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 인생 1일 체험권]
딱 하루만 패리스힐튼으로 살아봤으면 좋겠다.
"여기 있는 거 다 주세요! "
드라마를 보다 보면 아주 고급 명품점에서 쇼핑을 하며 '어머, 이것도 예쁘고 저것도 예쁜데 도대체 어떤 걸 사야 하지?'고민하다가 '아! 도저히 선택할 수가 없어. 그냥 여기부터 저기까지, 아니 여기 있는 거 다 주세요!' 이런 장면을 보게 된다.
'내가 주인공이라면 어떨까'라는 대리만족을 느끼며 혼자 상상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본다.
최고급 대리석과 양모 카펫이 깔린 침실에서 잠을 깨고 멀리 해변이 보이는 테라스에 앉아 모닝커피를 마신 후 에르메스 원피스를 입고 샤넬 가방을 들고 구찌 구두를 신고 호텔 로비로 나간다. 기다리던 기사가 문을 열어준 롤스로이스 뒷좌석에 앉아 가십 잡지를 보며 백화점에 도착하면 VVIP를 위해 양쪽으로 직원들이 늘어서 미소 띤 얼굴로 반겨준다. 언제나 그렇듯 예쁜 것들을 맘껏 산 후 쇼핑백을 양손 넘치게 가득 든 수행비서가 예약해 둔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푸아그라에 치즈, 양파, 송로버섯과 토마토를 뿌려 만든 치즈 스테이크에 상파뉴 지역의 빈티지 프리미엄 화이트 샴페인을 곁들여 점심을 먹고 화려하게 꾸며진 스파에 들러 우아한 클래식을 들으며 온갖 아로마로 쇼핑으로 지친 몸을 마사지한다. 마사지를 마친 후 내어주는 에그 베네딕트를 향이 좋은 홍차와 함께 즐기고 최고의 헤어디자이너에게 머리를 하고 메이크업을 받고 크리스털과 메탈 가죽으로 만들어진 베르사체 드레스에 프라다 구두를 신고 VIP들만 초대받은 디너파티에 참석해 온갖 화려한 요리와 고급 와인들을 즐기고 멋진 밴드가 연주하는 음악을 들으며 사회 각계각층의 유명인들과 잔을 주고받으며 대화를 나누면서 하루를 보낸다.
드라마를 많이 보지도 않는데 상상의 나래는 끝이 없다. 아마 이번 생에는 절대 저렇게 살 수는 없을 거고 저렇게 하루를 살아볼 수 있는 이벤트가 있다 해도 아마 당첨되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만큼의 럭셔리한 라이프지만 전 세계에 체인을 두고 있는 힐튼 호텔의 상속녀이자 셀럽인 패리스 힐턴이라면 아마 저런 생활들이 일상이지 않을까? 그녀는 미국 각지를 개인 비행기로 이동하며 파티를 즐기고 평범하게 살기엔 인생이 너무 짧다며 꾸미고 치장하는 것이 삶의 최우선이라고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폼이 나는 바비인형이 우상이라는 그녀는 상속녀가 되기 위해 자신이 한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힐튼 상속녀라고 불리는 걸 싫어한다고 한다. 태어나 보니 힐튼 상속녀였단 얘기와 매한가지다. 그녀의 반려견들도 힐튼 호텔의 스위트룸에 살면서 다이아몬드로 만들어진 목걸이를 하고 전용 미용사가 때때로 털과 발톱 관리를 해주며 최고급 세프가 매 끼마다 식사를 만들어 준다는 기사를 예전 어디서 본 적이 있어
나는 한동안 다시 태어난다면 하다못해 패리스 힐턴의 반려견으로라도 태어나고 싶다는 우스갯소리를 했던 적도 있었다. 특별하게 태어나 특별한 삶을 사는 정말 몇%의 상류층 인생이다.
