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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프 Nov 16. 2019

도둑들

범인은 가까운 곳에 있다.

영화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을 찍은 에드워드 양 Edward Yang 감독은 영화 <하나 그리고 둘>(원제: 一一, Yi Yi로 2000년 제53회 칸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했다. 이 영화에 보면 이런 대사가 나온다. 


"대만만큼 복제를 잘하는 나라는 없어!" 


저 말을 듣고 무릎을 탁 쳤다. 우리가 당사자였기 때문이다.




모든 준비가 끝나고 천신만고 끝에 2017년 11월 11일, 드디어 대만에서 서울치킨 타이완을 열 수 있었다. 오픈 후 지인들과 알음알음으로 찾아온 손님들이 몰리면서 하루하루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인도네시아에 이어 대만에서도 현지 언어에 익숙하지 않은 탓에 직원들의 도움이 필요할 때가 많았다. 가게에서 사용할 채소를 주문하는 일도 그중 하나였다. 오픈 당시 우리에겐 창, 패리스라는 이름의 남녀 직원이 근무하고 있었다. 매일 필요한 채소 종류와 양을 체크해 주문하는 것은 패리스의 담당이었다. 채소를 주문할 때마다 손으로 쓴 영수증이 함께 전달되어 왔다. 


준비해놓은 채소가 소진될 때면 급하게 근처 슈퍼에 가 새로 구입하곤 했다. 그런데 이때 뭔가 이상한 점이 발견되었다. 분명 똑같은 채소인데 슈퍼에서 파는 가격보다 거래처에서 받는 가격이 더 비싼 것이었다. 거래처가 가격을 속였거나 아니면 직원이 '해먹은'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우리의 거래처는 농부인 집주인 아저씨가 찾아준 곳이었고 그 둘은 오랜 친분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들이 이런 짓을 해서 얻을 것은 없어 보였다. 오히려 득 보다 실(집주인과의 친분 관계 상실 및 업계에 금방 퍼질 소문 등)이 많았다. 


의심의 화살은 패리스에게로 돌아갔다. 아무래도 수기 영수증을 조작해 돈을 중간에서 가로채는 듯했다. 하지만 증거가 없는 상태에서 사람을 몰아세울 순 없는 일이었다. 일단 거래처만 다른 곳으로 바꿨다. 그러자 낌새를 차렸는지 패리스가 일을 그만두겠다고 통보해왔다. 자연스럽게 다른 직원에게 채소 주문하는 일이 돌아갔고 또 다른 알바를 구하기 시작했다.


이전 글에서 말했듯이 타이베이가 아닌 뤄동진에서 일할 사람을 구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르바이트가 구해졌다. 바쁜 나날 중 들려온 희소식이었다. 새로 온 직원의 이름은 릭. 똘똘하니 일 좀 하게 생겼다 싶었는데 실제로 그는 가게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식자재 주문도 하고, 튀김기에 남아있는 폐기름도 가는 등 남이 하기 싫어하는 힘든 일을 자처하기도 했다. 그 덕분에 삶이 좀 편해지나 싶었는데  그의 태도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근무한 지 한 달이 지나자 그는 주말에만 나오고 싶다고 했다. 타이베이에 있는 여자 친구와 함께 지내고 싶다는 게 이유였다. 두 달이 지나니 이번엔 타이베이에서 취직이 됐다며 일을 그만둬야겠다고 했다. 그리고 정확히 세 달 뒤 타이베이에 서울치킨을 본뜬 '굿 치킨 하우스'가 생겨났다. 어깨너머로 배운 실력으로 치킨집을 연 것이었다.   


대만 사람들이 카피를 잘하는 것은 알고 있었고, 이런 류의 이야기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설마 우리가 그 장본인이 될 줄은 몰랐다. 기가 찼다. 


도둑은 릭 하나뿐이 아니었다. 서울치킨 타이완의 오픈 멤버였던 패리스 역시 자신의 고향 타이난으로 내려가 서울치킨에서 배운 떡볶이로 장사를 하고 있었다. 뤄동진 현지에서 남편의 도움을 받아 가게를 오픈한 창 역시 말도 없이 우리 가게의 메뉴를 가져다 팔고 있었다. (물론 모양만 비슷할 뿐 맛은 전혀 다르다) 대체 우리가 몇 명을 먹여 살린 걸까. 마치 유니세프라도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도둑들은 어디에나 있다. 인도네시아에서도 그랬다. 알버트는 서울치킨 인도네시아의 오픈 멤버였다. 현지 언어를 못하는 우리 부부에게 영어를 구사하는 그는 가뭄 속 단비와 같은 존재였다. 그는 자신이 싱글대디라고 했다. 아이가 둘 있는데 아내가 바람을 펴서 이혼했다는 것이었다. 한날 갑자기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며 대성통곡을 하더니 집으로 돌아간 일도 있었다. 안타까운 마음에 한국식으로 조의금 한화 10만 원(그들 월급의 ½에 해당하는 액수)을 인도네시아 루피아로 환산해 조의금으로 챙겨 보냈는데 알고 보니 그의 어머니는 멀쩡히 잘 살아 계셨다. 그냥 일하기 싫어서 거짓말을 하고 튄 것이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이런 일이 흔하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남편은 어이없게 뺏긴 돈을 찾아오려고 그의 이력서에 적힌 주소로 집을 찾아갔다. 그런데 장인어른이 떡하니 집에 계셨다고 한다. 이혼했다더니? 이혼은 무슨, 장인어른과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잘만 살고 있었던 것이다. (읭?) 그의 모든 것이 거짓이었다.  


결국 알버트는 일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한국에서 가져온 숟가락과 포크, 접시 등의 집기도 사라졌다. 좋은 건 알아가지고...


그 이후 직원 몇 명이 그만두고 그동안 또 얼마나 많은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는지 모르겠다. 그들은 대체 몇 명을 더 저 세상으로 보내야 일을 할 생각이었을까? 지금 생각해도 이해되지 않는다.



그들은 과연 잘 살고 있을까? 도둑질로 채워진 인생은 그래서 결국 행복해졌을까? 


이 글을 보던 남편이 옆에서 쓴웃음을 지으며 한마디 했다. 한 번도 안 해 먹은 놈은 있어도 한 번만 해먹은 놈은 없다고.




Photo by w-a-t-a-r-i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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