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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래잡기

59세 때에

by 램즈이어


지난해부터 나를 잡으려고 좇아오는 술래가 있다. 온갖 방도를 써서 이리저리 도망 다녔지만 포위망이 점점 좁혀지고 있다. 설날이 있는 2월 중순이 되면 나는 옴짝달싹 못하게 되어 있다. 어차피 잡힐 수밖에 없는 것을 안 잡히려고 발버둥 치며 너무 힘을 뺀 것 같다.

회갑 녀석이 술래가 되어 작심하고 날 잡으려 든 것은 작년 2월부터였다.

“아내가 고교 친구들과 뉴질랜드 회갑여행을 가는데….”

남편이 시댁 단체 카톡방에 띄운 문자를 보고 나는 기겁을 했다.

“회갑도 안 됐는데 회갑여행 어쩌고 하면 어떡해요? 그냥 친구들과 여행 간다고 해주세요. 회갑 자 빼고.”

내 생일은 음력으로 12월 말이라 정확히 회갑까지는 아직 1년이 남아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정색을 하자 남편은 의아해하며 알았다고 했다.

오십 대 중반 무렵 육십 넘은 선배가 회갑 얘기를 한 적이 있었다.


“나는 육십 되던 해 너무 충격이 커서 한참 받아들이질 못했어. 한 이삼 년 지나고 나서야 적응이 됐지.”


이 말을 들으며 나는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서 충격을 최소화하리라 다짐했었다. 그런데 잘 준비하기는커녕 그때부터 점점 나이에 민감해지기만 했다.

어느 모임에서건 조금이라도 젊어 보이려고 애를 썼는데 가장 신경이 쓰였던 곳은 이삼십 대가 많은 프랑스어 학원이었다. 자기소개 시간에 나이를 좀 더 적게 보이려고 미리 세심하게 준비했다.

“큰 아이는 대학 졸업했고 둘째는 대학생이에요.”


사실 큰아이는 좀 이른 결혼으로 이미 장가를 갔고 둘째는 군대까지 마치고 대학원에 다니고 있는데 두리 뭉실 이야기한 것이다. 몇 살이라도 젊게, 오십 대 초반으로 보이고 싶어서였다. 젊은 사람들은 오십 대 초반이나 중반이나 별반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내게는 그 몇 년이 아주 중요했다.

비슷한 나이의 환자가 다녀가고 나면, ‘저이보다는 내가 조금 젊어 보이지 않을까?’하는 바람으로 진료실 구석의 거울을 한 번 더 들여다보기도 했다.

하루는 남편이 저녁을 먹으면서 그날 오후에 있었던 일을 덤덤히 이야기했다.


“오늘 어떤 아이가 나보고 할아버지래.”


남편은 크게 괘념치 않는 눈치였는데 나는 호들갑을 떨었다.

“어머머! 당신 동안(童顔)인데 왜 그러지? 요사이 머리숱이 좀 듬성해져서 그런가?”

겉으로는 위로 비슷한 말을 했지만 내심 통쾌했다. 남편이 보통 때는 제 나이보다 한참 젊어 보여서 사람들에게 후배냐 시동생이냐 하는 애기를 자주 들어왔다. 결정적인 순간에 한방 날려준 그 어린이가 고맙기까지 했다. 별로 서운해하지도 않는 남편에게 기어코 한마디 하고 말았다.

“그래도 난 아직 할머니 소린 안 들었는데….”


올해 초가 되면서 유독 나이 듦에 대한 시들이 눈에 띄었다. 염색은 가끔 하지만 아직 백발이 성성하지도 않은데 옛 시인의 탄로가(歎老歌)가 구구절절 마음에 와닿았다. 철없이 젊은 ‘마음’을 나무라는 서경덕의 시조를 읽으며 혼자 맞장구를 치기도 했다.


마음아 너는 어이 매양에 젊었는가.

내 늙을 적이면 넨들 아니 늙을소냐.

아마도 너 좇아 다니다가 남 우 일까 하노라.


어쨌든 회갑이 맹 속도로 좇아오니 초조해 오는 마음을 추스르는 방도를 찾아야만 했다.

우선 사람들이 많이 이야기하는 김형석 교수의 에세이집『백 년을 살아보니』를 사서 읽어 보았다. 언젠가 들은 적이 있었던 ‘인생의 황금기는 60에서 75세 사이라고 믿는다’는 문장에 밑줄을 그으며 나이 듦에 대해 긍정적인 마음을 다 잡았다.

‘제2의 마라톤이 시작되는 거야!’

뒤이어 고교 은사님이 팔십 구세에 개인전을 연다는 소식이 들리자 부지런히 달려갔다. 인생 후반 마라톤을 완주하는 모습일 것 같아서였다. 그림 중에는 뜻밖에도 여인의 누드화가 많았다. 빨강 바탕에 그린 해바라기 유화도 단순하지만 고흐의 열정을 생각나게 했다.

그러고 보니 회갑 되는 해에만 쇼크에 빠진 것이 아니었다. 10년마다 되풀이해서 쇼크를 느꼈던 기억이 났다. 삼십 되었을 때가 제일 충격적이었다.

“아니 벌써 이십 대의 청춘이 끝나버린 거야?”

사십이 되었을 때도 한탄했었다.

“벌써 사십이라니!”

오십을 넘길 때는 폭풍 같은 갱년기 증상에 시달리느라 오십이라는 숫자를 대면할 여력도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모두 괜찮은 시절이었다.


나이 듦의 당황스러움을 그리도 잘 표현했던 서경덕은 회갑에게 잡히지 않았다. 술래가 찾아내기도 전에 5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회갑에게 잡히는 것은 살아있음의 증표라 커다란 축복인 거였다. 그래서 옛사람들이 성대한 회갑잔치를 벌이곤 했나 보다. 그렇다면 나도 자진 출두해서 회갑에게 기꺼이 잡혀 주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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