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월급
안 그래도 정신없는 새 학기 3월을 새내기 선생은 거의 정신줄을 놓고 보냈다.
간신히 출근하고 파김치가 되어서 퇴근했다.
퇴근을 한다고 해서 마음 편하게 쉴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나중에는 내가 가장 보고 싶은 얼굴이 되었지만 하늘 같은 선배와의 자취 생활은 낯섦과 어색함과 죄송함이 세트로 몰아쳤다.
그렇게 일일이 여삼추라는 한자어의 뜻을 절절히 느끼며 17일을 맞이했다.
내가 평생 가장 좋아하는 숫자가 17이 된 것의 뿌리이다.
바로 월급날이다.
80년대 월급은 누런 봉투였다.
10원짜리까지 딸랑 딸랑이는 현찰 박치기였다.
봉투 앞면에는 월급 명세서가 꾹꾹 눌러쓴 손글씨로 기재되어 있었다.
월급날이 되면 학교에서 근무하는 소사아저씨가 교육청에 가서 월급봉투를 수령해서 학교까지 배달했다.
그러다 보니 날치기를 당해서 월급을 통째로 잃어버리는 경우도 아주 가끔 생겼다.
내가 재직하는 학교에서는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기에 풍문으로만 들었다.
또한 월급날에 대폿집에서 거나하게 한 잔 걸친 가장이 귀갓길에 월급을 봉투째 분실해서 아내에게 최소한 죽음을 선고받았다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렸다.
교무실에 선생님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월급봉투를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급여담당 선생님께서 누런 봉투를 한 아름 안고 들어 오셨다.
교감 선생님을 위시하여 모든 선생님들에게 한 달간의 노고가 알알이 박힌 봉투가 배달되었다.
나도 두근거리는 마음을 억누르고 봉투를 받아 들었다.
얇디얇은 두께감이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내 손끝에 애처롭게 남아 있다.
지폐를 쏙 뺀 후 누가 볼세라 괜한 부끄러움에 책상 밑에서 지폐를 세어 보았다.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21만 원 정도라고 기억된다.
혹시 한 장이라도 덜 들어왔을까? 아니면 한 장이라도 더 들어왔을까?
봉투를 뒤로 엎어 탈탈 털어서 동전도 야무지게 세어야 했다.
동전 한 닢이라도 꼼꼼하게 검수를 하는 것은 월급 담당 선생님의 간곡한 부탁이기도 했다.
모자라는 것보다 남는 것이 더 문제라고 하셨다.
한 푼의 오차도 없이 딱 맞아떨어졌다.
나의 월급을 확인한 후에도 옆 자리에 앉으신 40대 중반의 남자 선생님께서는 계속 돈을 세고 계셨다.
곁눈으로 슬쩍 봐도 나의 봉투와 갑절은 두꺼워 보이는 돈다발이기에 세는 시간도 더 많이 걸렸다.
"우와, 선생님. 월급 많으시네요. 부러워요."
두 눈을 반짝이며 말하는 나를 그윽이 바라보시더니,
"정선생님, 저랑 월급 바꾸실래요?"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그 대신 나이도 나랑 바꾸어 주실 수 있음 월급 바꿔 드릴게요."
딩~~~
선생님의 진심 어린 눈빛과 말투는 내 마음에 콕 박혔다.
사는 순간 내내 그 말이 종종 떠올라 왠지 모를 쓸쓸함에 먹먹했다.
이제 나는 그때 나이와 월급을 바꾸자고 흥정하셨던 선생님의 나이를 훌쩍, 아주 후울쩍 뛰어넘었다.
이제 월급봉투는 사라졌지만 통장에 찍히는 숫자가 꽤 크다.
아마 봉투로 받았으면 수표가 아닌 다음에는 한 봉투에 담기도 힘들고 세는데도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다.
하지만 그 돈을 세고 있는 손은 검버섯이 하나 둘 보이고 얼굴은 주름살이 훈장처럼 그어져 있다.
이제는 안다.
40년 전 내 옆자리의 선생님이 하신 흥정은 진심이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때 그 시절 얇은 월급봉투는 나의 젊음과 반비례했다는 것을.
80년대 각 은행이 전산시스템을 갖추면서 금융권을 시작으로 월급봉투는 점차 사라졌다.
직장인들이 월급봉투를 자랑스럽게 흔들며 모처럼 가족에게 큰소리치는 기쁨도, 삥땅의 짜릿함도 사라진 것이다.
월급봉투가 사라지면서 가장의 권위도 존경도 애교도 아부도 사라진 것은 아닐까?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29일 현대오일뱅크 임직원들은 권오갑 사장의 편지와 함께 5만 원권 지폐가 담긴 노란 월급봉투를 받았다. 사라진 월급날의 추억을 되살리며, 직원들의 기(氣)를 살려보자는 취지에서 마련한 깜짝 이벤트였다.
현대오일 관계자는 "서울사무소와 충남 대산공장 등 전국 사업장에서 근무하고 있는 1800여 명의 임직원들에게 '추억의 월급봉투'를 전달했다"며 "지난 80년대 이후 자취를 감췄던 월급봉투 속엔 5만 원권 지폐와 함께 사장이 직접 작성한 편지도 함께 넣었다"라고 밝혔다.
'추억의 월급봉투' 아이디어를 낸 권 사장은 직원들에게 전달한 편지에서 "과거 우리 부모세대들이 그러셨듯이 월급봉투의 설렘과 기쁨을 함께 느껴보시고, 퇴근길 어깨 으쓱한 마음으로 들어가셔서 가족들과 즐겁고 행복한 시간 가지시길 바랍니다"라고 월급봉투 전달의 의미를 담았다.
20여 년 만에 월급봉투를 받았다는 한 부장은 "월급이 은행 계좌로 자동이체 되면서 월급날을 기다리는 설렘과 기대가 사라졌는데, 월급봉투를 다시 받아보니 집으로 향하는 마음이 나도 모르게 든든해진다"라고 말했다. 현대오일은 앞으로 매년 연말에 월급을 은행계좌 자동이체가 아닌 월급봉투에 담아 지급할 계획이다.
그리움에 기사를 스크랩해 왔다... 요즘세대들은 월급봉투를 알고는 있는지 ~~
그 시절이 그립다... 월급봉투와 신권 그날은 참 신났었는데 지금은 추억 속에 지낸다.. 월급날은 있는 것인가...
[출처] 추억의 월급봉투 |작성자 loveredc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