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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글부터 먼저 써라

글 잘 나오게 하려면 나쁜 글부터 먼저 써라

by 작가 지상

#1 좋은 글이란 모호하다.


글의 평가는 타인이 하는 것이고 기준도 모호하다. 거기에 너무 매달리면 마음이 복잡해진다. 글 조회수가 많거나 라이킷이 많다고 꼭 좋은 글도 아니다. 그 안에는 '허수'도 많다. 평가는 다양한 차원, 다양한 사람들이 하기에 딱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남의 평가에 너무 신경쓰면 조급해진다.그렇다고 무시할 수도 없다. 어쨌든 좋은 글은 게속 탐구하고, 궁리하는 수밖에 없다.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2. 글 잘 나올 때와 안 나올 때


내가 수없이 경험했고 또 타인들을 관찰했는데 우선 글이 잘 나오는 것이 중요하다. 컴퓨터 앞에 앉아 하루 종일 앉아서 몇 줄 밖에 못쓰면 정말 답답하다. 반대로 글이 잘 나오면 신바람이 난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목구멍까치 치밀어 오를 때 글이 잘 나온다. 화가 나거나, 우울하거나, 뭔가 메시지가 분명할 때 말이 터져 나오듯, 글이 터져 나온다. 이런 글쓰기는 대개 개인적인 블로그나 페이스북에서 이루어진다. 내마음 대로 쓰는 곳이니까.

안에서 치밀어 오르는 것이 별로 없을 때. 써도 그만, 안 써도 그만인 상태에서는 잘 안 나온다. 별로 관심없는 분야에 관해 원고 청탁이라도 받으면 환장한다. 전업작가들이 종종 부딪히는 문제들이다.


글을 쓰고 싶은 ‘글욕’을 느낄 때는 상처가 많을 때다. 슬프거나, 고통스럽거나, 우울하거나, 답답하거나......하여튼 고통, 방황이 많을 때다. 대개의 작가들이 한 시절 다 그런 고통을 받았고 위대한 작가일수록 그것이 더 길고, 심했다.그러다 어느 정도 부와 명성이 따르면 그후부터는 글과 메시지가 시들한 경우가 많다. 식욕은 늘고 ‘글욕’은 줄었기 때문이다.



#3. 강한 자기 검열은 글을 방해한다.


상상 마당에서 ‘여행작가 수업’을 강의할 때 숙제를 종종 내주었다. A4 용지 반매부터 한두 매 정도 써오는 가벼운 숙제였다. 주제는 자유. 편하니까 다들 잘 써올 줄 알았다. 그런데 처음에 충격을 받았다.


많은 사람들의 글이 뭔가에 짓눌려 있었다. 멋지게 보이려고 어디선가 본듯한 문학적 단어, 표현들을 나열하고 있었다. 문학 수업이 아니라 ‘여행작가’ 수업으로 부담을 가질만한 분위기가 아닌데도 그랬다. 다들 ‘좋은 글’은 문학적이고 멋진 표현을 쓴 글이라는 강박관념이 보였다. 하나하나 보면 문장이 되지만 전체적으로 메시지도 분명치 않고 논리 전개도 어설펐다. 자기를 드러내지 않고 그럴듯한 말들을 나열한 느낌.

1인칭으로 전개하는 이야기인데 무슨 신문사 논설위원의 사설, 신문 기사를 보는 느낌도 들었다. 또 흠 잡히지 않을 만한 교훈적인 이야기, 반성문처럼 보이는 착한 글들도 있었다.

여행담이거나 일상에서의 일인데도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어떤 글은 더욱 그랬다. 평소 말하는 것은 ‘똑 소리’가 났는데 글은 공허하고, 자신 없고, 표류하고 있었다. 영혼이 빠진 글. 이상했다. 궁금했던 나는 그녀의 블로그에 들어가 보았다. 그랬더니, 아이고......글들이 그렇게 싱싱할 수가 없었다. 자기 목소리가 통통 튀고 있어서 쏙쏙 빨려 들어갔다. 솔직하고 발랄해서 그녀의 감정과 메시지가 쏙쏙 들어왔다.


