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난 자존감
아침부터 뭔가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이유는 없었지만, 괜히 마음이 껄끄러웠다. 예감은 적중했다. 다른 친구들은 중간고사를 보러 간 사이, 나는 현장에 남아 케어 실습을 이어갔다. 오전에는 원래 Taran이 맡았던 Chris 어르신의 샤워를 내가 대신하게 되었고, 여기서부터 일이 하나둘 꼬이기 시작했다.
샤워 시작 전, 강사님이 내게 웃으며 “지나는 샤워 많이 해봤잖아? 잘할 수 있지?”라며 무심히 던진 말이 이상하게 부담으로 다가왔다. Taran은 “물 온도 먼저 체크해”라며 주도권을 잡았고, 나는 거기에 맞춰 움직였다. 그런데 강사님은 내 바로 옆에 서서 사소한 부분까지 피드백을 주기 시작했다.
“자신감 있게요.” “지금 뭐가 잘못됐는지 보이죠?” “어르신 안전이 최우선이에요.”
한마디 한마디가 내 긴장감을 더욱 높였고, Taran은 클라이언트가 자기 담당이라는 이유로 계속 옆에서 간섭하며 지시를 이어갔다. 이 모든 상황이 마치 시험을 보는 듯했고, 나 혼자 조명을 받고 있는 기분이었다.
긴장 속에 정신없이 샤워를 마쳤고, 나는 나름대로 큰 문제없이 마무리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후 강사님께 들은 말에 머릿속이 하얘졌다. Taran이 강사님께 “지나가 brief를 거꾸로 들었어요”라고 말한 것이다. 실제로는 잠깐 방향을 잘못 들었던 것뿐이고, 클라이언트에게 직접적인 영향은 없었는데, 강사님은 그 실수를 꽤 심각하게 받아들이셨다.
“왜 아직도 긴장해요? 벌써 3주나 지났는데.”
그 말에 심장이 내려앉았다. 나는 “파트너 흐름에 맞춰 움직이는 스타일이라 그렇게 보였을 수도 있어요. 큰 문제는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제 행동을 직접 봐주세요.”라고 설명했지만, 강사님의 표정은 굳어 있었고 내 말은 공허하게 흩어졌다.
오후에는 Chan 어르신의 transfer 실습이 있었다. 파킨슨병을 앓고 계셔서 full sling을 사용해야 했고, 강사님은 또다시 내 옆에 서서 감시하듯 지켜보셨다. 손이 떨릴 만큼 긴장한 나는 조심스럽게 리프트를 준비했는데, Taran이 “파란색 스트랩 써야 해”라고 말했고, 나는 다른 색이 더 안정적이라고 느꼈지만 결국 그의 말에 따르려는 찰나 강사님이 “지나 혼자 하게 해 보세요”라고 하셨다.
나는 안전을 위해 스트랩을 두 개 걸었다. 그러자 강사님이 “귀가 안 들리셔도 설명은 해야 해요. safety check 했어요?”라고 물으셨고, 나는 “네, 다 확인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다시 “정말 확실해요?”라는 되묻는 말에 머리가 멍해졌다.
이후 강사님은 Taran에게 “지나가 뭘 잘못했는지 말해볼래요?”라고 물었고, Taran은 “두 개 걸었어요. 하나만 걸어야 해요”라고 했다. 강사님은 “두 개 걸면 무게 중심이 흐트러져서 위험해요”라고 하셨고, 나는 그제야 내가 뭔가 잘못했나 싶어 혼란스러웠다. 분명 랩 수업에서는 상황에 따라 두 개를 사용할 수도 있다고 배웠던 것 같은데… Taran은 “Chan 어르신은 항상 하나만 써요”라고 했고, 나는 그 순간 자신감을 완전히 잃었다.
실습이 끝나고 강사님은 내게 “You made me speechless”라고 하셨다. 그 짧은 말에 온몸의 기운이 빠졌고, 결국 나는 learning contract 대상이 되었다. 강사님은 내가 transfer 장비 사용이 미숙하고, 클라이언트 안전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고 판단하셨다. 이어진 말은 더 충격적이었다.
“들리지 않는 클라이언트와도 소통해야 해요. 커뮤니케이션이 어렵다면, 이 일이 너에게 안 맞을 수도 있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내가 지금껏 버텨온 노력과 시간들이 무너져 내렸다. 나는 정말 이 일이 안 맞는 걸까? 실수도 있었지만, 나는 정말 최선을 다해왔는데.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왔는데.
게다가 지금은 중간고사 이틀 전이다. 강사님은 “다음에도 lifting이나 safety 쪽에서 실수하면, 프로그램 매니저와 상담해야 하고 실습 자체가 종료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사실 오늘 실수한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어떤 학생은 기저귀 교체 중 실수가 있었고, 다른 클라이언트는 불편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분위기 자체가 무거웠고, 강사님의 표정도 처음부터 좋지 않았다. 특히 Taran과 친했던 학생들이 시험에서 떨어졌다는 소문도 들리면서, 혹시 그 여파가 나에게까지 온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의도적으로 강사님께 나쁘게 보이게 하려 했던 건 아닐까 하는 의심까지 들었다.
오늘 시험 본 친구들이 모두 통과했다면, 나는 아마 더 위축되었을 것이다. 실습은 매 순간 말과 행동이 평가로 이어진다. 긴장 속에서 Taran이 내 실수를 굳이 지적했을 때, 속이 상하고 억울했다. 내가 그 입장이었다면 굳이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그동안 지각 한 번 없이 매일 출석했고, 실습 저널도 꼬박꼬박 써왔으며, 조별 프로젝트도 내가 주도해서 이끌었다. 하지만 그런 노력들은 전혀 인정받지 못하고, 강사님의 눈엔 언제나 부족한 사람처럼만 보이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실습은 정말 자존감과의 싸움이다. 한마디 말, 한 번의 시선에도 흔들린다. 매일 지적을 들으며 내가 존재감 없는 사람처럼 느껴질 때면 무섭기까지 하다. 아무도 내 진심을 알아주지 않는 것 같은 외로움이 몰려온다.
오늘 유튜브에서 스트레스의 세 가지 주요 원인을 봤다. 돈, 건강, 인간관계. 요즘 나는 돈과 인간관계 두 가지 모두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이 과정을 무사히 마쳐야 일도 할 수 있고, 그래야 내가 투자한 시간과 돈이 의미 있다고 느낄 수 있을 텐데… 자꾸만 불안해지는 내 모습이 너무 싫다.
인간관계도 쉽지 않다. 실습은 늘 타인과 함께 해야 하고, 작은 말에도 상처받는다. 오해가 쌓이고 긴장감이 계속되면서, 집에 와서도 그 장면들이 떠올라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때로는 누군가를 바꾸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면서 나 자신이 더 지치고 괴로워진다.
오늘 하루는 그냥 접고 싶다. 이 모든 걸 내려놓고 머릿속을 비우고 싶다. 내일은 조금 더 웃을 수 있기를 바라며 조용히 눈을 감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