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살이 수련 1탄

by 정유스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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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살이에서 내가 기대하고 추구하며 꼭 달성해야만 하는 수련이 3가지 있다

멍, 쉼, 힘

그 첫 번째로 '멍'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보겠다.



'멍'을 사전에서 찾으면 '심하게 맞거나 부딪쳐서 살갗 속에 맺힌 피'라는 말이 처음에 나온다.

우린 일상의 자잘한 펀치에 맞고 또 맞아서 실제로 마음에 '멍'이 많이 들었다.

먹피로 얼룩진 나의 마음을 제대로 들여다 보고 돌보기 위해 그다음 사전적 해석인 '멍'을 치료제로 사용하고자 한다. '멍하다'의 어근인 '멍 때리기'를 제대로 즐길 생각에 양평 살이의 기대감으로 불꽃놀이를 한다.




바쁘다. 바빠.

바빠도 너무 바쁘다.

1인 6역을 감당한다.

아내, 엄마, 딸, 할머니, 선생님, 대학생.

대부분의 사람들도 비슷한 역할을 맡아서 잘만 해내는데 무슨 엄살이고 공치사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보통의 사람들은 4가지 정도도 헉헉대며 해내는 것이 아니냐고 소심하게 항변해 본다.

한 순간도 멍~하게 있어 본 적이 없다.

최소 일타 쓰리피는 기본이다.

내가 특별히 멀티 플레이를 잘하는 능력자라서 그런 게 아니다.

시간은 없고 해야 할 일은 산재해 있을 때 필요한 것은 바로 스피드와 함께 동시다발 미션 수행 밖에는 답이 없다. 끊임없이 머리가 돌아가며 나의 일상을 컨트롤하며 처한 상황을 빠르게 인식하고 분석하며 지시를 내려야 한다. 이 모든 행동은 빛의 속도로 진행되어서 내가 느끼기도 전에 행동으로 표출되어야 한다.

밥을 하며 반찬을 만드는 건 애교 수준이고, 동시에 청소기도 돌리고 짬짬이 빨래를 널거나 갠다.

여기에다 집 안을 가득 메우고 말썽을 부리려고 스탠바이 하고 있는 어린 생명이 다섯이다.

손주 3명과 함께 멍뭉이 루키와 멍냥이 아토!

"신발 벗고, 수저통 내놓고, 옷 벗고, 벗은 옷 빨래통에 갖다 놓고, 욕실로 들어가고!"

쌍둥이 손주를 어린이집에서 데리고 현관에 들어서며 시간차 공격하는 말이다.

"몸 닦고, 머리 말리고, 잠옷 입고, 수저 갖다 놓고, 물 뜨다 놓고, 식탁에 앉으세요!"

샤워 후 아이들에게 속사포를 발사한다.

"떠들지 말고, 밥 꼭꼭 씹고, 반찬은 골고루 먹고, 다 먹었으면 그릇은 개수대에 갖다 놓으세요~"

그런데 글로 쓰고 보니 내가 마치 잔소리대마왕 같아서 민망하다.

하지만 단 하루만 이 모든 것중의 하나라도 생략하면 생활의 진도가 나가지 않고 빠걱거리며 브레이크가 걸려서 뒤죽박죽 엉망이 된다.

아이들은 나의 잔소리 같은 잔소리 아닌 지시어로 일상을 성장이라는 무늬를 찍으며 평화롭게 잠자리에 들 수 있다.

이런 일련의 사사건건이 어린 생명들에게만 국한되는 것이라면 나는 숨 고르기는 할 것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은 어르신(?)을 모시는 것은 욱 정신까지 동반하는 고강도 정력 소모 운동이다.

자세한 언급은 자제하겠다.

그래도 여전히 나의 글을 읽고 라이킷해 주기에 보시는 분 마음 상하실까 내린 동반자에 대한 배려이다.


이 모든 것을 하지 않겠다. 이곳 양평에서는......


하루 3번.

새벽에 눈뜨면 나의 최애 장소인 널찍한 발코니에서 푸르른 자연을 보며 1차 멍을 때린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고 하면 더 많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억지로 의도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잡념들을 좀 편안하게 마음껏 펼친다.

그러다 보면 흙탕물이 시간이 지나면 흙이 가라앉아서 맑은 물이 되듯이.

점점 상쾌한 공기와 푸름이 주는 청량감에 머리는 점점 비어진다.


조용히 사부작거리는 오전이 지나고 분주히 점심을 준비해서 마음의 점을 찍고 나면 2차 멍 때리기에 돌입한다.

장소는 정해지지 않고 그때그때 다르다.

집에 있을 때는 안방이던 거실이던 부엌이던 발코니던 따스한 차 한 잔 곁에 두고 나만의 세계로 빠진다.

살포시 졸음이 찾아와 눈꺼풀이 무거우면 억지로 치껴 뜨지 않아도 되니 참 좋다.

잠이 오면 내쫓지 않고 두 팔 벌려 반겨 친구 한다.

아침 보다 집중도는 떨어지지만 톱니바퀴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던 머릿속에서 매미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오전을 보내며 조금 복잡해지려는 마음의 소음도 함께 잠재우는 꿀 같은 시간이다.


마지막 3차 멍 때리기는 모두가 잠든 늦은 밤이다.

장소는 새벽에 멍 때리기를 했던 그곳이다.

다른 것이 있다면 깜깜한 시골의 밤을 밝히는 전원주택의 희미한 불빛과 하늘을 수놓은 작은 행성들, 즉 별들이 소곤댄다는 것이다.

양평이 좋은 점 중의 하나는 빛공해에서의 해방이다.

분명 불을 다 껐는 데고 거리의 가로수와 각종 불빛에 온전히 잠들지 못하는 도시의 이방인으로 살아왔다.

오죽하면 서울집의 방방마다 암막커튼을 설치했을까?

이곳, 양평은 해가 지면 온 세상이 깜깜하다.

비로소 자연의 질서와 하나 되어 돌아가는 하루를 살게 된다.

해 뜨면 일어나고 해지면 잔다는 가장 기본적인 우주의 사이클을 역행하는 현대인 중의 한 원소였던 나에게 양평이 주는 위대한 선물이다.

비워야 채워진다는 인생의 교훈을 잊고 살면서 포화상태인 뇌와 몸과 마음을 텅텅 비우는 작업인 '멍 때리기'는 이어지는 '쉼'으로 가는 첫 번째 관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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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멍 때리기 대회도 해마다 열리지 않은가.

'멍 때리기'를 예술로 승화시킨 이 대회는, 번아웃을 경험한 시각 예술가 웁쓰 양의 기획으로 2014년부터 시작되었다. 참가자는 90분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어떤 활동도 하지 않은 채 앉아 있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단순한 휴식이 아닌 '예술 참여'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쉴 수 있는 것도 경쟁력'이 되는 시대, 한강 멍 때리기 대회는 단순한 퍼포먼스를 넘어 현대인의 정신 건강을 돌아보게 하는 강력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생각이 들어와도 흘려보내며 판단 없이 존재하기가 핵심이다.

양평에서 '멍 때리기' 수련을 한 후 내년에는 나도 대회에 참여해서 1등 트로피와 상장으로 세컨 하우스를 장식한다는 원대한 꿈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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