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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스타우 Nov 20. 2023

병자호란의 아픔과 치욕의 역사, 그 소용돌이를 관통하는

드라마 <연인> 리뷰

<연인>은 <옷소매 붉은 끝동>에서 익힌 노하우를 바탕으로 MBC가 다시 한번 사극의 진가를 증명한 작품이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피어나는 애절한 사랑, 고증에 신경 쓴 디테일과 세트 미술, 그리고 완벽한 연기와 음악까지. 지상파가 OTT에 대항할 수 있는 마지막 자존심인 사극을 진정성 있게 그려내면서, 2년 전 영광을 또 한 번 재현해 내는 데 성공한다. 물론 너무나 이상적인 사극이었던 <옷소매 붉은 끝동>과 비교한다면, <연인>은 다소 아쉬운 단점들이 보인다.




역사의 소용돌이를 관통하는 지독한 멜로 사극

<연인>은 논픽션 역사극에 픽션을 섞어 만든 퓨전 사극이다. 병자호란이라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펼쳐지는 애절한 사랑 이야기. 여기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참고한 두 남녀의 사랑 이야기는 고전 멜로의 남다른 매력마저 보여주면서 강렬한 몰입도를 선사한다. 무엇보다 이 작품의 배경이 되는 '병자호란'의 참혹한 역사를 디테일하게 그려내면서, 두 남녀 주인공의 애절한 멜로 서사를 더욱 돋보이게 만든다. 한 인간이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역사의 소용돌이를 맨몸으로 부딪혀 관통하는 이장현과 유길채의 사랑 이야기는 그래서 더 지독하고 간절해 보인다.

<연인>은 병자호란이라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펼쳐지는 애절한 사랑 이야기이다.


역사를 그려내는 진정성 

진정성 있게 다룬 사극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이미 경험한 MBC는 그 리얼리티를 다시 한번 재현하는데 힘을 쓴다. 머리 모양부터 복장, 그리고 배경까지 신경 쓴 고증과 전쟁의 참상을 그리는 디테일, 여기에 리얼리티를 위한 만주어 사용까지. 무엇보다 '병자호란'이라는 전란의 아픔과 치욕의 역사를 그리는 디테일이 너무나 뛰어나서 마치 대하 사극을 보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게 한다. 그뿐만 아니라 '병자호란' 이후 조선과 청나라의 관계, 특히 청나라에 포로로 팔려간 백성들의 삶과 소현세자의 설움을 제대로 그려내면서 조선의 치욕적인 역사를 진정성 있게 그려낸다. 청나라의 횡포 못지않은 조선의 횡포와 조선시대 환향녀의 아픔까지 그려내는 진정성에서, 그리고 이러한 이야기에 두 주인공의 서사를 투영시키는 과정들이 실로 감탄을 금치 못하게 한다.  

'병자호란'이라는 전란의 아픔과 치욕의 역사를 그리는 디테일이 상당히 뛰어나다.
뿐만 아니라 '병자호란' 이후 청나라에 포로로 팔려간 백성들의 삶과~
소현세자의 설움을 마치 대하 사극처럼 제대로 그려낸다.




미장센에 진심인 연출

<검은태양>에서 미장센과 액션에 남다른 연출력을 선보였던 김성용 감독은 자신의 강점을 사극인 <연인>에서도 다시 한번 증명해 보인다. 사계절을 다루는 아름다운 비주얼과 조명을 활용한 무게감 있는 미장센은 일반 사극과는 다른 때깔을 보여준다. 특히 최근 사전 제작 드라마들과 달리 살인적인 촬영 일정 속에서도 놓치지 않았던 미장센에 대한 욕심은 마지막 회까지도 고스란히 느껴졌다. 다소 이해하기 어려웠던 장현과 길채의 감정선을 연출과 음악으로 커버하는 능력과 액션신에서 보여준 디테일이나 카메라 워킹까지 연출적인 부분에서 상당히 만족스러운 수준을 보여준다.