그런데 왜 그런 이상한 글을 써서 제출했을까? 글을 잘 써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서 그런 것이다. 남앞에 보이는 글이다 보니 더욱 그랬던 것 같다. 그런데 잘 쓴다는 것의 기준이 뭔지 모른다는 것이 문제다. 하여 사람들은 그동안 읽었던 문학작품들, 신문, 잡지의 글들을 상기하면서 그 흉내를 내려고 했던 것이다. 누구한테 제출하는 거니까 흠 안 잡히려고. 그런 ‘자기 검열’에 사로잡혀서 다들 집단적으로 이상한 글들이 나온 것이다. 이것은 종종 발생하는 문제다. 이것을 극복해야 하는 데 방법이 있다.



#4. 차라리 나쁜 글을 써라.


이런 예는 외국에서도 일어난다. 미국에서 글쓰기 강의를 한 어느 작가가 쓴 책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내가 목격한 것과 같은 현상이 발생했다. 그녀 역시 고민을 했는데 딸이 이런 조언을 했다.


“엄마, 사람들에게 좋은 글이 아니라 나쁜 글을 써오라고 해봐.”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솔직하고 싱싱한 글들이 쏟아져 나왔다는 것이다. 즉 자기 검열, 남을 의식하는 시선을 벗어던지자 그런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사람들은 글쓰는 것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남앞에 내놓고 평가받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런데 ‘나쁜 글’을 써오라니......그렇다면 막 써보자라는 생각이 발동했을 것이다.


“나는 ‘좋은 글’을 쓴 것이 아니라 ‘나쁜 글’을 썼으니까 욕먹어도 괜찮아. 어차피 나는 ‘나쁜 글’을 쓰려고 마음 먹은 거거든.”


안전한 심리적 도피처를 마련해 놓고 나니까 자기 검열, 강박관념이 사라지고 자기 안의 솔직한 이야기들이 폭발한 것이다.



#5. 어떤 프레임에 갇히면 글이 잘 안 나오고, 남의 흉내를 내게 된다.


책의 글이든, 인터넷 블로그, 브런치 글이든 가끔 재미있고, 좋은 글들을 볼 수 있다. 솔직한 글들이 그렇다. 그런데 어떤 프레임에 갇혀서, 그럴듯한 이야기, 교훈적인 이야기, 남 가르치려는 이야기 등등...그런 부담감을 갖고 쓴 글은 별로 재미가 없다. 물론, 그것도 도움이 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아마 쓰는 사람들은 발랄한 창조성, 자유로움은 느끼지 못할 것 같다. 그럼 글쓰는 게 흥이 안 난다. 아무리 조회수가 많으면 뭐하나? 자기가 흥이 안나면? 남의 평가를 떠나서, 자기가 쓰는 게 좋으면, 자꾸 쓰고, 또 쓰고, 또또 쓰면서 글이 발전하게 된다. 다양한 실험도 해 가면서... 특히 인터넷 글쓰기는 그런 것 실험하고, 도전하는 좋은 장이라고 생각한다. 인터넷 글쓰기는 목표가 아니라 과정 정도 아닌가? 나는 그런 기분으로 쓴다. 과정은 즐겨야 하고, 그래야 뭔가 전진한다. 여기에 쓰는 글 아무리 조회수 많아 보았자, 자기 스스로 피곤하면, 다 허상이 되는 거다. 스스로 만족해야 즐겁게 된다. 그리고 소수나마 잘 통하는 사람들과 소통하는 기쁨이야 말로, 기분 좋은 거다.



#6. 고정관념, 프레임을 적대시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자기 안의 창조성은 자기 굴레를 깨면서 나오는데 각자가 다른 것이 아닐까? 나 역시 늘, 내안에 굳어져 가는 굴레, 프레임을 깨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깬다는 것은 뭔가 있어야 가능한 행위다. 그러므로 자기가 가진 프레임, 고정관념을 너무 적대시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아니 어쩔 때는 만들어야 한다. 고정관념은 싫어.......하면서 그것조차도 만들기를 거부하면, 깰 대상도 없다. 그럼 그것을 깨는 행위, 탈출하는 행위도 발생하지 않는다. 그냥 안개머리가 될 수도 있다.


그런 행위가 발생하게 하기 위해서는 고정관념도 일단은 만들어야 한다. 이왕이면 즐겁게......그리고 스스로 깨야지. 인생은 계속 그 반복이 아닐까? 결국 만들고, 깨는 행위는 계속 동전의 앞뒷면처럼 같이 가는 것이니

차라리 고정관념조차도 애정을 갖고 바라볼 대상으로 보인다.

