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고향에 가보고 싶어서
태평양 연어들은 일생일대의 산란을 위해 어느 날 문득 자신들의 유년 시절 민물을 생각할 것이다. 힘든 갱년기 증세가 어떤 시그널이 된 것인지 오십 대 중반에 접어들며 종종 고향 생각이 났다. 땅으로 돌아갈 채비를 해야 하는 인생 2막이라 처음 왔던 때와 장소로 마음이 끌리는 것일까? 그들처럼 대단한 미션은 없지만 자꾸 그리움의 뭉게구름이 피어올라 살았던 고장에 가 볼 궁리를 했다.
삼사 년 터울로 그곳에 내려가 보았다. 고등학교를 서울로 온 이후 처음이다. 초중등을 보낸 광주를 시작으로 고흥과 유아기 때의 섬 거문도까지.
“넌 그래도 집이 그대로 있었네. 나는 동네가 다 없어졌어.”
“여기저기를 다 파헤치니, 어디 대한민국에 개발 안 한 곳이 있어야지!”
친구들 만나서 고향 광주에 다녀온 이야기를 했더니 모두들 부러워했다. 이 모처럼의 프로젝트를 나만 시도한 줄 알았는데 벗들도 꽤 여럿이 옛 고향 집을 찾아가 보았다고 한다. 이 나이엔 모두가 비슷한 마음인가 보다. 짧은 1박 2일을 세세히 적어 수필집에 담고 한참 동안 뭔가가 치유받은 듯한 흡족함을 누렸다. 하지만 또 스멀스멀 더 어린 시절이 생각나기 시작하고, 결국 몇 년 후 초등 1, 2학년을 보낸 고흥군에 내려갔다.
폐교일까 조마조마했는데 아직 건재하여 얼마나 고마웠던지. 책을 낭독하다 모르는 글자가 나와서 건너뛰며 몹시 창피하던 일, 6학년 선배들은 모두가 장성한 처녀로 치마저고리 입고 등교하던 모습, 하교 길에 강아지풀이 무성한 동그란 무덤에서 놀던 기억이 있다.
입학 모교 점암 초등학교는 예상과는 다르게 세련된 모습이었다. 넓은 축구장엔 진짜 잔디가 심겨 있고, 등하교를 돕는 스쿨버스가 대형버스와 봉고, 두 가지다. 어느 사립학교 못지않게.
여기 까지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인데, 서울의 가장 좋은 초등학교라 할지라도 도저히 누릴 수 없는 어마어마한 것이 이곳을 둘러싸고 있었다. 팔영산 자락의 고즈넉한 산들. 녹음이 울창한 작은 산들의 품에 포옥 안긴 주인공의 부요함이 느껴졌다. 상대적으로 빌딩 숲을 배경으로 가진 서울 학교들의 빈한함이.
시골의 허술한 초등학교를 상상하다 뜻밖의 반전에 얼떨떨했다. 모교를 측은히 여기려 갔는데 오히려 모교로부터 가엾이 여김을 받은 것이다. 교실에서 떠드는 아이들 목소리가 들려왔다. 숫자가 많지 않은지 왁자지껄 하기보다는 정겹게 소란스럽다. 이 아이들은 얼마나 편안해 보이는지. 나 자신, 내 아이들을 생각을 했다. 고흥을 떠나 광주로 가고, 다시 서울로 올라왔지만 무엇을 위해 그리 했을까? 서울로, 서울로 그렇게 꼭 갈 필요가 있었을까?
태어난 섬 거문도는 다녀와서 만감이 교차했다. 옛 시절의 그윽했던 첫사랑은 다시 만나러 가지 않아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일 것이다. 인기 있는 관광지로 변해서 천혜의 자연이니 뭐니 하는 것은 기대하지 않았지만.
투명한 옥빛 바다 앞의 뜬금없는 최신식 호텔과 곳곳의 스쿠버 다이빙 안내 간판을 보았다. 동백 터널 숲길, 등대, 목넘어 등을 걸어서 다녔다. 지천에 떨어져 있는 동백꽃을 보며 뭔가를 회상해 보려 애썼지만 어린 시절과 어떤 연결고리를 찾지 못했다. 엄마 찾아 삼만 리 길을 우여곡절 찾아갔는데 정작 맞이하러 나온 분이 의붓 엄마인 심정.
그런데 갔다 오고 나서 어떤 변화가 생겼다. 마음속 동백나무 섬의 선이 뚜렷해지고 색이 입혀진 것이다. 그동안 꿈과 유년 시절이 뒤섞인 단색화는 지우다 만 데생처럼 흐릿했다. 이중섭의 제주도살이 그림에서 볼 수 있는 스케치처럼.
집 근처 큰 우물 앞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어린이와 아줌마, 물고기들. 야생화 꽃물 빨아먹기. 넝쿨이 무성한 나무들과 가끔 염소가 놀래 키던 동산. 등대와 신사까지 이어지는 먼 길. 뚜 하던 뱃고동 소리. 바다 쪽을 바라보며 멸치볶음 만들던 어머니. 체념과 기다림의 표정. 엉덩이가 크고 체격이 우람한 제복 입은 서양인이 언덕 곳곳에서 쌍안경으로 먼 지평선 바라보던 모습.
기억 속에서 보이지 않던 바다의 투명한 청록색과 동백꽃의 진홍빛을 찾아낸 여행이었다. 흑백영화 <카사블랑카>를 총천연색으로 복원했을 때의 감동이 생각난다. 스토리의 풍성함이 더 했었다. 내 회상 속 어린 시절도 다채로운 풍광으로 되살아나니 그 안의 어린 소녀도 덩달아 멋져 보였다.
그동안 신세타령하고 투정하며 가끔 슬퍼하기까지 한 일이 있다. 시(詩) 나라에서 보니 흙 수저로 태어났다고. 원래 노력 안 하는 사람이 주변 탓만 하는 법이다. 문필의 피도 흐르지 않거니와 은하수나 자연과는 거리가 먼 콘크리트 사이에서 살았다고.
이렇게 정갈한 푸르름 속에서 태어나 만 6세까지 자랐다면? 많은 형제의 중간이고 어머니가 힘들던 때라 나를 방목(放牧) 할 수밖에 없었을 테니. 해안 길과 후박나무 숲을 누비며 실컷 놀기만 했을 것이다. 이만하면 글 세계의 금수저가 아닌가?
의붓 엄마와 친엄마가 감춰둔 깜짝 선물을 받았다. 현재 내게 절실한 글쓰기 자존감이다. 진즉에 다녀올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