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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 백수 Sep 03. 2024

런던 집 구하기, 시작은 순조로웠다

찬란하지만 고독한, 런던 표류기

3인 가족이 런던에서 최소 1년간 머물 집을 구하라. 조건은 다음과 같았다.

1. 아이 학교까지 30분 이내 거리여야 한다.

2. 완벽하게 안전해야 한다. 내겐 10살 딸이 있다.

3. 가구와 가재도구가 갖춰져 있어야 한다.(furnished)


아이 학교는 이미 확정되어 있었다. 우편번호 SW7, 런던에서도 집값이 가장 비싸다는 켄싱턴 복판에 자리잡은 사립학교. 이 학교에서 멀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은 비싼 임대료를 의미했다. 안전도 곧 돈이다. 치안이 좋고 깔끔한 동네는 당연히 임대료가 비싸다.


어차피 휴직 기간은 1년이다. 노마드 처지인 우리는 가재도구를 살 생각이 없었다. 최대한 갖춰진 집을 찾았다. 침대와 소파 등 기본적인 가구는 물론 TV, 냉장고와 세탁기, 청소기와 전자레인지, 식기류 등이 많을수록 좋았다. 초기 정착 비용을 덜 쓰겠다는 계산이다. 하지만 그만큼 월세는 비싼 집을 찾는 셈이었다.


런던에 가기 전에 집을 구해놓자

안정된 상태로 시작하고 싶었다. 최선은 런던에 도착하기 전에 집을 확정해놓고 히드로 공항에서 바로 우버를 잡아타고 들어가는 시나리오다. 10월 중순께부터 본격적으로 영국의 여러 부동산 관련 사이트를 뒤졌다. 관심 있는 매물이 있으면 부동산 중개업체에 연락해서 세부 조건을 문의했다. 아이 학교에서 받은 스쿨버스 노선도를 부동산 업체에 공유해주고 그 선 안에서 집을 찾도록 했다.


집을 실제로 봐야, 또 집 주변도 둘러와야 할텐데 그럴 수가 없다는 게 문제였다. 뷰잉을 대행해주는 한국인들이 있다. 이른바 '정착 서비스'. 집 추천과 뷰잉, 계약에 도움을 주는 것까지 600파운드를 받는다고 했다. 100만 원? 차를 사고 은행 계좌를 트고 인터넷을 연결하고 동네 병원에 환자등록을 하고 하는 잡다한 것들까지 도움을 받으면 200만 원은 줘야 한다고 했다. 그게 뭐라고 돈을 쓰나. 내 영어가 유창하지는 않아도 대략 이해는 하니까 그냥 직접 하자,라고 생각했다.


초반은 순조로웠다

우리가 직접 집을 살펴볼 수가 없으니 온라인 뷰잉을 요청했다. 사진은 온갖 렌즈를 끼고 찍고는 후보정까지 해서 한껏 과장할 수 있지만 영상을 보고도 속을 가능성은 아직 덜하다고 믿으면서.


생각보다 부동산 업체는 협조적이었다. 하긴 계약을 해야 돈을 버는 중개업체 입장에서 까다롭게 굴 이유가 뭐가 있겠나? 중개업체 직원이 직접 현장에 나가서 영상통화 형태로 실시간으로 보여주면서 소통하거나, 현장에 나가서 촬영한 영상 파일을 보내주기도 했다. 이러면 되는구먼.


비슷한 방식으로 부동산 중개업체 세 곳을 통해 집을 서너 곳 봤으려나. 부부의 의견은 어렵지 않게 한 집으로 수렴했다.


zone2의 19평 투베드룸 플랏 월 2,550파운드

zone 2*에 있는 대형 쇼핑몰인 웨스트필드 인근의 셰퍼드부시 지역 플랏. 세컨 플로어(한국식으로는 3층)에 있는 678제곱피트, 19평. 투베드룸에 거실 주방, 욕실을 갖춘 집이었다. 각종 가구류가 갖춰져 있었고 아이 학교까지는 차로 15분 이내, 대중교통으로도 버스 한 번 타면 넉넉잡고 45분이면 충분했다. 우리 요구 조건을 거의 충족한 집이다.


뷰잉 과정에서 화장실 천장 페인트가 일부 벗겨지는 등의 소소한 문제가 눈에 띄었다. 목록을 작성해서 요청하자 집주인은 고쳐놓겠다고 흔쾌히 약속했다. 커튼과 소파커버도 깨끗하게 드라이클리닝 해주기로 했다.


임대료 호가는 월 2,600파운드, 나는 10%를 깎아서 월 2,340파운드를 제시했다. 중개업체에서는 '전세계에서 사람들이 밀려드는 런던에서 부동산 가격은 오늘이 가장 싸다(!). 일단 집주인이 제시한 가격을 받지 그러느냐'고 했지만 그런 게 어디 있나. 거래에 줄다리기가 없을 수 없다. 연말 되기 전에 빨리 한 건 더 계약하기를 바라는 중개업체의 다급함은 이해하지만 나는 나대로 절박하다. 곧 백수가 된다...


최종적으로는 월 2,550파운드로 정했다(결과적으로 많이 깎지는 못했다). 19평짜리 투베드룸에 월 임대료가 420만 원쯤 되는 셈이었다. 여기에 전기와 수도, 가스 요금과 BBC 수신료, 세금 등은 별도다.


대체 얼마짜리 집인데 임대료가 이렇게 비싼가 싶어서 뒤져봤다. 부동산 관련 사이트에 공개된 이 집 가격은 687,000파운드. 대략 12억 원쯤 하는 집이다. 19평짜리 투룸이 12억.


11월 1일 계약 의사 전달...다 된 줄 알았다

영국에서는 부동산 거래 할 때 세입자는 복비를 내지 않는다. 모두 집주인이 부담한다. 갑님이 모든 걸 감당해야 하는만큼, 세입자는 신뢰할 수 있는 자만 받으려는 것일까. 깐깐하다. 11월 1일, 계약 의사를 밝히고 이제 다 왔다 싶었는데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갑님은 보이지도 않고 부동산 중개업체와 레퍼런스 체크 업체가 고문 수준의 요구를 하기 시작했다.


*교통카드 구역. 런던 전역을 6개 구역으로 분류하고 있다. 아래 그림에서 보듯 1구역은 도심, 6구역이 가장 외곽이다. 여행자들이 주로 찾는 명소는 95%가 1, 2구역에 있다. 히드로 공항은 6구역, 아래 지도에서 8시 방향에 지하철 노선이 바늘귀 모양으로 한바퀴 돌아나오는 부분에 있다. 한국인들이 만 명 가량 거주하는 뉴몰든은 4구역이다.

지하철로 구역 내에서만 이동하면 기본 요금만 부과되지만 구역을 넘으면 일종의 할증 요금이 붙는다. 런던의 교통카드인 오이스터 카드를 사거나, 한국에서 컨택리스 카드를 만들어오면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편리하다. 버스는 이 구역과 상관 없이 같은 요금으로 운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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