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겨운 실습생 생존기
처음엔 모든 게 새로워서 "배우는 재미" 하나로 정신없이 지나갔던 것 같다. 아침마다 긴장하며 출근했지만, 일하다 보면 어느새 점심시간이라서 그때만큼은 앉아서 잠깐이라도 쉴 수 있어서 나름 숨통이 트였었다.
하지만 요즘은 상황이 다르다. 내가 맡은 클라이언트가 3명이고, 거기에다 다른 친구들의 클라이언트까지 도와주고 있다 보니 하루가 끝나면 온몸이 탈진 상태다. 점심시간만 되면 애들이 서둘러 의자부터 잡고 앉는 모습을 보면, '다들 얼마나 힘들까' 싶으면서도, 괜히 그 모습이 짠하고 또 내 얘기 같아서 마음이 울컥한다. 오늘은 진짜 유독 힘들었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나자, 강사가 나를 불렀다. 내가 왈지 할머니랑 힐지 할머니 케어를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는지, 갑자기 나한테 이렇게 말하는 거다.
"Chan 할아버지의 소변 주머니 (Catheter drainage bag) 교체해 보고, 기립 보조기 (Sit-to-stand lift)로 화장실에 모셔드려 봐."
그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강사가 내 옆에서 뚫어져라 보고 있으니까 더더욱 긴장이 되었다. 날 보는 눈초리가 뭔가 작은 실수 하나조차 용납 안 될 것 같았다.
그 와중에 기계는 배터리가 방전돼서 멈춰버렸고, 강사는 "천장형 리프트(Ceiling lift) 써서 옮겨라"라고 했다.
‘아 망했다. Ceiling lift는 두 번밖에 안 써봤잖아.'
당황했지만 그래도 침착하게 하려고 했는데, 고리 하나를 제대로 안 걸었다. 아마 그때 이미 몸이 굳어 있었던 것 같다. 정신이 반쯤 나가 있었으니까.
게다가 Chan 할아버지는 시각장애에다 귀도 잘 안 들리시는 분이었는데, 그걸 모르고 나는 그냥 빨리 끝내야 한다는 생각만 하고 움직였다. 그랬더니 강사가 차갑게 한마디 던졌다.
“지금 뭐 하고 있는지, 하나하나 귀 가까이 대고
설명하면서 진행해.”
순간 Chan 할아버지는 고개를 떨고, 콧물을 흘리면서 떨기 시작했다. 나는 너무 놀라서 멍해졌고, 강사는 바로 말했다.
“티슈 가져와서 손에 쥐어드려.”
나는 거의 뛰다시피 달려가서 화장실에서 티슈를 꺼내 왔다. 내가 너무 허둥대니까, 강사는 "침착하게 해도 돼 (calm down)"라고 계속해서 나를 향해 지시를 했다. 옆에서 평소 찬 할아버지를 담당하고 있던 타란(Taran)이 조용히 말했다.
“너 고리 하나 잘못 꼈어.
그리고 찬할아버지는 섬세하게 대해야 하는 분이야”
순간 심장이 철렁했다.
나는 "어디가 잘못됐어?"라고 물어보았고 타란이 내 옆으로 와서 도와주려고 하는데 강사는 내게 딱 잘라 말했다.
"지나 혼자 하게 놔둬.”
그 말에 완전히 얼어붙어 버렸다.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는 상태. 결국 하나하나 강사가 지시한 대로 따라 하기만 했다.
수업이 끝나고, 디스커션 시간. 강사는 나를 보며 말했다.
“지나, 너 지금 다른 애들보다 뒤처지고 있어.
초반엔 정말 잘했는데,
요즘은 점점 네 스스로 긴장감에 먹히고 있어.
클라이언트마다 다르게 케어해야 돼. 사람마다 다 달라.”
잔소리를 듣는 동안, 나는 눈물 한 방울 없이 속으로만 울었다. 왜 이렇게 무너지는 느낌이 드는 걸까. 왜 이렇게 아무 말도 못 하고 듣고만 있어야 했을까.
수업이 끝난 후, 강사님이 조용히 물어보셨다.
“지나, 오늘 왜 그렇게 긴장했어?”
나는 처음으로 솔직하게 털어놨다.
“예전에 간호 랩 시간에서 낙제당한 적이 있어서요.
그때 이후로, 누가 쳐다보면 몸이 굳어요.
또 실수할까 봐 무서워서요"
남시선이 무섭다는 말에 강사는 이렇게 답했다.
