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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세동 Jun 30. 2023

경찰서 아이들 II

차세동 외전

선생님의 수업이 너무 기대돼요.
말로만 들었지 선생님하고 꼭 한 번 같이 해보고 싶었는데.
어떤 수업 준비하고 계신 거예요?


종종 감사하게도. 나의 스타일을 좋아하고 기다려 주시는 선생님들이 계신다.

일반의 수업에서는 흔히 드러나지 않는 빛깔들이 나의 수업과 커리큘럼에 녹아있기 때문일까.

비교적 어린 나이. 정의되지 않는 포지션. 나만 볼 수 있는 세상이 존재한다.

그 세상 속의 이야기들을 전하는 것은 나만이 할 수 있는 수업과 이야기가 되었다.

[내가 바라보는 세상은 '우울증 선생님의 낭만 스타트업'에 담아두었으니 궁금하다면 한 번 들러주세요 :)]


수업이 다가오는 전날 밤까지도.

범법 청소년들에 대한 이리저리 뒤엉킨 생각들을 차분히 정리했다.

그렇게 나의 수업 방향성과 콘텐츠들을 마련했다.




전달받은 바에 의하면,

이미 그들은 경찰서에서 잔뜩 혼나고 온다고 한다.

그래서 꽤나 위축되어 있을 것이라고 한다.

솔직한 심정으로 반은 믿고, 반은 믿지 않는다.

자신을 혼내는 경찰관 앞에서 반성하지 않는 청소년이 어디 있겠는가. (물론 종종 있어 놀랍다.)

오히려 반성이라는 가면을 쓰고 뒤에서 친구들과 새로운 범죄를 구상하기도 한다.

어쩌면 나만이 유일하게 살펴볼 수 있는 그들의 세상이었다.


그래서 나의 수업 목표는 '달래주기'가 아니었다.


사회에서 모두는 각자의 역할이 있다.

청소년들의 '행복'을 위해서도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가 수행해야 하는 역할들이 존재한다.

누군가 자신이 행하는 것만이 '청소년의 행복을 위한 것'이라고 여기거나.

누군가 자신이 '청소년의 행복을 위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라고 믿는 순간.

모든 것이 망가지기 시작한다.

부모도. 선생님도. 청소년 기관 종사자도. 경찰관도.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역할을 수행할 때.

우리는 가까스로 청소년들의 행복에 다가갈 수 있을지 모른다.


나의 역할은 무엇일까 골똘히 고민했다.

아무리 고민해도 나의 역할은 '달래주기'가 아니었다.

그들을 달래주어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닌 다른 이었을 테지.

누군가에게는 부모가. 누군가에는 학교 담임 선생님이었을 테지.

좋은 부모. 좋은 스승을 만나는 것은 너무나 큰 축복이지만.

나쁜 부모. 나쁜 스승을 만나는 것은 너무나 큰 재앙이라는 사실이.

랜덤으로 결정될 수밖에 없다는 이 세상 이치에 나는 늘 씁쓸함을 맛본다.


나는 정의되지 않는 내가 바라보는 세상을 선물하고자 했다.

그들이 만난 세상과는 분명히 다른 세상이 존재하며.

그 세상 속에서 그들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고.

그렇게 작은 믿음이 피울 큰 용기를 희망하며 수업을 준비했다.

나의 수업으로 재범만큼은 100프로 방지하겠노라 의지를 다졌다.


세련된 모습으로 이런 어른이 있다는 사실을 꼭 보여주고 싶었다.

너희들이 만나온 세상이 아직 전부일리 없다는 의심을 선물하고 싶었다.





3일.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다.

3일 내리 나와 함께 할 아이들에게 소중한 흔적을 남기기에는 빠듯하지만, 분명 가능한 시간이다.

나는 이 3일의 역학을 최대한 활용하기로 했다.


나는 세 가지 역학을 강조한 수업을 준비했다.

1. 쓰기와 말하기의 적절한 접속.

2. 과거-현재-미래로 이어지는 3일간의 플로우.

3. 지금까지 만나본 적 없는 어른의 표상.


내가 수업을 준비할 때,

또 교원들과 청소년 기관 선생님들께 자문/교육할 때 강조하는 것 중 하나가 쓰기와 말하기의 역학이다.

쓰는 것과 말하는 것은 단순 행위.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쓴다는 것은 누구보다 사적일 수 있으나, 어느 때보다 기록의 의미를 진하게 가진다.

말한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분명하게 닿지만, 어느 때보다 휘발될 수 있다.


단순히 쓴다는 것은 결과물을 만드는 것.

단순히 말한다는 것은 발표한다는 것.

이런 단순한 접근은 아이들의 심리적 역학까지 세심하게 고려하기 어렵다.


3일이라는 기간을 최대한 활용하고,

나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을 최대한 만들어내는 것.

그렇게 다양한 고민과 생각을 안고 수업이 시작되었다.


첫째 날.

나에 대한 이미지. 내가 표상할 어른의 모습을 충분히 설명했다.

