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천명의 나이에는?
아무래도 인생에서 진정으로 꽃다운 나이는 오십 대가 아닌가 싶다. 공자가 하늘의 명을 알게 되었다는 지천명의 나이인지라 알토란 같은 열매를 맺힌 분들을 많이 뵌다. 하늘이 부여한 최선의 원리를 깨닫고 좌절과 고난의 경험을 통과해서 그런가 보다.
이 나이에 감동적인 여정을 펼친 사람들을 꼽는다면 맨 먼저 훌륭한 문학작품등을 만들어 낸 예술가들이 생각난다.
레오 톨스토이의 작품 중에서 『안나 카레니나』를 가장 좋아하는데 그의 나이 오십 세 출간작이다. 깊이와 풍성함의 이유가 있었다.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도 40대에 시작했지만 대부분 갱년기와 그 후 기간에 걸쳐 완성되었다. 최근 김영하의 수필집 『단 한 번의 삶』을 읽었다. 오십 대에 풀어낸 소설가 자신의 이야기는 그의 유명한 픽션들보다도 더 몰입되었다.
렘브란트의 50대 작품들을 좋아한다. 재정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예술적 역량을 꽃피웠다. 암스테르담 미술관에서 만난 그의 <유대인 신부> <직물 상인 조합의 임원들>은 빛과 어두움의 대비로 원숙한 색채감을 뽐내었다.
베르디는 <아이다>를 비발디는 <사계>를 오십 세 이후 작곡했다니, 이 시기는 웅장함도 경쾌함도 마음껏 만들어 낼 수 있는 나이인가 보다.
예술가와는 또 다르게 일상에서 훌륭한 자취를 만들어 낸 이들이 있다.
인생 2막에 갑자기 찾아온 낯선 손님을 얼떨결에 마주했지만 정성껏 접대해서 섭섭지 않게 보낸 친구. 유방암 수술과 방사사선 치료, 탈모 등으로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씩씩하게 그 모든 것을 감내해 냈다. 밝고, 매일에 충실하고, 운동도 열심이다. 진주처럼 은은하게 빛나며 둘레에 힘을 준다.
글벗이 담소 중에 우연히 내 친정어머니가 미국으로 떠난 나이를 물었다.
"아마 오십 대였을 거예요."
"와우 그 나이에 이민이라면~ 대단하셨네요."
"동생들 공부시키려 헝그리 정신으로…."
집에 돌아와 계산을 해보니 51세 때였다. 51이라는 숫자의 의미가, 그 안에 담긴 모든 것이 그제야 온전히 마음속으로 다가왔다. 나의 완경 나이에 그 험난한 모험을 떠난 것이다. 역기능 가정 (dysfunctional family)의 원인 제공자인 남편과 숙제가 한 아름인 동생들을 데리고서. 낯선 나라에서 이십여 년 간 안 되는 영어로 호텔에서 허드렛일을 하고 운전도 배웠다. 여전히 속 썩이는 짝꿍을 참아내며 자녀들 교육을 완료하고 씩씩하게 가정을 지키면서.
고국에서 무난한 남편과 갱년기를 함께하면서도 힘들다 힘들다 야단법석이었던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 어머니의 천로역정에 비하면 나의 갱년기 후 삶은 산들바람이 불어오는 산책길 정도였는데.
친구의 본보기는 오십 대 이후 달갑잖은 질병이 찾아오더라도 침착하게 맞이할 용기를 준다. 억척 여성 어머니를 생각하면 갱년기 후 시작하지 못할 일도 없어 보인다. 오십 나이엔 얼마든지 새로운 삶을 시작해도 좋다고, 마음 뛰는 도전까지도 가능하다고 말하는 것 같다. 태평양을 건너 간 이민에 버금가는 일이 얼마나 더 있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