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원의삶을지원 Apr 17. 2023

4월의 녹색 어머니회

 작년에 큰 아이가 갑자기 반 회장이 돼서 집안에 첫 임원진 배출 후 저는 몹시 당황했습니다. 임원 엄마는 뭘, 무슨 활동을 하는 것인가. 제가 큰 아이 나이대였을때랑은 많은 게 달라진 지도 모른 채 쓸데없는 걱정을 했었습니다. 정말 아무것도 할 게 없다는 담임선생님의 말씀에도 어쩐지 걸려서 담에 또 아이가 회장이 된다면 나도 녹색 어머니회 활동이라도 잘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올해 큰 아이는 또 출마했고 이번엔.... 회장에 낙마했고 저는 그제야 정말로 '순수한 의도의' 녹색 어머니회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요즘엔 엄마들이 워낙에 바쁘잖아요. 워킹맘도 계시고 저도 오랫동안 전업이긴 했지만 사실 가정에서 돌봐야 할 일이 산더미인데요. 하지만 한 달 사이 저는 갑자기 온 기회로 워킹맘이 되었고 솔직히 말해서 녹색 어머니회 일은 좀 피곤했습니다. 출근 전에 가서 교통 지도를 하면 되는 단순한 일정이긴 했지만 완벽하게 출근준비를 끝내려면 집에서 나가기 전에 빨래, 설거지, 청소를 해놔야 얼추 시간이 맞더라고요. 더구나 요즘 교육생 신분이라 저도 애들만큼 공부에 자습까지 해가며 지내느라 1시간이나 일찍 일어나 미리 출근 준비를 한다는 게 쉽진 않았어요. 투덜거리며 애들과 함께 등교(!)해서 애들 들여보내고 저는 지정된 횡단보도에 섰는데요,


학교 정문에만 길고 짧은 횡단보도가 무려 네 군데나 되고 저도 꽤 일찍 나선 건데 벌써 시니어 봉사원분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지도중이시더라고요. 아주 큰 소리로 인사도 해주셨어요.

 "이번주 요원이구나~ 반가워요!! "

 "네, 네!!! 안녕하세요 어르신~ "

학교 교장선생님, 교감선생님도 수시로 학교를 크게 몇 번이고 점검하시고 교내 보안관님도 자전거를 타고 다니시며 불편함을 겪거나 안전하지 못하게 건너는 친구들을 지도하시고요. 길을 건너는 아이들에게 일일이 아침 인사를 건네주시더라고요. 저는 쭈뼛대며 어쩌지 하고 있는데 벌써 아이들이 몰려와 제 뒤에서 저의 신호만을 기다리더라고요.

 

 내려다보니 올망졸망 몸집만큼 큰 책가방 메고 이른 아침부터 공부하겠다고 엄마가 묶여주신 양갈래머리 한 친구, 엄마가 해주신 맛있는 반찬 이야기하는 친구, 얼른 가서 책보자는 친구... 이미 들여다 보낸 저의 딸들과 자꾸 겹쳤어요. 그러니 저도 모르게 인사를 건네게 되더라고요

 "아이고~ 황사도 심한데 아침 일찍 밥 먹고 오느라 고생이네~ "

 "얘들아, 뛰지 말고 걸어도 괜찮아, 아줌마가 너희 인도로 잘 들어가면 그때 차들 가게 할게, 걱정하지 마~"

아이들이 나의 신호와 내가 먼저 횡단보도로 길을 열어줘야 건널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오고 가는 차들까지 내 신호만 보고 통제된다는 것은 그래서 더 긴장하게 만들었습니다. 아... 아이들 등교시켜 놓고 맘 놓고 집으로 올 수 있는 것도, 내가 출근하느라 아이들끼리만 등교시켰을 때도 이렇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치열하게

아이들을 보호해 주시는 분들의 노력이 있었구나 몸소 느낄 수 있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어제는 세월호 참사 9주기였습니다. 우리는 세월호 사건으로 많은 아이들을 잃었고 그때 한 목소리로 다짐했었습니다. 다시는 이런 식으로 아이들을 잃으면 안 된다, 이런 사회가 지속되어선 안된다라고요. 하지만 불과 얼마 전만 해도 음주 차량에 의해 꽃 피워 보지도 못하고 서둘러 떠난 아이를 또 마주해야만 했습니다. 저는 이번 활동을 하며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사실 아이들이 횡단보도를 건너기까지는 아무리 긴 횡단보도라도 1~2분을 초과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마지막 걸음을 인도 안으로 완벽하게 옮기는 것을 끝까지 지켜보고 있는 저에게 재촉하는 클락션을 울려대는 출근길 바쁜 차량도 한 두 대가 아니었음에 많이 충격받았고요. 무려 어린이 보호구역이었는데도 말입니다. 모두 내 아이, 내 조카, 내가 아는 아이라고 생각한다면 아이가 무사히 건너편 인도로 들어서는 것을 보고서야 움직일 그런 측은지심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더 이상 아이들을 잃지 않겠다는 너무 비장한 다짐보다는 , 그냥 장 보고 오는 길, 혹은 퇴근길에 어린 친구가 안전히 잘 건너는지 끝까지 지켜봐 주는 작은 2초 정도의 관심이면 충분할 거 같아요. 9년 전 이맘때는 허망하게 손쓸 수도 없이 보냈지만 이젠 이 어른들이 지켜줄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입니다.


  

 

이전 03화 10년 만의 이력서, 그리고 꿈.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