나는 어차피 저렇게 태어나지 못했고 원래 타고난
천성 자체가 천만다행스럽게도 내가 갖지 못한 걸 탐내고 욕심내는 편은 아니라 나의 인생이 그들처럼 여유와 풍요가 넘치고 화려하지 않음을 원망하거나 부러워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만약 회사 동료가 천만 원짜리 구찌 가방을 샀다고 한다면 '부러워'란 생각을 가질 수도 있을 테지만 저런 부류의 삶이란 애초에 부러워할 수조차 없는, 감히 상상도 가지 않는 넘사벽이라 더더욱 현실감 있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내 망상이지만 살면서 혹시라도 다른 사람으로 하루를 살아볼 수 있는 '타인 인생 1일 체험권' 같은 걸 받을 수 있다면 딱 하루만 패리스 힐턴으로 살아봤으면 좋겠다!
이왕 시작한 김에 오늘은 '내가 만약.... 했더라면'의 가상체험?, 망상 놀이?를 해 볼 생각이다.
나의 망상이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고
오늘 하루쯤은 상상으로나마 행복을 느껴보는 것도 괜찮을 거 같아 오늘은 내 머리가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현재의 나의 삶에는 없을 상상들을 해보려고 한다.
어릴 때부터 정말 가난하고 불쌍하게 자랐지만 세상 누구보다 따뜻하고 밝은 마음을 가진, 거기다 착하고 예쁘기까지 한 나는 어떤 역경이 와도 포기하지 않고 이겨내는 강인한 사람이다. 낮에는 학교를 다니고 밤에는 편의점이나 주유소에서 알바를 하며 생활비와 학비를 벌고 있다. 아버지는 어릴 때 불의로 사고로 돌아가셨고 어머니와 함께 어린 동생을 데리고 살지만 어머니는 병 때문에 밖에서 일을 하는 건 힘드셔서 집에서 할 수 있는 간단한 부업을 하면서 나라에서 주는 기초 생활수급비로 살아간다. 동생은 어릴 때부터 운동에 소질이 있어서 축구선수가 꿈이고 제대로 잘 배운다면 메시도 부러워할 만한 미래가 보이는 아이지만 이렇게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는 운동을 시킬 수 없었다. 너무 착하고 세상에서 누구보다 가족을 사랑하는 나는 결국 학업을 그만두고 호텔에서 일하며 호텔 일이 끝나면 배달 알바도 하고 대리운전도 하며 동생과 가족을 위해 희생하며 살아간다. 가족들을 위한 삶이라 힘들기는커녕 언제나 행복하다. 하지만 고단한 삶에 늘 피곤했고 언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몸은 허약해져 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오랜만에 쉬는 날. 친한 친구와 함께 이른 저녁을 먹고 헤어져 대리운전을 예약한 고객이 기다리는 빌딩에 도착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순간 그동안의 피로가 몰려와 엘리베이터 안에 타고 있던 딱 봐도 비싸 보이는 고급 정장을 깔끔하게 차려입은 꽤나 잘생긴 남자의 품으로 쓰러져 버렸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눈을 떠보니 어느 병원의 VIP실이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상황에 겨우 정신을 추슬러보니 아까의 상황이 떠올랐고 고객과 약속된 시간은 지나버린 지 오래라 나는 급하게 다시 그 빌딩으로 돌아가야 했다. 병원에 데려다준 사람이 누군지조차 알 수 없었고 얼굴도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이미 병원비는 계산이 되어 있다 했고 나는 '감사했다'라는 짧은 메모를 남기고 병원을 떠났고
그 이후에 반복되는 바쁜 일상을 다시 살아내느라 그날의 그 일은 잊고 지냈다.
남자는 갑자기 자신의 품으로 쓰러진 여자가 당혹스러웠지만 쓰러진 사람을 버려두고 갈 수는 없었기에 자신의 아버지가 소유한 병원으로 여자를 데려갔다. 창백한 얼굴의 여자는 깔끔하고 단정했으며 어릴 적 돌아가신 남자의 어머니를 똑 닮아 있어 남자는 여자에게 첫눈에 반해버린다. 허나 남자는 급하게 처리해야 할 업무가 있었고 잠시 나갔다 돌아오니 '감사했다'라는 쪽지 한 장만 남겨두고 여자는 사라져 버렸다. (마치 12시가 되어 유리구두만을 남기고 사라진 신데렐라처럼) 그 후로도 남자는 엄마를 닮은 그 여자를 잊지 못했고 어떻게 해서든 여자를 찾고 싶었지만 찾지 못한 채 시간이 흐른다.
