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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세동 May 23. 2023

교육학도에게 창업이란

차세동의 이면

나는 교육학과에 진학했다.

조금 더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키가 교육에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이었다.


선생님, 교육감, 교육부장관.

목표하던 자리는 점점 달라졌지만 교육이라는 커다란 궤는 변한 적 없다.


지금은 비즈니스맨, 창업가로 그 자리가 이동했지만 여전히 교육이라는 커다란 궤는 변한 적 없다.


후에 글을 더 적겠지만,

지금은 '문화'에 더 접근하고 있는 우리 회사다.

이 또한 교육이라는 커다란 궤와 접점을 지니고 있다.

스무 살의 교육학도가 창업을 할 때, 세상의 시선을 회상해 본다.




사범대 소속 교육학도들은 선택지가 많은 편이 아니다.

상상하는 모습과 거의 유사할 텐데, 약간의 차이가 있다면 '그냥' 교육학과라는 것이다.

우리들이 제일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다.

'교육학과요? 어떤 교육학과요?'

'국어?, 영어?, 체육?'

'그냥, 교육학과다.'

때문에 우리들의 진로는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으나 대개 다음과 같다.


1. 복수전공을 통해 교직이수를 하여 교과목을 추가하는 방법.

(물론, 교육학과도 사범대 소속이라면 교직이수를 통해 교원자격증이 발급되오나 과목이 '교육학'으로 되어있어 대한민국에서 교직생활할 수 있는 학교가 거의 없다.)

2. 관련 직무(HR 등)나 직업(강사 등)으로 진출하는 방법.

3. 그 외는 보통 기타로 분류되는 듯하다.


사범대 소속 교육학과인 만큼 교원자격증 취득의 길이 기본적으로 열려있기에

대부분 1번, 2번에 포함된다.

그 와중에 3번을 선택한 나는 평균과 다른 길을 걸었다.

그런 나를 걱정하는 이들도, 기이하게 보는 이들도 많았다.


교육학과에서 모두가 복수전공, 심화전공을 고민할 때

나는 듣도 보도 못한 '설계전공'을 선택했다.

적어도 위아래 3학번으로는 '설계전공'을 택한 역사가 없는 것으로 안다.

내가 설계전공을 택했던 이유는 간단했다.

'필요했다.'


스타트업 창업가가 되기로 마음먹은 이상 내가 알아야 할 분야는 너무나 많았으며

힘겹게 올라온 대학교에서 그 모든 수업들이 있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우리 학교 설계전공에 대해서 간략히 설명하면,

단어 그대로 내가 직접 전공을 설계하는 방법이다.

희망하는 수업들을 엮어 일정 수준 학점 이상의 커리큘럼을 만들고,

각 수업들의 소속 단과대 학장 교수님들께 컨펌을 받고,

최종 학교의 컨펌을 받으면 나만의 설계전공을 만들 수 있다.

때문에 내가 직접 전공명을 설정할 수 있고, 졸업장에도 해당 전공명으로 내 전공이 기록된다.


나는 '청소년정책학'이라는 이름으로,

교육을 시작으로 경영, 심리, 사회, 사회복지학 수업 등을 전부 담았다.

나의 교육에 대한 식견을 넓히기 위해 심리가 필요했고 사업에 있어 경영을 뺄 수 없었다.

교육사업에 있어 정책과의 연계와 사회적 임팩트를 제외할 수 없었다.


모두가 복수전공, 심화전공으로 선배, 동기, 후배들과 함께할 때,

설계전공으로 듣도보도 못한 선택을 하는 나는 평균의 경로를 이탈했다.

종종 내가 듣는 수업에 우연히 복수전공으로 수업이 겹치는 동기들만 가끔 운 좋게 만났다.




때로는 눈과 귀를 모두 닫고 여행을 떠나버리는 나였다.


'너 선생님은 진짜 안 할 거야?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설계전공? 학교 그렇게 다녀도 되는 거야?'

'창업? 지금? 굳이? 왜?'


그들에게 사실 왈가왈부 내 역사를 나열하며 설명한 적은 없으나

위 질문들에 얻어맞다 보면 나는 피로했다.


정해진 경로와 다른 길을 간다고, 나의 행보는 모두 의문투성이가 되어버렸다.

때로는 억울하고 때로는 답답했다.