불교에서는 색즉시공, 공즉시색 하면서 그것이 하나라는 것을 강조하며 초월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라고 하지만 속세인들은 힘들다. 결국 우리는 시간 속에서 색에 빠졌다가 공을 향해 나가고......그러다가 또 색에 빠져 허부적거리다 또 공을 향해 나가고......초월은 못하지만 그런 행위라도 있다면 다행 아닌가?



#7. 일단은 솔직하게 쓰는 것이 가장 좋다.


상상마당에서 여행작가 수업을 하며 숙제를 내준 글 중에, 지금도 인상에 남는 글도 있다.


30대 초반의 여인이 다른 나라를 여행하며 쓴 글이다. 그녀에게는 난생 처음의 해외여행이었다. 그런데 행복하지 않고 쓸쓸했다. 낯선 현지에서 걷는 사람들, 지나가는 개들을 보아도 우울했다. 그 감정을 솔직하고 담담하게 표현했다. 별다른 사건도 없었는데 쓸쓸한 마음이 읽는 이의 가슴에 콕콕 와서 박혔다. 문학적 표현이 어쩌다 있었지만 그리 많지 않았다. 그냥 마음 나오는대로 쓴 것이 느껴졌다.

알고 보니 실연을 당한 후 떠난 여행길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그녀는 제대로 글다운 글을 써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녀 최초의 글이었다. 글을 쓰고 싶어서 배우러 왔다는데, 내가 보기에 그녀는 이미 글을 잘 쓰고 있었다. 더 잘 쓰는 것은 내가 가르쳐줄 것이 아니었다. 그녀 스스로 연마하면 되는 것이다.


“이미 잘 하고 있네요. 이대로, 꾸준히, 계속 쓰면서 남들의 글도 참고하면서 스스로 배워나가세요. 단 조심할 것은 글을 쓸수록 더 잘 쓰고 싶다는 욕심 때문에 ‘자기 목소리’를 잃고 테크닉에 너무 빠지지 마세요. 그때가 함정입니다. 그런 마음이 들 때 제 말을 기억하세요. 진짜 중요한 것은 진솔하게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남앞에 발표하는 글을 쓰면, 우선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뭔가 가식적으로 쓰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 부담감을 떨어버려야, 글이 편안하고, 자유롭게 잘 나오게 된다. 일단 뽑아내는 게 중요하다. 그후, 수정, 보완을 하면 된다. 근데 처음부터 너무 근엄하게, 멋지게 쓰려고 하면 좀 글이 가식적으로 된다.



#8. 다양한 블로그, 브런치 글쓰기


남들의 시선을 너무 의식하는 사람은 자기 마음을 잘 표현 못한다. 자신을 뒤로 숨기고, 그럴듯하고 무난한 말들을 나열하거나, 정보 위주의 글을 적게 된다. 반면에 그것을 극복한 사람들은 여긴 내 일기장이니까, 하면서 마음대로 쓰는 사람들도 있다. 그때 싱싱한 목소리에 빨려든다. 물론 여기서도 진솔함과 가식적인 것 사이를 넘나들게 되지만... 어쨌든 솔직하게 쓰는 글은 나쁘고, 좋고 간에 우선 강렬하다. 답답해서, 화가 나서 혹은 자기 자신을 정리하기 위해서 솔직하게 쓴 글은 힘이 있다.



#9. 막춤, 막글이 항상 좋은 글은 아니다.


솔직하게 막 쓴 글이 좋다고 꾸준히 그것으로 일관하면 정말 ‘막글’이 된다. 가끔 춤판에서 막춤이 사람들의 흥을 돋굴 수도 있다. 춤 못춰도 그냥 흥에 겨워 추는 춤이 더 신바람 날 때도 있다. 그러나 시종일관 막춤만 추면 그냥 막춤으로 끝난다. 그 춤들이 발전해서 일정한 형식과 기교를 갖출 때 우리는 ‘아름답다’고 느낀다. 미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런 글을 쓰려면 수많은 수련을 거쳐야 한다.


나는 지금 ‘글이 잘 나오게 하는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좋은 글을 쓰는 테크닉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테크닉은 나도 잘 모르고, 계속 궁리 중이다. 아마 평생....그럴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일단 솔직한 글을 잘 뽑아내는 것이다. 그것을 갖고 더 좋은 글을 만드는 것은 그 후의 일이고 각자의 일이지 타인의 가르침에 의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글을 뽑아내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일단은 솔직함이다. 남의 시선으로부터 조금 거리를 두고 자기에게 집중하는 것이다.



