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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세동 May 25. 2023

스타트업 대표의 인간관계Ⅱ

차세동의 이면

남자 셋, 자리에 앉은 지 10분 정도 지났다.

나는 친구가 많은 편이 아니다.

여러 이유가 있는데,


나의 인간관계에 대한 역사를 천천히 나열하며

그 이유들을 설명해본다.


어릴 적 나는,

모두에게 예쁨받고 싶었다.


사실 어쩌면 당연했다.

심지어 가정에서 결핍된 애정은

더욱 더 친구들에게서 찾게 되었다.


사랑에 대해서 더 적겠지만,

사랑도 사람도 나에게 커다란 비중을 지닌다.

그런 나의 인간관계는 스무 살을 기점으로 변했다.

내가 스타트업을 시작했던 나이였다.


내가 대학에 붙었을 때, 주변인의 반응은 두가지로 나뉘었다.


나의 역사를 알거나, 나의 나름의 피,땀,눈물을 알고 있는 이들은 진심 섞인 축하를 보내주었다.

나의 피,땀,눈물이 세상이 이야기하는 성적과 스펙은 아니었으나,

그 본질이 세상을 위함이라는 나의 꿈을 기억하는 사람들이었다.

때문에 종종 그 사람들 중에는 '당연하다', '이것도 아깝다'라는 반응도 있었다.

과분한 응원과 지지에 진심으로 감사를 전한다.


하지만 이를 모르는 이들에겐 단지 '성적도 스펙도 안되는 녀석이 명문대를 진학한 질투나는 신화'였다.

나는 모두에게 예쁨 받으려던 내가 어리석어보였다.

나의 피,땀,눈물은 몰라도 나의 피,땀,눈물이 운과 오류로 포장될 때

나는 스스로를 부정당하는 듯 했다.


성인이 되어서는 '세동데이'를 주최할 만큼

사람들을 좋아하고 수 많은 관계를 즐기는 나였다.

그러나 그 피상적인 관계 속에 나는 결국 지쳐갔다.

'사람'을 좋아하는 만큼 사람들 속에서 '의미'를 찾는 나였으나

나는 그 의미를 금새 잊어버리곤 했다.


그렇게 스무 살부터,

나는 모든 관계를 정리했다.

과분한 응원과 지지를 보내준 소수의 사람만 있다면 나는 행복했다.

의미를 찾지 않더라도, 존재자체가 나에게 의미가 되어준다면 나는 행복했다.


그렇게 나에게 남은 소수의 사람들을 소개한다.




고등학교 3학년, 내가 체감하기에 공부를 하는 이들이 몇 안되었다.

수업을 시작하면 모두가 잠에 들곤했다.

혼자 깨어있는 경우도 종종 있었으며, 학교 수업은 과외가 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 속에는 나와 함께 공부를 했던 이들이 있는데

그들을 소개한다.


남자 A.

나와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친했던 친구로 축구를 함께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같은 반이 되어 공부에 열의를 보였다.

고3 때 나보다 더 열심히 공부했다고 인정하는 유일한 사람이다.

조금은 늦은 그였으나 약간의 도움을 전달하며 함께 공부하는 사람이 되었다.

체대에 진학하고 싶어했다.


남자 B.

고등학교 2학년 때 같은 반이었으나 친하지 않았다.

나와 노는 무리도 달랐거니와 약간은 불량한 학생이었다.

이 친구와는 하나의 애피소드가 있는데,

나는 자습시간에 잠이 쏟아지면 교실 밖 사물함에 서서 공부를 하곤 했다.

그 때도 여느 때와 같이 사물함에 서서 공부를 했고 나는 잠시 화장실로 향했다.

그리고 화장실에서 돌아오는데 내 사물함위에 놓인 공책에 '남자B'가 무엇인가를 끄적이는게 아니겠는가.

나는 고3때 예민함이 끝까지 올랐고 내 필기를 건드리는 것을 질색했다.

그렇게 남자B에게 호통을 치고 쫓아냈다.

그러나 그 공책에 적혀있는 필기가 생각보다 수준급이 아니겠는가.

남자B와 잠깐의 대화를 나누었고 남자B에게는 '항공기 조종사'라는 목표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후부터 약간의 도움을 전달하며 함께 공부하는 사람이 되었다.


남자 C.

잘 모르던 친구였으나 이과에서 고등학교 3학년, 문과로 전향하여 같은 반이 된 친구다.

원래도 공부를 잘했고 또 열심히 하는 친구였다.

자연스럽게 함께 공부하는 사람이 되었다.


비주얼부터, 지금까지의 역사 또한 모범과는 거리가 먼 4명이 모였다.

그렇게 모인 4명이 정말 모든 것을 부숴버릴 기세로 공부를 했다.


점심시간이 되면 급식실에 뛰어갔고

급식을 거의 '마셨다'. 아니다 정말 그냥 '마셨다'.

그리고는 도서관으로 향해 나머지 공부를 채우는 우리들이었다.


