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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hemian Writer Dec 30. 2023

정승환, '눈사람'

수명이 아주 긴 눈사람이 되어줘요

    서울에는 아침부터 무척이나 많은 눈이 내렸습니다. 마치 제 때에 미처 소진 못한 눈을 모두 내려보내리라 작정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어요. 사실 전 눈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언제나 앞서서 걱정을 하는 제 비관적인 성격 때문인지, 내리는 눈이 야기할 미끄러짐과 더러운 길바닥이 먼저 짜증이 나거든요. 그래도 오늘은 주말이었고, 출퇴근과 무관한 날이었어서 그런지 평소만큼 눈이 싫지는 않았습니다. 따뜻한 커피를 한 잔 들고 눈이 오는 걸 멍하니 구경하기도 했어요. 그렇게 오래도록 골똘히 눈을 보고 있으니, 눈이 내리는 풍경에 예쁜 구석이 없지는 않더군요. 그런다고 해서 앞으로도 눈을 좋아하게 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아무튼 평소와는 조금 다른 기분이었어요. 아마도 한 해의 마지막에 이르렀기에 피어난 다소간의 애상 덕분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오후 늦게서야 집 밖을 나가 보았습니다. 잠깐 편의점에 들를 일이 있었거든요. 멀리서 보면 그저 하얀 세상이었지만, 벌써 길 위의 어떤 부분은 눈이 녹아 더러워지기도 했습니다. 그 순간 저게 밤 사이 얼면 얼마나 더 미끄러워질지 먼저 걱정이 든 걸 보면, 저는 밝고 긍정적인 사람이 되기에는 많이 모자란 사람인 것 같습니다. 새하얀 눈처럼 밝고 순수했던 때가 제게도 있었는지 이제는 그조차 가물가물합니다. 이전에는 조금은 삐딱하고 예민한 제가 참 많이 밉기도 했어요. 같은 일에도 남들보다 더 가슴 졸이고 마음 앓는 스스로가 참 못나보였거든요. 이제는, 그런 제 모습이 좋지도 않지만 딱히 싫지도 않습니다. 남들보다 더 많이 앓는다는 말은 조금 더 풍부한 감정들을 느낀다는 말일 수도 있겠죠. 그 예민함 덕분에 삶이라는 여정을 더 다채롭게 꾸려나갈 수 있었다고 생각하려고 합니다. 쉽지는 않지만, 쉽지 않은 일을 무탈히 해내라는 의미에서 세상에는 '연습'이라는 게 있을 테니까요. 생각의 방향을 바꾸는 연습을 늦게나마 하는 중입니다.


    많은 눈이 내렸다는 건, 그만큼 가지고 놀 눈이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겠죠. '눈오리'를 비롯하여 눈이 오면 다양한 것들이 세상에 탄생하는데요, 그럼에도 역시 클래식은 '눈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워낙에 엄청난 눈이 쏟아진 덕에, 길 여기저기에 눈사람들이 보였습니다. 저마다의 개성으로 장식되어 있는 눈사람들이 귀엽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눈사람을 보면 조금은 서글픈 마음이 들어요. 힘겨이 태어난 눈사람의 수명은 길지 않습니다. 눈사람은 결국 녹거나 부서지니까요.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눈사람을 만든 이조차도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나면 정확히 어디에 눈사람을 만들었는지도 잊게 되죠. 그건 기억 안에서의 부서짐이기도 합니다. 마치 영화 <이터널 선샤인>의 마지막 즈음에 조엘과 클레멘타인의 몬탁에서의 집이 붕괴되는 것과 비슷하죠. 전 세상 어딘가 보이지 않는 곳에는 잊히고 버려져 부절 없어져버린 무언가들의 무덤이 있다고 믿습니다. 주인 잃은 기억과 흔적들이 지독한 연기와 함께 소각되어 버려진 곳이죠. 그렇게 부질없음의 거대한 역사에 형체조차 모두 잃어버린 채로 편입되어 버릴 눈사람이기에, 걷는 동안 많은 눈사람들을 지켜보며 날도 추운데 괜히 시큰해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여기까지에서 멈춰 다시 생각해 보면 언젠가 부질없어질 무언가라고 지금의 존재가 아예 무의미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듯합니다. 눈사람을 만들기 위해 눈을 굴릴 때의 촉감과 온도, 조금씩 커져가는 눈덩이를 바라보며 느꼈을 뿌듯함, 완성된 눈사람을 하나하나 장식할 때의 고민은 비록 바래지기는 하겠지만 시간이 흐른다고 사라질 추억은 아니니까요. 그 즐거운 느낌들이 한 사람의 생애에 미약하게나마 자양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하나의 물건이 세상에서 사라질 때마다 이와 관련된 추억들도 모두 소거되는 걸 보여주며, 우린 결국 한 줌 추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작품입니다. 저 역시 사람을 지탱하는 건 추억과 희망이라고 생각합니다. 눈사람이 세상에서 없어지고 그 눈사람과 관련된 모든 기억들마저 다 사라진 서글픈 세상을 딱히 원하지는 않습니다. 눈사람의 존재는 반드시 부질없어지겠지만, 그것을 존재케 했던 우리의 마음에는 하나의 따스하고 아련한 기억으로 자리 잡겠죠. 물리적인 소멸이 마음 안 기억의 수명까지 함께 앗아가지는 않아 참 다행입니다.


    '물리적인 끝'은 정답 같은 건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세상에서 그나마 정해져 있는 삶의 이정표입니다. 우린 매일매일 그 끝을 향해 각자의 발걸음을 내딛죠. 그게 정확히 우리 삶 어딘가에 위치해 있는지는 모르는 채로 우린 하루를 채우며 끝을 향해 걸어갑니다. 실은 당신에게 이 얘기를 하고 싶어서, 장황하게 눈사람 얘기를 먼저 꺼냈습니다. 우리의 끝 혹은 서로의 끝이 어떤 시점에 어떻게 찾아올지는 알 수가 없고, 사실 생각만 해도 조금 두려워집니다. 생각하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그럼에도 우리 역시도 부질없음의 역사의 일부가 될 것을 우린 너무 잘 알고 있죠. 그러나 이런 슬픔만으로 우리를 염려하기에는 주어진 시간이 너무 아깝잖아요. 그러니 서로가 서로에게 아주 긴 수명을 지닌 눈사람이 되어요, 우리. 언젠가는 사라질 눈사람이지만 그 눈사람을 만들 때의 감정과 느낌은 생생히 기억되는 것처럼요. 녹거나 부서질까 봐 걱정하고 조심하며 때로는 한아름 안아주기도 하며 서로를 아껴요. 예쁜 기억들로 우리의 시간을 가득 채워요. 끝은 예고 없이 찾아오지만, 언제 그 끝을 마주해도 후회 없다고 답할 정도로 서로 마음을 아끼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지금처럼 유치하고 낭만적이며 밝게 삶이 마련해 준 시공간 속 우리의 거처를 당신과 함께 가꾸어나갈 수 있기를 바라요. 한 해 고생 많았어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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