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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파고 06화

2.2 유속

2장. 붙잡을 수 없는 이름

by 이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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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그처럼 영원할 수가 없듯, 붙들고자 했던 순간들은 바람처럼 새어 나가고, 꿈꾸던 무수한 이름들 각각은 이내 금이 가 조각나고 스러진다.


앞서와 같이, 혹자는 자라며 그가 어릴 적 ‘산’이라 부르던 언덕이 처음부터 작디작은 둔덕에 불과했다는 심리적 사실을 마주하도록 강제당하기도 하는바. 강이라 부르던 물길은 언젠가 말라 빈 하천이 되기도 하겠으며, 영원할 것 같던 우정도 세월 앞에 반드시 녹슬 양이다. 자신도 몰래 그는 저 이름의 무수한 정의들이 이러한 세계의 유속을 묶어 두는 줄 ‘적극적으로’ 착각하곤 하겠으나, 실은 그 이름부터가 이미 스스로 휩쓸리고 있던 파고에 비로소 그 자신부터야 좌초하고 말지 않던가.


우리가 세상을 호출하던 목소리(사랑, 진실, 정의, 자존 등)들 모두가 시간이 흐를수록 그 뜻이 엷어지고 흔들릴 수밖에 없듯. 이름이란 결국, 운동하는 세계에 던져진 한 줌 부표에 불과했기에. 부표는 바다를 붙들 수 없고, 그렇게 이름은 심연의 균열로 추락할 따름이다.


그러한 균열이 때론 삶의 배를 갈라 위협하기도 하는 모양으로. 믿어 의심치 않던 관계가 무너질 적, 규정하던 이름이 더 이상 어울리지 않을 적, 그리 스스로 불쑥 의문을 던지는 것이다. 그토록 믿어온 세계는 끝내 무너지고야 말았는가? 하고. 그렇게 마주하는바. 이름은 세계를 가두는 창살 아닌, 다만 혹자가 운동하는 유속 위 굳이 새기고자 집착하던 덧없는 부스러기였음을.


혹자는 추앙하던 이름이 변질되었다 비장한 척 원망하고, 혹자는 죽은 이름을 되살려 무슨 나약한 호가호위를 시도고자 한다지만, 어느 쪽이든 무엇하나 아무 소용이 전혀 없으리라. 유속의 파고는 다시금 무수한 익명 속에 온갖 이름들을 더 무수하게 덧대어 매장해 버릴 테니. 그리곤 다시, 때마다 새로운 이름을, 또 다른 이름을 거듭 요구할 테다.


그리하여 우리 삶은, 끊임없이 갈라지고 추락하는 이름들 위를 건너 비로소 이어지거니와. 붙잡을 수 없는 가련한 그림자일 뿐인 저기 저 헛된 지푸라기들을 무수히 극복하며, 또 이를 통해서라도 세계는 또 여전히 끝도 없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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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