“헬스케어 필드는 항상 누군가가 널 관찰해.
너 컨디션은 중요하지 않아.
환자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그건 너의 책임이야.”
너무 차갑고 무서운 말이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나한테 “많이 좋아지고 있다”라고 칭찬하던 사람이 이렇게 정 반대의 말을 하는 게 너무 충격적이고 서글펐다. 오늘은 정말 숨도 쉬기 싫은 하루였다. 머리는 아는데, 몸이 말을 안 듣고, 압박감은 내 어깨를 짓누르고, 자신감은 바닥을 기고 있다. 심지어 엘리베이터 안에서 여기서 일하고 있는 남자가 “너 괜찮아?”라고 물어봤다. 그 정도로 내 얼굴에 다 드러났나 보다. 그 애는 캐나다는 규정상 정말 큰 실수 아니면 자격 박탈 같은 건 안 한다며 너무 자책하지 말라고 나를 위로해 줬다.
며칠 전, 실습 중 낙상 사고로 돌아가신 할머니 시신을 강사가 보여준 이후로 낙상(fall)이 얼마나 치명적인지 얘기해 줬는데 오늘 내가 얼마나 더 안전사고에 유의하면서 신중하게 움직였어야 했는지 뉘우치게 되었다. 내가 오늘 저지른 고리 하나의 실수가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사람 생명과 직결될 수도 있다는 것을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몸이 그걸 따라주지 않으니 너무 괴롭고 답답하다.
✓내 마음속 다짐
학교에서 기회를 줄 때, 그 믿음에 보답하자.
누가 보든 안 보든, 그냥 내 방식대로 최선을 다하자.
Communication(의사소통), Safety(안전), 그리고 Ceiling Lift(천장형 리프트) 확실하게 익히자.
이번 실습, 못 패스하면 누구 탓도 못 한다.
이건 내 인생의 마지막 기회다.
주변 친구들은 말해준다. 강사가 나를 미워해서가 아니라, 나를 정말 도와주려고 집중 관리해 주는 거라고. 그래, 그렇게 믿자. 앞으로 강사랑 만나는 시간은 세 번뿐이 안 남았다. 스트레스에 질식하지 말고, 하루하루 완주만 하자.
집에 와서는 스트레스 때문에 평소 잘 먹지도 않는 피자 5조각과 도넛 3개를 그 자리에서 우걱우걱 다 먹어버렸다. 룸메이트 졸리랑은 "우리 인생 도대체 뭐냐"면서 한참을 얘기하다 그냥 뻗었다.
아침에 눈을 떴는데, 딱 드는 생각이 “아, 오늘 재시험 보잖아…”였다. 순간 심장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다. 막 두근두근하면서 ‘어떡하지’ 싶었지만, 곧바로 ‘그래,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고 학교에 갔다. 이제 강사랑 같이 실습할 수 있는 날이 딱 9번밖에 안 남았다는 걸 떠올리니까, 그 사실만으로도 괜히 마음이 좀 진정됐다.
아침 실습 시작 전에 회의가 있었는데, 어제 봤던 passing test(합격 시험) 중 하나였던 sit-to-stand lifting machine(앉은 자세에서 일어나는 걸 도와주는 리프팅 기계) 시험을 통과 못한 사람들은 오늘 한 번 더 retest(재시험)를 본다고 했다. 10명 중에 겨우 3명만 붙고, 나 포함해서 7명이 떨어졌는데, 솔직히 다들 기계를 못 써서가 아니라 너무 긴장해서 time management(시간 관리)가 잘 안 됐던 게 가장 큰 이유였다. 나도 그렇고, 머릿속이 하얘지니까 순서도 헷갈리고, 평소 하던 것도 실수하게 되었다.
오늘 이 리프팅 기계 쓰는 시험을 무사히 통과하면 드디어 세 번째 client가 배정된다. 그리고 다음 주에는 ceiling lifting machine(천장형 리프팅 기계) 사용하는 시험도 본다고 했다. 진짜 시험이 끝이 없다. 근데 진짜 어떤 일을 하든 체계적이고 정리된 정돈돼 있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요즘 새삼 느낀다. 오늘도 시간 아끼려고 미리 준비했다.
Hirji 할머니가 갈아입을 블라우스는 침대 옆에 미리 놔두고, lifting machine(리프팅 기계)이랑 새 기저귀, cloth(수건이나 물기 닦는 천), 세숫대야에 물까지 다 받아놨다. 이렇게 미리 준비해 두면, 나중에 하나라도 덜 찾고 덜 헤매게 되니까 확실히 시간도 절약되고 마음도 한결 편해진다.
