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인터스쿨 이야기
영어를 꽤 못하는 것으로 알려진 도시.
영어를 1도 모르는 아들.
그 도시와 아들은 가장 최적의 때에 만나게 되었다.
당시 초등 4학년.
영유 대신 일유를 선택한 중심 있는 엄마로 자리매김하고 싶었던 나는 아들의 유치원 시기부터 입버릇처럼
"3-4학년때 1년 데리고 나가는게 나을것 같아" 라고 별계획없이 무념무상으로 말하곤 하였는데,
그 반복된 말이라는 것에 힘이 있는지, 정말 그 말처럼 4학년에 전혀 계획이 없던 해외살이가 우연한 기회로 시작됐다.
막상 와서 보니, 도쿄엔 인터내셔널 스쿨이 참 많았고, 그것보다 더 놀라운 것은 그 모든 인터스쿨의 학년마다 매반마다 한국인들이 꽤 있다는 것이었다. 혹자는 해외에서 3년 거주한 아이들의 시간을 만들기 위해. 혹자는 미국이나 영국으로 보딩스쿨을 가기전 영어를 가르쳐서 보내려. 아니면 2년 내지 5년의 주재원으로, 아님 그냥 우연히 일본에 왔다가 정착하게된 한국인들의 수도 많았다. 특히 인력난이 심한 IT 업계에 있는 이들은 조금의 일본어로 일본에 건너와 취업하게 되었다고 했다.
이렇게 많은 한국인들이 도쿄에 거주하고 있는지 몰랐다.
이렇게 많은 아이들이 도쿄에서 인터스쿨을 다니고 있음에 놀랐다.
따지고 보면 도쿄는 아시아 도시 중 안전한 것으로는 제일이고, 한국인들도 깨끗한 환경을 매우 선호하며, 무엇보다 오랜 저성장 기조로 인터스쿨의 가격이 아시아 대도시 중 저렴한 편에 속한다. 싱가폴이나 상하이의 절반 수준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게다가 위치적으로 아시아권역 중 미국으로부터 가장 근접하여 미국에서 유입된 선생님들의 수와 퀄리티를 확보하는 것이 그닥 어려워보이지 않는다. 일본에 대한 동경으로 온 서양인들은 도쿄의 친절함과 깨끗함, 일본인들이 갖고 있는 서양에 대한 끝없는 경외심에 물들기 시작하면 20년 눌러앉기는 보통이다.
서울에 살던 사람들에게는 도쿄가 가장 매력적인 것은 단 두여 시간만의 비행으로 서울에 도착할 수 있는 것. 팬데믹에 국경을 넘을 수 없는 불편함이 생각보다 오래지속되어 당황했었지만, 비행시간 만으로 본다면 제주갈때의 마음의 부담감과 사실 큰 차이가 없다.
여기가 해외가 맞아? 느낄정도로 닮아있는 여러 절차들, 용어들, 입을 열지 않으면 크게 티가 나지 않는 외모적인 차이 등으로 해외생활 같지 않은 편안함이 있어, 굳이 일본어를 배우지 않고 살아가는 부작용이 있지만, 그만큼 불편함이 적다.
아들은 당시 영어의 진입장벽이 거의 없었던 캐네디안 스쿨 4학년으로 들어갔는데, 그 20명이 채 되지 않는 반에 한국인 남자아이만 5명이 있어서, 첫날 숙제도 알아듣기 어려운 아들이 학교를 마치고 뛰어나올때 서울에서 다른 동네로 전학온 느낌이라는, 원래 다니던 학교같다는 그 해맑은 밝음. 아, 어려움이 없겠구나 싶었다.
첫 1년은 아이들의 그릇을 채우는 일이 얼마나 빠른지를 경험했다. 유치원 시기보다 훨씬 학습에 유리한 초등 고학년이었고, 영유 3년 정도의 경험을 인텐시브하게 체득하듯 영어가 훅훅 늘었다. 물론 그 1년 뒤로는 그처럼 비례하여 느는 것이 아니고, 아이 스스로 단어를 확장시키거나, 쓰기를 연습해야 실력이 향상되긴 하지만, 이 정도라면 도쿄에 1-2년 나오는 것도 꽤 의미있는 일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가득찬 시간들을 보냈다.
미국이나 캐나다 학제는 보통 6학년부터는 미들 스쿨이므로, 갑자기 교과서의 양이 놀랄만큼 몇배로 증가한다. 그래서 아예 영어의 경험이 없다면, 국어가 좀 완성이 되는 3학년을 마친 4학년은 새로운 언어를 배우기 최적기일 수 있다. 5학년은 엘리멘터리 과정 마지막이라 그 학년이 네이티브와 유사하게 언어를 필터같은 것이 없이 바로 받아들일 수 있는 마지막 기회 같은 것으로 보여져서, 5학년이 되는 조카들에게 1년 정도 해외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들이 있다면 짧다고 굳이 패스시키지 말고 꼭 나와보기를 자꾸 권하게 된다.
영어가 뭐라고, AI 가 곧 다 번역해줄거야.
미래엔 외국어 능력이 필요가 없을까. 이 학업의 끝이 무엇인지 모르고, 우리는 어떤 미래를 맞이할지 알 수 없지만, 부모는 그냥 피할 수 있는 불편함을 제거해주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다. 토익 점수는 상위권이라도 막상 미국에서 오는 회사 클라이언트 미팅에, 네이티브 스피커인 팀원을 꼭 데리고 나가야 심리적으로 편했던 나와 비슷한 40대의 부모님 세대들은 그 불편함을 아이에게까지 물려주고 싶지 않아한다. 대치동에서 유명한 영유와 상위권의 영어학원 로열 루트로 성장한 아이들과 비교해보면 그들의 점수는 여전히 넘사벽이다. 그러나, 초등 시기에 공백이 한참 있는 아이의 시간, 부모와 길게 함께 보내는 삶의 질까지 고려해본다면, 도쿄에서 잠시 숨을 돌리며 영어를 가르치는 삶. 기회가 우연히 찾아온 사람들에게는 절대 피라지 말라 권하게 되고 (일본맘카페 같은 곳에서 1년이라 가야할지 고민된다는 글을 자주본다. 심지어 학원 진도 등으로 오지말라고들 권한다.), 혹은 기회를 만들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서울을 벗어나 이 가까운 도시의 또 다른 삶의 경험을 만들어 보라고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