정해진 경로가 모두에게 정답의 경로는 아니다.

이탈한 경로가 모두에게 오답의 경로 또한 아니다.

하지만 세상은 정해진 경로라며 불안함을 감추고,

세상은 이탈한 경로라며 획일화된 가치관을 강요한다.


모든 질문 성심성의껏 답하는 나였지만,

갸우뚱하는 표정, 나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문드러진 시선을 당하고 있노라면 난 세상이 미웠다.

사실, 어쩌겠는가. 감당해야지. 증명해야지. 보여줘야지.

아마 내가 지금도 상당히 증명에 목마른 것은

수많은 질문과 의문, 의심, 누군가 이탈했다는 불만들에

명쾌함을 넘어 경악스러울 정도로 통쾌한 답변을 날려주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시작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수많은 질문과 의문, 의심, 누군가 이탈했다는 불만들은 나를 힘들게 한다.

누구보다 사람들의 응원과 지지에서 힘을 얻는 나였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먼저 손을 내미는 이에게 크게 의지하게 되는 나였다.




사실 더 큰 문제는, 그가 사업을 잘했으면 또 모른다는 것이다.

그는 여전히 비즈니스에서 실패했고, 자신의 비전과 가치만 증명하고 성장시켜 왔다.

그의 비전과 시야는 날이 갈수록 날카롭고 뾰족해졌지만,

그의 비즈니스는 날이 갈수록 무디고 갈피를 잃기 일쑤였다.


또한 누군가 사업을 한다면,

사람들은 그게 제일 궁금한가 보다.

'돈은 잘 벌어?'


애초에 스타트업을 했던 것은 나에게 돈이 목적이 아니었다.

(아니 돈이 목적이었으면 솔직히 나 그냥 입시판에 있었지.. 그때 정말..)

오히려 장사를 했을 것 같다! (장사를 절대 폄하할 생각 없다. 장사 또한 피, 땀, 눈물이 필요한 일!)


내가 굳이 스타트업을 했던 것은 돈을 벌기보다는 시스템을 만들고 싶었고,

시스템을 만들어야 내가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게 제일 궁금했다.

'그래서 돈은 좀 벌어?'


비즈니스에서 실패를 거듭하는 그는,

반대로 날카롭고 뾰족해진 비전과 가치들로 설명했다.

그가 스타트업을 하는 목적, 그가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를 신나서 설명하곤 했다.


그 말을 듣고 있던 이들은 다음과 같이 반문했다.

근데 회사의 목적은 결국 수익창출 아니야?


말문이 막혔다.

맞는 말이다.

회사의 목적은 수익창출이며 그 기저에는 지속가능성이라는 톱니바퀴가 존재한다.

하지만 나의 창업 이유 자체가 결국 수익창출로 귀결되는 그들의 사고를 보고 있노라면

나는 다시 무기력해졌다.


나와 같은 필드에 있는 사람들과 대화하고 싶었다.

창업에 대해, 스타트업의 관점을 공유할 사람들이 필요했다.


약간의 아쉬움이지만 교육학과에서 벗어날수록 나는 관점을 공유할 사람들을 만나왔고,

정답인지 오답인지는

불가항력적인 세상이 정해놓은 것을 수긍하는 것이 아닌,

그들이 직접 확인해 보는 사람들을 만나왔다.


그렇게 스타트업에 대해 배우고 또 배우며

나의 비즈니스 또한 날카롭고 뾰족하게 만들 수 있었다.




정해진 경로에 안착한 사람들의 시선에서,

그 외의 경로는 모두 비정상적인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비정상에 몸을 던져본 나는 새로운 세상을 경험했다.

그곳에는 또 다른 정답이 넘쳐났다.


'여러분도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세요!'와 같은 도전의식을 고취하는 멘트,

나는 절대 하지 않는다.

그 조차 누군가에게는 때로 폭력적임을 알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세상이 정해놓은 질문들이 그러했던 까닭에 그 생채기 나는 멘트들을 공감한다.


단지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정해진 경로에 앉아 말로 형용하지 못하는 어떤 갈증을 느끼는 당신이라면,

때로는 '낭만'이라는 핑계로 이탈한 경로들에 조금 더 따뜻한 시선으로 구경해 보는 것은 어떤가.

그들의 길과 그들의 이야기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밀도 깊은 시선과 실력들이 담겨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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