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하지만 고독한, 런던 표류기
겨울이었다. 히드로 공항에 내린 날은 2023년 12월 26일.
나와 아내 그리고 10살 딸, 세 식구가 런던까지 오게 된 복장 터지는 사연은 일단 넣어두기로 하자. 무엇보다 그 일을 일일이 복기하는 게 내 정신 건강에 이로울 리 없으니.
아주 간결하게만 요약하자면 나는 만 20년 넘게 일한 경력에 쉼표를 찍기로 했다. 큰 파도가 밀려왔고 배는 견디기 어려워보였다. 침몰하기 전에 피항하자,라는 마음으로 휴직원을 내고 런던으로 날아왔다.
급여가 모두 끊긴 고통은 무시할 만한 수준이 아니지만 런던 백수의 일상은 나쁘지 않다. 아니 찬란하다.
하지만 처음부터 찬란한 객지의 삶이 있으랴. 가족 누구도 영어에 능숙하지 않다. 미국 영어라면 그래도 좀 수월하겠는데 영국 영어는 영 적응이 어려웠다. 낯 설고 물 설고 말도 잘 안 통하는 곳, 어떻게 따뜻할까?
심지어 우린 런던의 겨울을 만만하게 생각했다. 오기 전에 읽은 이런저런 자료가 말하는 영국 기후는 '극단적이지 않음'으로 요약된다. 런던은 북위 51도, 서울(38선 아래에 있다. 북위 37도)보다 훨씬 북쪽에 자리잡고 있지만 남쪽에서 흘러올라오는 난류의 영향을 받는 탓이라나. 한겨울 평균 최저기온 영상 4~5도, 한여름 평균 최고 기온이라고 해 봐야 (33도도 아니고) 23도다.
한여름에는 최고기온 영상 40도, 한겨울에는 영하 15도를 오가는 한국 기후에 적응되어 있는 우리 아닌가. 물론 겨울 런던에 비는 많다. 10월부터 1월까지 평균 70밀리미터 안팎 내린다지만, 시간당(!) 100밀리미터는 우스운 한국의 극한 강우에는 비할 바가 아니다. 많다기보다 잦다라고 해두자.
그래서 우리의 선택은? 한국에서 입던 두꺼운 패딩은 일단 놓고 가자,였다. 세 식구 일 년 살이를 위한 짐은 이미 차고 넘쳤다. 출발 전날 밤까지 짐을 쌌다 풀었다, 무게를 재서 이 가방에 넣었다 저 가방을 다시 열기를 반복하는 난리를 겪는 상황에서 당연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도착 첫날부터 당황의 연속. 눈은 내리지 않는다. 아니 드물다. 지난 겨울에 눈 비슷한 게 날리는 걸 두어 번 본 게 전부다. 최저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는 날이 거의 없으니까 당연.
대신 거의 온종일, 거의 날마다 예외 없이 비가 오락가락했다. 통계를 보면 월 평균 비 내리는 날이 10일에서 12일 사이라더니 순 거짓말이다(거짓말은 한국 기상청만 하는 게 아니다). 해가 나오나 싶어서 외출했다가 흠뻑 젖기 일쑤였다. 한국에서는 물론 방수 개념이 없었던 터라 신발 속까지 젖는 날이 부지기수였다. 해만 나면 런더너들이 왜 개를 데리고 산책을 나오는지, 볕 좋은 공원 벤치마다 카페 의자마다 왜 그렇게들 해바라기를 하고 앉아 있는지 단 며칠만에 이해했다.
게다가 바람은 또 왜 이리 부는지. 빗방울은 사선으로 떨어졌다. 거리엔 우산 쓴 사람이 드물다. 사실 우산을 써도 소용이 별로 없는 탓일까. 어차피 바지는 젖어서 다리에 휘감겼다. 우산 쓴 사람은 여행자, 대신 모자를 눌러 쓰거나 그냥 비를 맞는 사람은 현지인처럼 보였다.
