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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들풀생각 Jun 01. 2024

시행착오(Trial and Error)

자본론(Capital)이 노동자 계급의 성경(the Bible of the Working Class)이라 하길래 2011년 3년 15일에 영역본을 덜컥 샀다. 왜냐하면, 뼈에 사무친 없이 사는 노동자이기 때문이었다. ​


정치•경제의 틀이 봉건주의 사회 질서에서 산업 자본주의 사회질서로 그리고 신자유주의 질서로 탈바꿈하면서 노동자의 처우는 많이 개선되었다. 그렇지만 잘 따지고 보면 그게 그거다. 다만, 자본의 물신성 때문에 모르고 지낼 뿐이다. 마름의 노릇을 하는 바지 사장뿐만 아니라, 금융회사에 근무하는 이도,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이도, 택배업을 하는 이도, 생산현장에서 하루하루를 생존을 위해 버티는 이도 모두 다 그렇고 그런 이들일 따름이다.



아무도 제대로 이 책을 읽는 요령을 알려주지 않아 무작정 읽었다. 무식하게 전략 없이 몇 번이나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그러다가 2014년 2월 1일에 제1권을 통독하게 되었다. 물론, 이해한 것이 없어 읽기만 했다. 그런데도 영어로 1,000 쪽을 넘는 이 철학 고전을 모두 다 읽어냈다는 기쁨에 세상을 다 가진 듯했다. 그러고 나서 행정사 시험을 준비하면서 마음의 여유가 없었는데도 출퇴근하는 전철 안에서 짬을 내어 2회와 3회를 정독했다.

3회를 꼼꼼히 읽어 내었는데도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아 독서 전략을 바꿨다. 김수행 교수의 입문서와 같은 책을 여러 권 읽어 봤지만 이 책을 독파하는데 별 도움이 못되었다. 아마 일본학자가 번역한 철학 용어를 우리 거로 빌려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다가 우연히 David Harvey가 쓴 유명한 해설서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영어로 쓰인 이 해설서를 바탕으로 자본론을 함께 읽으며 4회와 5회를 연거푸 읽었다. 여전히 무슨 소리를 하는지를 몰라 David Harvey가 자본론의 논리를 바탕으로 21세기의 경제현상을 짚어간 저작들을 모조리 찾아서 원서로 읽었다. 대략 10여 권이 넘는 듯하다. 그랬더니, 자본론의 체계가 어느 정도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래서, 이제 다시 처음부터 이 책을 1권부터 모두 다시 읽는다. 1권에서 3권까지 David Harvey의 도움을 받으며 모두 읽고 나서 Grundrisse를 포함한 Karl Marx의 저작을 찬찬히 살펴볼 생각이다. David Harvey의 설명에 따르면, Capital I•II•III을 다 읽고 나도 Karl Marx의 사상을 겨우 8분의 1 정도만 이해할 뿐이라 한다. 그래서 절대로 어디 가서 자본론의 내용은 입 밖에도 꺼내지 말아야겠다. 잘못하다간 선무당이 사람을 잡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 과정에서 자본주의 제도 특히 시장경제 제도에 딴지를 건 Karl Polanyi의 The Great Transgormation과 David Harvey의 저작을 포함해 Eric Hobsbawm의 역사서도 다시 꼼꼼히 읽을 생각이다. 이 고전이 이 땅에서 나같이 감정노동을 하며 일하는 사람들의 진짜 성경이 맞는지 내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해 봐야겠다. ​


그동안 이리저리 마구 찌르고 부딪치며 읽은 내용들이 이제야 모두 제 자리를 찾아가는 듯하다. 언제 어디서나 나를 따라다니는 근자감의 바탕이 바로 자본론이 아닐까 한다.


시행착오란, 문제 해결의 중요한 방식의 하나로 A. H. Thorndike가 발견한 학습 원리다. 학습자가 목표에 도달하는 확실한 방법을 모르는 채 본능이나 습관 따위에 따라 시행과 착오를 되풀이하다가 우연히 성공한 동작을 계속함으로써 점차 시간을 절약하여 목표에 도달할 수 있게 된다는 원리다. 보통, 시행착오를 겪다'라고 표현한다.

남들이 그 어디에서도 가르쳐 주지 않은 것들 가운데 반드시 가봐야 할 곳 몇 군데를 쫓아다녀보았다. 철학이나 법학과 사회과학 원서를 읽고 또 읽어 나무와 숲의 관계를 잘 살피며 독서의 즐거움을 느끼는 방법이라든가 제도권에서 비주류 또는 이단으로 불려 제도권에서 가르쳐 주지 않았던 분야의 공부 즉 동학 또는 양명학, 자본론과 한국 현대사를 깊게 파고든 공부라든가, CNN & BBC, The Economist 그리고 Financial Times를 골프의 드라이버, 아이언, 그리고 퍼터 샷에 비유하며 이들을 삼각구도로 하여 자본의 운동 법칙을 연계시키는 따위의 색다른 주제로 많이 덤벼들었다.

앞뒤를 잘 헤아려 깊이 생각하는 신중성이나 꾀가 없이 매우 드물거나 신기한 사람이라는 소리도 꽤 들어 보았다. 스스로 만든 길을 가면서도 과연 내가 가는 길이 맞는 것인가도 의문을 품었다. ​그러나, 밑져봐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무작정 달려왔고 또 달려 나가고 있다. 여러 가지의 도전 가운데 하나를 넓고 깊게 파고 들어가니 나머지 것들도 모두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는다. 한 가지를 제대로 이룩해 보았으니 나머지를 일구는 것은 누워서 떡 먹기다.

내가 겪은 모든 시행과 착오는 또 다른 이에게 큰 이정표가 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오늘도 이 글을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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