에서의 전공은 정치외교학과, 대학원에서의 전공은 사회학과다.
지금은 아니지만 과거 한국 사회는 정형화된 틀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의사가 되려면?' '검사가 되려면?' '대기업에 들어가려면?' '교사가 되려면?'...이런 식의 틀이 있다. 하지만 위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여행작가'는 그냥 없던 것이 자연스럽게 나타난 것이다. 어떤 틀이 있던 것이 아니라...그러니까 초창기의 여행작가들은 무작정, 일단, 우선, 여행을 저지른 사람들이 활동하다 보면서 분화되며 나타난 직업이다. 그러니까, 만약 요령을 찾는다면 '무작정' 남보다 먼저, 여행한 경험, 그것이 자산이었다. 거기서 뭔가가 나왔다. 그러니 '깡다구'가 요령이라면 요령이었다. 모험정신...이것이 충만한 사람이 먼저 여행작가가 될 기회를 잡았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너무도 많은 여행 정보가 이제 인터넷을 통해 흥청거린다. 여행작가보다 여행 유튜버가 더 인기 있다. 그러나, 여행작가의 매력은 여전히 있다. 글이 주는 매력이다. 글은 여행하고, 관찰하며, 조용히 구석에서 깊이 있게 쓸 수 있다. 즉 동적인 행위와 정적인 행위가 어우러진 것이다. 반면에 유튜버는 상당히 액티브하게 움직여야한다. 그것은 방송인과도 같다. 반면에 여행작가는 일단 '글쓰는 이'다.
여행작가, 혹은 소설가가 되기 위해서는 대개 국문과, 문예창작과를 가서 많이 배운다. 틀림없이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도 많다. 특히 여행작가쪽은 더 그렇다. 나는 글쓰기를 따로 배워본 적이 없다.
3.여행작가가 되기 위한 요령
세상 일이 그렇듯이 모든 일을 요약해서 1번, 2번, 3번...그렇게 한다고,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여기서 학원 과외 족집게 선생처럼 그런 요령을 가르쳐줄 수는 없다. 운칠기삼이란 말도 있고. 즉 운이 7할이요, 기술, 재능이 3이라는 말도 있다.
하지만 꼭 집어 낸다면 글을 늘 쓰는 것이다. 그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어디서 무얼 하든...나는 여행 중 매일 일기를 썼다. 밖에서 계속 이동하며 여행한 기간을 다 합하면 6, 7년 정도 되니? 그 시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두 시간씩 연습을 한 셈이다. 만약 빠트리는 날이 며칠 있으면 하루를 푹 쉬면서 혹은 2등 열차 칸 침대에 엎드려서 밀린 일기를 썼다. 처음 동남아, 일본 여행 6개월 빼놓고는 정말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를 썼다. 여행작가가 되리라, 여행기를 쓰리라......그런 목표로 쓴 것이 아니다. 그냥, 안 쓰고는 못배길 상황이었다. 그만큼 뭔가 표현하고 싶은 게 많았었다. 지금 그 노트 쌓아 놓으면 책상 높이를 훌쩍 넘어간다. 집에서도 늘 글쓰기를 했다. 혼자서 쓰기도 하고, 블로그 같은데 늘 썼다.
4. 남의 글을 읽고, 다양한 것을 공부해라
사람들은 자기 글을 쓸수록 남의 글을 잘 안 읽는다. 흔히들 이런 말을 한다. 남의 글을 자꾸 읽으면, 그 글을 흉내내게 된다고...그래서 남의 글 잘 안읽는다고 한다...글쎄, 그러면 그냥.....아주 작은 그릇이 될 뿐이다. 사람은 남의 것을 흡수하면서 성장하는 거다. 그렇지 않으면 간장 종지만 해지고, 자존심만 높아진다. 젊은 나이에 그런데 빠져서 공부를 게을리 하면, 그릇이 커지지 않는다.
글쓰기든, 수많은 분야를 공부해야 한다. 나는 전공인 정치외교, 사회학은 물론 역사, 문학, 종교 그리고 영화, 드라마, 혹은 인터넷을 통한 수많은 지식을 공부했고, 지금도 하고 있다. 또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서 많은 것을 배우고 상처받았으며 갈등을 겪었다. 그런 것이 글쓰기에 도움이 되었다. 또 삶에서 부딪히는 고민과 고비가 그때는 괴로웠어도 지내놓고 보니 다 도움이 되었다.
5. 호기심이야 말로 글쓰기의 원동력이다.