그들이 만나보지 못했던 세련됨과 독특한 분위기를 내 옷과 목소리 안에 가득 담았다.

그들의 무표정 속에 웃음을 선물하겠노라.

그중 절반은 웃음이 표정 밖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도록 하겠노라.

그렇게 모두가 내일에 대한 기대감을 지닐 수 있도록 만들겠노라.

오늘 참석한 전원, 다음 날 출석률 100%를 기록하겠다고 다짐했다.

첫날은, 쓰기의 비중을 높였다.

모든 기록의 전제는 '절대 발표하지 않는다.' '나 조차도 절대 그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는다.' 두 가지였다.

아직은 긴장감이 흐르는 공간에 스스로가 스스로를 가장 편안하게 대면할 수 있도록 문화를 만들었다.

발표도, 공유도 존재하지 않는 글쓰기는 금세 집중하는 사각사각 소리만을 만들었다.

지금까지의 자신에 대한 과거를 충분히 회상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분위기를 만들었다.

'전달하는 시간, 귓가에 맴도는 플레이리스트 한 곡까지 신중하게 선택했다.'

그들이 글로써 답변한 질문들은 세 살짜리 아이들에게는 흔했겠으나,

어른들과 그들이 마주해 온 세상 속에서는 너무나 낯선 것들이었을 것이다.


둘째 날.

어제 참석했던 전원.

100% 출석했다. 순조로운 출발이었다.

둘째 날. 나는 그들이 만나본 적 없는 세상을 감각적으로 제시했다.

그들은 높은 확률로 '원인-결과-자극'의 굴레에 위치했다.

그들에게 조금은 추상적인 생각과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가치들을 

직접 피부로 느낄 수 있도록 수업을 설계했다.

상투적인 것들에서 한 참을 벗어난 그들만의 음악을 적극 활용하며 말하기의 비중을 높였다.

잔뜩 화가 난 표정으로 첫째 날을 기싸움으로 채운 그 친구도 자신의 플레이리스트를 조심스럽게 공유했다.

그때의 말들과. 어쩌면 부끄러웠을지 모르는 자신의 플레이리스트는 그 공간에서 증발한다.

하지만 증발하며 만들어낸 수증기가 분위기로 녹아 우리 피부에 닿아 물이 되는 경험.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그 분위기와 에너지를 모두가 분명하게 경험했다.

그 순간만큼은 모두가. 지금의 자신에게 놀랍도록 집중했다.


셋째 날.

참석했던 전원. 또다시 100% 참석했다.

교실은 앞자리부터 채워지기 시작했다.

자신의 앞으로에 대한 새로운 다짐과 의지를

말하기와 쓰기의 역학을 적절히 활용하여 배치했다.

3일간 그들이 만난 세상은 그들이 믿어왔던 세상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다.

이런 세상도 있다고 일러주는 이가 없었겠지.

내가 보여주었던 세상은 그리 낙관적이지도. 그리 부정적이지도 않다.

단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었고, 그 세상 속 그들의 모습에 선택지를 주었을 뿐이었다.

때로 어른들은 부정적인 것은 더 부정적으로 겁을 주고.

낙관적인 것은 더 낙관적으로 묘사하며 안심을 주려 한다.

그래서 종종 내가 표상하는 모습들은 상당히 현실적이라서 상당히 낭만적이다.

상당히 현실적인 모습에 그들은 믿음을 얻고,

상당히 낭만적인 모습에 그들은 용기를 얻는 듯했다.

그리고 그 현실적인 세상 속에 낭만적인 스스로를 그려내는 경험

3일이 지난 지금. 그들은 만날 수 있었다.


마지막 날,

나는 모두 각각에게 손편지를 적었다.

감성적인 호소나 그동안의 고생을 담지 않았다.

그동안 그들 주변의 어른들이 그들에게 진작 해주었어야 할 말들을 대신해서 적었다.

누군가에게는 따끔한 조언이었을지 모르고.

누군가에게는 그토록 기다린 어른들의 사과였을지 모른다.

단지, 그들이 범법 청소년으로 나에게 오기까지,

그들의 손을 따스하게 잡아준 어른이 없었을지 모른다는 아쉬움만이 나를 맴돌았다.


나의 수업으로 재범만큼은 100프로 방지하겠노라 의지를 다졌다.

각자의 범죄와 잘못의 이유는 가지각색이었지만,

'내일을 기대하는 오늘'을 만들면. 

그들에게 앞으로 범죄와 잘못을 저지르지 말아야 할 이유 하나씩은 더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들의 오늘은 앞으로의 내일을 기대할 수 있을까?


3일이 종료된 그날. 이대로는 아쉽다며 나와 빈 교실에 남아 앞으로의 삶을 치열하게 채웠던 순간들이.

3일이 종료된 그날. 힘든 상황에 직면하거나 조언이 필요할 때 연락하겠다는 밤 중의 카톡이.

그들의 오늘에 이제는 '내일'이 있음을 실감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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