내가 근무하는 호텔은 재벌기업의 계열사 중 하나였는데 몇 년간 미국에서 경영 수업을 마친 그룹 후계자가 새로운 사장으로 발령이 나 오늘 호텔은 새로운 사장님을 맞을 준비로 하루 종일 분주했다. 더구나 새로 온다는 사장이 재벌 2세인 데다가 젊고 잘생겼다는 소문이 나서 호텔 안 모든 여직원들의 관심이 엄청났다.
사는 것이 최우선인 나는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지 않냐'라는 동료의 질문에도 그저 웃기만 했다.
사장님이 곧 도착하신다는 무전 연락에 전 직원이 로비로 나가 맞이할 준비를 한다. 로비 앞으로 고급 승용차가 멈춰 서고 고급 양복에 반짝이는 구두를 신은, 누가 봐도 한눈에 호감을 느낄만한 외모의 남자가 차에서 내려 당당하고 자신감 있는 모습으로 로비에 들어서 환한 미소로 직원 한 명 한 명과 악수를 나누면서 인사를 하기 시작했고 너무나 완벽한 젊고 잘생긴 재벌 2세로 인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내 차례가 되었고 왠지 모를 수줍음에 고개를 숙인 채 엷은 미소를 띠며 손을 내밀었지만 왜인지 상대편에선 손을 내밀지 않았고 그 모습에 직원들 모두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무슨 영문인지 몰라 얼굴이 새빨개져서 고개를 들어보니 새로 온 사장은 나를 그저 빤히 쳐다보고만 있었다. 너무 당황스럽고 주변의 술렁거림에 갑자기 겁이 나기 시작한 내가 뒷걸음질 쳐서 뛰쳐나가려던 찰나 새로 온 사장이 내 팔을 낚아채며 나를 자신에게로 끌어안아버렸다.......
'이런 상상은 어떨까' 써놓고 보니 마치 웹 소설 시놉시스 같기도 하지만 흔히 꿈꿀 수 있는 '백마 탄 왕자님' 과의 사랑, 어느 날 갑자기 신데렐라가 되는 그런 상상도 꽤나 달콤하긴 하다. 정말 진부한 클리셰의 소설 한 편을 쓴 것 같지만 왠지 여자들의 로망인 거 같아서 상상만으로도 엔돌핀이 마구 생성되는 기분이다. 아마 그래서 웹 소설들이 잘 팔리는 거 같다. 현실에서는 저런 만남 따위는 절대 불가능하다.
직원 한 명 한 명과 저리 인사를 나눠주는 재벌 2세는 없으며 애초에 호텔 메이드 따위와 저런 재벌 2세와의 만남은 불가능하다. 혹시나 내가 너무나 고혹적이고 아름다워서 남자가 눈을 못 뗄 정도의 여자이거나
내 상상 속에서 처럼 재벌 2세가 평생 잊지 못하고 그리워하는 엄마를 쏙 닮은 여자라 해도 해피엔딩은 기대하기 어렵다. 현실에서는 불륜으로 빠지거나 내연녀 정도로 끝날 확률이 높지 않을까 싶다.
'끼리끼리 만난다'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재벌을 만나려면 재벌을 만날 수 있는 환경이거나 형편이어야 한다. 의사를 만나려면 병원이나 못해도 병원 근처에서라도 일을 해야 하고 판사를 만나려면 마주칠 수 있는 환경에라도 있어야 가능하다.
길을 가다가 우연히 마주쳐 첫눈에 반한 사람이
재벌 2세이거나 그럴 일은 불가능에 가깝고 저런 상류층에 속하는 사람들일수록 서로에게 맞는 조건의 상대를 찾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는 식품영양학과를 다녔는데 정말로 신분 상승이 인생의 목표인 같은 과 동기가 하나 있었다.
이 친구 같은 경우에는 외모관리가 철저했던 것은 기본이었고 학점이나 모든 것에서 우수하게 졸업해 대법원 구내식당 영양사를 하겠다 했다.