드디어 7시가 되면서 본격적인 업무가 시작됐다. 긴장감이 확 올라왔다. 담당 강사가 오늘 내가 Hirji 할머니를 케어하는 모습을 제일 먼저 확인해 보겠다고 하면서 방에 들어왔다. ‘헉, 나부터야?!’ 싶었지만, 이미 마음의 준비는 했던 터라 바로 할머니한테 다가갔다. 어제 시험을 통과한 Shivneet가 내 옆에 와서 조용히 “차근차근 해. 강사 없는 셈 치고 그냥 너 하던 대로 해봐”라고 말해줬다. 긴장으로 얼어 있던 내 마음이 조금 녹는 느낌이었다.
‘그래, 하던 대로만 하면 돼’ 하면서 심호흡 크게 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할머니~ 저 또 왔어요~ 오늘 잘 주무셨어요?” 자신감 있는 목소리로 인사부터 크게 했다. 목소리만큼은 떨지 않게, 일부러 더 힘주어 말했다. 그리고 내가 제일 먼저 한 건 바로 침대 높이 조절이었다. 이건 겉보기엔 별거 아닌 것 같아도 정말 중요한 단계다. 침대 위치를 올리는 건 환자와 나, 서로의 safety(안전)를 지키는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그다음은 기저귀 교체! “할머니~ 새 기저귀로 갈아야 하니까 옆으로 돌아주실 수 있어요?” 하고 말하면서 조심스럽게 몸을 돌리는데, 다행히 할머니가 선뜻 몸을 옆으로 돌려주셨다.
‘아싸, 한 고비 넘겼다!’ 속으로 생각하면서 차근차근 갈아드렸다. 기저귀 교체 성공! Walji 할머니처럼 혼자 몸을 일으킬 수 있는 분이라면 내가 이렇게 다 안 해도 되는데, Hirji 할머니는 혼자 움직이기 힘드셔서 내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도와드려야 한다. 양말도 신겨드리고, 신발도 꼭 맞게 끼어들려야 한다. 어제 혼자 케어를 한 번 해봐서 그런지, 오늘은 그다음 단계들도 자연스럽게 술술 이어졌다. 괜히 자신감 생겼다.
신발과 양말까지 신겨드리고 나서, 할머니를 일으켜 세우는 단계로 넘어갔다. 근데 이게 그냥 힘으로 확 끌어올리는 게 아니고, 침대 머리 부분을 살짝 들어 올려 드리면, 할머니가 자연스럽게 몸을 일으키려 하시는데 그때 내가 할머니 어깨를 가볍게 잡고, 천천히 부축해 드리면 된다. 이렇게 하면 서로 무리도 안 가고 훨씬 안전하다. 할머니가 침대에 앉아 계실 때, 잠옷 벗겨드리고 새 옷으로 갈아입혀드렸다. 순서대로 하나하나 잘 되니까 나도 점점 긴장이 풀렸다.
그리고 드디어 오늘의 하이라이트!Sit-to-stand lifting machine(앉은 자세에서 일어날 수 있게 도와주는 리프팅 기계) 사용하는 순간이 왔다. “오케이, 이제 이거만 잘하면 끝이다!” 싶었는데 아뿔싸! 바지를 입혀드리려고 했는데 옷장에 치마밖에 없었다! 순간 머리가 하얘지고, ‘어떡하지?’ 했지만, 일단 당황한 티 안 내려고 최대한 침착하게 말했다. “할머니~ 바지가 하나도 없네요. 그래서 오늘은 치마 입혀드릴게요.” 그랬더니 강사가 한마디 한다. “오늘 날씨 추운데, 치마 괜찮을까?” 나는 얼른 “치마밖에 없는데 어떻게 할까요?” 하고 되물었더니, 강사가 “오늘은 그냥 치마 입혀요. 내가 할머니 가족한테 바지 몇 개 더 가져 다 달라고 얘기해 줄게요”라고 했다.
이 순간에도 느꼈다. 아무 말 안 하시는 어르신들이라도, 뭘 하든 하나하나 설명해 드리는 거 진짜 중요하다는 걸. 어떤 상황이든 ‘말을 건네고, 알려드리고, 동의 구하기’ 이게 기본 중의 기본이다. 어쨌든, 치마는 무릎 아래까지만 조심조심 입혀드리고, 이제 본격적으로 sling belt(몸을 고정해서 리프팅할 때 쓰는 안전벨트)를 할머니 가슴 쪽에 잘 맞게 채워드렸다.
