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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오케스트라 단장

아들과 봉사활동 하다가

by 램즈이어

삶이 건조하고 힘들면 추억을 먹고살기도 한다. 대단한 연애나 성공은 해보지 못했으나, 달콤한 초콜릿처럼 가끔 꺼내서 맛보는 어떤 장면이 있다.


장소는 아담하고 울림이 좋은 S 아트홀. 풋풋한 십 대 남녀 청소년들이 젊은 지휘자님 인도 하에 관현악곡을 연습 중이다. 나는 몇몇 학부형들과 함께 뒤편 의자에서 곡들을 감상한다. 교향곡도 있고 빠른 행진곡과 찬송가도 있다. 가장 기다리는 곡은 영화음악이다. 영화 <old boy> <캐리비언의 해적> <빠삐용> <닥터 지바고>등 이름난 것은 거의 다루었다. 녀석들은 옛 영화를 거의 모른다. 순전히 우리(학부형과 나)가 즐길 심산으로 곡을 선정한 것이다. 선율에 잠겨 그 OST가 유행했던 대학시절로 잠시 시간여행도 해본다. 청소년들이 관현악 생음악으로 선보이는 멜로디는 얼마나 큰 호사인지…. 한 녀석이 가족행사로 허겁지겁 늦게 도착한다. 마음이 바쁜 아이를 진정시키고 보면대와 함께 빈자리에 앉힌다.


‘Y 청소년 오케스트라 단장’으로 관현악단을 꾸리며 학생들을 연습시키던 때의 이야기다.


1. 오케스트라의 시작

취미로 첼로를 켜는 막내가 중 3 여름방학 때 몇 명의 친구들과 장애인 공동체인 공주 소망의 집으로 연주 봉사를 갔다. 남편이 청년 시절부터 교류하던 곳으로 그전 까지는 우리 가족이 해마다 방문했었다. 이듬해 함께 하고자 하는 아이들이 여럿 더 생겨났다. 그즈음 지인이 베트남 오지에 빈민병원을 세워서 그곳을 돕고 싶었다. 마침 어느 강당을 빌릴 수 있어서 조촐하게 자선 음악회를 열었다. 열 명 남짓한 앙상블은 해가 거듭하며 인원이 늘어 나중에는 얼추 오케스트라의 편성을 갖추었다. 매년 여름방학 때 빈민병원 후원 음악회, 두 번의 공주 연주회를 기획하고 연출하다 엉겁결에 단장이 되었다.

4년 후 막내는 대학에 들어갔지만 남아 있는 학생들을 위해서 한 두 해 더 수고하기로 했다. 아들이 떠난 오케스트라는 흥미가 없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십 대의 청순한 녀석들에게 매료되어 코로나가 터지기까지 10년을 더하였다.

현악기가 많아야 (특히 바이올린이) 전체적인 소리가 좋기 때문에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는 열심히 섭외했다. 관악은 처음엔 플롯, 오보에, 클라리넷, 색소폰 위주였는데 바순과 호른이 들어오더니 나중에는 트럼펫, 트롬본, 유포니움의 금관까지 갖추었다. (그런데 금관악기는 다루는 아이가 흔치 않아 늘 드문드문이다.) 구성원들도 점점 다채로워져서 국내 말고도 중국, 베트남, 캐나다, 유럽, 미국에서 공부하던 중고교생들이 합류했다.


2. 오케스트라의 번성

막내는 어려서부터 연습을 제대로 시키지 못해 첼로 실력이 좀 엉성했다. 합주여서 다행이었는데 가며 가며 아마추어임에도 연주 실력이 높은 아이들을 많이 만났다. 그 녀석들은 하나같이 공부도 잘했다. 학업이든 악기든 꾸준한 훈련이 답인가 보다.

Y 오케스트라에 대한 입소문이 났는지 점점 실력 좋은 바이올린 주자들이 들어왔다. 그때는 한국이든 외국이든 봉사활동 내역이 대학입시에 중요해서, 악기를 다루는 아이들에게 봉사하기에 매력적인 곳이 된 거 같았다. 예나 지금이나 입시와 관련된 일이면 어머니들의 관심이 뜨겁다. 어느 해에는 두 학교의 악장이 동시에 들어와 어느 학생을 악장으로 앉혀야 할지 행복한 고민을 하기도 했다.

숫자가 가장 많은 해에는 43명이나 되어 촘촘히 앉느라 아이들이 현악기의 활을 제대로 긋지 못했다. (공연용이 아닌 세미나용의 그 강당은 무대 면적이 작았다.)

몇 해 동안 음악을 전공하는 예고생들도 참여한 적이 있다. 이 아이들은 몇 명만 있어도 전체 관현악의 소리가 확 크고 예뻐진다. 너무도 고마워서 회비도 할인해 주며 극진히 모셨다. 전공자들의 입단은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에 여간 영광스러운 일이 아니라 사방 데 자랑을 많이 했다. 다른데 연주 봉사 할 곳도 마땅찮고 봉사정신도 훌륭해서 들어왔을 터다.

어느 날 부천 시향 연주회에 갔다가 한 가지 모습이 확 시야에 들어왔다. 소리보다는 편성을 눈여겨보다가, 여성의 비율이 월등히 큰 것을 발견한 것이다. 서울 시향은 진즉에 그런 줄 알았는데, 예고 교내 오케스트라 등 다른 관현악단도 비슷하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그러면서 Y 악단의 어떤 장점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남녀 비율이 동등하다.

오케스트라 단장이라는 직함은 자랑스러웠지만, 그 단어의 힘 있고 고상한 뉘앙스는 단원을 선발할 때뿐이었다. 그 후에는 곧장 을의 위치가 되어 사람들을 섬기며 동분서주하는 머슴이 되어야 했다.


어느 해의 리허설 광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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