삼성 본사 같은 곳에 직원식당 영양사로 근무해 '이재용'을 만나는 건 불가능하지만 대법원 구내식당에서 영양사로 근무한다면 판사나 검사를 만날 가능성은 있다는 논리였다.
틀리거나 어처구니없는 논리는 아니었지만 '저렇게까지'라는 씁쓸함이 느껴졌다.
꼭 집어 그 동기뿐만이 아니더라도 많은 돈을 회비로 내는 고급 결혼정보 회사에 회원가입을 해 결혼 상대자를 찾겠다는 친구들도 제법 있었고 재산이 많고 경제적으로 충분히 안정된 사람들의 재혼을 중계하는 곳을 통해서라도 결혼이라는 비즈니스를 성공적으로 이루겠다는 친구들도 있었다.
나는 가끔씩 신데렐라가 되고 싶다던가 어느 날 우연히 아주 멋진 조건의 남자를 만나인생을 뻔쩍뻔쩍하게 살고 싶다는 상상을 하기도 하지만 상상은 그저 상상
딱 거기까지!
태어나자마자 고아원에 버려졌지만 삶을 비관하거나 나를 버린 부모를 원망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사람들을 사랑하며 살던 내게 운명적인 사랑이 찾아온다거나 아니면, 부모님이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나를 버린 거였고 나중에 다시 신분이 복원되어 돌아가니 귀족집안의 유일한 상속녀였다 라는 이런 상상들도 마냥 즐겁다. 이런 만화 같은 비현실적인 상상이 아니더라도 어릴 때부터 꿈꾸던 작가의 꿈을 이룬 것은 물론이고 내가 쓴 책이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초초초 베스트셀러가 되어 하루아침에 유명인이 된 나는 전국을 다니며 빈곤한 형편에도 꿈을 포기하지 않고 노력했던 나의 경험들을 강연하고 작가를 꿈꾸는 모든 사람들에게 최고의 롤 모델이 된다는 상상도 할 수 있다. 아니면 지난밤 퇴근하던 길, 직장에서, 그리고 상사에게서 받은 스트레스 때문에 소주 한 병을 사러 들어간 편의점에서 우연찮게 눈에 띈 로또용지에 평소 좋아하던 숫자를 적어 기분전환 삼아 샀는데 그 번호가 당첨자가 나오지 않아 몇 회나 이월됐던 슈퍼로또의 당첨번호였고 당첨자는 오직 나 하나뿐인, 상상만으로도 심장마비가 올 것 같은 이런 상상들도 너무 즐겁고 행복하지 않을까? 정말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없는, 누군가가 듣는다면 '혹시 뇌를 다친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정신건강이 걱정될 만큼의 상상이라고 할지라도 상상에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저런 상상이 나의 현실을 망칠 만큼의 영향을 끼치는 건 아니기에 아주 가끔은 이런 즐거운 망상에 빠져보는 것도 나쁠 거 같진 않다.
다른 이들보다 많이 모자라고 부족한 삶이지만 지금의 삶을 후회하는 것은 아니다. 난 충분히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살아왔고 내가 살아온 삶의 결과인 '지금'에 불평해 봤자 그건 내가 살아온 삶을 부정하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다만 조금 더 애써볼걸, 조금만 더 힘내볼걸, 조금만 더 노력해 볼걸, 하는 작은 후회들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거 같다. 나보다 더 잘난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누구도 자신의 삶에 100% 만족하며 살 수 없는 게 인생일 거다.
다시 태어난다면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아보고 싶고 다른 부모, 다른 형제, 다른 환경, 모든 게 다른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도 하지만 지금이 없는 다음은 없다. 지금의 삶을 최선을 다해 열심히,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낸 후 아주 먼 훗날 50점짜리의 성적표밖에 받아 들지 못한 삶이라 해도 내게는 100점짜리의 인생이었다면 그걸로도 충분하다.
아주 가끔은 '타인 인생 1일 체험권' 같은 걸 상상하며 즐거워해 보는 것으로도 고단하고 지친 생활에 작은 활력소가 되어 줄 거 같다.
That's not true? (안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