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속삭이기를
니콜라 푸생의 <아르카디아에도 나는 있다>
햇살 가득한 남국의 이상향 아르카디아
양치기 청년들이
묘비의 글자를 읽어내고 있다
'Et in Arcardia Ego'
아르카디아에도 나(죽음)는 있다
호기심에 두려움이 더해져
젊은 부인을 바라본다
온화하고 초연한 그녀의 표정에
더욱 조용해진 정경
죽음의 공포는 간데없네
지난 늦가을
햇볕 좋은 플로리다 동생네에서
야자수 아래
오 남매가 담소를 나누었을 때
그때도 그가 속삭이고 있었다
포트마이어스에도 나는 있다
서울로 돌아온 일주일 후
막내는 그 나라로 떠나다
그림을 보거나
먼데 갈 필요가 없을 것이다
아파트 단지길을 산책할 때도
가만히 귀 기울이면
그의 속삭임이 들릴지 모른다
서울 ㅁㅁ동에도 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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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노트: 고대 시대 배경에 자신의 철학적 사색을 더했던 푸생의 메시지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 일 것입니다. 목가적인 이상향 아르카디아에도 죽음은 의연히 군림하고 있다면서.
루브르 리슐리에관에 이 그림이 걸려있다는데 본 기억이 없습니다. 몇 년 전 방문 때 미술관의 방대함에 압도당해서 그림들을 찬찬히 볼 여유가 없었으니까요. 평화로운 전경에 미모의 선남선녀가 등장하는 그림 제목이 죽음에 대한 것이라 신선한 반전을 느꼈습니다.
Nicolas Poussin < Et in Arcardia Ego> 캔버스에 유채, 1638-9년, 파리 루브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