리프팅 기구를 쓰는 게 쉬워 보여도 신경 쓸게 많은 것이 채울 때는 무조건 break 걸어야 한다는 것이다. 안 그러면 환자를 돌보는 일이기 때문에 안전점수에서 점수가 깎인다. 몸을 다 고정시키고 나서는 리모컨을 이용해서 리프팅 기계 팔을 천천히 움직였다. 팔이 먼저 들리기 시작하고, 할머니 몸이 천천히 리프팅되면서, 나는 그 옆에서 계속 “할머니~ 괜찮으세요? 천천히 가요” 하고 말도 계속 걸어드렸다. 이제 할머니를 휠체어로 옮기는 순간이 왔다.
근데 이게 진짜 생각보다 어려운 게, 그냥 앉히는 게 아니라 휠체어 안쪽으로 정확히 안착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리프팅 기계는 무조건 break를 걸어야 한다. 할머니가 휠체어에 앉으려고 할 때에는 조금만 어긋나면 불편하고 위험할 수도 있어서, 마지막까지 엉덩이 조준을 잘해야 한다. 오늘은 그 와중에 치마가 자꾸 밑으로 흘러내려서, 깜짝 놀라서 얼른 치마를 무릎 위로 살짝 올려드렸다. 치마 자락이 휠체어 바퀴에 끼기라도 하면 큰일이라, 그 부분은 진짜 재빨리 체크했다. 그리고 그렇게 다 마무리하니까, 내 케어를 지켜보던 강사님이 아무 말 없이 ‘음~ 괜찮은데?’ 하는 그 특유의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는 방을 나가셨다.
‘됐다’ 속으로 조용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침에 그렇게 바쁜 일들이 쭉 지나가고, 쉬는 시간 전에는 또 다른 시험을 봤다. 바로 PPE 장갑 착용법(PPE: Personal Protective Equipment, 개인 보호 장비) 그리고 donning & doffing(도닝: 장비 착용하기 / 도핑: 장비 벗기) 테스트였다. 이것들은 별거 아닌 것 같아도 헬스케어 필드에서 일하려면 infection spread(감염 확산)을 막는 데 진짜 핵심적인 것들이다. 장갑을 아무렇게나 끼거나 벗었다간, 오히려 세균을 더 옮길 수도 있어서 손 씻는 순서, 장갑 벗을 때 겉면 안 닿게 하는 방법, 벗은 다음 어디에 버려야 하는지까지 전부 standard protocol(표준 절차)대로 정확하게 해야 한다.
오늘은 그동안 준비했던 것들이 쭉 효과를 본 날인 것 같다. Sit-to-stand 리프팅 시험, PPE 장갑 도·착용 시험, 그리고 아침 업무까지… 세 가지 다 무사히 통과했다! 나는 세 번째 환자를 볼 수 있게 되었다. 너무 기쁘고 날아갈 것 같았는데, 그 타이밍에 딱 이메일 하나가 도착했다. 바로 두 번째 실습 장소 배정 메일이었다. 나는 정말 신난 얼굴로 강사한테 달려가서, “Noza! 나 방금 다음 실습 장소 정해졌다는 메일 받았어요! 너무 좋아요!!” 하고 말했는데 항상 진지한 얼굴로 말을 아끼는 Noza가, 눈 하나 깜빡 안 하고 딱 이렇게 말한다.
“아직 Midterm(중간 평가) 안 끝났어.
Midterm 끝나고 모든 거 pass(통과) 하고 나서 기뻐하는 게 좋지 않을까?”
역시 Noza 덥다 싶었다. 차가운 이성과 냉정한 현실조언의 화신.
참고로 Noza는 러시아와 아프가니스탄 혼혈이다. 아버지가 아프가니스탄 분이고 어머니가 러시아 분이시라 그런지, 말투에서 러시아 여성 특유의 약간 차가운 느낌이 확 느껴질 때가 있다. 뭔가 말할 때 딱 부러지고 감정에 휩쓸리지 않는 스타일? 그래서 더 시크하고, 카리스마도 느껴진다. 남편은 인도 사람이라고 들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여러 문화가 섞여 있는 느낌이 강사한테서 그대로 묻어난다. 말 한마디 할 때도 그냥 쉽게 하는 법이 없다. 말투도 정확하고, 논리적으로 딱딱 끊어 말해서 한 마디 한 마디에 신뢰감이 느껴진달까. 역시 같이 일하기 어려운 강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