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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램즈이어 Apr 15. 2024

다이내믹 청소년 오케스트라

머슴과 악당

3. 머슴  

   

 음악회 농사를 위해 머슴이 년 중 해야 할 일과 연주 당일의 연출은 다음과 같다. 믿을만한 어머니들 서너 명과 함께 일하지만 모든 것에 세세히 관여하고 마지막을 체크해야 한다.   

 

 그전(前)해 12월 이전까지: 콘서트홀의 대관과 날짜 결정

 1-2월: 새로 입단할 멤버들 어머니 면담. 오디션 안내

 3-4월: 연주 곡 결정. 편성에 따른 편곡 의뢰

        성악 쪽 연주자 섭외하여 자선 음악회 프로그램 결정

        팸플릿 제작 의뢰

 5-6월: 그 해 참여자 명단 작성. 학부형 모임. 연습 날짜와 간식 상의

        편곡자님께 악보 건네받아 활 표시

        악보와 팸플릿 배포 / 7월 공주 갈 버스 예약

        연주 홀과 연습 홀 좌석 배치도 작성

 6월 말~ 7월 중순: 세 번의 일요일 오후 3시간 연습시키기  

 7월 말: 빈민병원 후원 음악회와 여름 공주 산골 음악회 공연.

           연주회 후 봉사증명서 작성 및 배포

 9월: 지난 연주회에 대한 소감문 모집/ 회보 발간

 10월-11월: 크리스마스 캐럴 곡 편곡 의뢰 및 악보준비  

                겨울 새로 들어 올 단원 면담 및 오리엔테이션

                공주 버스 예약. 공주 성탄 연주회 프로그램 준비

 12월 셋째 주 일요일: 한 번의 연습 모임,

 12월 25일: 공주 크리스마스 음악회 공연

 12월 마지막 주 일요일: 드물게 송년 자선 음악회 (아프리카 어린이, 중동지역 여성 구호)     


공연 당일의 연출: 5시간 전: 연주 홀 도착, 플래카드 설치

                                     강당 기술자와 소통, 마이크 상황 점검

                 4시간 전: 리허설 의자 세팅, 다른 초대 연주자 터치

                 3시간 전: 지휘자님 도착, 1시간 반 정도 리허설 지켜보기

                          그 후 아이들 간식 먹이기

                 1시간 반 전: 다른 연주자들 리허설 도움, 프로그램 전체 리허설 조율

                 15분 전: 아이들 자리에 앉히고, 입장 순서 오리엔테이션   

   

4. 악당   

  

 사람들은 눈치채지 못했지만 겉으로 자상해 보이는 단장은 머슴에 이어 악당 일도 하고 있었다. 보면대 잊지 말아라, 연습 좀 더 해라 등등의 잔소리 악역 말고도.

 초창기 시절, 멤버가 열 명 남짓했을 때는 가족 같은 오붓한 분위기라 음악회 마치고 뒤풀이를 했다. 아빠들도 와서 어른끼리 식사하고 단원들은 저희끼리 담소하도록 장소를 마련해 주었다. 후폭풍이 얼마나 클지는 까마득히 모르고서. 8월 한 달 잘 쉬고 2학기가 시작되었을 때 한 여학생 학부형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딸아이가 울고불고 난리라는 것이다. 사연인즉 자신의 딸은 어느 남학생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는데 단원들 사이에서 그 남학생을 좋아한다고 소문이 났단다. 확인해 보니 아주 사소한 어떤 대화가 발단이었다. 참으로 난감했다. 아무개 여학생은 아무개 남학생을 좋아하기는커녕 전혀 관심도 없다고 크게 발표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 후, 다음 공연부터는 어떠한 모양의 애프터 모임도 만들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오로지 봉사활동 공연 준비에만 집중하고 사교 모임이 되지 않게 조심하자, 썸 타는 일을 원천봉쇄하리라 하며.

 관현악단의 앉는 순서는 실력 순이지만 연주 기량이 엇비슷하면 아이들 상황에 맞추어 앉힌다. 자리배치도를 만들 적에 뭔가 수상쩍은 낌새의 아이들은 일부러 흩뜨려 놓았다. 늘 사랑 편에 서는 사람으로 자처했건만 이때만큼은 어떠한 분홍 싹도 허용하지 않을 기세로. 아이들이 알았더라면 악당 중의 악당으로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핑크빛 감정은 악독한 작전들을 사뿐히 넘어가는 법이다. 해마다 얼핏 얼핏 어떤 주파수가 감지되곤 했다.

 드럼 주자는 <오페라의 유령>처럼 비트가 중요한 곡이 있을 때만 뽑았다. 어느 해 가녀린 남학생이 입단해서 결석도 잦고 친구도 없이 귀퉁이에서 조용히 두드려대곤 했다. 드럼 실력은 뛰어났으나 나 보기엔 회색의 바탕 무늬처럼 눈에 띄지 않는 소년이었다. 어느 날 제2 바이올린 여학생 어머니가 물어왔다.

 "대단히 멋진 드럼 주자가 들어 왔대메요?" 처음에는 누구를 지칭하는 건지 잘 몰랐다.

 "평범한 학생인데요?"

 "저희 애가 아이돌급이 왔다고 자랑했어요." 기이한 일이었다. 녀석이 그렇게 멋지게 어필했다는 것도 그렇고, 전혀 겹치지 않은 동선의 그 여학생 눈에 들어온 것도 그랬다. 분명히 지휘자 손끝에 따라 열심히 활만 긋고 있었는데, 어떻게 저 멀리 앉아있는 옆줄 뒤쪽의 남학생을 살필 수 있었을까? 사춘기 아이들에겐 초능력 안테나가 있나 보다.

 악당의 잔꾀는 오래가지 못해서, 마지막 해에는 지순한 사랑의 힘에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콘트라베이스 남학생과 플롯 여학생이 연습 기간 중에 사귐 며칠차가 된 것이다. 두 녀석이 내뿜는 큐피드의 후광은 순도가 높아서 떨떠름한 표정의 악당도 자꾸 바라보곤 했다.

 썸 방지 작전이 먹혀서 그 시절 성실히 그저 연습만 한 아이들은 요사이 뜬금없는 연락을 해오곤 한다. 최근에 한 남학생 어머니가 전화로 한 여학생 근황을 물어왔다.

“수민이 요사이 어디서 뭐 한대요?”

“서울에서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답니다. 갑자기 왜요?”

“아니, 저희 아들이 무척 궁금해해서요. 녀석 왈 그 시절 수민이가 제일 예뻤대요.”

 그 남학생이나 수민이나 얌전히 바이올린만 켜던 아이들이었다. 이십 대 중반이 다가오니 사춘기 때 마음속으로 작은 사랑을 키웠던 상대가 불현듯 그리웠나 보다.

열심히 썸을 막았던 그때의 미안함 때문에 지금에라도 녀석들 사랑의 다리를 놔줘야 하나?  

공주 소망공동체 산골음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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