정말 누가 쫓아오는 것 마냥 전투적으로 공부했다.




그렇게 첫 번째 수능이 끝났다.

차세동 : 그다지 마음에 드는 성적이 아니었으나 이냥저냥 봤다. 후에 극적으로 대학에 합격한다.

남자A : 체대에 진학하고자 했던 그는 수능성적도 실기성적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재수를 했다.

남자B : 수능에서 수학을 찍어서 4개, 5개를 맞췄다. 수학이 유일한 약점이었던 그에게 대박이었다.

남자C : 준수한 성적으로 대학에 진학했다.


첫 번째 수능에서 가장 충격적인 건 남자B였다.

수능에서 수학을 찍어서 4개, 5개를 맞췄다는 건

점수로는 15~20점, 등급으로는 2~3칸을 뛰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남자B는 재수를 선택했다.

나는 극구말렸다.

그러나 남자B는 단호했다.

'찍어서 맞춘 것은 운이 좋았지만, 이 점수로는 항공운항과 못 가'

'항공운항과가 아니면 안 가.'

내가 남자B를 좋아하는 이유다. 이런 녀석이다.


-


두 번째 수능이 끝났다.

남자A : 수능을 잘 봤다!

남자B : 수능을 잘 봤다! 결국 항공운항과에 진학했다.


남자B는 결국 증명해냈다.

남자A도 수능을 잘 봤기에 실기만 잘 마무리하면 되었다.

평소 실력이라면 충분히 합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실기 일주일 전, 남자A는 부상을 당했다.

나는 저번 수능과 마찬가지로 남자 A에게 권유했다.

'지금 성적이면 체대 아니어도 갈 수 있는 곳 널렸다. 지원 해보자'

남자A는 거절했다. 남자B와 비슷한 이유였다.

내가 남자A를 좋아하는 이유다. 이런 녀석이다.


-


세 번째 수능이 끝났다.

남자A는 결국 원하던 체대에 진학했다.


이런 녀석들과 함께하니 서로의 꿈과 낭만을 응원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함께 있으면 누구보다 투박하고 누구보다 거칠지만

결국 누구보다 낭만과 꿈을 쫓는 이들이었다.

소주를 들이부어 술에 잔뜩 취하고는 미래를 꿈 꾸는 것이 일상인 이들이었다.

기훈이를 제외하면 내가 정기적으로 만나는 유일한 고등학교 동창이다.


이들의 존재는, 나에게 낭만이다.




좁아진 인간관계 속에서 나는 편안함을 찾았다.

내가 곁에 두고자 하는 사람들에 대한 나만의 기준을 처음으로 세웠다.

이 기준은 곧 인간으로부터 오는 상처를 지키는 나만의 방어선이 되었다.


나만큼은 나를 가장 사랑해주고 싶었다.

흔히 불리는 자존감은 나를 존중하는 마음임에도 불구하고,

종종 내가 아닌 남 때문에 깨진다.

상처로부터 나를 지켜야 했다.


대학에 진학하고,

성인이 되어서도 나만의 방어선을 기준으로 나의 인간관계를 만들었다.

특히, 어린 나이 스타트업을 시작하면서

무작위로 형성되는 인간관계에 대해서는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다행이었다.


무작위로 형성되는 인간관계 속에서 나만의 방어선을 만드는 과정은 괴롭다.

운이 좋게도 그 전에,

나만의 방어선을 깊은 고민과 함께 구축한 나였다.


하지만, 이는 결국 바이러스부터 나를 고립시키는 과정이었고

나는 면역력이 떨어졌다.


누구보다 인간관계에 강인한 나는,

누구보다 인간관계에 취약해졌다.


나는 그 누구보다 강인하지만,

그 누구보다 취약하기도 하다.


내 방어선 안에 함께 하고 있는 이들.

동료들과 친구, 그리고 아이들.

이들은 유일하게 나를 무너뜨릴 수 있는 존재인 동시에,

나를 무참히 좌절시킬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다.


이는 곧,

그 외의 관계들은 나를 무너뜨릴 수 없다는 말이 된다.




그리고 이면의 한 가지 더,


나에게 사랑은 커다란 비중을 갖는다.

중학교 1학년을 시작으로,

한 번도 사랑을 멈추지 않은 나였다.


때로는 배려 없는 사랑을 했으며

때로는 헌신적인 사랑을 했고,

지금은 온전한 사랑을 경험한다.

그렇게 결혼이라는 궤도에 오르는 중이다.


사랑은 나의 사유와 감정의

커다란 시발점 중 하나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겠노라는 다짐도,

계산으로는 납득되지 않는 불합리한 행동도

결국 '사랑'이라는 이유로 나에게 정당성을 갖는다.


'사랑'은 늘 나에게 '낭만'같은 존재가 되어주었다.


나를 무참히 좌절시킬 수 있는 또 하나의 존재.

곧, 내 방어선 안에 숨어있는 나를 어루만져주는 유일한 존재이다.




스타트업 대표의 인간관계,

그 이면에는 이런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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