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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럽미 May 20. 2024

아줌마, 납니다 바로

우울




그 사람이 찍어준 사진 속의 나는 형편없었어요. 지독히도 못생긴 여자가, 추접스럽게 웃고 있어요.

감정의 바닥을 보고 싶을 땐 그 사람이 찍어준 내 사진을 봅니다. 그리고 느껴 봅니다.

이제는 사랑받기 힘든 여자, 아니 아줌마라는 것을.


이효리가 말했어요. 사랑하는 사람이 찍어준 내 모습의 사진이 가장 이쁘다고. 우리에게 사랑이 없어졌다고 생각한 순간이 바로 그쯤이었습니다. 다양한 포즈와 화려한 배경에도 전혀 예쁘지가 않아요.

추악하고 늙은 여자만 헤벌쭉 웃고 있지요.


일어나자마자 거울을 보았습니다. 아이를 낳고 아랫배가 터서 번개처럼 갈라진 뱃살에 자글자글한 흉터는 거짓말을 조금 더 보태서 아이가 흘려 놓은 주스를 닦고 던져 놓은 걸레짝 마냥 축 처져 있어요.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아줌마의 살은 쉽게 빠지지 않더라고요. 늘어난 살 만큼이나 불어난 게으름이 내 몸 전체를 감싸고 있었네요. 짜잔! 여전히 못났고 못생기고 뚱뚱한 아줌마가 결국 게으른 식충이까지 되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를 시작으로 그 사람이 나를 사랑하지 않게 되었을지도 모르겠네요.








 나도 자신감 있던 삶을 살긴 했습니다. 주변의 전공자로 인해 테스터로 참여해 본 상담에서는 자존감도 높은 편이라고 하였습니다. 인생에 있어서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물질적인 부족함과는 다른 정서적인 면에서는 나름의 화목한 분위기에서 자란 평범한 소녀였으니까요


  숨만 쉬어도 행복했던 시절, 그런 시절이 나에게도 있긴 했습니다. 신도림 2번 출구, 타이트한 옷과 구두를 신고 신나게 친구를 만나러 가던 길에 건장한 청년들 중 남자 한 명이 번호를 물어보던 날. 자신감이 하늘을 찔렀던 그날은 잊혀지지 않습니다.

강남, 압구정, 이태원, 홍대

누군가 대놓고 예쁘다 하고 쫓아올 만한 외모는 아니지만 털털한 성격과 화려한 말주변에 심심하면 만날 남사친이 있었고, 클럽이며 미팅이며 남녀노소 가리지않고 누구와도 친하게 지내는 친화력으로 주변사람을 매료시키기도 하였습니다.




  회사에서도 인정받았습니다. 팀장은 새파랗게 젊은 패기의 나를 적극적으로 응원해 주며 빠른 진급은 물론 그에 따른 보상도 주었습니다. 그때 영업의 참맛과 회식의 즐거움을 배웠습니다. 캬, 진짜 즐거웠는데.

모교에서는 강의도 했고 2시간 강의비 30만 원도 받았습니다. 성공한 선배 뭐 그런...  잊고 살고 있었는데, 그 사람과 말하던 중에 이때를 언급하길래 생각났습니다. 그 사람은 이때 제가 엄청난 능력이 있는 여자인 줄 알았다고 합니다. 누가 들으면 자질구레한 경험이지만 지금 생각하니 꿈같은 시간이네요. 20대의 후반에는 누군가 제의에 알만한 사람들은 아는 아기제품 브랜드에 마케팅 팀장으로 입사하였습니다. 1년 만에 몇 백 프로의 월매출을 늘렸고. 능력을 인정받아 회사의 핵심인력이 되었습니다. 나이 어린 직원들과의 밤샘 작업은 물론, 소소한 일상을 이야기하던 시간이 좋았습니다. 남자친구와의 결혼 준비도 이때 했습니다.




그 사람은 이때의 시절을 말할 때 이렇게 말합니다.



- 그 시절의 너는 단순히 운이 좋았던거야.

- 너는 다시 회사에 들어가면 천덕꾸러기가 될 거야. 일을 못하는 여자거든.

- 일 잘하는 사람은 지금의 너처럼 핑계를 대지 않아.




나를 무시했고. 나는 인정했습니다. 지금의 나는 게으르고 추억에 빠진 아줌마일 뿐이니까요. 늙어가는 내 몸뚱이. 나는 아직 젊지만 늙었습니다. 괴롭고 지겨운 현실이 버겁고 재미가 없습니다. 나의 몸은 아직도 젊음의 신선함을 원했고, 머리는 넉넉함과 사치를 원했습니다. 건빵 속의 별사탕처럼 팍팍함 중에, 눈 번쩍 띄게 하는 달콤한 사랑도 그리웠습니다. 위선적 이게도 좋은 아내, 좋은 엄마의 모습 역시 갖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모든 게 슬슬 지치나봐요. 무엇을 그리워하는 것도 생각하고 곱씹는 것도 모두 다 귀찮습니다. 살과 함께 늘어난 게으름이 나의 뇌까지 지배했나 봅니다. 아니면 요즘 식충이들은 뇌도 파먹나요?

우울이란 단어를 이름처럼 달고 사는 아줌마는 오늘도 추억 여행 중입니다.  못난이로 잔뜩 찍힌 사진을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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