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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서 Mar 02. 2023

6. 황당한 주문

가게를 시작하고 지금까지 쭉 이어져 온 황당한 주문이 있다. 멀리서 주문했으니 깎아달라는 이야기다. 초반엔 내가 잘못 들은 줄 알았다. 꽃바구니 하나 사러 타지에서 여기까지 온 것도 아니고, 전화 한 통 넣어서 주문하는데 계속 깎아달라고 한다. 정당한 값을 받고 적절한 상품을 주는 일에 왜 지역을 논하는지 모르겠다.


그중에서 가장 황당한 건 따로 있다. 엄청 바쁜 날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서 다 하느라 정신이 없던 때, 할아버지가 꽃바구니를 주문했다. 화장실 갈 틈도 없이 바쁠 때는 배달이 가능한지, 불가능한지 부터 알아본다. 색상과 가격을 다 받더라도 갈 수 없으면 끝이기에 꼭 도로명 주소로 물어본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주소를 물어보자마자, 기분 나쁘다고 전화를 끊었다. 나는 이게 무슨 일인가 했다. 그리고 10분 뒤 다시 전화가 왔다. 기억력만 좀 좋았다면 번호를 기억하고 안 받았을 텐데, 아쉽게도 나는 머리가 나쁘다. 전화를 받자마자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내가 꽃을 많이 시켜봤는데. 이런 일은 처음이야. 나이가 몇이야? 뭐 이리 버릇이 없어? 어른대하는 태도가 그것밖에 안돼?"


나는 내가 뭘 잘못 한지 모르겠다. 너무 어이없어서 사과하고 싶지도 않았다. 전화기를 가만히 들고 있었다.


"내가 살면서 이런 일은 처음이야. 그딴 식으로 장사하지 마!"


그딴 식이 어떤 식일까. 정말 궁금하다. 이 일은 지금 생각해도 내가 뭘 잘못 한지 모르겠다.


단발적으로 황당한 주문이 있는 반면, 지속적으로 이어진 황당한 주문도 있다. 한가하게 청소를 하던 중, 중년 남자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특이한 질문을 했다.


"매일, 한 달 동안, 작은 꽃다발을 배달해 줄 수 있나요?"


5만 원 이하로는 배달을 안 가지만, 주소를 확인해 보니 가까운 곳이었다.  만 원짜리 미니꽃다발 × 한 달. 적은 액수가 아니었다. 꽃 값과 별개로 배달비까지 준다고 해서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남성은 자신이 주는 걸 비밀로 문 앞에 둬 달라고 했다. 이번 주문을 받기 전에 비슷한 주문을 받은 적 있는데, 이건 받는 입장에서 별로 안 좋아한다. 본인에겐 로맨스이지만, 타인에겐 불안함을 심어주는 행동이다.

나는 정중히 거절했지만, 남자는 끈질기게 부탁했다. 결국, 한 달에서 3일로 바꿨다. 일단 3일 동안 해 보고 그래도 괜찮으면 일주일로 늘리고, 일주일이 괜찮으면 한 달로 늘리는 식으로 합의를 봤다. 나는 배달장소에 도착하고 남자가 원하는 대로 문 앞에 꽃을 놔줬는데, 다행히도 단골손님 집이었다. 때마침 나온 손님과 마주치고 나는 사정을 설명했다. 나는 손님이 당황해하거나 불쾌해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담담했다. 누가 보냈는지 안다고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무심한 말이 너무 고마웠다.

이렇게 이 일은 마무리되는 줄 알았다. 한 달 뒤, 남자가 다시 전화했다. 이번엔 2만 원짜리 꽃다발을 배달해 달라 했다. 이번엔 배달비도 없고 30분 안에 해달라고 요청했다. 정신없이 바쁠 때라 불가능한 조건이었다. 너무 어이없는 주문에 바로 거절했지만, 상대방은 매우 불쾌해했다. 그게 왜 안되냐며 전화를 붙들고 잡았다. 결국 해줬지만, 다시는 이런 주문을 받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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