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습 지옥

한국행 티켓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by K 엔젤

정말 실습 가기가 싫었다. 눈은 떴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고, 마음도 무거워 하루쯤 그냥 빠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 같았으면 아마 진짜 안 갔을 거다. 마음에 안 드는 애랑 같이 수업을 듣는다거나, 선생님 스타일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냥 확 접어버리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게 쉽게 그만둘 수 없는 나이다. 무엇을 하든 책임이 따르고, 중간에 포기하는 일이 더 이상 가볍게 느껴지지 않는다. 시험 준비도 열심히 하다가 마지막에 손을 놓는다든가, 학교를 잘 다니다가 마지막 학기 앞두고 그만두는 식이었다. 그런 게 반복되면서 트라우마처럼 남아버린 것 같다. 이 실습이 어쩌면 내가 그 트라우마를 끊어낼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이번에도 포기하면 또다시 그 패턴을 반복할까 봐 솔직히 두렵다.


어젯밤에는 학교에서 교수 평가를 해달라는 메일이 왔다. 예전 같았으면 그냥 넘겼을 텐데, 이번엔 별 다섯 개를 꾹꾹 눌러서 다 줬다. 읽지도 않고 다섯 개를 주는 나 자신이 웃기기도 했지만, 왠지 그렇게 하면 좋은 결과가 나에게도 돌아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신 같은 생각이지만, 요즘은 뭔가라도 붙잡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어제는 가까운 한인 마트인 킴스 마트에 들러 쌀과자 하나를 샀다. 처음엔 그냥 내가 먹고 싶어서 산 건데, 실습하는 친구들이랑 강사와 나눠 먹으면 분위기가 조금 나아지지 않을까 싶어서 들고 갔다. 혼자 외딴 느낌이 드는 날엔, 그런 사소한 행동 하나가 이상하게 위로가 되기도 한다.


오늘은 HCA 역할(Role)에 대해서 돌아가면서 대답하는 걸로 실습이 시작됐다. 하나씩 말하면서 긴장도 됐지만, 그래도 실습도 마지막 주니까 어느 정도 익숙해지는 것 같았다. 실습장에 도착해서 먼저 와있는 Taran과 눈이 마주쳤고 나를 보는 눈빛이 어딘가 좀 이상하게 느껴졌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나 싶었고, 같이 일하면서 자꾸 날 불편하게 만드는 느낌이 들었다. 속으론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뭐 하나 내가 못하면 그걸 꼭 집어서 말해야 직성이 풀리는 걸까. 표정으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내 감정이 다 드러났을 것 같다.


요즘 강사도 나를 탐탁지 않게 보는 것 같다. 내 행동이나 말투, 작은 실수 하나에도 날카로운 반응을 보인다. 자꾸 그런 시선을 받다 보니 나도 모르게 마음이 점점 가라앉는다. 생각해 보면 이 세상엔 직업이 수만 가지고, 내가 이 일을 평생 할지도 모른다. 지금 바라는 건 그저 학비가 아깝지 않게 무사히 통과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실습을 하면서 자꾸 부정적인 마음이 올라온다. 속으로는 ‘이딴 식이면 진짜 안 하고 만다’는 말이 계속 맴돈다. 그러면서도 또 그런 마음을 품는 나 자신이 얄밉기도 하다. 나는 원래 잘하다가 꼭 막판에 포기하곤 했다.


강사가 나를 보며 “오늘 나 울게 만들 거야?” 하고 웃으며 말했다. 순간 어이가 없었다. 울고 싶은 건 나인데 왜 저런 소리를 할까 싶었다. 감정적으로 힘든 건 본인 뿐이고, 나는 그냥 견디는 사람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강사 얘기로는 남편이 인도 사람이고, 여섯 살, 세 살 두 아들이 있다고 한다. 지난주 금요일에 인도에서 아이들이 돌아왔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오늘따라 기분이 한껏 들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요즘 강사가 나를 보는 시선이 괜히 더 신경 쓰인다. 뭘 하든 꼬투리를 잡으려는 것처럼 느껴진다. 내가 뭔가를 조금만 틀리게 해도 눈빛이 확 바뀌는 게 느껴진다. 속으로는 이게 가스라이팅인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 나는 그 어떤 권한도 없는 위치다. 강사는 평가를 내릴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내가 아무리 억울해도 결국엔 그 사람 손에 달려 있다. 그래서 내 감정을 억누르고, 말 한마디도 조심해서 한다. 강사에게 잘 보이기 위해선,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해야 할 때도 많다. 오늘도 진짜 하고 싶은 말은 삼키고 “아들 왔는데 제가 잘해야죠, 울리면 안 되죠~” 하고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그 말을 내뱉고 나니 더 허무하고 슬펐다. 왜 항상 나는 맞춰야 하고 참아야 하는 사람일까 싶었다. 버티는 것도 하루이틀이지, 이게 맞는 건가 혼란스럽다. 그래도 지금은 어쩔 수 없다. 실습을 끝내야 하고, fail만 안 당하면 된다는 생각뿐이다.


