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TI는 사이언스”라는 말
MBTI를 콘텐츠로 소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MBTI는 사이언스’라는 말이 있다. 이들이 얼마나 과학의 정밀함을 고려하겠냐만은, 그만큼 MBTI가 이 사회를 설명하는데 나름의 공신력을 제공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젠 MBTI 결과를 믿지 않는다고 하면, 믿지 않는 MBTI 유형이 어떤 것인지 제시하는 사람까지 있을 정도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과학은 논리로서 스스로에 계속 맞서는 것’이라는 파멜라 슈메이커 교수의 설명에 따라, MBTI가 과연 사이언스인지를 따져보려고 한다. 과학과 사회과학, 그리고 이론의 정의를 차례로 살펴본 후, MBTI의 논리적 구조와 그 탄생 과정이 해당 정의에 부합했는지 검토해보고자 한다.
MBTI는 사회과학도, 이론도, 사회과학 이론도 아니다.
파멜라 슈메이커 교수에 따르면, ‘과학이 논리를 적용하여 지식을 획득하는 하나의 방식’이라면, ‘사회과학은 사회의 현상과 그 구조, 구성원에 대해’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것을 뜻한다고 한다. 비록 우리 사회에서 과학이 주로 생물, 물리 등의 자연과학 분과로 흔히 여겨지지만, 엄밀히 말해 사회과학 역시 논리를 적용하여 지식을 추구한다는 방법론에서는 자연과학, 혹은 과학과 그 궤를 같이 한다.
Chat GPT에 따르면, MBTI는 캐서린 브릭스라는 심리학자 모녀가 사람들이 스스로의 성격을 이해하고 직업 선택에 활용하기 위한 도구로서 만들었다고 한다. 이들은 칼 융의 심리 유형 이론을 기반으로 자신의 가족과 주변 사람들을 연구 관찰한 후, 질문지를 만들고 주변 사람에 배포하며 이론을 세워나갔다. MBTI가 사회과학이라고 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논리적인 인과관계의 실험 및 검증이 아닌, 소수의 주변인에 대한 임상과 관찰에 기반하여 이론을 정립했기 때문이다. Chat GPT에 따르면 칼 융의 심리 유형 이론도 애초부터 그의 철학적 사유에 기초하여 만들어진 것이라고 하니, 더더욱 논리가 결여 되어 있다.
‘이론’이란 ‘명확하게 정의된 개념들이 상호 관련된 상태에서 형성된 명제’다. 슈메이커 교수는 다른 이론과 달리 ‘과학적 이론은 실험과 교차 검증을 거치되’, ‘법칙과 달리 상당한 증거는 있으나 연구 결과가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 특성을 지닌다고 지적했는데, ‘Big Five’ 모델을 예시로 들어 자세히 설명해보려 한다.
‘Big Five 모델’은 성격을 나타내는 단어들이 이미 언어에 포함되어 있다는 가정을 토대로 성격 유형을 체계화한 것이다. 연구자들은 영어 사전에서 약 17,000개의 성격 관련 단어를 수집하여 16개의 성격 요인으로 분류했고, 이후 이 16개 요인 간의 관련성과 공통성 등을 추가 분석하여 총 5개 차원으로 집약했다. 이렇게 추출된 5개 성격 차원을 서로 다른 인구 및 문화 집단에서 반복 실험, 동일한 결과를 얻으며 과학적 실험의 타당성을 획득했다. Big Five와 비교했을 때, MBTI는 성격의 개념을 명확하게 정의하거나 상호 관련성을 분석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았으며, 서로 다른 집단의 동일한 실험을 통해 과학적 증거를 획득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굳이 분류하자면, ‘이론’보다는 아직 실험과 검증을 거쳐야 하는 ‘가설’의 단계로 보는 것이 적합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MBTI가 수행하고 있는 ‘과학의 가치’
슈메이커 교수는 ‘과학이 사람들에게 가치를 갖는 이유는, 세상을 예측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라며 ‘성공한 과학은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바꿔놓는다’고 기술했다. 백지현 교수 역시 “과학적 연구의 목적은 세상에 대한 설명과 이해를 토대로 그것을 예측하고 통제하는 것”이라 지적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MBTI가 사이언스로 불리며 각광 받는 이유도 이와 다르지 않다.
MBTI는 낯선 타인에 대한 이해의 도구로서, 절친한 지인에 대한 깊은 교류의 도구로서 사용된다. 사람들은 MBTI를 타인에 투사해 그 사람을 예측하고 가늠하며, 나아가 타인과 교류하게 될 자신의 경험을 통제한다. 중앙일보에 따르면, MBTI 열풍을 주도하는 MZ세대는 ‘경제 성장이 둔화되고 계층 이동 기회가 닫힌 현 체제 하, 시행착오 없는 완벽한 선택을 해야 하는 강박과 불안 때문에 나에게 꼭 맞는 선택을 위한 기준을 필요로’ 한다고 한다. 시행착오 없는 선택, 효율적이고 예측 가능한 통제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MBTI 뿐 아니라 사주, 궁합 등 자신에 대한 설명과 세상에 대한 예측을 보조하는 도구들이 각광 받고 있는 것이다.
슈메이커 교수는 자신의 저서 <How to Build Social Science Theories>에서 과학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기도 한다. ‘과학은 우리가 현재 인지하고 있는 세계, 그리고 미래에 인지하게 될 세계, 이 둘 사이의 지속적 투쟁의 과정이다.’ 혈액형과 별자리로 서로를 예측하던 세계에서 MBTI로 서로를 가늠하는 세계로 넘어온 우리는, 또다시 어떤 도구로 서로를 인지하기 위해 노력하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