#10. 블로그 글과 책 원고의 차이


나는 브런치나 블로그 글은 편하게 막 쓴다. 카타르시스의 재미가 있다. 별로 준비하지 않고 나오는 대로 쓴다. 책 원고도 마찬가지다. 초고를 쓸 때는 그런 마음으로 쓴다. 처음부터 진지하게 쓰지 않는다.그냥 흥에 겨워서 쓴다. . 글이 좀 엉망이라도 신경 쓰지 않는다. 그래서 이런 브런치나 블로그 글은 공을 들이기보다는 솔직하게, 나오는 대로 쓴다. 남들이 뭐라 그러든...조회수가 얼마가 되든...라이킷이 얼마나 되든...신경쓰지 안않고...그러다 보면 좋은 아이디어, 글 소재가 나올 때가 있다. 좋은 글이 아니라, 좋은 글 소재.

즉 나는 이곳을 나는 목표가 아니라 과정, 놀이터로 보기에 그렇다. 그렇게 씀으로 인해서 온갖 사소한 글들이 많이 생성된다. 그것은 집을 짓는데 수많은 재료가 된다. 벽돌, 나무가 많으면 나중에 집짓기가 좋다. 다 써먹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브런치나 블로그를 사용한다. 즐거운 놀이터다. 여기서 폼잡을 일 없다.


이런 것을 갖고, 나중에 책쓰기를 하면...그것이 에세이든, 여행기든, 소설이든....그때부터 ‘진짜 글쓰기’가 시작되는데 나는 이 단계가 가장 즐겁다. 그건 함부로 공개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랜 시간을 투자해서 다듬고, 다듬어야 한다. 그건 나만의 사적인 일로, 은밀한 과정을 거치는데, 이때 진짜 글쓰기를 한다. 어느 정도 기획을 하고, 구성을 하면서...쓸데없는 글은 쳐내고, 너무 자기 함몰적 이야기도 쳐낸 후, 각 꼭지 글마다 초점을 드러내고, 양념도 치고, 문학적 향기도 집어 넣으면서 문장과 구성을 다듬을 때 ‘멋진 집’이 탄생하는 기분이 든다. 그때 보람을 느낀다.


물론, 이 브런치 글을 잘 써야, 출판사에서 접근도 하니, 잘 쓰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아마도, 내 생각에, 출판사 사람들도 솔직한 글을 좋아하지, 어디서 본 듯한 그럴 듯한 이야기는 흥미가 안 당길 것 같다. 그리고 책을 내게 되어도, 브런치 글을 그대로 못낸다. 결국 게속 다듬게 될 것 같다. 그러니 부담감 덜어내고 솔직하고, 신나게 쓰는 게 좋은 것 같다. 나는 브런치를 통해서 뭔가 책을 내겠다는 생각이 없기에...즐거운 놀이로 한다.


어쨌든 자기 목적에 따라서 쓰는 방법은 다르니, 자기 기준대로 하면 되는데, 내가 촛점을 맞추는 것은 글을 즐겁게 쓰고, 글이 잘 나오는 거...거기에 촛점을 맞춘 거다. 인터넷 글쓰기의 장점은 책과 달리 분량의 제한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즐거울 수가 있다.



#11. 글의 속성은 결국 다른 분야와도 통한다


그런데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다는 것이 과연 100% 가능할까? 우리는 솔직하다고 무대 위에 속옷 바람이나 나체로 올라갈 수는 없다. 다 어느 정도는 가리고 치장한다. 전번에 쓴 라깡(캉)의 정신분석학으로 ‘글의 치유 기능’을 살펴 보았지만 사람은 어느 정도 다 가식적이다. 자신을 적당하게 가리고, 좋은 점, 바람직한 점을 보여주고 싶어하는 심리가 있다.

그래서 100% 솔직하다는 것은 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아니 자기도 자기 자신을 잘 모른다. 라깡의 상상계, 상징계, 실재계의 관점에서 본 자기는 실체가 모호하다. 내가 언어학, 철학에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이유다. 글이든, 미술이든, 정치든, 사회든 계속 파고 들어가다 보면 이치가 비슷하다.

쓰는 태도는 곧 말하는 태도와 연결되고 그것을 바탕으로 우리의 삶은 전개된다. 다 통하는 것이다. 하여 점점 더 들어갈수록 인간이 무엇이고, 사회가 무엇이고, 언어가 무엇이며, 잘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의 문제가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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