“이거 통과 못하면 한국으로 돌아간다.” 그렇게 단도직입적으로 자신에게 한번 외치고 첫번째 방으로 들어갔다. 힐 할머니(Hilji)랑 왈지 할머니(Walji) 두 분 다 케어를 마치니까 시간이 딱 7시 30분이 됐다. 그다음엔 Nadeep이 맡은 중국 할머니랑 Sukpreet이 맡은 John 할아버지까지 ceiling lift(천장에 설치된 전동 리프트)를 가지고 도와드렸다. 거기까지 끝내니까 땀이 쭉 났는데, 마침 강사가 나를 부른다. “이제 time management(시간 관리)는 잘하고 있어요. 이제 full sling lift(전신 슬링 리프트)도 연습하세요.” 그 말 듣자마자 속으로 ‘어, 나 이제 좀 인정받나?’ 싶었다. 오늘 시험 본 애들 대부분 다 패스했다는 얘기도 들려와서 분위기도 좀 가벼워졌다. 그런데 강사가 또 말한다. “지나는 Taran이랑 내일 시험 볼 거니까 준비하세요.” 사실 며칠 전에 강사가 나한테 이렇게 말했었다. “지나는 midterm exam(중간시험) 못 볼지도 몰라요. safety(안전)에 아직 미흡해요.” 그 말 듣고 멘붕이 왔다.


‘진짜 나만 시험 못 보면 어쩌지? 나만 낙오되는 거 아니야?’ 하고 엄청 걱정했었다. 근데 오늘 이렇게 나도 시험 본다고 하니까 마음이 한결 나아졌다. ‘그래도 기회는 주는구나’ 싶은 마음에 살짝 안도했다.


쉬는 시간엔 강사가 또 나를 부른다. “지나는 전반적으로 care의 질(케어 수준)은 확실히 올라갔어요. Time management도 좋아졌고요. 근데 이제 sling(슬링 리프트) 쓸 때 safety 부분에 더 신경 써야 해요. 그리고 communication(의사소통) 부분도 아직 향상해야 할 부분이 있어요.” 근데 그 말을 듣는데 기분이 좀 이상했다. '칭찬하려는 거야? 아니면 지적하려는 거야?' 보통은 채찍 먼저 주고 당근을 주는 법 아닌가? 근데 이 강사는 당근으로 기분 좀 나아지게 해 놓고 다시 채찍을 휘두른다. 그럼 듣는 사람은 사기가 뚝 떨어지는데 왜 저렇게 말하는지 모르겠다. 진짜 칭찬을 해줄 거면 좀 시원하게 해 주면 안 되나? 이도 저도 아닌 말투로 애매하게 기분만 왔다 갔다 하게 만들었다. 선생 자질이 있나 의심스럽다.


점심시간 끝나고 나니까, 아니나 다를까 강사가 또 나를 부른다. 이번엔 Lovepreet이 케어하던 필리핀 할머니를 풀 슬링 리프트(full sling lift, 전신 지지형 리프트 기계) 써서 휠체어에서 침대로 옮겨보라는 거다. 뭔가 하나 끝나면 바로 다음 미션 투척! 숨 쉴 틈이 없다. 그다음엔 Rose 할머니. 시트 투 스탠드(sit-to-stand, 앉은 자세에서 일어나도록 돕는 기계) 이용해서 화장실 데려다 드리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John Paul 할아버지를 실링 리프트(ceiling lift, 천장에 고정된 이동 보조기계) 써서 침대에 눕히라는 미션까지 주어진다.


