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동의 표면
스타트업 대표가 되면서부터,
인생에 절대 만나리라 생각하지 못했던 사람들과
몇 시간이고 이야기하는 삶이 되었다.
때로는 몇 분이라도 대화하기 위해
사람들을 쫓는 인간관계가 되었다.
원래대로라면, 특히, 교육학과 출신은
그다지 특별한 인간관계가 필요하지 않다.
임용고시를 통과한다면,
근무 학교에서의 원활한 인간관계면 충분했다.
하지만 스타트업 필드는, 적어도 그에게는 달랐다.
스타트업 필드를 경험한 그는 놀라워했고, 누구보다 기뻐했다.
눈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식견, 지혜, 시야 같은 것들이 곧 실력으로 치환되는 필드임을 체감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늘 눈으로 드러나지 않는 것들을 중요하다고 외쳐왔으나,
세상 속에 그것들은 언제나 사소해지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눈으로 드러나지 않는 것들이 정녕 실력으로 나타나는 이 필드를, 그는 누구보다 사랑했다.
비교적 여리고 어린 나이에 스타트업 필드에 뛰어든 그는,
누구보다 강인한 낭만과 커다란 꿈, 집착 어린 신념과 패기를 지녔을지 몰라도
세상과 비즈니스에 대해 본질을 꿰뚫 시선, 날카로운 식견과 시야, 범접할 수 없는 지혜는 부족하디 부족했다.
때문에 그는 배워야 했다.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그였다.
그는 염치없이, 주저 없이 연락을 참 잘 드린다.
이미 차가운 세상에 역설적으로 데이고 데이며 어느 정도 무뎌진 굳은살 덕분이었다.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하여 어떻게든 자리를 마련한 그였다.
한 없이 쌓여가는 답장 없는 메일과 연락들에 속에서도 소중한 답변과 기회를 주는 이들이 있었다.
덕분에 닿을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분들까지 많이 만나온 그였다.
그는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늘 성장을 갈구했다.
그의 영역이 아니더라도 그의 영역에서 볼 수 없는 것들을 볼 수 있게 해 주기를 원했다.
그리고 그 속에서 경외심을 느끼곤 했다.
그가 만나온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는 다음과 같은 감각들을 기억한다.
1. 나도 몰랐던 나를 기억하게 하는 감각.
2. 그새 겉치레를 쌓아 올려 나도 잊었던 본질을 다시 떠올리는 감각
3. 나를 관통하는 감각.
1. 나도 몰랐던 나를 기억하게 하는 감각.
한 번은 새로운 인사이트가 필요했던 그가 염치도 없지
오래전에 연락이 끊긴 동료에게 연락했다.
그 동료는 그가 스무 살 적, 제천에 있는 대안학교에서 잠깐 자원교사생활을 할 때 만난 이였다.
그 동료에게 연락했던 사유는 다음과 같았다.
한 때, 차세동이 한 참 힘들어하던 때가 있다.
육체적 부상도 심각하거니와 정신적으로도 피폐했다.
그런 그의 사정을 알고 있었던 건지, 그 동료는 그때 기준으로도 참 오랜만에 연락을 전했다.
그 동료는 차세동을 묵묵히 응원했다. 차세동은 그 따스함을 기억했다.
그리고 그 동료가 스타트업 필드와 관련된 일을 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새로운 인사이트를 위해 염치없는 연락을 전하기 충분했다.
그렇게 서울에서 만난 동료에게 그는 자신의 고민을 이야기했다.
거듭되는 비즈니스에 대한 실패에 어쩔 줄 몰라하는 그였다.
동료는 한참을 듣더니 이야기했다.
'근데 실패 안 할 것 같아.'
'솔직히 실패를 못할 것 같아.'
차세동은 예상밖의 문장에 이유를 물었다.
동료는 질문에 또다시 반문했다.
'너는 그래서 결국 너가 실패했다고 생각한 적이 있어?'
차세동은 답했다.
'비즈니스에서는 그래왔어도, 결국 내가 실패한 건 아니지.'
'어차피 또 도전할 거고 나는 이 문제를 해결할 거고..'
그 답을 들은 동료는 이야기했다.
'거 봐, 너 스스로 실패했다고 여기질 않는데 어떻게 실패해.'
'실패를 거듭해도 너가 그것을 실패로 받아들이지 않는 한 실패가 존재하지 않는 거야.'
'근데 너는 결코 포기할 사람 같지는 않거든'
차세동도 잊었던 차세동의 모습을 기억했다.
실패 따위 모르는, 누군가 넘어뜨리면 다시 일어서는 그였다.
꺾이지 않는 마음은 고사하고 꺾여도 다시 일어나기 일쑤인 그였다.
그 감각을 그는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2. 본질을 다시 떠올리는 감각.
차세동은 삶의 방향을 잃었던 적이 있다.
그의 식견과 지혜로는 도무지 방법도 방향도 찾을 수 없었다.
그는 '어른'의 지혜가 필요했다.
그렇게 그가 생각했을 때 '어른'인 사람들에게 마구 연락을 취했고,
감사한 은인들께서 그에게 시간을 허락했다.
그는 모두에게 같은 질문을 했다.
'당신이 나의 육체, 나의 나이, 나의 능력과 신념, 나의 인프라를 갖고 있다면 무엇할 텐가'
그는 뻔한 답변들에 지쳐갔다.