사계절을 다루는 아름다운 배경과 비주얼~
조명을 활용한 무게감 있는 미장센은 일반 사극과는 다른 때깔을 보여준다.


아름다운 음악과 OST 

<옷소매 붉은 끝동>의 아쉬운 부분을 하나 꼽자면 음악과 OST였는데, 그러한 단점을 <연인>은 완벽하게 보완해 낸다. 개인적으로 올해 드라마 중에서 <사랑의 이해>와 함께 드라마의 감정선에 가장 완벽하게 녹아든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장현과 길채의 마음을 고스란히 대변해 주는 '달빛이 그려지는'과 '다만 마음으로만'의 아름다운 선율과 가사, 그리로 이러한 선율을 활용한 애절한 배경 음악까지. 특히 적재적소에 터져 나오는 가련한 피아노 선율과 비장미 넘치는 오케스트라의 조화는 드라마의 감정선을 극대화하는데 커다란 일조를 한다. 음악의 완성도를 위해 부다페스트와 빈까지 가서 녹음했다고 하니, 이 작품의 음악이 남다르게 느껴진 이유가 있었다.




유길채의 성장과 함께 성장하는 안은진

나 역시도 초반부 절세 미녀라는 길채역에 안은진의 캐스팅이 최적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물론 '병자호란'이 시작되면 어느 정도 인상이 달라질 거라는 예상은 했지만, 안은진의 연기는 나의 예상을 훨씬 웃도는 모습이었다. 이장현에 비해 생략된 서사에도 불구하고 길채가 변화하고 성장하는 모습들을 너무나 설득력 있게 연기해 낸다. 전쟁의 참혹한 상황에서 역경을 이겨내는 길채의 성장과 함께 안은진의 연기도 마치 덩달아 성장하는 것처럼 보였다. 당찬 여인으로 변화하면서 보여준 강인한 인상과 턱선이 보일 정도로 달라지는 외모, 그리고 시원시원한 발성과 애절한 눈물 연기까지. 극의 중심에 이장현이 있음에도 무게 중심을 절대 놔주지 않으면서, 주체적이고 강인한 길채 역할을 너무나 똑 부러지게 연기해 낸다. 

전쟁의 참혹한 상황에서 역경을 이겨내는 길채의 성장과 함께~
안은진의 연기도 마치 덩달아 성장하는 것처럼 보였다.


더 이상 칭찬할 것이 없는 남궁민

아직도 더 보여줄 매력이 남아있는지 궁금할 정도로 매번 다른 도전, 다른 연기에서도 극강의 연기력을 선보이는 남궁민. 멜로 연기로 새롭게 무장한 남궁민은 또 한 번 인상적인 연기로 이장현의 순애보를 완벽히 연기해 낸다. 자신이 어떤 연기를 보여줄 때 가장 매력적인지를 정확히 아는 배우이고, 그러한 순간을 절대 놓치지 않고 임팩트 있게 연기해 내는 그의 화면 장악력은 정말로 일품이었다. 이전에도 언급한 적 있지만, 이제 그의 연기를 지상파가 아닌 OTT에서 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특히 지금의 완성형 연기로 오랜만에 악역 연기를 한다면 어떤 아우라를 뽐낼지 정말로 궁금해진다. 이제 남궁민에게 지상파는 너무나 좁은 무대처럼 느껴진다.

자신이 어떤 연기를 보여줄 때 가장 매력적인지를 정확히 아는 배우이고,
그러한 순간을 절대 놓치지 않고 임팩트 있게 연기해 내는 그의 화면 장악력은 정말로 일품이었다.




아쉬운 단점들

앞서 언급했듯이 <연인>은 장점만큼 단점도 많이 드러낸 작품이다. 해피 엔딩으로 바꾸기 위해 기억 상실의 에피소드를 두 번이나 사용하는 무리수를 보이고, 묻은 길채의 은장도 이야기도 한순간 의미 없는 이야기가 되고 만다. 살인적인 스케줄과 연장 방송으로 인해 조금씩 흔들리는 완성도와 역으로 너무 서두른 마지막 회의 전개로 인해 두 주인공만큼 디테일하게 다루지 못했던 여러 인물들의 이야기도 아쉽다. 무엇보다 애절하다 못해 지겹도록 반복되는 장현과 길채의 어긋난 만남이 이 작품을 너무나 답답하게 만든다. 

