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중한 깐부여~

by 진솔

36년 전의 이야기를 꺼내는 심정은 어떤 것일까?

벌써 재가되고 물이 되고 한줌 흙으로 바람결에 한세상을 건너 다시 태어나

어딘가 밝고 환할 세상에서 살고 있을 전생을 기억할리 없이 살아가고 있을

나의 할머니를 어느 작가의 책 속에서 불현듯 다시 만나본다.


그녀는 작고 작았다.

아니 내가 그녀를 만났을때

나는 그녀를 할머니라 부른 세월이니만큼 작디 작아진 것일수 있다.


그녀는 시골 산속 작은 마을

어느 이의 어머니로 살다가 시력을 잃는 사고를 당했다.


나는 묻곤했었다.

밝은 세상을 눈을 감고 사는 그녀에게...

어쩌다 그리 되었을까

어린 여자 아이의 눈에도 신기하고 안쓰럽기도 했던 모양 이다.


그녀에 대답은

그땐 그럴 수 밖에 없었다며 지나가는 작은 한숨 섞인 짧은 답을 내뱉고는

바느질을 했다.


더 신기한건 지팡이 없이도

더듬이 같은 손만으로도

그녀의 모든 생활이 별 탈없이 흘러가고 있음이었을게다.


바느질은 앞뒤를 잘 가려서 해 내고

마늘이며 쪽파며 대파를 흙 한점없이

깔끔한 상태로 내놓고

그 옛날 푸세식 화장실도 거뜬히 사용했으며 할머니의 쿰쿰함이라곤 찾아 볼수 없는 깔끔한 그녀였기 때문이다.


난 가끔 빤히 쳐다봤다.

다 보이면서 안보이는 척 사는건 아닌지.

누가 그리 꼴보기 싫어서

훤히 보이는 세상을 눈을 감고 있는지

궁금해 그녀의 눈을 뒤집어 본적도 있었다.


검은자가 사라진 빛을 잃은 눈빛은

하얀 천막으로 가려져 있음을 확인했을때 여자아이는 뒤로 발걸음을 쳤었다.


그 뒤로는 그녀의 아픔을 들춰보는

무례한짓은 다시는 하지 않았다.


그녀의 아침 시작은

밤새 손주들이 싸놓은 무거운 요강을 샘터로 들고 나가시는 일부터다.


새벽녘 날이 어슴프레 밝아오면

요강을 비우고

한켠에 감아놓은 지푸라기 한 줌에 모래를 발라 닦아내시고는

햇볕 잘 드는 곳에 엎어 놓고는

비뚤어진 마루 바닥을

밤새 내려앉은 먼지하나 없이

반들거리게 닦아 놓으셨다.


토방에 널부러진 신발은

이른 아침 짝을 맞추어

가지런히 해를 맞는 정갈함으로 돌아서 있었다.


그녀는 항상 새벽에 움직였다.


분주해진 아침이 바스락 거릴 때는

마루 한켠 조용히 마늘을 까고 계셨다.


그 누구에게도

걸림돌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는걸

글을 쓰며 알게 되었다.


그리 반들거리게 닦아 놓은

요강은 한치도 벗어남도

빛도 잃지 않고 자리했었다.


요강은 갑작스런 할머니의 죽음과 함께

빛을 잃어가다

결국은 햇볕이 들지 않는

뒤안 장독대옆에서 푸른 빛을 내며 잊혀져 갔다.


내 방 작은 창문에서

가끔 보여지는 장독대옆

푸른 요강이 달빛에 잠시 빛을 낼 때면

나는 애써 눈을 돌렸다.


나는 할머니 이야기를 쓴 작가의 책을

잠시 덮어두었다.

혹시나 밀려올 그리움이

그 작가의 할머니 이야기와 겹쳐

기억이 오버랩되어

두배의 그리움이 몰려들까 두려워졌기 때문이었다.


어린 여자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이는

언제나 요강처럼 같은 자리에서 벗어남이 없는 그녀 뿐 이었다.


큰 사람이나 작은 사람이나

그녀 빼곤 바삐 움직이는 그 곳에서

유일한 나의 편...


산속 건너편에서

개인지 늑대 인지 여우일지도 모른다는 날짐승들의 울음소리에

무서워 잠못 이룰때면

작은 젖가슴을 내어주며

토닥여 날 재우던 그녀.


가끔 그녀의

치마속 주머니에 깊게

손을 뻗어 나오는건 50원짜리 동전이나

사탕같은게 나오기도 했었다.


신기했다.

돈을 쓸일도

나갈래야 나갈수도 없는

그녀의 속주머니에서

돈이 나온 다는 사실이.


그 돈은 항상

내가 억울하다며 팔팔 뛸때

더 자주 나왔다.


그래서 인지 먹을게 생기면

제일 먼저 그녀의 입에 넣어주었다.


깊은 곳에 있는 물건은 소중함이리라.

그녀의 깊은 곳에 있던 사탕은 구슬처럼.

내 입으로

그녀의 깊은 곳에 있던 손수건은 딱지처럼.

나의 눈으로

그녀의 깊은곳에 있던 50원짜리는

다시 사탕으로 바뀌어져 나만을 위해 꺼내어주길 바랐다.

난 그렇게 그녀의 깊은것을 내어줄 소중한 사람이길 바랐었다.


오래도록 그렇게~


그래서 꺼낸 사탕을 제일 먼저 그녀의 입에 되돌려 놓고서야 씩 웃으며 한 알을 제 입속에 넣었었다.


그런 그녀를 36년 만에 어떤이의 글 속에서 다시 만났다.


갑자기 내곁을 떠나버린

미움과 갈곳없어진 자신을 미워하며 말이다.


36년의 재회가 나쁘지 않았나보다.

그리웠었나보다

무척이나 자꾸 눈물을 쏟아내고 보고싶었다고 쓰면서

눈물과 설움을 쏟아내는걸보니


눈물로 쓰는 편지라는 것은

그리움마져도 사라질까

흐릿해지는 앞을 재껴가며 쓰는 일인가보다.


잠시 마음을 추스려야겠다.



지금 생각하니

그녀와 나는 깐부였던가보다

오늘은 내 소중했던 깐부에게 글을 쓰고 있다.


이생에서 깐부로 지낸

그녀와의 추억을 잊지않으려고 쓰는 글이다.


이생에 아직 남은 이는 그리움으로

저생을 건넌 이는 망각으로 남을 그리움들...


욱여 삼켜넣고 뱉지 못 한 그리움 한 마디를 글 로 써서 그녀에게 이제 보낼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

이글이

세상 여기저기 다 연결되는 인터넷에서

떠돌다 밝고 훤할 어느 세상에서

이 글이 당신 깐부가 보낸 글 임을 알지 못 한채

햇별 잘드는 너른 정원에서

차 한잔을 옆에 놓고

노트북을 펼쳐 읽는

작약같은 붉은고상을 떠는

직책 높은 어느집 사모님으로 태어나

여유롭게 하루를 보내며

당신을 향한 깐부의 마음을 전해 받길 바란다.


전생에서

보지 못한 모든 아름다운것들을

품에 넣은 정원을 가진 여인으로 다시 태어났길 바란다.


이 날 내 그리움의 전부는

보고싶었다는 한마디 였었다.


그 때 다 풀지 못한 설움이 남았는지 더 이상 쓰지 못하겠다.


나의 소중했던 깐부여~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