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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어 반에서 생긴 일

잊혔던 꿈의 발견

by 램즈이어

## 「여행에로의 초대」를 외우고서


선생님이 보들레르의 시 「여행에로의 초대」를 외워오라 했을 때 숙제를 해온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다른 급우들은 젊은 날의 재미가 커서 학원 숙제에 시간을 낼 수 없었나 보다. 내게는 이 숙제가 매력적으로 다가와 작심하고 동네 언덕을 오르내리며 읊었다. 잘 외워지지 않으므로 수없이 반복하며 읽다 보니 행간의 의미들이 더욱 풍성히 다가왔다. 저절로 영화처럼 총천연색 장면들이 그려지면서.

그곳에는 오직 질서와 아름다움,

호화, 고요 그리고 쾌락뿐

Là, tout n'est qu'ordre et beauté,

Luxe, calme et volupté. (각 연 말미에 되풀이되는 시구)

고갱의 그림에서 본 듯한 원시적인 유토피아의 나라, 용연향의 어렴풋한 냄새, 호화로운 천장, 깊숙한 거울이 있는 동방의 어느 숙소가 떠오르고, 운하 위의 잠든 배들은 방랑 끼가 있어, 아무리 작은 소망이라도 들어준다니, 모든 걸 내던지고 여행을 떠나고 싶어진다. 저무는 태양이 물들이는 벌판과 마을은 히야신스 보랏빛과 금빛으로 신비한 색채의 향연을 펼치고. (해설가에 따라 어떤 은유가 내포되었다고도 하는데 나는 글 그대로의 분위기가 좋다.)

십 대 여학생처럼 떨며 클래스메이트들 가운데서 외웠는데, 선생님의 칭찬도 듣고 해냈다는 뿌듯함에 흥분이 되었다. 보들레르의 시를 더 살펴보니 유명한 「앨버트로스」 말고도 「키 작은 노파들」 「취하십시오」 「교감 (만물 조응)」등 대단한 것이 많았다. 그동안 시인에 대한 편견으로 감성이 풍부한 시를 놓치고 살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일로 젊은 친구들을 향해 우쭐하는 마음이 생겼다. 새파란 남학생 급우들이 「교감 (만물 조응)」이나 「여행에로의 초대」등의 시(詩)가 너무 어렵다고 툴툴대는 것이다.


"도대체 뭔 말인지 모르겠어요."

‘이렇게 쉬운데…. 뭐가 어려운 걸까?’

철학 전공 등으로 유학을 앞둔 실력이 좋은 친구들이라 뜻밖이었다. 문학 쪽을 덜 좋아했을 수도 있고, 나이 듦으로 얻을 수 있는 이해력이 딸려서 그랬을 수도 있겠다.

대학 때 교양 과목으로 영문학개론을 들은 적이 있다. 어느 날 담당 교수가 영시(英詩)를 소개하며 암송 숙제를 내주었다. 비교적 짧은 워즈워드의 「수선화(Daffodils)」였다. 그때도 다른 친구들은 부담스러워했지만 나는 내심 기뻤다. 그토록 기다렸던 다음 수업 날.


“지난 시간에 내준 숙제 한 사람?”

“......” 모두들 조용.

“「수선화」 외운 사람 없어요?” 교수님은 계속 다그쳤다.

“......”


손을 들까 말까 망설이는데, 자리에 앉아있는데도 가슴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아무도 숙제를 안 한 것은 문과대 교수님께 예의가 아닌데….’

우리 과에 대한 안 좋은 이미지가 심기 울까 봐 용기를 내보려 했지만 도무지 손이 들리지 않았다. 남학생들을 의식해서였을까? 뭐가 그리 부끄럽고 쑥스러웠는지. 교수님은 내 마음도 모른 채 실망감 가득 우리의 무성의와 나태함을 질책하고, 그날 이후 「수선화」는 나의 심리적 미해결 과제가 되었다.

프랑스어 반에서, 애써 외운 시를 낭송하고 나니 대학 때의 한(恨)이 풀어진 느낌이었다. 삼십 년 후에 비슷한 상황이 연출되며 치유의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호숫가 미풍에 너울거리는 한 떼의 황금빛 수선화가 내 침상에서도 비로소 고독의 축복이 되면서.

## 고 3 때 문학을 전공하려 했다니

“마음껏 상상을 했네. 소설가(ecrivain)예요?”

어느 날 선생님이 우리 반에서 불어실력이 제일 좋은 남학생에게 농담처럼 던진 말이다. 선생님 질문에 그가 정답과 별 상관없는 불어 문장을 오래 구사하자, 요사이 한국말 농담 ‘소설 쓰시네’와 비슷하게 이야기한 것이다. 이때 선생님이 급우에게 말한 작가(ecrivain)라는 프랑스어 단어가 내게 몹시 새롭게 다가왔다. 오랫동안 꿈꾸던 단어로 여겨지며 무엇인가가 내속에서 꿈틀 했다.

그게 뭘까?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고 3 때 일이 떠올랐다. 문학에 심취하여 불문과에 가겠다고 아버지께 말씀드렸다가 엄청난 반대에 부딪친 일이다. 집안 형편이 빠듯해서 결국 실용학문을 하는 쪽으로 순종했다. 문학을 공부하고 작가가 되고 싶은, 잊고 있었던 그때의 갈망이 떠올랐다. 왜 그동안 까마득히 잊고 있었을까?

그날 저녁 작가가 되고 싶었던 젊은 시절의 꿈과 다시 만났다. 중년의 나이지만 다시 문학소녀가 되어보자. 아니 마지막 줄에 서서라도 천천히 한번 문학의 길을 따라가 보자 하는 생각을 했다.

(실제로 수필을 쓰기 시작한 것은 이 수업 후 몇 년 지나고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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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의 그림 사진: Paul Signac <Venice, the Pink Cloud> 1909, Albertina, Vien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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