호기심이야말로 글쓰기의 큰 원동력이다. 그것이 만약 약하다면 글 쓰는 일은 오래 못한다. 돈 버는 것, 헛된 명성이 좋아서 그런다면 다른 길을 택하는 것이 좋다. 여행 몇 번 갔다 와서 책 몇 권 쓸 수는 있지만 나이가 들면 점점 호기심이 사라진다. 그럼 계속 비슷한 이야기만 반복하게 되면서 자기 글과 삶이 재미 없어진다. 그런 경우 전업 여행작가란 힘들고 취미로 글 쓰는 것이 좋다. 취미를 우습게 보면 안 된다. 어쩌면 취미야말로 삶을 오랫동안 행복하게 해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여행과 글을 취미로 하면 더욱 오래갈 수도 있다.
어쨌든 대학에서 무엇을 전공했는가는 별로 중요한 것 같지 않다. 다 자기 하기 나름이다.
6. 여행작가로 활동하는데 학맥, 인맥은 중요한가?
그렇지 않다. 고등학교 나와서 여행작가 활동하는 사람들도 있다. 다만 대학은 ‘배움’이란 관점에서 도움이 된다. 하지만 이 시대에 배움은 여러 경로를 통해서 이루어지니 필수는 아니다. 그럼 대학의 학맥이 도움을 주는가? 그럴 수 있다. 처음에는 선후배 관계의 도움으로 책 출판이나 방송 활동에서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꼭 그것도 아니다. 요즘은 철저하게 ‘팔릴만한 것, 혹은 흥미를 끌만한 것’ 아니면 인맥으로 책을 내주고, 방송에 나오라고 하지 않는 시대다.
나는 학맥의 도움을 받은 적이 없다. 어쩌다 출판사나 방송국에서 같은 대학을 나온 선후배를 만나기도 했지만 그것 때문에 도움받은 적이 없다. 다 시장성의 원리에 의해서, 필요에 의해서 검증받아 가며 활동했을 뿐이다. 출판사에서 책을 낼 때도 누구 소개, 도움 그런 것 없이 혼자서 원고 다 쓴 후, 수많은 출판사의 문을 두드렸다. 그러면서 거절당한 적이 수도 없이 많았다. 그러니 더 노력하고 고민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 과정이 나를 성장시켰다.
철저히 시장에서 냉혹하게 평가받으며 대중과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가운데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포기하지 않는 과정이 늘 나를 글 쓰게 했다. 그 갈등들을 극복하기 위해서 내 호기심과 지식은 뻗어나갔다. 그동안 책을 25권 쓴 것은, 그런 고민을 극복하기 위한 몸부림의 결과였다. 여행 체험은 물론 삶의 고민, 장애물들이 나의 글거리의 소재가 되었다.
학교, 명성, 학맥, 인맥으로 성장하는 시대는 간 것 같다. 정치, 학계, 공무원, 비즈니스 세계는 여전히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활동하는 곳은 그렇지 않다. 철저히 실력과 대중들의 평가에 의해서 좌우된다. 안 팔리면 제아무리 출판사 대표가 선후배라고 해도 내줄 수 없다. 자기 망하는데 남을 위해서 희생할 수 있겠나?
이 세계는 그런 곳이다. 이제 실력과 함께 시장성이 없으면 도태된다. 전문가들에게 인정을 받는 세계든, 대중들에게 사랑을 받는 세계든 자신이 스스로 실력을 갖추고 또 그 장애물을 돌파하고 또 적응하려는 노력이 뒤따르지 않으면 도태되는 세상이다.
성큼성큼 세상이 변하고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적응하려고 노력하는 자세다. 적응이란 것이 자기 글 ‘팔아먹으려고’ 몸부림치는 것이 아니다. 자기 세계를 지켜가면서도 어떻게 생존할 것인가에 대한 노력이다. 사회생활을 관계에 의존해서 도움받고 살아왔다면 그 관계가 사라지고, 나이 들어버리면 함께 몰락한다. 그러나 홀로, 외롭게 성장한 사람은 계속 뭔가를 할 의욕이 생긴다.
글과 세계에 대한 왕성한 호기심이 있는 사람, 홀로, 외롭게, 궁리하고, 노력하는 자세를 가진 사람들이 이 길에서 오래 버틴다. 어찌 그것이 여행작가의 세계만 그럴까? 인생 길다. 한때 이런저런 학맥, 인맥 도움을 받아도 이제 60넘어 가서 은퇴하고 나면 각자도생인 것이다. 자기 가치관, 인생관, 세계관을 갖고 혼자서 항해하는 것이다. 작은 돛단배 타고. 그 돛단배를 튼튼하게 만든 사람은 이제 60대, 70대도 신나게 살 수 있다고 나는 믿고 있다.
그럼 어떤 방법으로 여행작가가 될 것인가, 그것을 알려면 현재의 출판시장, 혹은 인터넷 세계, 독자의 동향을 알아야 한다. 그런 이야기는 앞으로 차차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