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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프 Nov 16. 2019

그래서 얼마를 버느냐고 물으신다면...

 

Epilogue


잘 다니던 직장을 떠나, 복잡한 도시를 떠나 자신의 새로운 삶을 개척한 사람들. 과연 그들은 그래서 행복할까? 그리고 얼마의 수익을 얻게 되었을까? 




이 글을 쓰기 전 창업에 관련한 다양한 책들을 참고차 찾아보았다.

<제주에서 뭐하고 살지?>, <작은 가게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아내가 창업했다>, <저도 장사가 어려운데요>, <억울한 세금 안내는 51가지 방법)(외국에서 세금을 많이 내다보니 여기까지 갔다...) 등등. 창업과 관련한, 자영업자들의 인생을 다룬 책들을 통해 그들이 어떻게 사업을 시작하게 됐는지, 오픈하기까지 얼마의 기간이 걸렸는지, 마케팅 포인트는 무엇인지, 그래서 이전의 삶과 지금의 삶은 어떻게 다른지 등의 내용을 알 수 있었다. 

(직접 만나보지 않아도 창업 과정을 책으로 알 수 있다는 건 정말 큰 도움이었다.)


중요한 포인트는 지금부터다. 

해외에서든 국내에서든 직장을 떠나 자신만의 가게를 갖게 된 사람들은 그래서 얼마의 수익을 얻게 되었을까? 


돌아온 대답은 거의 다 비슷했다. 행복하지만 수입은 이전의 1/5 수준이라는 사람, 돈을 벌기보다는 지속 가능한 상태로 만들어 놓는 데 초점을 맞췄다는 사람. 안정화되긴 했지만 앞으로 몇 년을 더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는 사람. 자신의 작업 공간을 마련했고, 그 공간을 사용하는 데 의의를 두고 있다는 사람 등등. 


수십 명의 사람들이 대답했지만 이전 과의 수입이 똑같은 사람은 헤어 디자이너 단 한 사람뿐이었다. 결국 특별한 기술 없이는 수익을 올리기란 쉽지 않은 듯 보였다. 


이처럼 경제적으로는 쉽지 않은 도전에 꽤나 많은 사람들이 도전을 했다.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꿈이기에 그들은 용감하게 실행에 옮겼고, 목표를 이뤘다. 하지만 꿈을 이룬 그 후에는?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도 괜찮은 성과가 나왔냐고 물으신다면? 그 질문에 예스라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인도네시아를 거쳐 대만에서 살고 있는 해외 생활 7년 차(남편은 18년 차) 우리 부부가 경험으로 깨달은 진리는 이렇다. 해외에서 내 식당, 창업을 하면 먹고는 살 수 있다. 한국에서의 바쁘고 각박했던 삶과 달리 마음의 여유도 생기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만일 아이가 있고 내 사업과 함께 육아를 병행해야 된다고 하면 최소 한화 100만 원의 고정 수입이 있는 것이 좋다. 그게 한화든 현지 통화든 돈이 규칙적으로 나올 '구멍'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장사는 유동적이라서 언제 어떻게 될지 예상을 할 수 없다. 우리도 지금까지 약 60개월이란 시간 동안 운영을 하면서 같은 금액의 순이익이 나온 적이 한 번도 없다. 매출이 같아도 중간중간 비자 작업이다, 공사비다, 계약 연장이다 하며 큰돈이 들어가야 할 때가 많았다.


버는 족족 다 쓰는데 굳이 해외에서 살아야 할 이유가 있느냐 물을 수 있겠다. 그러나 한국에서 개인이 브랜드를 만들고 사업을 발전시키기란 어렵지만 해외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내 사업을 브랜드화할 여지가 아직 남아있다는 얘기다. 레스토랑에서 판매되는 음식의 가격에서 원가나 부가세 등을 제하고 나면 남는 것이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더더욱 프랜차이즈화 해야 한다. 가맹점을 내면 가맹비를 받을 수 있고 그 돈은 세금 등을 제하지 않고 100% 온전히 내 수익이 될 수 있으니 말이다.


식당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음식의 맛이다. 하지만 요즘같이 정보가 범람하는 세상에서 유튜브로 배우지 못할 음식은 없다. 그만큼 레시피가 많이 공유되고 있고, 이 집이나 저 집 모두 상향 표준화된 음식이 서빙된다. 반면 해외는 아직인 경우가 많다. 동남아를 비롯한 해외 다수 여행지를 가본 사람들이라면 알겠지만 해외에 있는 한식집의 수준은 천차만별이다. 한국인이 아닌 외국인들이 운영하는 곳들이 많고, 한국인이 운영을 한다 하더라도 사장님이 직접 요리를 할 줄 아는 경우는 더 드물다. 남편은 바로 그 점을 노렸다. 


사장이 직접 나서서 요리를 하고, 손님과 대화를 나누고 그들이 원하는 바를 들어주었다. 우리가 비록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한국 프랜차이즈 식당은 아니지만 최소한 남편은 이렇게 사업을 했고, 덕분에 지금까지 해외에서 세 가족이 살아올 수 있었다. 적어도 우리는 그렇게 먹고살고 있다. (참고로 나는 한국의 몇몇 매거진에 원고를 기고하는 프리랜스 에디터로 활동하고 있지만 원고료는 한화로 지급되었기에 해외에서의 삶에 직접적인 보탬이 되진 않았다)




20대에는 미래에 대한 꿈을 꿨다면 30대부터는 삶이 곧 현실이 된다. 현실이 이상보다 크게 다가 올 미래를 우리는 또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 회사도 평생 다니지 못했는데, 과연 지금 하는 이 일은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한국에서의 삶과 해외에서의 삶, 어느 것이 더 나은 삶인지는 각자 삶의 모습이 다 다르기에 뭐라 말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금의 삶이 조금 더 낫다 생각하기에 이렇게 또 한국이 아닌 곳에서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앞으로 또 어떤 일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두렵지만 또다시 도전하게 만드는 그 무언가가 해외엔 있다. 이 곳에서 삶이 더 기대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Photo by Alexander Mils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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