솔직히 이쯤 되면 혼자서 할 수 있는 수준 넘은 거 아닌가 싶었다. 게다가 세 분 다 그냥 거동이 불편한 게 아니라 치매에 파킨슨병까지 있으신 분들이다. 내가 “와 오늘 진짜 미쳤다”라고 속으로 백 번쯤 외쳤다. 그래도 고마운 건 있었다. 맨날 어디서 흠잡을까 눈에 불 켜고 보는 Taran이랑은 다르게, Shivneet이랑 Satwik은 정말 사람 냄새나는 애들이었다. 내가 조심조심 하나하나 할 때 옆에서 봤던 그 두 애가, “지나가 다 했어요?”라고 강사가 는말에 “지나가 다 했어요!” 하고 확실하게 말해줬다. 게다가 Satwik은 나한테 “너 잘하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라고까지 해줬다. 그 한마디에 진짜 숨통 좀 트였다. 시험 보기 전, 그냥 고마운 마음에 “고마워. 사실 나 오늘 시험 보고 싶었거든.” 이렇게 말했는데, 그걸 또 Taran이 가만히 안 놔두고 바로 강사한테 가서 “Noza! 지나가 오늘 시험 보고 싶었대요!”라고 일러바친다. 진짜 어이가 없었다. 그래서 내가 바로 쏘아붙였다.


“You don’t have to tell her everything what is happening between us!”

(우리 사이에 오간 말 다 말할 필요 없어!)

그랬더니 이 애가 또 뭐라고 하냐면,

“No, she is here listening to us. She heard you. It doesn’t matter.”

(아니, 선생님 여기 계시잖아. 다 들었고, 상관없어.)


진짜,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니, 너한텐? 그 대화 다 듣고 있던 강사는 뭔가 알 수 없는 미소를 짓는다. 그 웃음이 뭐지? 싶어서 더 오싹했다.


그때 강사가 갑자기 preceptorship(프리셉터 십, 실습 마지막에 정식 HCA가 학생 평가하는 단계) 얘기를 꺼낸다. 하필 또 내가 맡은 preceptor는 Roheena, 평판 자자한 깐깐한 HCA다. 그 얘기 듣고 애들이 “지나 preceptor 정말 엄격한데ㅋㅋ” 이러면서 놀린다. 나야말로 웃을 힘도 없었다. 그랬더니 강사가 한술 더 떠서 “지나가 내일 midterm exam(중간시험) 패스해야 preceptorship 볼 수 있겠지~” 하고 던지는데 진짜 왜 이렇게 다들 나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지 싶었다 아무튼 그렇게 정신없고 감정 다 쥐어짜진 하루가 끝났다. 이제 남은 건 내일 시험이다.


강사는 나를 떨어뜨리려는 사람이 아니다. 그 사람은 그저 자신의 역할을 할 뿐이다. 문제는 나 자신이다. 나는 우주 최강 못난이다. 못난이가 완벽할 수는 없다. 나는 자꾸 내가 잘났다는 착각을 한다. 그 자아를 깨뜨려야 마음이 편해진다. 괜히 자존심만 부풀려 놓으면, 모든 게 더 힘들어진다.


나는 한국 대표로 나온 사람이 아니다. 강사가 나를 인종차별할 이유는 없다. 그럴 의도도 없다고 믿는다. 나는 그저 평범한 국제 학생 중 한 명일 뿐이다.


지금 겪고 있는 이 실습의 힘듦은 그냥 하나의 과정일 뿐이다. 앞으로 또 다른 실습이 기다리고 있다. 지금 이 순간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외롭다. 외로움이 특별한 감정은 아니다. 나는 여기까지 온 걸 감사하게 생각해야 한다. 이 자리에 서 있는 나 자신을 인정해야 한다. 사람은 내일 죽을 수도 있다. 그러니 좋든 싫든, 내 운명을 받아들여야 한다. 받아들이고, 사랑해야 한다. 내가 선택한 길을 미워해서는 안 된다. 모든 사람은 삶의 의미를 찾다가 죽는다. 그게 인생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나는 그저 내 몫의 시간을 성실히 살아가야 한다. 그리고 오늘 하루를 버텼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잘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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