극적인 해피엔딩을 위해 두 번이나 기억 상실의 에피소드를 그리는 무리수를 보이고...
무엇보다 지겹도록 반복되는 장현과 길채의 어긋난 만남이 이 작품을 너무나 답답하게 만든다.                                           


유길채의 서사를

디테일하게 다루지 못한 아쉬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스칼렛 오하라의 서사가 중심이고 <연인>역시 그러한 서사를 따라가지만, 이 작품의 중심에는 길채가 아닌 이장현의 서사가 메인 스토리가 된다. 사실상 이 작품은 길채의 파란만장한 삶에 그녀가 위기 때마다 구해주는 이장현의 순애보 같은 모습이 중반부까지 반복되는데, 극의 전개를 이장현 중심으로 하다 보니 길채의 서사와 감정선을 디테일하게 그려내질 못한다. 길채가 왜 결혼을 결심했는지, 길채가 왜 조선으로 돌아와서 이장현을 찾지 않으려 했는지, 왜 이혼했다고 말하지 않는지 등 디테일한 감정이나 생각들은 대부분 시청자들의 상상에 맡겨놓는다. 그러니 어떤 부분에서는 길채의 캐릭터가 다소 이해하기 힘든 인물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길채가 왜 결혼을 결심했는지, 길채가 왜 조선으로 돌아와서 이장현을 찾지 않으려 했는지,
디테일한 감정이나 생각들은 시청자들의 상상에 맡겨놓는다.


극적인 엔딩을 위한 무리한 편집

지상파 드라마들이 자주 선보이는 엔딩을 위한 무리한 편집이 때로는 이 작품의 완성도를 좀먹기도 한다. 긴장감 넘치는 엔딩신을 위해 중간 서사를 생략한 무리한 편집은 캐릭터의 서사를 난도질하면서 많은 논란을 만들기도 하였다. (특히 파트1 결말의 장현과 공주가 만나는 장면) 다음 주가 되어야 개연성이 풀리는 무리한 선보고 후 조치성 편집이 다른 공중파 드라마들에 비해 유독 잦아서, 단순히 시청률을 위해 캐릭터들의 성격과 서사가 난도질당하는 느낌이었다. 

긴장감 넘치는 엔딩신을 위해 중간 서사를 생략한 무리한 편집은 캐릭터의 서사를 무책임하게 난도질한다.




연인 (MBC. 2023)

멀게는 <바람의 화원>과 <공주의 남자>부터 최근 <옷소매 붉은 끝동>까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애절한 사랑을 그린 사극들은 늘 흥행에 성공했다. 그리고 <연인>도 그러한 행보를 고스란히 이어나간다. 심지어 멜로 이야기만 놓고 본다면 대한민국 역대 사극 중 가장 지독하고도 애절한 사랑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었다. 그만큼 전란의 아픔과 치욕의 역사가 강렬하게 휘몰아쳤고, 그 안에서 피어난 이들의 사랑은 그래서 더 눈부시고 아름다웠다. 결국 비극적인 역사의 소용돌이를 관통했던 이들의 순애보는 슬픈 결말보다는 지울 수 없는 역사의 흔적을 되뇌듯이 아픈 상흔을 어루만지고 치유해 나가는 결말을 선택한다. 대의와 정의보다 내 사람 나의 연인을 지키려는 마음에서 사극이라는 장르를 떠나 올해 그 어떤 드라마보다 지독하고도 애절한 사랑 드라마였다. 






20년대 좋은 국내 드라마들을 리뷰합니다.

위 글은 블로그에 썼던 리뷰들을 재편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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