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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램즈이어 Apr 22. 2024

내 생애 최고의 직함

박수 칠 때 떠나다

5. 단장의 자질 

   

 청소년 오케스트라 단장으로 관현악단을 꾸리며 자선 음악회를 연다고 하면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갖는 추측이 있다. 개인적으로 큰돈이 들어갈 것이다라는 것과 음악에 조예가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오히려 그저 몸으로 하는 일이었다.

 자선기금 조성과 운영 경비는 단원들의 회비로 충당해서 사적인 비용이 들지 않았다. 중고교생들의 자선 펀드 모금은 규모의 크고 작음에 의미가 있지 않기 때문에 회비도 크게 매기지 않았다. 지출을 하고 남은 부분을 빈민병원과 장애인 공동체에 기부했다.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조예가 깊지 않은 것이 오히려 관현악단을 키우는 밑거름이 된 것 같다. 귀가 예민하지 못한 탓에 아이들이 어떤 연주를 하든 좋다 좋다 하며 흡족해했다. 고슴도치 어머니 심정으로 그저 사랑스럽게 바라보다가 현실감을 찾은 때가 있다. 학부형 중에 음악을 전공한 어머니들이 들어오면서 정확하지 못한 음정들을 하나하나 짚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음악 실력이 높았더라면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의 흠 많은 소리를 견디지 못하고 중도 포기하며 진득하게 키워가지 못했을 것이다.

 음악적인 기량보다 인간 경영 (human management) 능력이 더 필요하지 않았나 싶다. 사람들과 소통하며 협상이나 설득하는 일이었다. 칠 남매의 중간으로 늘 싸우는 부모 아래서 자란 것, 오 남매의 막내며느리로 시부모와 삼십여 년 함께 산 것 등이 밑거름이 되지 않았을까 한다.    

  

6. 공주 산골 음악회     


 14년간 악단을 운영하는데 가장 큰 힘을 준 사람은 장애인들이다. 겉으로는 우리가 공동체를 방문해 주는 것이지만 그들에게 받는 것이 훨씬 많았다. 진심 어린 환대와 순수하게 기뻐하는 모습은 오히려 우리를 위로해 주었고 삶에 대한 어떤 교훈도 안겨 주었다.

 공주 소망공동체에는 논둑과 작은 산들로 빙 둘린 정원이 있다. 너무 더울 때를 빼고는 야외 음악회를 열었는데 울림이 없어 소리는 약했지만 운치가 있었다. 하늘에는 커다란 구름이 두둥실, 석양 무렵 산골 마을의 밥 짓는 연기 사이로 오케스트라 선율이 퍼져 나갔다. 색소폰 솔로가 <Love me tender>의 구수한 곡조를 선보이면 관객들이 흡족해서 “와우, 멋진데!” “섹시한데!” 하며 추임새를 넣었다.  

 그곳 친구들은 왈츠가 나오면 부드럽게, 빠른 음악이 나오면 경쾌하게 절로 춤을 춘다. 얼마나 분위기를 잘 맞추는지. <다뉴브 강의 잔물결>에서는 흐르는 선율에 따라 우아한 숙녀의 손놀림으로 큰 원을 그리고. <미션 임파서블> OST가 나오자 한 장난꾸러기는 권총 겨누는 시늉을 하며 탐 크루즈가 되었다. <루돌프 사슴코>가 나오면 모두들 유치원생이 되어 썰매 끄는 율동을 한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연주하면 또 어떤 친구가 살며시 나와 마이크를 잡고 I am dreaming over~ 하며 빙 크로스비의 보컬을 흉내 낸다.

 그때의 십여 년은 해마다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아니길 바랐다. 성탄절이 다가오면 눈이 올까 조마조마해서 ‘제발 눈이 안 오게 해 주세요.’ 하는 기도가 나온다. 소망의 집 가는 왕촌 산길이 협소해서 두 대의 대형버스가 커브 길을 가는 내내 조마조마하기 때문이다. 성탄 음악회를 끝내고 귀경하면 밤 열 시 정도가 되는데 아이들이나 학부형이나 뿌듯한 마음에 전혀 피곤한 걸 몰랐다.


7. 박수 칠 때 떠나다 

    

 오케스트라 운영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생각하곤 했다. 일이 많아서 다음 단장 직(職)을 누구에게 부탁하기가 예매했는데, ‘박수 칠 때 떠나라’라는 말처럼 되었다.

 코로나가 시작된 2020년에 <핀란디아> <왕좌의 게임> <대부> 등 그해 아이들 악기 구성에 맞춰 편곡까지 마친 곡들을 펼쳐보지 못하고 중단해야 했다. 아이들 대학 추천서 쓰는 일은 그 이후에도 2년 정도 지속했다. 가정 형편이 빠듯한 몇 아이들이 커다란 퍼센트의 장학금을 타며 미국 대학에 붙고, 서울의 명문대에도 진학해서 보람되었다.

 학생들을 못 본 지 몇 해가 되었다. 자기들끼리는 페이스북이나 인스타에서 교류한다고 한다. 초창기 멤버 중에서 결혼하는 녀석들이 하나 둘 생겨나기 시작했다. 예식장에서 늠름한 사회인이 된 멋진 신랑과 마주할 때 “단장님!”하고 부르면 얼떨떨하다. 어느새 낯선 단어가 돼버렸는데 곧 입 벙긋 엄청 기분이 좋다.


‘아! 내가 오케스트라 단장인 적이 있었지.’

 


공주 산골 음악회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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