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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머리

<아들이 아빠가 되는 드로잉> 시리즈

by 콩돌이 아빠
<흰머리 부부> 18 x 12cm, 종이에 과슈 2022

호미처럼 꺾인 허리, 꽉 묶어 비녀로 고정한 흰머리, 그리고 화려한 무늬의 고쟁이 바지에 담배. 콩돌이 아빠는 상경한 부모님과 함께 어려서부터 서울에서 자랐고, 자주 마주하고 오붓해질 여유가 없었기에 이따금 할머니를 찾아뵙는 일은 왠지 어색했습니다. 할머니는 무뚝뚝하셨고 형이나 저는 할머니께 살갑게 다가가지 못해서 동화책에서 읽던 '따뜻한 할머니의 품'이나 '호롱불 아래 옛날이야기'를 부탁드리기 멋쩍었던 것 같습니다.


"염병할 놈의 거!"


명절이나 주말에 고향집에서 모인 아버지와 고모, 숙부들께서는 할머니를 모시고 화투를 치곤 하셨습니다. 할머니는 한쪽 다리를 세우고 비스듬히 굽은 허리를 무릎에 기댄 채 담배와 박카스를 번갈아 즐기셨습니다. 그 매캐한 연기 속에서 큰아버지들은 허리를 곧게 핀 채 웃으셨고 할머니는 화목함에 행복해하며 구성진 욕을 연달아 내뱉으셨습니다.


"엄마 오늘 아줌마들이랑 머리 하러 가서 콩돌이 못 봐줄 거 같은데 어쩌지?"


우리 엄마도 어느덧 할머니가 됐습니다. 저와 콩돌이 엄마는 많은 부분을 콩돌이 할머니께 부탁하기에 거의 매일 보고 연락을 주고받습니다. 엄마는 후줄근하고 누추한 것을 질색하며 염색, 파마, 유행에 꽤 신경 씁니다. 미용실에 다녀온 엄마는 한결 생기 있어 보였고 이제 슬슬 저보다 엄마가 더 세련되어 보인다는 생각에 웃음이 났습니다.


"엄마가 내년이면 벌써 칠십이네. 엄마가 무슨 칠십이야, 얼굴이 40대 같은데."

"말이라도 고맙다."


콩돌이를 돌봐주는 엄마에게 마뜩한 보답을 못해서 늘 마음이 무거운지라 듣기 좋은 말 한마디 전해드리려 하지만 마냥 맘에 없는 말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쭈뼛대며 할머니께 다가서지 못하고 아버지의 바짓자락 뒤에서 본 저의 할머니는 정말 '할머니'의 표준적인 이미지였습니다. 투명할 정도로 새하얀 머리카락을 촘촘히 빗어 넘겨 두피에 붙인 모습과 당신이 쪼그려 앉아 일구던 밭처럼 굽이치고 주름으로 갈라져있는 얼굴. '사과'라는 단어와 함께 소개된 콩돌이 한글 교재의 일러스트와 같이 '할머니'라는 말은 우리 할머니의 모습을 번쩍하고 떠올려줍니다. 그런데 눈 깜짝할 사이에 할머니가 된 우리 엄마는 뭔가 '할머니'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습니다.


빈말이라고 하기엔 엄마는 정말 젊어 보입니다. 관리된 머리카락은 흰머리 한올 보이지 않고, 세월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려 할 때마다 적절하게 받아온 각종 마사지와 피부과 시술로 적어도 제게는 '엄마'나 '아줌마'라는 말로 표현해야 자연스러운 것 같습니다.


"글쎄, 아래층 남자가 엄마한테 뭐라고 했는지 알아? "아이고, 윗집 할머니시죠?"라면서 생글거리는데, 아줌마라고 하면 되지 무슨 할머니야 할머니는."


콩돌이를 데리러 간 어느 저녁, 엄마는 퉁명스러운 말투로 엘리베이터에서 들은 '할머니'라는 말에 불쾌감을 내비치고 있었습니다.


"그야 옆에 손자가 있으니까 할머니라고 한 거겠지. 그럼 뭐라고 그래."

"뭐... 그냥 '윗집 분'이라고 해도 되잖아."

"요즘 출산율이 줄어서 할머니 되는 것도 큰 복인데 뭐. 그래도 괜히 서운했겠다."


사람이 일생을 거치면서 심히 언짢게 들리는 말이 '아저씨, 아줌마'와 '할아버지, 할머니'는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괜히 넘겨짚기에 '아저씨'보다 '아줌마', 그리고 '할아버지' 보다 '할머니'가 주는 정신적인 타격이 더 큰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엄마는 그 흔한 새치하나 함부로 들키지 않게 외모를 잘 가꾸었고, 차분한 말씨로 사람들에게 흉을 잡히지 않게끔 품위 유지에 노력을 쏟습니다. 아들 된 입장에서 객관적이기는 어렵겠지만 그런 엄마에게 무심히 던진 '할머니'라는 말은 충분히 상처가 될만하다고 느낍니다.




"오우, 자기 여기 새치가 계속 늘어나는데?"

"... 너도 여기 있어, 너도!"


아내는 하관이 짧고 얼굴이 둥근 편이어서 어려 보입니다. 'Asians never age. (아시아인은 늙지 않는다.)'라는 말과 함께 미국에서 지낼 때 동안의 아내는 '고등학생' 또는 '아기'와 같은 반응으로 30대 초반의 나이임을 밝힐 때마다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곤 했습니다. 내심 뿌듯했을 것 같은 동갑내기 아내도 어느덧 '아줌마'가 되어서 희끗한 새치들이 눈에 띄기 시작합니다. 똥 묻은 개처럼 아내의 외모를 지적한다는 핀잔을 들은 저도 거울에 반사되며 반짝이는 새치에 시무룩해집니다.


어느덧 저와 아내도 '염색'에 대한 방법을 찾아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최근에 발명된 '염색 샴푸'가 보다 성공적으로 개발돼서 거실에 앉아 찐득한 촉감과 화끈거리는 냄새를 수십 분 동안 견디는 곤욕을 피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혹은 주변의 눈총을 꿋꿋이 견뎌내어 머리카락 전반에 번져가는 흰머리를 내 것으로 만들어 낼 수 있다면 그 역시 괜찮은 방법 같습니다. 하지만 새까맣게 물들인 머리로 '할아버지, 할머니'라는 호칭을 피해내는 부모님보다 더 나이 많아 보이는 자식이 되지는 않을지 괜한 상념에 빠지는 요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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