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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파고 07화

2.3 바람

2장. 붙잡을 수 없는 이름

by 이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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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손으로 바람을 움켜쥐려 할 때마다, 다만 허공을 붙잡는 데 그치고야 말지 않던가. 그처럼 무언가 붙들려는 말들도 이와 다르지 않는 양. 제아무리 정교하게 이름 붙이고, 구획 짓고, 정의하려 해도, 운동하는 실체는 끝끝내 손가락 사이로 탈락해 버리는 모양이다.


어떤 감정은, 막 떠오를 때에도 이미 흐릿하다. 사랑이라 이름 붙이는 순간, 사랑은 고정된 전시 소품이 되어버리고 생생한 감상은 저만치 달아날 적이 얼마나 자주이던가. 고통도, 기쁨도, 삶도, 말해지는 순간 그것들이 본디 지녔다던 떨림과 물결을 잃어버릴 적이 어찌나 자주이던가 말이다.


어린 날 모래사장 위를 걷다 발밑에 새긴 이름이 파도에 지워지던 양으로. 그 누가 제아무리 공들여 새긴들, 운동하는 세계는 그 모든 이름 위로 다시 파도친다. 그 무슨 자취도 언젠가는 마침내 그 일말의 흔적도 없이 씻기고야 마는 것이다.


허나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붙들 수 없는 것들을 붙들고자 할 수밖에 없을 만치 내몰릴 적이 적지 않으리라. 가령 언어가 파도를 가리키는 순간, 이미 다른 파도가 넘실거리는 중인 시절이 그토록 영영 이어질 텐데. 이처럼 삶이란 과정은, 끊임없이 새어나가는 것들과 아울러, 그들을 마침내 붙들 수 없으리라는 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다시 붙들고자 애쓰는 노력의 과정 자체일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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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