뼈마디가 시린 것은 내가 나이 든 탓인가 런던의 기후 덕택인가.
결국 방수가 단단히 되는 레인코트 같은 걸 입는 게 훨씬 효율적이겠다. 옷이 젖으면 냄새가 날 텐데, 비 맞으면 감기에 걸릴 텐데, 어 또 우산 뒤집어져서 망가졌네. 이런 걱정을 매일 하느니 우비를 입고 다니는 편이 나았다. 인체에서 열이 가장 많이 빠져나가는 부위는? 정답은 머리. 비와 바람을 가릴 모자도 써야 한다.
불행 중 다행으로 우리가 도착한 시점은 연말이어서 모든 상점이 큰 폭으로 세일을 하고 있었다. 반값은 예사고, 70~80%까지 싼 값에 옷이며 신발을 갖출 수 있었다. 자라 매장을 돌며 안쪽에 털까지 덧댄 방수 점퍼를 아이에게 사 입혔다. TK max에서, 토미힐피거에서 바람막이와 털모자와 목도리를 사서 중무장했다.
덕분에 언 몸이 녹았지만 터무니 없는 환율에 잔고도 녹아 내렸다. 달러는 1300원대, 유로는 1400원대인데 왜 파운드만 1600원대인가. 매순간 음식값과 옷값을 한국돈으로 계산하며 혀를 내둘렀다.
런던이 비교적 고위도 지역이니까 여름엔 낮이 길고 겨울엔 밤이 훨씬 길다는 것쯤이야 나도 안다. 그래도 이건 심하잖아. 런던 시간 오후 4시만 되면 어둠이 내려 앉았다. 한국 시간으로 자정 쯤이니까 슬슬 졸릴 만한 시간에. 낭패. 아니 시차 적응이 필요 없는 이 상황은 차라리 다행인가?
밤이라고 바람이 잦아들지 않았다. 낡고 부실한 창문은 바람에 덜커덩거렸다. 춥기도 춥지만 시끄럽고 불안했다. 심지어 집 근처 공원에서 여우(진짜 동물 여우 말이다)들이 데이트를 하는지 싸우는지 괴상한 소리가 밤새 들리는 날도 적잖았다.
여행자 모드에 가까웠던 우리는 싸돌아다니다가 흠뻑 젖어 들어와서 초저녁에 잠들었다가 자정 넘어 깨곤 했다. 눈치 없는 배는 왜 자꾸 고픈가. 우린 쓰게 웃으며 컵라면에 물을 붓거나 누룽지를 끓이고 조미김 봉지를 뜯고 참치캔을 땄다.
춥고 배 고프고 때때로 외롭고 우울하고 심지어 후회스러울 때, 따뜻하고 짠 한식, 특히 국물이 주는 위안은 달콤했다. 먹을 걸 이렇게나 많이 가져간다고,했던 내가 무안할만큼 큰 가방 가득 들어 있던 한국 식재료는 금새 줄어 갔다.
그런 날, 아내나 아이에게는 말하지 못했지만 종종 한국이 그리웠다. 쨍하게 추운 날, 시베리아에서 불어 내려온 그 맑고 찬 공기가 햇볕에 빛나는 서울의 오후로 돌아가고 싶었다. 내가 담배 피우던 시절 가장 좋아하던 순간은 한겨울 맑은 새벽 공기와 함께 폐포 깊숙이 연기를 빨아들이는 순간이었다. 뜨끈한 방바닥에 배를 깔고 손바닥이 노래질 때까지 귤을 까먹고 싶었다. 아파트 지하 사우나 온탕에 몸을 담그던 시간은 참 안락했다. 그래 맞네. 나 한국 좋아했네.
자, 생활을 안정시켜야 한다. 안전하고 따뜻하고 편안한 집을 구해야 한다. 런던의 건물들은 여행자의 눈으로 보기엔 고풍스러운 아름다움을 보여주지만 생활인에게는 큰 도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