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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램즈이어 May 07. 2024

에필로그

꿈과 체력 사이에서

 오십 대 초반 혹독한 갱년기 증상이 다스려진 후 이런저런 것을 부지런히 배우러 다닐 때 나름 나 자신이 뿌듯했다. 열심히 사는 모습이 자녀들에게도 본이 되겠거니 했는데 웬걸, 어느 날 막내가 저녁식탁에서 심각하게 이야기를 꺼냈다. 당시에 아들은 달리기를 시작해서 마라톤에 이어 울트라 마라톤 대회도 나가던 때다.

“엄마는 밑천도 하나 없이….”

“무슨 밑천?”

“체력도 없으면서 뭘 그리 배우러 다니세요? 운동을 좀 하셔야지~

“운동하잖아? 수영도 하고.”

“그 쬐끔요? 근력운동도 하고 몸을 좀 만드셔야 해요.”

 그때는 단칼에 그 조언을 무시했다.

‘너는 달리기에 빠지고 엄만 엄마 좋아하는 것에 빠져 있는 거야.’ 이렇게 마음속으로 생각하면서. 오십 대를 다 보내고 나니 새록새록 그때의 대화가 떠오른다. 아들이 옳았다는 결론에 이르며 진정 중요한 것을 빠트렸거나 우선순위를 잘못 정했다는 느낌이 든다.

 정신을 차리고 헬스장에 가보니 새로운 세상이다. 나보다 10년 정도 나이 드신 분이 입이 딱 벌어지는 무게를 사뿐히 들고 계시다. 헉헉거리며 맨몸 스쿼트와 런지 하는 나를 귀여운 듯 쳐다보며 바벨을 어깨에 메고서도 가벼이 해낸다. 외모와 자세도 훨씬 젊어 보이며.

 작년 가을부터 제프 정 작가님 글에 도전받아 조금씩 달리기 시작했다. 원래 계획은 우선 1.5 킬로까지 늘리고 100일을 채운 후 글벗들에게 보고하는 거였다. 꿈은 원대했다. 처음엔 아파트 근처 소공원에서 시작해서 나중에는 안양천에도 가보자. 그 후 몸에 배면 배대웅 작가님 말씀 따나 하루키가 뛰었던 일본 교토에 진출하고, 보스턴의 찰즈 강변도 언젠가 뛸 수 있지 않을까? 그분이 부러워했던 포니테일 머리를 하고서.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한 달 후 여행으로 중단되고 그 후에는 어지러움을 느꼈다. 생애 첫 혈압 약까지 먹으며 새 마음으로 시작하는데 이번에는 겨울이 찾아왔다. 추위를 핑계 대다가 새해를 맞아, 구정에 다시, 브런치 북에 언급한 것을 기점으로 여러 번 새 출발 했지만 아직도 제자리걸음이다. 주 3~5일만이라도 뛰려는데, 목표 달성이 안 되고 조금 뛰다 쉬다가를 되풀이하고 있다.   

 잘 안 되는 달리기를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를 곰곰 생각해 보았다. 일종의 허영심이 아닐까 한다. 부와 멋짐을 과시하고 싶어서 명품으로 치장하는 사람처럼. 자신이 운동하는 사람으로 (athletic woman) 특히 달리는 사람으로 (runner) 비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것이다. 사실은 그 반대이기 때문에.

 달리기 말고도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하고픈 일, 배우고 싶은 것들이 불쑥불쑥 튀어 오른다. 70대에 사랑에 빠졌다는 괴테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마음은 꿈일까 주책일까? 헤아리며 망설일 때 귀한 글벗들은 늘 내편이 되어 준다.   

   

 어느 날 "지금이야!"라는 감정의 소용돌이와 맞닥뜨려 "무엇이든 어디든, 괜찮아!" 하는 결론을 얻었다.

  호랑 작가님의 『지금이야, 무엇이든 괜찮아』에서


 꿈을 펼치기 위한 시간은 지금이다. 나중에가 아니라.  윈지 작가님의 『나는 공부하는 엄마다』에서   

  

 연재 북을 시작하며 갱년기 후 중년의 은은하게 빛나는 삶을 써 보겠다고 했는데 끝맺으려니 별로 빛난 것이 없다. 하지만 지금부터 체력을 보강하며 (아들 말마따나 밑천을 좀 마련하며), 나이듬과 평화 협정을 고, 남편 조언대로 일 벌이지 말고 몇 가지에만 집중한다면….

 이제부터라도 진정 빛나는 삶이 꾸려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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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인 사정으로 <갱년기 후 빛나는 삶> 연재를 조기 종료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읽어주시며 격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문의 그림: Carlo Caraceni <St. Cecilia & the Angel> 1610, oil on canvas 로마 바르베리니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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