'여행, 독서, 공부...' 여기서 크게 벗어나는 것이 없었다.
그가 모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알고도,
심지어 여행, 독서, 공부에 스스로를 몰아넣어도
안 되는 것 투성이었기 때문에 그들을 찾아간 것이다.
그렇게 '어른'들을 만나고 만나며 끝자락에 다다랐을 때,
친한 옆 청소년기관 센터장님께서 드디어 다른 답을 내려놓으셨다.
나의 질문을 듣던 센터장님께서는 잠깐의 침묵을 즐기시더니 말씀하셨다.
'세동아, 음.. 그냥 상투적으로 얘기하면 여행 다녀라~ 책 읽어라~ 하겠는데 나는 답을 할 수 없구나.'
차세동은 별 기대 없이 말씀드렸다.
'선생님 그냥 별 부담 없이 편하게 생각나시는 것 말씀해 주세요, 센터장님이 저라면? 무엇하시겠어요?'
센터장님은 답했다.
'세동아 사람들은 생각보다 자신이 계획한 대로 살아간다고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차세동은 물었다.
'왜죠?'
센터장님은 답했다.
'세동아 너는 너가 스타트업 창업가로 살 거라고 상상이나 했어?'
'한 사람이 만들어지는 것은 그 사람의 계획이라기보다는,
세상이 던져대는 여러 선택지 중에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서 인 것 같아.'
'나는 앞으로 너에게 어떤 선택지들이 던져질지 알 수 없고,
그 속에서 어떤 선택들을 하며 '차세동'이 만들어질지 알 수 없기에'
'나는 '너'일 수가 없구나'
차세동은 어른들의 식견을 그대로 적용하면,
지금의 자신은 성장할 수밖에 없으리라 생각했던 어리석은 스스로를 반성했다.
결국 본질이었다.
'나'를 만드는 것을 결국 '나'인 것을.
그는 '지혜'라는 이름으로 '그를 만드는 것'조차 의존하려 했다.
3. 나를 관통하는 감각.
종종 이런 사람들을 만나면 무서워하기까지 한다.
흔히 말하는 '통찰력'을 경험할 때이다.
어린 나이의 창업, 그렇게 베테랑에 가까운 경력과 결과물들을 만들었지만
그는 나이만을 이유로 섣부른 무시와 괄시를 받아왔다.
상처를 받으면서도 어쩔 수 없는 것이라 여기며 무뎌진 그였다.
한 번은, 차세동과 친한 선생님께서 그에게 꼭 소개하고 싶은 사람이라며
실력과 입지는 당연하거니와 그 내공이 엄청난 분이라며 꼭 대화해 보라고 하셨다.
그는 시간과 자리를 허락받아 친한 선생님이 소개해주고 싶은 이를 만났다.
짧은 대화가 오갔다.
내공이 가득하다던 그분께서 잠깐을 듣더니 차세동에게 전했다.
'그 생각들이나 가치관, 철학들이 그냥 만들어진 것은 아닌 것 같네요.
그의 실력인지 모르겠으나 숱한 상처 끝에 만들어진 것 같은데 정말 대단하네요.'
차세동은 총알에 맞은 듯 스스로 관통당하는 경험을 했다.
그의 역사도 모른다. 그의 실력도 눈으로 본 적이 없다.
잠깐의 대화로 그의 역사도, 그의 실력도 들켰다.
늘 보통, 그 이상을 눈으로 보여주고 경험시켜 주어야 인정과 납득을 받았던 차세동이었다.
그런 그에게, 잠깐의 대화로 들켜버린 그의 역사와 실력은.
그를 관통하기 충분했다.
종종 이런 말도 안 되는 '통찰력'을 지닌 분들을 만나면
스스로 반성하면서도 성장에 대한 열의가 가득 차는 차세동이었다.
이 세상에는 엄청난 사람들이 정말 많은 듯하다.
차세동은 오늘도 그런 사람들과 때로는 대결을, 때로는 배움을 만날 생각에 설레한다.
+@ 하나 더, 나와 같은 사람들.
스타트업 필드에 적지 않은 시간 생활하며
다양한 스타트업 동료분들을 만난 그였다.
그는 분야는 달라도 그와 비슷한
'낭만 섞인 창업 동기'를 지닌 분을 만나거나,
창업 동기 속에 '사람'이 있는 분을 만나면
신나서 만남을 청하곤 했다.
그런 분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차세동은 평생 느낄 수 없을만한
농도 깊은 탐구를 간접경험했다.
그들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가득했다.
각 분야에 대해 온몸으로 변화를 만드는 사람들과 대화하고 있노라면 2시간, 3시간은 후딱 지나가버리는 그들이었다.
차 한 모금, 밥 한 끼 하는 것도 잊어버린 채 각자의 필드에서,
각자의 생각과 낭만 섞인 비전들을 풀어놓다 보면
서로가 서로에게 가장 듬직한 동료이자,
서로가 서로에게 가장 지혜로운 스승이 되는 그들이었다.
또, 스타트업 필드가 아니더라도,
교육 필드에 오래 몸담은 그가
다른 이유들보다 '아이들'을 가장 먼저 생각하고 고민하는 선생님들을 만나면
이 고이고 고인, 난이도가 높다 못해 우주로 쏘아져 버린,
이 필드가 변할 수도 있겠다는 작은 가능성을 품기도 한다.
그러한 선생님들과의 주기적인 만남은, 그에게 희망이 되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